국민배우 강민후
2
박민규 장편소설
1장 라이벌은 최고의 친구이다(2)
촬영이 끝이 나자 밤이 되었다. 오늘 분량에는 하진우 홍수민이 촬영하지 않았었다. 현재 이곳에 있는 배우들은 곧장 회식 장소로 이동하고 진우와 수민의 경우 회식 장소로 따로 참석할 예정이었다.
“자, 이제 배에 기름칠 좀 하러 가볼까요?”
김택일 PD가 양손을 살살 비비면서 하는 말이었다. 촬영 장비도 모두 걷은 상태였고 스태프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오늘의 회식 주제는 소고기였다.
스태프들에게는 무척이나 값진 음식이었으며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김택일 PD도 큰 자부심을 느꼈다. 자신이 이끌고 있는 팀이 특별하게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 큰 자부심을 느끼게 하에 충분한 일이었다.
촬영팀 인원들이 멀지 않은 인근의 고깃집으로 이동하였다.
고깃집은 규모가 상당히 컸다. 다른 배우들의 밴 차량이 그곳에 멈춰 서고 다른 스태프들의 차량 또한 멈춰 섰다. 자신의 차량을 따로 가지고 온 민후도 주차하고는 예약석인 2층으로 올라갔다.
방은 대형으로 이루어진 50명 수용이 가능한 자리와 더불어서 8명 10명 식의 인원을 받을 수 있는 룸도 있었다.
총 이곳의 예약석이 80석 정도 되었는데, 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곳에서 일반적인 스태프들이 식사를 하게 되고, 10명 수용 가능한 곳에서 배우들과 담당 PD, 그리고 이 자리에 추후 MBS 방송국의 국장님이 잠시 들르기로 되어 있었다.
논스톱 5가 우려완 다르게 고공행진의 기미를 보였기 때문에 한 방송국의 국장직을 담당하는 그도 잠시 축하해주기 위해 오는 것이었다.
“이야, 맛있겠다.”
배우들도 소고기를 보고 예외는 없었다. 진후가 군침을 삼키면서 하는 말이었다. 고기가 익기 시작하자 본격적인 회식 자리가 시작되었다.
50여 명의 수용석에는 소주가 두 짝이 기본적으로 세팅이 되었으며 배우들이 있는 이 자리에도 10병이 기본적으로 깔렸다.
놀고 마시는 것. 그것이 고된 노동의 대가 중 가장 큰 것이지 않을까.
“김 PD님- 제 술 한 잔 받으세요.”
민후는 빙긋 웃으면서 기분 좋게 웃고 있는 택일에게 여우같이 얍실한 눈을 하고는 술을 권하였다. 그는 능숙한 술 예절을 보이면서 그의 잔에 따라주었다.
“이야, 역시 민후는 달라, 응? 정말 달라. 하하하!”
김택일이 그에 쩌렁쩌렁 웃었다. 다른 배우들도 질 수 없다는 듯이 그에게 술을 권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가 술잔을 뒤로 빼면서 그들을 눈을 가늘게 뜨면서 훑어보았다.
“지금 나 취하게 하려고 먹이려는 거지!?”
배우 여럿이서 술병을 들고 덤벼드니 하는 말이다.
“하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호호, 들켰네-?”
그 모습에 배우들이 있는 룸 안으로 웃음소리가 크게 퍼졌다. 그러나 그와 반면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묵묵히 소고기를 먹으면서 술잔을 계속 기울이는 이가 있었다.
김민준이었다. 다른 배우들이 웃고 떠들며 회식 자리를 즐기는 반면, 그는 이 회식 자리가 싫었다. 아무도 말 한 번 걸어주는 사람 없는 회식 자리 따위가 어디 좋겠는가.
그나마 말동무가 되었던 매니저는 술은 안 하여도 대형석에서 함께 음식을 즐기고 있을 것이었다.
“저 선배님, 한 잔 받으시죠.”
그때 옆에 있던 강민후 녀석이 술병을 들어 권했다. 그는 그가 들고 있는 술병을 빼앗아 자신의 잔에 따르고는 입에 털어 넣었다.
‘동정이냐? 가소로운 새끼.’
그는 실소를 머금었다. 그의 행동이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부정하지 못했다. 그것이 그에 대한 부러움이라는 것을.
그 때문에라도 더욱 악착같이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라는 존재에게 절대 질 수는 없었다.
요즘 인터넷 기사 등을 보면 강민후와 김민준. 두 사람이 함께 논스톱 5의 떠오르는 신인으로서 알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허튼소리라고 외친다. 그는 곧 강민후를 지르밟고 논스톱 5의 성공을 이끈 장본인으로 남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미친 듯이 노력하고 있었다.
‘고집하고는… 쯔쯔.’
그 모습을 보면서 민후는 혀를 찼다. 선배에 대한 예의로 한 잔 권했을 뿐이다. 민후도 술잔을 꺾어 입에 털어 넣었다.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영단 탓인지 민후의 몸이 원래 술고래의 몸인 것인지 이 신체는 소주를 여섯 병은 먹어야 알딸딸해졌다.
본래 최강호이던 시절 그의 주량은 한 병 반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먹어도 취하지 않는다. 이것은 술자리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특히나 민후처럼 촬영팀 인원들과 어울리려는 이는 더욱 그러하였다.
“어어? 민후, 어디 가?”
김택일이 그가 일어나자 고개를 갸웃했다. 민후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고생하는 감독님들, 그리고 스태프분들 한 잔씩들 돌려야죠.”
“하- 민후는 된 녀석이야! 된 녀석! 하하하!”
택일은 그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 말에 다른 배우들도 그를 따라 쫓아가려다가 막혔다.
“자네들이 가면 난 누구랑 술을 먹나?”
그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민후를 쫓아가려다 그것이 택일로 인해 제지당했다. 택일이 빙긋 웃으면서 배우들에게 술을 돌렸다.
“촬영 감독님.”
“이야, 우리 민후 어쩐 일이신가?”
“제가 고생하는 저희 감독님 술 한 잔 따라드리려고 왔죠.”
“좋타! 민후가 주는 술이라면 사양할 것이 없지. 하하하!”
민후는 차례로 50여 명의 스태프 중 연장자부터 하여서 밑으로 내려오며 술 한 잔씩을 건넸다. 그가 다가설 때마다 그들 모두가 호응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에게 술 한 잔씩 건네고 또 술도 한 잔씩 꺾으니 어느덧 그 본인이 혼자 4병 정도를 마신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 끄떡없었다. 너무나 멀쩡한 몸에 자신 본인이 기가 질릴 정도였다. 대형석을 한 번 빙 도니 순식간에 한 시간이 훅하니 지나버렸다. 술기운이 올라와 얼굴이 붉어진 이들도 있었고 목소리가 커진 이들도 있었다.
“야아, 민후야아!”
“예, 음향 감독님.”
그중에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의 음향 감독님도 있었다. 그의 부름에 민후는 잽싸게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앉은 자세의 그였기에 민후도 자세를 낮춰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자 그가 양손으로 민후의 볼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하하하, 이 짜식- 참, 자- 알생겼다! 요즘 애들 같지 않게 정말 싹싹하다니까? 내 딸아이 시집 보내고 싶을 정도야! 너는 말이야, 인마. 내가 장담한다. 넌 성공한다. 성공해. 하하하!”
그의 주정이 담긴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그가 곧 옆쪽에서 술을 권하는 조명감독이 그제야 손을 놔줬다.
민후는 픽하고 웃으며 담배 한 대를 피우기 위해 2층에 있는 흡연구역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흡연자들이 앉을 수 있게 소파와 더불어서 소형 커피 자판기가 함께 놓여 있었다. 민후는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시면서 한 대 피울까 하다가 소파에 고개를 축 숙이고 앉아 있는 이를 볼 수 있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팀 인원일 터였다. 일단 오늘 예약석은 자신들이 전부 빌렸기 때문이다.
체구로 보니 상당히 낯이 익었다. 그는 일단 자신의 팀 일원이었기에 그를 챙기려 다가섰다가 옆모습을 보고는 김민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조금 전에 그렇게 말도 없이 혼자 퍼 붇더니 결국 술기운이 많이 올라온 것 같았다.
민후는 ‘알아서 매니저가 챙기겠지’ 하면서 담배를 꺼냈다. 어차피 또 건들면 자신에게 험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막 불을 붙이려는데 그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끄으윽! 답답해…… 답답해에…….”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입고 있던 웃옷을 벗어젖힌다. 민후는 한숨을 쉬었다. 그의 모습이 당장이라도 토를 할 것 같았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그에게 다가섰다.
“선배님, 많이 답답하세요?”
“답답해에…… 답답해.”
답답하다고 연신 말하는 그를 민후가 조심스레 일으켜 세웠다.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그를 부축하여서 밖으로 나왔다. 2층에서 밖으로 나오면 뒤쪽에 바로 주차장이 있었다.
그나마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위치였다. 혹여 바람 쐬러 왔다 누군가 알아보면 좋을 것은 없었다.
날씨가 아직 쌀쌀한 날씨였다. 그러나 술을 깨게 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라 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는 앉을 곳을 찾아 바로 앉아버렸다.
민후는 그런 그의 옆을 말없이 지켜주었다.
“담배…… 담배 줘…….”
‘얼씨구.’
그의 말에 민후는 헛 웃었다. 그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고는 불을 붙여주면서 자신도 담배 한 대를 더 꺼내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그는 피는 둥 마는 둥 하였다. 그와 20분 정도 있었을까. 그는 슬슬 추위가 몰려오는 것인지 몸을 잔뜩 웅크렸다.
“선배님, 이제 들어가시겠어요.”
“으음…… 음…….”
그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누군가의 목소리에 살며시 눈을 떴다. 그러다 자신의 눈앞에 민후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는 눈에 힘이 들어갔다.
“너 이 새끼이!”
그는 취기 때문인지 민후를 알아보자마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킨 그는 삿대질을 하면서 독기를 품은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왜 이렇게 내 앞에서 알짱거리는 거냐, 응!? 네가 뭔데, 이 새끼야! 왜 그렇게 매일 웃고 다니는 거냐고!”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본인도 모르게 민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바깥에서 배우의 이런 행동은 좋지 못하다. 하물며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신인 배우였다.
그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민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로는 그보다 훨씬 오랫동안 이 배우계에 머물렀던 이로써 걱정이 든 것이다.
“일단 들어가셔서…….”
“이거 안 놔!? 이 새끼가!”
민후가 그의 휘적거리는 팔을 붙잡으려 하자 그가 손을 쳐내면서 멱살을 붙잡았다. 민후는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술에 취해 이런 식이라면 자신 본인도 곤란하다.
선배이든 뭐든 이런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왜 너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랑 ‘하하호호’ 쳐 웃는 거냐고, 응!? 네가 외로움을 알아 새끼야!? 누구 하나, 누구 하나 말 걸어주지 않는 기분을 아냐고, 응? 기분 나쁜 새끼, 네까짓 놈이 뭔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새끼야. 그런데 그런 네까짓 놈이 왜 그렇게 웃는 거냐고!”
“그럼 웁니까?”
민후도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그였어도 그의 목소리도 좋게 나올 수는 없었다. 그에 그가 멱살 잡은 손을 떨쳐냈다. 민준이 뒤로 물러나면서 웃음을 흘렸다.
“예의 바른 척, 착한 놈인 척 다하더니 이젠 선배도 없구나, 빌어먹을 새끼. 말하는 싸가지 봐라. 내가 너한테 질 것 같아? 너한테 절대 안 진다. 밟아 주마. 내가 왜 지금 이렇게 미칠 듯이 노력하는데, 너한테 안 져, 이 새끼야!”
“정말…….”
민후는 어이가 없어서 목구멍으로 말이 차올랐다.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나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없었다.
“어이가 없습니다, 선배님. 선배님이 어울리지 못하는 게 제 탓입니까? 그것이 그리도 어렵습니까? 부잣집 도련님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서서 말하는 것 자체가 원래 안 되는 것이랍니까?
아니면 자신보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한테는. 매일 대접만 받았던 사람이 먼저 다가서는 것이 안 됩니까? 어디서 그런 말 같지도 않은 핑계입니까. 그깟 자존심, 있는 것이 우스운 겁니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지요. 선배님이 그깟 자존심 한번 버리면! 사람들이 어찌 대할지!”
민후는 속 시원하게 말했다. 대접받고 살았던 삶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것이 있는지 그의 정확한 생각은 알지 못한다. 하나 스스로 헤쳐 나가지 못하는 존재가 누구에게 막말을 한단 말인가.
아무리 선배여도 참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존재한다. 더욱 한소리 하고 싶지만 괜한 싸움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는 몸을 휙 돌려 올라가 버렸다.
그리고 민준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실소를 흘렸다.
“니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는 비틀거리면서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한껏 비볐다. 그러고는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를 곱씹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곱씹던 목소리는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그게 쉬운 줄 알아? 다른 사람들이 나를 꺼리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그의 아버지가 한 회사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를 돈으로 생각하고 접근하거나 혹은 꺼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이 나이 먹도록 진짜 친구 하나 없었다.
그런데 취기에 민후의 말을 생각해 보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렇다, 그것 하나 먼저 다가가는 게 과연 힘든 일일까. 참으로 쉬운 일이다.
말 한마디, 웃음 한 번, 인사 한번. 어려운 일은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왜 그럴까.
“젠장.”
그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린다. 빌어먹을 자신 본인이 한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계단을 밟고 올라온 민후는 흥분했던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잠시 흥분했었다. 평소 자신과 같지 않았다.
가슴을 진정시킨 그는 민준의 매니저에게 주차장에서 그가 술에 취해 있다고 말해주었다.
자신에게 뻥뻥 소리치던 것을 보니 술은 어느 정도 깬 것 같았다. 배우들과 담당 PD인 김택일이 있던 방으로 들어오자 MBS 국장이 앉아서 부드러운 미소로 담당 PD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국장님!”
“어이구, 우리 강민후 군 아닌가. 하하!”
국장은 올해 쉰한 살의 나이로 7년 이상 국장 자리를 지켜온 분이기도 하였다. 본래의 강호와 몇 번 안면을 튼 사이이기도 하였다.
민후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자 그는 몸을 일으켜 민후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그 김민준이라는 배우는 어디 갔나?”
“술이 조금 취해서 밖에서 좀 깨고 있습니다.”
“그렇구만, 오늘 못 보고 가서 아쉽군.”
국장은 때마침 일어나려고 했던 듯싶었다. 그와의 자리에 오래 있지 못했던 것이 아쉬운 민후였다. 이것이 다 김민준 때문이라는 생각에 화가 치밀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어쩌겠는가.
그가 자리에 앉자 담당 PD가 의아한 표정이다.
“웬일로 민후 네가 민준이랑 같이 있었다냐.”
“술에 취해서 바람 좀 쐬게 해줬어요.”
“한 소리 들었겠구만.”
담당 PD는 헛웃음을 지었다. 다른 배우들도 그랬을 것 같다는 모습이다. 민후는 어색하게 웃었다. 슬슬 자리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로 아쉬운 기색이 일었다.
슬슬 사람들이 자신들이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배우들도 몸을 일으켰다. 민후는 카운터 쪽으로 오자 매니저와 함께 있는 민준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민후를 한 번 노려보더니 다시 매니저의 부축을 받았다.
“PD님, 잘 먹었습니다.”
“이야, 오랜만에 포식했네!”
다른 사람들도 슬슬 카운터 쪽으로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담당 PD가 방송국에서 지급 받은 카드로 계산하였다.
“오늘 무척 즐거웠습니다. 다음번에도 이런 자리 마련하도록 노력하죠.”
“조금 아쉽습니다-!”
“2차! 2차! 2차!”
역시나 아쉬움에 사람들은 2차라고 외쳤다. 방송국에서 할당받은 금액에 비해 생각보다 많이 나온 상황에 2차는 무리였다.
2차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민준은 확 하니 다시 민후를 보았다. 갑자기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왜 그 쉬운 것을 하지 못하냐고. 자신이 저런 녀석한테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게 오기가 생기기도 하는 한편, 정말 왜 그 쉬운 말을 하지 못하나 싶었다.
그는 술기운을 빌어 용기를 냈다.
“제, 제가 아주 시, 시설 좋은 노래방을 압니다! 가, 가시겠습니까? 2차는 제, 제가 쏘옵니다!”
“미, 민준 씨가?”
“노래방이라. 2차로 최고지!”
“호오?”
민준의 의외의 모습에 촬영팀 인원들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아쉬움에 가고 싶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이내 그들이 한입으로 모아 말했다.
“김민준! 김민준! 2차! 2차!”
“하, 하하. 제,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사람들이 꺼려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저 녀석 왜 그래?’하는 것은 아닐까. 또는 다르게 스스로가 용기가 없었던 자신으로 인해 편한 말조차 하지 못했던 그였다.
물론 2차를 쏘겠다는 것에 호응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는 생각 외의 호응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비틀거리며 매니저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안내하겠다고 쩌렁쩌렁 소리쳤다.
민후는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얼씨구?’ 할 수밖에 없었다.
* * *
어제저녁 고깃집에서의 회식이 11시까지 이뤄졌었다. 그리고 노래방에서 2차를 즐기니 2시까지 회식을 즐기는 꼴이 되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자 그들의 머리는 깨질 것처럼 아팠지만 그래도 즐거웠으니 된 것이 아니겠는가.
민후는 어김없이 학교가 끝나자마자 평소와 마찬가지로 촬영장으로 왔다. 촬영장으로 온 그는 안색이 안 좋은 이들도 몇몇 볼 수 있었다. 어제 먹은 술이 아직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 거다.
그는 평소 때처럼 활기차게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며 도울 것은 도와주고 웃을 것은 웃고 있었다.
차츰 촬영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배우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였는데, 그중 김민준 역시도 있었다. 민후는 그를 보자마자 헛 웃었다.
정작 본인은 어제의 일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모르겠으나 어제저녁 그는 노래방에서 정말 한 마리의 야생마와도 같았다. 그에게 그런 모습이 있는 줄은 몰랐던 민후다.
그를 제외하고도 다른 스태프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제 휴지를 뽑아대면서 댄스 음악을 부르며 춤을 추는가 하면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하였다.
그로 인해서 2차의 흥이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었으며, 민후나 다른 촬영팀 인원들이 그의 숨겨진 본능에 적잖이 놀랐었다고 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한편 김민준은 안타깝게도 어제의 그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노래방에서도 술을 몇 잔 걸쳤더니 완전 자신이 아닌 것같이 움직여 버리기 시작하였다.
그의 속에 있었던 이제까지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못했던 것이 확 하니 활화산처럼 분출된 것이다.
그의 기억 끝자락의 한구석에는 어제 댄스 음악을 부르다가 입고 있던 옷까지 벗어서 오른손으로 들어 올려 휘휘 흔들어대던 것까지 기억났다.
촬영장으로 오는 내내 걱정이 많았다. 어제 술기운을 빌어서 그런 일을 했다지만 이제 스태프들이 자신을 어찌 볼까 걱정이 컸다.
그동안 그렇게 깐깐하게 행동해댔으니 평소와 완전 다른 모습을 보였던 그로서는 그가 하는 걱정이 당연하였다. 또 자존심이 강했던 그가 그런 식으로 놀았다는 것에 본인 스스로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상황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PD님.”
“오.”
그는 주위의 스태프들의 시선을 느꼈다. 그 시선이 무엇인 줄은 몰랐지만, 자신을 보고 비웃고 있다고 그는 그렇게 느꼈다. 담당 PD에게 일단 인사를 했다. 그가 작은 감탄을 하면서 박수를 쳤다.
짝짝짝!
“우리들의 분위기 메이커. 어젠 정말 최고였어.”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어떠한 안 좋은 시선을 보내려나 싶었지만, 그와 정반대로 그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어제 민준 군 덕에 아주 잘 놀았지.”
“자옥아- 자옥아- 내 어깨 위엔 날개가 없어. 널 찾아 못 간다. 내 민준아아-”
담당 PD에 이어 촬영 감독이 어제 민준이 눈물까지 펑펑 쏟아부으면서 열창을 하였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다가왔다.
“내가 정말 감탄했지, 세상에 그렇게 잘 놀면서 평소엔 왜 그런 거야? 어제 정말 즐거웠다고.”
“가, 감사합니다.”
“자옥아- 자옥아- 크흐흐흑!”
“하하하하!”
이번엔 음향감독이 어제 자옥이를 부르다 말고 눈물을 흘렸던 민준에게 장난을 치듯이 어제 펑펑 울던 그를 따라 했다. 촬영장에 있는 인원들이 폭소를 하였다.
“다음 회식 때도 분위기 메이커 부탁하네.”
담당 PD가 피식 웃으면서 하는 말이다. 실상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민준이 촬영팀에 더욱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물론 어제저녁은 그가 술의 힘을 빌려 그랬다 하지만 충분히 앞으로도 이렇게 웃음을 선사하고 다른 이들로부터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다.
그의 말에 민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는 대답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촬영팀 인원 중 꽤 많은 이들의 시선이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이곳에 들어올 때 ‘비웃음’이라고 생각하였던 시선은 비웃음이 아닌 ‘즐거움’이었다.
비웃음이라 생각했던 것은 자신의 편견이었다. 자신이 돈이 많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도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갑자기 그들에게 다가가면 그들이 이상하게 보리라는 것은 오로지 전부 민준의 고정관념과 편견이었다.
하물며 스태프들이 어제저녁. 그가 2차를 제공함으로써 그에게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어제저녁. 그 차갑고 낯설게만 느껴져서 항상 거부감이 들었던 김민준이라는 이가 일반적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노는 모습에 ‘결국 같은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확실히 어제 그로 인한 재미는 최고였다.
민준은 실감이 잘 나지 않는 표정으로 웃었다. 외톨이. 그걸 여기에서 그만둘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어째서 외톨이었는지 어떻게 해야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 깨우친 민준은 사람들에게 앞서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이 무척 어색해 보였지만 그는 촬영장에 오면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다가가 인사를 하였으며 가끔은 우스운 농담도 던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감독들에게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다가가 양해를 구하였다. 이젠 그도 완전히 논스톱 5의 촬영팀 식구로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와 더불어서 항상 차가웠던 그의 표정에 웃음이 줄곧 보이고는 하였다. 그리고 민후에 대한 안 좋았던 시선이 상당히 누그러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기자로부터 요즘 논스톱 5에서 배우로서는 큰 인기를 얻어내고 있는 강민후와 김민준. 이 두 사람을 공동 취재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 의견에 민후는 무산되겠구나 싶었다. 그가 자신과 공동 진행하는 인터뷰라면 거절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그는 흔쾌히 수락 의사를 밝혔으며 카메라를 든 안경을 쓴 기자가 촬영장으로 찾아왔다.
현재 두 사람에게는 이런 작은 인터뷰 하나마저도 무척 기쁜 것이었다. 그래야만 이름을 빨리 알릴 수 있었다.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기자는 잠시 휴식에 들어오자 빠르게 다가와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안녕하세요, 요즘 두 분이 열연하는 논스톱 5 잘 보고 있습니다.”
민준과 민후가 함께 앉고 맞은편에 이정규라고 이름이 써진 기자가 인사를 했다. 두 사람도 작은 미소로 인사했다.
“두 분 요즘 논스톱 5로 한창 주목받고 있는 신인이신데요. 두 분 연기실력이 신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호평을 받고 있어요. 음…… 먼저 민후 씨에게 질문할게요.”
수첩을 들고 있는 그가 자신을 보자 민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후 씨는 듣기로는 연기 학원에 다녔던 경력도, 소속사도 현재 없는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재학 중인 학생에 있지만, 캐스팅 전 당시에는 그것도 확실하지 않았다고요.”
민후는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강민후 씨께서 특별히 연기를 잘하는 비결이 있다면? 사실 많은 시청자분이 궁금해 하시거든요.”
“비결보다는, 저는 일단 제 입으로 스스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민후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고, 기자는 빠르게 받아 적었다.
“대본을 쉴 새 없이 들고 다녀서 완전히 외워버리기도 하고, 집에서 혼자 카메라를 켜놓고 제 모습을 모니터하면서 확인하는 것도 쉴 새 없이 반복하기도 하고요. 저는 그 비결에 대해서 일단 ‘노력’이라고 말해두겠습니다.”
“아…… 노력이라. 그것 참 좋군요.”
그는 수첩에 ‘노력’이라고 적고 동그라미를 친 후 별표를 쳤다. 기사에 쓰기 상당히 좋은 말이었다. 그는 곧 민후와 몇 마디를 더 나눠 받고는 민준을 보았다.
“민준 씨는 독특하고도 유쾌한 보헤미안 캐릭터를 잡고 있죠. 요즘 신인이기는 하지만 ‘대세’라는 말이 많아요. 민준 씨도 민후 씨처럼 비결이 있다면 어떤 게 있죠.”
“글쎄요. 비결이라…….”
그는 잠시 말끝을 흐리면서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비결이라 민후도 상당히 궁금해졌다.
확실히 그는 신인이지만 뛰어난 배우였으니까. 그는 잠시 말이 없더니 민후를 슬쩍 보고는 다시 이정규 기자를 보았다.
“경쟁이랄까요?”
“경쟁이요?”
기자는 경쟁이란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수첩에 ‘경쟁’을 적고는 물음표를 그렸다. 민준은 피식한다.
“어떤 남자분을 경쟁상대로 두고 있는데, 그 사람한테 절대 지기 싫어서 미친 듯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뭐, 민후 씨만큼의 노력을 저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 남자가 나인가?’
민후는 본인임을 인지했다. 임경우가 자신을 경쟁상대로 두고 발전한 것처럼 민준의 경우도 그러고 있는 것 같았다. 실상 어느 정도 예측은 하긴 했었다.
“그 사람이 잘되면 배가 아프고, 그 사람이 하는 대사가 좋으면 저도 자연스럽고 좋은 대사를 하고 싶고. 이런 말도 있잖아요. 라이벌은 때론 최고의 친구이기도 하다. 그 사람 때문에 저는 노력하고 있다고 하나의 비결을 말씀드리죠.”
민후는 고개를 살짝 숙여 피식하였다. 민준의 시선이 잠시 느껴졌다. 그도 픽 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요즘 그의 행동이 민후에게 많이 부드러워졌더니 이젠 자신을 슬슬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로서도 기분이 좋았다. 항상 싫다고만 하였던 사람이 이젠 다가오기 시작한다는 것. 그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었고 민후 역시도 마찬가지다.
기자의 인터뷰는 쉬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지속 되다가 담당 PD인 택일의 ‘촬영 재개합니다.’라는 말에 재빠르게 정리를 하고는 끝냈다.
참 좋은 말이지 않은가, 라이벌은 때론 최고의 친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