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장 논스톱 5! 왕따 된 강민후!? NO! 인기쟁이 강민후! (5/51)

5장 논스톱 5! 왕따 된 강민후!? NO! 인기쟁이 강민후!

민후는 오전에 집에서 나서 MBS 방송국으로 왔다. 방송국으로 온 그는 MBS 건물의 3층에 위치해 있는 ‘논스톱 5’라고 적혀져 있는 회의실 문 앞에 섰다.

실질적인 진짜 배우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기뻤으며 또한 어떠한 배역을 맡게 될지에 대한 기대감도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었다.

각 캐스팅 된 배우들의 집으로 우편물이 날아왔다. 방송국에서 보내준 임시적인 논스톱 5의 캐릭터들의 소개였다. 그들의 나이 등이나, 예상되는 성격 등을 적어놓은 것이었다. 아마도 이것을 보고 자기는 무엇에 어울릴지 가늠해본 배우들이 많을 것이다.

똑똑.

그는 노크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둥글고 긴 테이블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선 그는 안의 인물들을 먼저 눈으로 담았다.

정중앙에는 담당 PD인 김택일이 앉아 있었으며 그의 옆으로는 논스톱의 시나리오 작가들로 추정되는 이들과 더불어서 서로를 마주 보는 상태로 이번 논스톱 5에 캐스팅된 배우들이 앉아있었다.

이번 논스톱 5는 상당히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이유는 신인배우들의 다수 캐스팅 때문이었다.

사실 이 우려는 논스톱 4에서도 발생이 되었었으나 그들의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과 웃음으로 커버가 되었었다.

이번 논스톱 5 역시도 초반에는 신인배우들의 캐스팅으로 하여금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수월하게 진행이 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물며 논스톱 5에는 추후의 톱배우들이 많았다.

아니 논스톱이라는 시트콤 자체가 톱배우들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수많은 배우들이 논스톱을 시작으로 하여서 추후 명실공히 최고의 배우가 되는 것이다.

“앉죠, 강민후 군.”

실상 현재 앉아있는 대부분의 이들은 스크린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신인배우들이다. 그에 반면 강민후의 경우 스크린에서 한 번도 찾아보지 못한 완전한 신인이었다.

소속사도, 매니저도 없는 신인 말이다. 그 때문에 다른 배우들의 시선이 그에게 흥미를 동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서 그들은 혹여라도 강민후가 이번 시트콤을 망치는 역할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가지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 25분 동안 방영이 되는 논스톱이다. 그만큼 촬영은 수시로 이어지는 것이었으며 배우들이 그만큼 촬영에 잘 임해주어야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입문한 민후의 경우 혹시라도 촬영을 지체시키거나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이다.

민후는 그들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너나 잘하세요.’라고 하고 싶다.

그는 명실공히 시청자들에게는 ‘국민배우’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었다. 그리고 다른 배우들에게는 ‘독종’이라고 불렸으며 감독들은 그의 연기력에 수도 없이 감탄한 바가 있었다.

그러한 민후가 촬영을 지연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있다면 아마도 자신이 원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서 계속 촬영을 재개하는 것일 거다.

그는 노력에 최선을 다하는 만큼 감독만큼이나 최고의 장면을 원하는 배우였으니 말이다.

“아마 처음 보는 배우일 겁니다. 이번에 저희 논스톱 팀에서 새로 캐스팅 한 강민후라는 배우입니다.”

김택일 PD가 좋지 않은 시선의 다른 배우들에게 한 말이다. 민후는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켜서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면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올해 스무 살이 된 강민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열정과 패기 넘치는 목소리를 내었다. 현재 외적으로는 그들이 민후보다 선배였으며 그들에게서 안 좋게 보여서는 좋을 것이 없었다. 하물며 연예계는 잘 나가든 못 나가든 선배에게는 깍듯이 보여야 좋았다.

“아이씨, 귀청 떨어질 뻔했네.”

그중 진후라는 배우가 자신의 귀를 후벼 파면서 인상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다른 배우들도 깜짝 놀랐다는 것인지 좋지 못한 시선으로 민후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김민준이라는 배우가 손을 들었다.

“PD님.”

“예. 김민준 씨 말씀하세요.”

김택일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준이 황당하다는 웃음을 짓더니 민후를 한 번 보고는 다시 담당 PD인 그를 보았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이번에 신인들 캐스팅이 많았다지만 그래도 TV 한 번 안 나와 본 초짜를 논스톱에서 함께 촬영한다는 게 걸립니다.”

그의 질문에 김택일 PD는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표정이다. 다른 배우들도 그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들 본인들은 그래도 TV에 몇 번 나와 보기라도 했지, 저 녀석은 무엇이냐 하는 모습들이었다. 확실히 인증되지 않은 배우는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택일 PD는 그의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면서 다른 신인배우들을 둘러보았다.

“사실 강민후 군은 지금 현재 소속사도 없고 확인된 이력에 따르면 연기 학원에 다녔던 경력 또한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TV에도 한 번 나온 적이 없습니다.”

“하……!”

“그래요, 이건 조금 아닌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연기 학원도 다닌 적이 없다면 혼자 연습했다고 해도 실전 방송 촬영하고는 완전히 다르다고요.”

그의 말에 다른 신인배우들은 옳거니 하면서 이때가 기회다 싶었다. 그들도 논스톱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이 시즌이 나올 때마다 흥행하는 보증수표 시트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낙하산 같은 녀석 하나 때문에 시트콤을 망친다면 그들에게는 낭패였다. 물론 본인들도 TV에 수시로 나오는 톱배우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논스톱에 캐스팅된 확정 사실을 들었을 때 무척 기뻐했다.

그리고 민후의 경우도 그들의 이러한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그들에게는 연기 학원도 또, 소속사도 없는 민후가 불안한 것은 당연했다. 그 때문에 그저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번 캐스팅된 배우분 중에서 심사위원들을 통해서 가장 연기력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배우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김택일은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민후를 보았다.

“바로 강민후 군입니다. 다른 배우들에게 실례가 될지도 모르는 말이지만 강민후 군이 이 자리의 모든 배우를 통틀어서 가장 높은 연기력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 정도면 답이 될까요?”

“그게 무슨……!”

“에이…….”

“허 참.”

김택일의 말에 민후는 그를 보면서 빙긋 웃었다. 확실히 택일이나 다른 심사위원들은 오디션장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연기력에 새삼 감탄하였다.

연기 학원이나 소속사는 없지만, 그의 그 연기력에 논스톱 팀은 도박을 걸고 달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변수로써 혹여 그가 카메라 앞에 서면 오디션장과는 다른 연기를 펼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감수한 것이다.

그만큼 그의 연기력을 높이 샀다 할 수 있다. 다른 배우들은 택일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모습이었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기분 나쁜 티를 내는 간 큰 배우도 몇 있었다.

TV 출연도, 하다못해 소속사나, 연기 학원 다닌 경력도 없는 녀석이 자신들보다 나은 연기라니, 그것은 그들의 자존심을 팍팍 긁는 일이었다.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촬영장에서 추후 확인해 보시면 될 겁니다. 나눠주세요.”

김택일이 논스톱 작가 중 막내 작가로 추정되는 여성에게 말하였다. 갈색 머리로 염색한 그녀는 각 배우의 앞으로 한 장씩 프린트물을 건네었다.

민후도 그것을 받고는 단숨에 확인하였다.

*청춘 시트콤 논스톱 5*

배역 편성도

줄거리 : 문화 예술대학교의 영화 동아리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대학생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드라마이다.

김용재 : 감독을 꿈꾸는 논 씨네 하숙집의 집주인.

구민정 : 엉뚱한 성격. 더러움을 잘 모르고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평소 온순하고 순진한 성격. 그러나 자신이 쓴 시나리오에 대한 강한 애착심. 누군가 비난할 시 마녀같이 변모한다. 추후 강민후가 그녀를 좋아하게 될 것으로 설정.

진후 : 얼렁뚱땅 바보 같은 녀석. 동아리의 회장직. 진후 씨의 사정상 중도하차 예정으로 큰 배역은 넣지 못하였다.

하진우 : 얼굴 잘생긴 훈남. 더불어 순진하고 온순한 성격. 그러나 각종 무술의 천재.

강민후 : 과거 막동이라는 아역 배우였던 인물. 방송연예과 학생. 강한 승부심과 잘난 척을 잘한다. 추후 구민정을 좋아하게 될 것으로 설정.

김민준 : 조소과의 재벌 2세. 보헤미안 스타일을 꿈꾸는 개성 있는 캐릭터로 설정.

홍수민 : 무용과 출신의 만능 엔터테이너를 꿈꾸는 여성. 입이 가볍고 덜렁대는 성격. 초반부 하진우를 짝사랑하는 신 삽입으로 캐릭터 극대화 예정.

김지현 : 불같은 성격, 여우 같은 얍삽함. 좋은 비중이 아쉬우나 사정상 중도하차 예정을 밝히셨다.

*중도하차 배우들에 한하여서 새로운 멤버들은 추후 계속해서 오디션을 통하여서 캐스팅 예정. 양해를 바랍니다.*

“PD님, 보헤미안 스타일이요? 재벌 2세는 좋은데, 독특한 보헤미안 스타일은 뭐예요? 아니, 이제 막 시트콤의 ‘시’ 자도 모르는 사람한테 ‘과거 막동이’ 했던 역할이라뇨. 제가 하고 싶었던 건데.”

이번에도 김민준이라는 배우가 거세게 항의하였다. 민후가 맡은 역할은 나이가 가장 어리기도 하면서도 누나들의 사랑을 받게 될 스타일이었다. 하물며 김민준이 본래 노리고 있던 캐릭터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재벌 2세인 것까지는 좋은데 독특한 캐릭터의 보헤미안이라니,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에 담당 PD인 김택일의 시선이 가소로움을 머금고는 그에게 향했다. 실상 그들이 뭐라고 하든 실질적인 권력은 그가 잡고 있는 것이었으며 김민준의 태도는 신인으로서 PD의 선택에 무모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무엇이 문제가 된다는 건 줄 잘 모르겠네요. 일단 나이를 놓고 보더라도. 민후 군의 경우가 적합하다고 판단됩니다. 또 싱크로율 또한 좋다고 봅니다.

그리고 김민준 씨께서 언급하신 배역의 경우도 저희 작가들이 신경을 써서 잡은 캐릭터입니다. 충분히 만족하실 수 있으리라 판단됩니다. 그리고 이건 단순한 배역 정하기일 뿐입니다.

아직 정확하게 결정된 사항도, 정확한 시나리오도 나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 자신의 캐릭터를 살리고 자신의 흥행을 도울지는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렇게 마음에 드시지 않으시다면 계약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김택일 PD는 이럴 때는 강경하였다. 그는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표정이다. 김민준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더 좋아 보이는, 더 괜찮아 보이는 배역 하나를 뺏어내려다가 하차할 판이었다.

논스톱의 인기를 감안 한다면 자신이 손해를 보는 행위였다. 그는 조용히 입을 꾹 다물었다.

결국 꼬리를 내린 것이다.

“그리고 써진 대로 논스톱 5 역시 하차하는 이들을 통하여서 새로운 배우들을 계속해서 캐스팅할 것이라는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의 경우 1년 이상 진행되는 시트콤이다. 그만큼 인기가 출중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만큼 사정상 중도하차, 혹은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가 있다면 제적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신선한 새로운 배우들을 투입 시켜서 그 빈 자리를 메우는 일이 허다했다.

다른 배우들도 예상하던 바이기에 이 부분에서는 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배역도 정해졌고, 안내 말씀도 끝났으니 더 이상 하고 싶은 말 있으신 배우분들 계신가요?”

그의 물음에 모두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단지, 김민준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민후를 볼 뿐이다. 그는 그것을 무시했다.

“그럼 계약서 작성하도록 하죠.”

이번에도 막내 작가가 배우들에게 계약서를 건넸다. 각 계약서에는 개인들의 이름과 계약조건이 적혀져 있었다.

계약조건이 후한 편은 아니었다. 그는 일단 처음으로 TV에 나가게 될 방송에 출연하는 것인지라 당연한 것이었다.

차후 자신의 몸값은 본인 스스로가 올리면 되는 것이다.

그는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본 후에 사인과 지장을 찍었다. 다른 배우들도 계약서 작성을 완료한 듯싶었다. 막내 작가가 다시 계약서를 모아서 정리하여 김택일 PD에게 넘겼다.

그가 흡족한 표정으로 한장 한장 도장을 찍어주었다. 이로써 계약은 성립되었다. 강민후는 아역 배우 출신이자 잘난 척을 잘하고 승부욕이 강한 캐릭터를 맡게 된 것이다.

민후가 알고 있는 미래는 5년이라는 시간이었으며 현재 1년 반이 지난 상황이었는데 그가 알고 있는 이 캐릭터는 상당히 사랑받는 캐릭터였다.

본래 이 캐릭터를 맡았던 인물은 가수 출신의 남성이었는데, 이 배역으로 활동하게 됨으로써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이게 되고 낮은 인지도를 높이게 되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특히나 대한민국의 누나들의 마음을 흔들게 되는 역할이 바로 이 역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음번 만남에서는 아마도 1회의 대본 리딩이 있을 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통보는 각 매니저나 혹은 개인에게 연락을 취하여서 시간과 날짜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김택일 PD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배우들이 몸을 일으켜 나서기 시작하였지만, 촬영팀 인원들은 자리를 지켰다. 민후가 담당 PD인 김택일에게 최대한 예의를 차려 고개를 숙여 보였다.

‘벌써 배우들의 미움을 사서 어쩌나…… 오디션장에서 봤던 아이 그대로라면 잘 해내겠지.’

김택일은 그의 인사에 빙긋 웃었다. 민후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기대도 컸다. 벌써 다른 신인배우들이 따가운 눈총을 주고 있는 실정이었다. 배우들 간에도 급이 존재하고, 자신들의 급에 따라서 낮은 급의 이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나 민후의 경우 연기는 입증되었으나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완전한 무명배우였다. 그리고 다른 배우들이 못 마땅해하고 있다.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것은 강민후, 그 본인의 몫일 것이다.

“에효…… 논스톱도 이젠 끝났구나. 아무 배우나 그냥 가져다 쓰네.”

회의실에서 나선 민후는 엘리베이터로 가다가 김민준이나 다른 배우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아니꼬운 시선을 보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개의치 않아 했고 기분 나빠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그런 시선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독종 강민후에게는 오기를 만들게 했다. ‘누가 우위인지는 보면 알겠지.’라고 그는 생각했다.

“우리 이렇게 계약 체결한 것도 인연인데, 밥이나 다 같이 먹으러 갈까?”

가장 연장자이자 실제로 개그맨과 MC를 덩달아서 맡고 있는 김용재의 말이었다. 그는 후덕한 인상에 안경을 쓴 남성이었는데 요즘 인기가 좋은 편에 속했다.

“정말요, 선배님? 선배님이 사주시는 건가요?”

“흐음, 그럴까?”

“이야!”

“강민후라고 했나? 같이 가야지.”

김용재는 다른 신인배우들과는 다르게 민후를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 눈치였다. 그가 보았을 때 이것은 끼리끼리 경쟁에 붙은 것일 뿐이다.

민후를 안 좋게 보는 다른 배우들의 경우도 실상 대부분이 이제 막 스크린 몇 번 나온 신인배우들 급이었다.

그런데 TV 몇 번 나왔다고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이 조금 우습기는 했어도 후배들이었기에 챙기는 것이다.

민후는 그의 말에 앞의 다른 배우들을 보았다. 그들의 표정은 ‘엄두도 내지 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카페를 운영하시는 데 가서 일손 좀 도와드려야 해서요. 마음이라도 감사합니다.”

“어머니 도우러? 씀씀이가 보기 좋네. 그럼 다음번에 밥 한 끼 하자고.”

“예. 들어가세요, 선배님.”

민후는 그렇게 말하면서 전화를 받는 척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괜히 안에 탔다가 자신의 험담만 들을 것이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 잘못한 것이 있다. 그들이 민후를 아무것도 없는 배우이기에 무시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강민후는 아무것도 없는 배우가 아니다. 수많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최고의 배우다.

‘이제 곧 땅을 치며 후회할 거다.’

민후는 엘리베이터가 다시 올라오자 탑승하였다. 자신이 오늘은 무시당하였지만, 촬영이 시작되는 그 시점부터 그들은 절대 자신을 무시할 수 없게 될 터이다.

그것을 똑똑히 보여줄 생각의 강민후이다.

* * *

논스톱 5의 첫 방영일이 확정되었다. 논스톱 5의 방영일이 확정되며 많은 시청자의 관심이 향하고 있었다.

이중 신인배우들의 출격은 역시나 사람들의 우려와 기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었으며 그중 민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특히나 컸다.

-논스톱 5 시청자들의 기대에 첫 방영 확정. 신인배우들 출격. 그중 이름 모를 무명배우도 있어…….

(오늘일보 최한국 기자)

논스톱은 청춘 시트콤으로써 우리나라의 대학교의 동아리를 통하여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그린 시트콤이다.

시즌 1부터 시작하여서 꾸준한 인기를 얻었던 이 시트콤의 시즌5의 방영 소식에 많은 누리꾼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나, 시청자들의 우려의 목소리 역시도 큰 편이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생소한 이름의 배우들이 대거 투입된 것이다. 이번 논스톱 시즌5의 출연 확정 멤버는 구민정, 진후, 하진우, 김민준, 홍수민, 김지현, 김용재, 강민후 등등으로 김용재의 경우 MC와 개그계를 넘나들며 꾸준한 사랑을 받는 반면, 다른 배우들의 이름의 경우 생소한 편이다.

그중 강민후라는 배우는 시청자들이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인물.

확인결과 그는 연기 학원이나 다르게는 유명 소속사에 소속된 인물도 아닌 것으로 파악되었다.

시청자들은 그러한 이의 캐스팅에 대한 의문점을 드러냈고 제작 연출을 맡은 담당 PD인 김택일은 이에 ‘그의 연기는 무궁무진함을 숨겨두었다. 곧 시청자 여러분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우려의 목소리를 박수로 바꾸겠다.’라고 표하였다. 한편 논스톱을 기획하는 방송국 MBS 측은 이에 대한 입장을……(생략).

오늘 날짜로 뜬 기사였다. 민후는 그 기사를 보고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담당 PD인 택일이 생각보다 자신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 때문에 배우들에게 넘겨진 1회와 2회의 시나리오를 외웠으며 자신의 대사가 있는 부분을 수백 번 정도는 연습한 것 같았다. 이젠 자연스럽게 대사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1, 2회에서 그의 비중은 큰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비중이 적다고 한들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방영일이 확정된 만큼 바로 오늘 배우들을 모아놓고 대본 리딩에 들어갈 것이었다.

리딩은 대본 연습을 뜻하는 것이었는데, 촬영에 앞서 관계자들이나 혹은 배우들을 모아놓고 하곤 하였다.

“하압! 하압! 하압!”

민후의 손에는 가검이 들려 있었다. 검은색의 검도복을 입은 그는 아직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반복된 동작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검도장의 관장이 그를 보고는 ‘역시 강민후다’라는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그가 이 도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 몇 개월.

그는 몇 개월이 아닌 몇 년을 검도를 배운 것처럼 능숙해졌다. 천재성도 물론 그에게 존재하였는데, 그보다 더욱 관장이 인정하는 것은 그의 노력성이었다.

다른 이들이 30분 휘두를 것을 세네 시간은 휘둘러야 직성이 풀리는 놈이다. 하루는 녀석의 손을 보니 가검에 쓸려서 손에서 피가 나기도 하였으며 어느 날은 그 찢어졌던 부분이 겹치고 겹쳐서 두꺼운 굳은살이 되어 있었다.

녀석은 가히 괴물이었다. 말도 안 되는 녀석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관장으로서는 탐이 났다. 그 때문에 그를 키워주고 싶었다. 녀석이라면 올림픽도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는 배우가 하고 싶다고 하였다. 절대 배우가 아닌 다른 일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의 그런 의지 때문에 단순히 그의 열심히 하는 모습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밖에는 하지 못하는 관장이었다.

“흐유…….”

한참이나 가검을 휘둘렀던 민후는 2시간이 지나고서야 검을 내려놓았다. 그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옆을 슬쩍 보니 컵에 담긴 물이 있었다.

“쉬엄쉬엄해야 좋지. 오늘 또 촬영 준비하러 방송국 가야 한다며.”

“저한테는 이게 쉬는 건데요, 뭘.”

민후라는 아이에게 가장 크게 감탄한 것이 연기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배우면서 녀석은 그것을 단순히 ‘즐거움’으로 표출하고 느낀다는 것이다.

일을 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것보다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더욱 일을 잘하기 마련이다. 이 녀석은 타고난 녀석이다, 라고 생각이 든다.

“참! 관장님, 저 이제 2월 말에 도장 그만두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

민후가 연기를 위해서 배운다는 것을 알았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둘 것을 알고 있던 관장이다. 그러나 그의 말에 상당히 안타까웠다.

“예, 3월부터 학교도 가야 하고, 또 촬영도 하려면 오기 힘들 것 같네요.”

“그렇겠지. 녀석, 아직 젊은 놈이 뭘 그렇게 바쁘게 사는지. 네 녀석 그만두어도 언제든 놀러 오너라. 삼겹살이나 먹자.”

“네.”

그가 어깨에 손을 얹고 빙긋 웃으며 하는 말에 민후도 이를 드러내 웃었다. 현재 민후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1차 합격을 한 상황이었다. 이제 면접만 보면 최종적으로 합격 여부가 결정이 될 것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온 민후는 관장에게 인사를 해 보이고는 곧장 자신의 차량에 올랐다. 차량에 오른 그는 시동을 켜고는 MBS 방송국으로 향하였다.

방송국에 도착한 그는 차량을 주차하고는 저번에 왔었던 ‘논스톱 5’ 회의실의 문을 노크하였다. 현재 시각이 본래 예정된 시각보다도 40분은 더 일찍 온 것이었다. 그의 손에는 마트에서 산 하얀색 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안에는 박카스 두 박스가 들어 있었다. 촬영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촬영팀, 즉 스태프들과 잘 어울리는 것과 배우들과의 친밀도 유지였다.

일단 배우들과의 친밀도 유지의 경우 그들 자체가 현재로는 거부하는 상태인지라 어려웠지만, 실제 촬영에 들어가면 그들이 먼저 다가오고 싶어서 안달이 날 것이라는 민후의 개인적인 판단이었다.

스태프들은 배우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하나 촬영장에서 배우들이 가장 크게 하는 실수가 스태프들이 자신들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스태프들이 그들에게 먼저 다가서지 못하는 것은 스태프들에게도 그들은 다른 세상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스태프들에게 먼저 다가가 주는 것은 배우들이 하는 게 더 좋았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친해지면 그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카메라 감독이나 카메라맨들과 친해졌다고 가정한다.

그들이 촬영에 들어가기 전 친절히 알려줄 것이다.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서 있고 어디를 봐야 좋은 장면이 촬영될 것 같다고 말이다.

물론 이것은 카메라맨들이나 감독이 갖춰야 할 당연한 일이었지만 더욱 세심하고 더욱 배려해서 알려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 때문에 배우는 촬영 팀과 촬영을 하는 동안은 가족같이 지내야 했다.

그와 반대로 스태프들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다가서려고도 안 하는 이들에게는 강민후가 아닌 최강호로서 따끔한 한마디를 해주고 싶은 그였다. ‘그래서는 사랑받는 배우가 되지 못해!’라고 말이다.

100명 내외 스태프들의 마음조차도 사로잡지 못하는 배우가 어찌 5천만이 훌쩍 넘는 국민의 마음을 살 수가 있겠는가.

똑똑.

노크를 한 민후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오자 앉아서 자료를 훑어보고 있던 담당 PD인 김택일만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PD님.”

“어. 시간이 아직 이른데 일찍 왔네요.”

담당 PD가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민후가 어색하게 웃었다.

“집에 있으면 할 게 있나요.”

“말하는 게 꼭 쉰 살은 먹은 것 같네.”

민후의 말에 김택일 PD가 헛 웃었다. 그의 얼굴에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아마도 논스톱 5의 방영일이 다가오면서 준비할 것이 많을 것이었다.

민후가 자신이 가져온 봉투에 손을 뻗어 박스 하나를 뜯어 박카스 한 병의 뚜껑을 따냈다.

띠리릭.

“PD님, 박카스 좀 드시죠.”

“이야, 이거 벌써 나를 챙겨주는 배우가 있나.”

그는 방긋 웃으면서 단숨에 박카스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민후는 내용물이 사라진 박카스 병을 받아 다시 박스 안에 집어넣었다.

이렇듯 남들보다 일찍 오면 좋은 것은 다른 이들과 가까워질 시간이 생기고 더불어서 그들이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누구든 늦게 오는 사람보다는 일찍 오는 사람을 아끼기 마련이라고 할 수 있었다.

40분을 투자하여서 사람들의 마음을 산다면 그것은 충분히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어때, 대본 연습은 많이 했어요?”

“예.”

그의 대답에서 담당 PD인 김택일은 조금의 망설임도 볼 수 없었다. 본인 스스로 만족할 만큼 얼마만큼 노력했는지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그였다.

민후라는 아이. 연기가 뛰어난 줄만 알았더니 이렇게 보니 사회생활을 해 나갈 줄 아는 모습도 보였다. 앞으로의 촬영에서 실상 김택일 PD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이는 바로 강민후였다.

그는 소속사도 없고, 연기 학원도 다니지 않았지만 그러한 그가 어떻게 그 정도의 연기력을 갖췄나 김택일은 한참이나 궁금해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내린 답이 그의 피나는 노력 때문일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고서야 연기도 배우지 않았던 아이가 어찌 그런 연기를 펼칠 수 있겠는가, 물론 민후의 정체에 대해서 모르는 택일의 생각일 뿐이었지만 실제로 강민후는 일반적인 배우보다 훨씬 더 크게 노력하는 편에 속한다.

“PD님, 저한테 말 놓으세요. 저보다 한참 연장자이신데.”

민후는 그의 존대가 상당히 어색하였다. 하물며 자신보다도 훨씬 연장자였다. 그의 말에 빙긋 웃은 그가 고개를 살짝 틀면서 ‘그럴까아?’ 하는 표정이다. 민후가 이를 보이며 웃었다.

보라! 벌써 일찍 온 보람이 생겼다. 배우 중에서 김택일 PD가 말을 놓은 이는 민후가 처음일 것이다.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말을 놓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서로가 친근감을 가지고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였다.

어쩌면 별것 아닌 것이지만 민후는 담당 PD인 김택일에게 점수를 땄다고 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고 배우들이 차츰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작가들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김민준 씨는 늦네요.”

시간을 확인한 김택일 PD가 얼굴을 찌푸렸다. 5분이 경과 하였다. 하나, 그 5분이 이 안의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물며 신인배우들일 뿐이었지만 그들이 오늘 어떤 스케줄이 있는지 모르는 택일로서는 2시간 남짓으로 끝나기로 했던 대본 리딩을 시간 안에 끝 맞춰야 했다.

“어차피 김민준 씨의 역할은 1회의 마지막 회에서나 나오니까 먼저 진행하도록 하죠.”

실상 대본 리딩의 경우 중요한 장면, 혹은 중요한 대사가 있는 장면에서 많이 하고는 한다. 그러나 1, 2회는 실상 크게 중요한 부분은 없었고 시트콤의 경우 대본 리딩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 관계상 촬영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 2회의 대본 리딩을 통하여서 김택일 PD는 배우들 각 개인의 역량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오디션장과 또 리딩은 달랐다. 그리고 리딩과 또 실제 촬영은 너무나도 달랐다.

이들이 과연 돌고 있는 카메라 앞에서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리딩으로도 알지 못하지만 대충 리딩을 통해서 어느 정도 짐작은 가능했다.

1회의 첫 시작 부분은 버스에서였다. 극 중 진후와 김지현. 남녀가 버스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이었는데, 지현이 진후를 변태로 착각하여서 주먹을 날리는 장면이 있었다.

다른 배우들이 서둘러서 대본을 확인하였다. 그에 반면 민후는 여유로웠다. 그는 완전히 1, 2회의 것들을 전부 외워 버렸다. 다른 배우들의 대사까지도 그는 외우고 있었다.

다른 배우의 대사를 알 필요가 있냐는 배우들도 간혹 존재한다. 그러나 허튼소리! 다른 배우의 대사를 알고 그 대본 전체를 이해해야만 실제로 그 극 중 역할이 된 것처럼 연기할 수가 있는 법이다.

다른 배우들의 경우 대충 몇 번 훑어보기만 하고 온 것인지 대본을 들여다보기에 바빴다.

김택일은 슬쩍 배우들을 둘러보았는데, 민후에게서 다른 배우들처럼 지금 바로 대본을 보려는 모습이 아닌 여유로움이 한껏 보이자 작은 미소를 지었다.

‘녀석, 정말 대본 연습 많이 했나 보네.’

그는 민후에게는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다른 배우들은 아니었다. 아마 시나리오를 받은 후 몇 번 훑어보고 ‘이 정도면 끝’ 이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긴장이 돼서 생각이 잘 안 나니 대본을 서둘러서 훑어보기에 바쁘겠지. 벌써 민후와 다른 배우들 간의 격차가 생겨버린 것이다.

“흠, 배우분들 준비 다 되었으면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나 시간도 얼마 없었고 본인들이 미흡한 것을 기다려줄 만큼 너그러운 사람도 아닌 김택일 PD였다. 그는 시작을 알렸다.

“예, 선배 거의 다 왔어요. 예예, 걱정 마세요.”

가장 먼저 출발선을 끊은 것은 진후였다. 현재 버스 안이라는 가정하에 연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서있는 그의 앞에는 김지현이 앉아있는 설정이다.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를 한다. 그와 더불어서 진후가 본인도 모르게 그녀에게로 몸이 쏠리면서 그녀의 몸과 접촉한다.

“뭐, 뭐예요!”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조심 좀 하세요.”

진후가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여 보이고 그녀는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그러던 중 그가 들고 있던 자신이 가야 하는 장소가 적힌 메모지가 사라진 것을 안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조금 전 자신과 부딪친 여성의 다리 밑에 있는 것을 확인한다.

그가 손을 뻗어서 그것을 잡으려는 순간 다시금 버스가 휘청하고 그의 몸도 휘청하여 그대로 그녀의 다리 쪽을 덮친다.

“꺄아악.”

“아이…… 저 그게 아니라…….”

“이런 벼, 벼, 변.”

“NG. 너무 더듬거리시네요.”

리딩을 진행하던 도중 김택일 PD가 중단시켰다. 그는 지현을 보았다. 그녀가 민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를 만진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배우분들한테도 좋을 것 없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잘 끝날 수 있게…….”

“늦어서 죄송합니다.”

김택일 PD는 실제 논스톱 5의 촬영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자 가차 없었다. 그럴 때 때마침 김민준이 들어왔다.

시계를 확인한 김택일 PD가 한숨을 쉬었다. 신인배우가 늦었다. 이것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일이다. 평소 김택일 PD의 온순한 성격임에도 그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김민준 씨, 첫날부터 지각이네요. 만약 촬영이었다면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다렸겠죠? 정신 차리세요. 김민준 씨는 톱스타가 아닙니다. 그리고 전 톱스타여도 그런 거 봐드릴 마음도 눈감아줄 여력도 없습니다. 또 한 번 이런 일이 있으면. 정말 그땐 경고로 끝나지 않겠습니다.”

그는 ‘톱스타’ 부분에서 강조했다. 독설이었지만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없었다. 실제 촬영장이였다면 수십 명이 넘는 촬영 팀과 배우들이 기다렸을 것이다.

그나마 촬영현장에 조금 늦는 것이 이해가 되는 이들은 대한민국을 흔들 정도의 톱스타들 정도일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도 바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민준의 경우 신인배우였고, 그렇게 바쁠 일은 없을 터. 택일의 독설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다시 시작하시죠.”

다시금 대본 리딩이 시작되었다. 리딩을 하면서 김택일 PD에게서 끊이지 않는 한숨이 새어 나온다. 평소에 쾌활하고 시트콤 같은 성격의 소유자이나 그는 일에서만큼은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의 한숨의 이유는 대본 리딩을 하면서 그들에게서 보이는 미숙함 때문이었다. 하나 민후의 차례 때는 물 흐르듯이 읽어내는 모습에 그는 조금 놀랐다.

마치 그가 대본 리딩을 할 때면 머릿속으로 그 장면이 그려지는 것처럼 생동감이 흘러넘쳤다.

다른 작가들이나 안의 다른 배우들도 그것을 느낀 것 같았다. 그들은 민후가 대본 리딩을 할 때면 그를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였다.

2시간이 지났다. 1, 2회의 대본 리딩을 무척 촉박하게 끝냈다. 김택일 PD의 표정에서는 만족이 없었다. 그는 배우들을 둘러보았다.

“얼마 안 있으면 촬영입니다. 근데 지금 상태를 보니까 1시간 촬영할 거 3시간 촬영할 것 같은 판단이 섭니다. 대본들 잘 읽어보신 건가요?”

“예…….”

“이, 읽어보긴 했는데 잊어먹은 것 같습니다…….”

그의 물음에 다른 배우들이 어물쩍거리면서 답한다. 아까 전 민후의 확신에 찬 음성과는 다른 음성들이다. 그는 조금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촬영 때만큼은 확실하게 숙지하고 오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셨겠지만 오늘 여러분이 말씀하셨던 연기 학원도 안 나오고, 소속사도 없고, 매니저도 없어서 스스로 이 방송국까지 찾아온 강민후 군은 40분 일찍 왔고, 또 여러분들 마시라고 이렇게 박카스도 사 왔습니다.”

그는 몸을 일으켜서 민후에게로 다가가더니 그의 발밑에 있는 박카스가 담긴 봉지를 들어 올렸다. 그는 그것을 흔들어 보였다.

배우들은 할 말이 없는 것인지 시선을 회피하는 이들도 있었다.

김택일은 이번에는 민후가 가지고 있었던 대본을 들어 올렸다.

“다른 배우분들의 대본은 처음 나눠줬을 때처럼 빳빳하네요. 그런데 왜 강민후 군의 대본은 이렇게 너덜너덜할까요. 붙여놓은 호치키스가 떨어지려고 할 정도로. 그만큼 읽고 또 읽고 읊조리고 읽고를 반복했다는 겁니다. 한번 이 대본을 보고 스스로를 돌아보십시오. 계속 이런 식이면 계약이고 뭐고 진행 안 해버리겠습니다. 이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민후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 작은 힘을 주었다. 민후는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오늘 잘했어. 네 덕에 혼꾸멍을 내줬구나.’ 하는 그의 생각이 읽혀 진다.

다른 배우들도 어느 정도 느꼈을 거라 김택일은 생각한다. 자신들이 그렇게 무시하고 자신들에게 해가 될 것 같다고 여긴 아이가 오늘 최고의 실력을 선보였다.

TV 몇 번 나왔다고, 시트콤 따위라고 생각했던 그들에게는 창피한 일일 테고 분발할 힘이 될 것이었다.

“민후 오늘 수고했어. 들어가고, 다음 촬영 때 보자.”

김택일이 빙긋 웃었다. 민후도 작은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후 박카스 4개를 꺼내어 작가들에게 주었다.

그들이 미소로 받아주었다. 참 싹싹한 아이이다 싶었다. 밖으로 나온 그는 엘리베이터 앞에 선 다른 신인배우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말이 없었다. 그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번 민후를 곱씹던 그 모습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민후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구민정이라는 배우에게 먼저 박카스를 내밀었다. 그녀는 잠시 그것을 멀뚱멀뚱 보다가 그것을 받고는 작게 웃었다.

“열심히 하네. 잘 마실게.”

“잘 마실게.”

“고맙다.”

다른 배우들도 민후가 내미는 박카스를 받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들도 오늘 뼈저리게 느낀 바가 있는 것 같았다. 저번에 그를 안 좋게 보던 시선은 상당히 수그러져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뿔난 표정의 민준에게 박카스를 건넸다.

“선배님 여기.”

“너 지금 나 놀리냐?”

“예?”

그러나 김민준만큼은 저번과 다를 바가 없이 민후에게 냉랭하였다. 담당 PD에게 한바탕 깨진 화풀이를 하려는 것인지 냉담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오늘 내가 그렇게 깨지고 하니까 만만해 보여? 박카스나 먹고 그 깨진 속 달래라 이거야?”

“아니요, 그게 아니라.”

“됐다 그래, 너나 많이 쳐 잡수세요.”

그는 눈알을 부라리고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마도 민후와 비교를 당하자 상당히 기분이 나쁜 것 같았다.

“안 타?”

민정이 멀뚱히 서 있는 민후를 보면서 물었다.

“아, 통화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민준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늦게 타야 할 것 같았다. 괜한 싸움이 붙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그가 민준에게 건네려고 했던 박카스를 따면서 중얼거렸다. ‘어린놈의 자식이 주면 잘 먹겠습니다, 하고 받아먹지는 못하고. 쯔즛!’ 하면서 그는 단숨에 박카스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래도 다행히 오늘 하루 다른 배우들의 차별 어린 시선을 많이 완화 시킨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고 여기는 그다.

* * *

한양대학교의 1차 서류 전형을 합격하였던 민후는 한양대학교의 면접을 보기 위해 왕십리로 자신의 차를 끌고 왔다. 학교에는 갖은 편의시설이나 혹은 높게 솟은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민후는 문자를 확인하여서 그에 걸맞은 면접을 보기 위해 움직였다. 상당히 감회가 새로웠다. 인덕대학교의 교수직을 재직하였던 적이 있던 그가 한 학교의 학생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말이다.

면접을 보기 위해 장소로 오자 벌써 많은 학생이 긴장한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연극영화과이기 때문인지 젊은 남녀학생들의 외모가 상당한 편이었다.

초조한 기색의 그들과는 다르게 민후는 자리 한편을 잡고는 앉았다. 이미 면접에 관한 예상 질문이나 자신이 준비해야 할 것은 최상을 만들어 놨다.

이에 앞서 떠는 것은 오히려 불필요한 것이었으며 떨게 되면 자신이 노력한 것도 쉽게 보이지 못한다.

물론 강민후가 특별한 편에 속했기 때문이지 다른 아이들은 알면서도 쉽사리 떨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면접관 중에 ‘임경우’ 씨도 계시다며?”

임경우라는 말에 다른 이들끼리의 이야기 속에서 민후의 얼굴로 화색이 돌았다. 배우 임경우.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마 웬만해서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민후에게는 최고의 라이벌이기도 하면서 친했던 후배이기도 하였다.

임경우는 민후도 인정하는 실력파 명품배우 중 한 사람이었다. 각종 상을 수상하였으며 얼마 전에는 강력반을 소재로 한 영화인 ‘공동의 적’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큰 흥행을 거둬들였다. 그 외에도 민트 사탕이라는 영화를 통해 ‘나 다시 돌아갈래!’ 하며 열차의 앞에서 외쳤던 그 모습은 여전히 그 영화를 보았던 이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민후조차도 인정하는 노력파 겸 실력파 배우였다. 그런 자신의 후배이자 라이벌인 경우가 면접관이라는 것에 상당히 반가웠다.

그가 본래 이 학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었고, 그를 통해서도 그가 어떤 식으로 노력하는지에 대해서 배울 수 있을까 하여서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었다.

“156번, 157번, 158번까지 차례로 들어오세요.”

학교의 관계자로 보이는 이의 말에 민후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옷매무새를 추스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학교의 교수들과 더불어서 이사장이 있었으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임경우였다.

학생들은 면접관들의 바로 앞에 놓인 3개의 의자에 차례대로 번호표대로 앉았다. 민후도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자세를 꼿꼿이 하였다.

“긴장들 하지 마, 긴장하면 더 떨어진다? 내가 오늘 이 말만 한 삼십 번은 한 것 같네.”

임경우는 특유의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면서 학생들을 둘러보며 한 말이다. 학생들은 그러나 여전히 딱딱하게 웃었고, 그에 반면 민후는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민지혜 학생, 성적도 괜찮고 얼굴도 예쁘고 좋네요.”

“네, 네……!”

“저희 학교에 지원하신 이유가 무엇이죠?”

질문은 형식적인 것으로 이어졌다. 민후는 마지막 차례였다.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보던 면접관들의 시선이 마지막엔 그에게로 향하였다.

면접관들은 그의 성적을 훑어보았다. 마흔여덟 살 정도로 추정되는, 안경을 끼고 검은색으로 염색한 머리의 뿌리 부분이 하얗게 올라오고 있는 ‘고명운’이라고 적혀있는 교수가 의아한 표정이다.

“1학년 때는 성적이 좋지만은 않았네요. 2학년 1학기 때에는 아파서 등교하지 못했다고 되어있고, 그리고 2학기부터 성적이 급격히 상승해서 수능 때는 한 개를 빼고 다 맞았네요. 요즘 애들 말로 참 아이러니하네요. 이만큼 성적이 올랐다는 것은 강민후 군 나름대로 삶의 전환점이 있었다는 것 같은데.”

그는 민후의 전환점을 묻는 것 같았다. 한양대학교는 결코 쉬운 학교가 아니었다. 그 문턱을 넘지 못한 학생들이 대한민국에서 상당했다. 그만큼 까다롭다고 할 수 있었다.

“배우가 하고 싶었습니다. 그 때문에 공부했습니다.”

“그렇겠죠. 그러니 지금 연극영화과에 지원했겠죠. 그런데 참 안타깝습니다.”

이번에는 임경우의 말이었다. 그는 혀를 끌끌 차면서 양손을 깍지 끼고는 그를 보았다.

“이 좋은 성적으로 저 같으면 법대 의대를 가겠어요. 대한민국의 무명배우가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요. 솔직히 저희 과 나온다고 해서 유명한 배우 될 수 있다는 보장 없어요. 한 해마다 전국의 대학교에서 졸업하는 연극영화과 그에 관련 과의 이들은 수만 명은 될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전부 배우가 되었나요? 아니죠.”

그는 피식하고 웃었다. 민후는 그가 자신을 도발하는 것임을 알았다. 임경우는 사람의 진심을 파악하려는 본성이 존재하였으며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과거 한번 크게 데인 적이 있던 녀석이다. 그러나 한번 사람을 믿기 시작하면 누구보다 크게 아끼고 존중하는 녀석이 바로 그였다.

“확신이 있습니다, 배우가 될 거라는.”

“확신이라. 확신만으로는 굶어 죽을 텐데요.”

“굶어 죽어도 좋지 않겠나요, 꿈을 위해 이렇게 노력한다면.”

그는 생각 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임경우의 표정에 작은 웃음이 맺혔다. 다른 면접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열정 하나만큼은 높이 살 수 있겠지.’라고 그는 생각한다.

어차피 강민후는 면접을 크게 흥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미 들어오면서부터 큰 점수를 받았다.

일단 수능에 관하여서 높은 점수를 기록하였으며,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은 다른 이들보다도 인상적이었다.

성적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연극영화과에 들어도 될 아이 같았다. 학교의 면접은 일반적인 배우 오디션보다는 더욱 쉬운 편이며 성적에 대한 관심이 컸다.

면접관들은 이미 합격을 대충 점치고 있었지만, 그의 말에는 더욱 호기심이 크게 동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고 싶은 게 있네요. 이건 제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강민후 학생한테 하도록 하죠. 민후 학생한테 배우란 무엇이죠.”

“꿈이자 삶의 이유이자 노력해야 할 이유이며 제 영원한 동반자입니다.”

분명 그의 대답은 다른 학생들에게서도 나올 수 있는 흔한 답변이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서는 진실성이 나타났다. 다른 아이들처럼 형식적인 질문에 답하는 대답이 아닌 것이다.

임경우나 다른 면접관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곧 민후가 다른 학생들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그는 사실 면접에 관해서는 크게 두려워하진 않았다.

합격할 것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서는 그의 얼굴에 기대감이 크게 어렸다.

임경우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분명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신’이라고 표현 받아야 마땅하다.

그렇기에 민후 역시도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다. 그 때문에 경우의 밑에서 공부하며 그가 가르치는 것을 배운다면 한층 더 성숙한 배우가 되지 않을까 한다.

* * *

첫 촬영 날이 다가왔다. 첫 촬영에 앞서 민후는 평소보다 더욱 비장한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자신의 진가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때가 된 것이다.

현재 시각은 8시 20분이었다. 촬영 시작 시각은 10시 반이다. 이곳에서 출발하여 도착하면 9시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꼭 지금 이 시간에 가야만 하였다. 촬영장에 일찍 가면 좋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앞서 논스톱을 함께 촬영할 이들에게 일단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드라마 촬영이나 영화촬영은 종합예술이었다. 촬영팀, 조명팀, 음향팀, 편집과 등등 수많은 이들이 공을 들여서 만들어내는 하나의 예술인 것이다.

그러한 예술에서 그들에게 앞서 인사를 하는 것은 올바른 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차량을 끌고 건국대학교로 향하였다.

건국대학교에 도착한 그는 촬영이 허가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로 들어선 그는 자판기가 있고, 그 옆으로 논스톱 5의 인원들이 스토리상 동아리방으로 쓰게 될 곳이 있었다.

촬영팀 스태프들이 카메라나 조명, 음향기기들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들어서자마자 민후는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논스톱 5에서 함께 일하게 될 신인배우 강민후라고 합니다!”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안 전체를 휘감았다. 촬영감독이나, 조명감독 등등이 그를 돌아보았으며 다른 이들도 그를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민후의 얼굴에는 해맑은 웃음이 걸렸다. 한 번 크게 인사를 했던 그는 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하고 악수를 청하였다.

“어린 녀석이 싹싹하네.”

“감사합니다.”

턱수염이 길게 나고 마흔 살로 추정되는 촬영감독의 말이었다. 그는 민후의 인사성이 밝은 모습에 기분이 좋은 듯싶었다.

때마침 촬영장을 점검하기 위해 온 김택일이 그를 발견했다.

“어, 민후 오늘도 일찍 왔네?”

그는 빙긋 웃으면서 민후를 보고는 악수를 청했다. 그가 양손으로 그의 손을 잡으면서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당연히 일찍 와야죠. 제가 나오는 신 첫 촬영인데.”

“항상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아.”

김택일 PD가 그의 어깨를 툭 쳐줬다. 밝게 웃은 그가 바쁜 듯 보이는 그에게 다시 고개를 숙여 보였다. 모든 인사를 끝낸 민후는 이번에는 스태프들을 도와주기 위해 양팔의 옷소매를 걷고는 나섰다.

“끄응…….”

그는 카메라 팀의 막내로 보이는 이가 양손으로 무거워 보이는 가방 두 개를 들고 오자 그에게 후다닥 다가가 하나를 잡아챘다.

“아, 아니 괜찮은데…….”

“어차피 할 일도 없는걸요.”

민후는 그에 밝게 웃어 보였다. 카메라 팀 막내는 상당히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는 이번에 새로 논스톱 5팀에 들어온 장지훈이라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이제 스물다섯 살로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촬영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첫 촬영에 투입된 것이다. 그런 그로서는 민후가 부담스러울 만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친절한 웃음에서 약간 배우들에게 가지고 있었던 그의 선입견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민후는 그 외에도 계속 주위를 움직이면서 스태프들을 도와주었다. 그러다 보니 한 시간 만에 그는 스태프들에게 ‘어이- 민후야-’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단 한 시간 만이었다. 스태프들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 말이다.

“거기 강민후 군.”

“네! 촬영감독님!”

그리고 민후의 경우도 한 시간 동안이지만 대충 촬영장 내부에서 어떠한 이가 어떤 팀에 소속되어있는지 파악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훌륭한 것이었다.

간혹 어떠한 배우들은 자신이 몇 달간 혹은 1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함께 촬영했던 이들의 이름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그들에게 민후는 불쌍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가 그만큼 촬영에 재미없게 임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스태프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각종 정보를 놓친 것이다, 라고 할 수 있었다.

“자, 여기 음료수. 참 요즘 젊은 애들답지 않게 싹싹하네. 다른 배우들은 아직도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현재 시각 10시였다. 그러나 민후 외에는 아직 어떤 배우도 도착하지 않았다. 촬영감독은 그에게 이온 음료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민후는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고는 다시 다른 스태프들을 돕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 모습에 촬영감독은 자신 본인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택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참 열심인 녀석이죠.”

“그러네요. 싹수가 요즘 인기 좀 있다는 배우들과 차원이 달라. 또 인기 있으면 말을 안 해요, 요즘은 갓 TV 출연하는 애송이 녀석들도 저런 애들이 없다니까.”

김택일이 촬영감독의 옆에 서서 함께 음료수로 목을 축였다. 카메라 감독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른 이들에 대한 독설을 내놓았다. 카메라 감독도 어언 15년 차가 되는 이 방면의 베테랑이었다.

그런 그도 저런 배우는 쉽게 볼 수 없었다.

“저도 그래서 이번에 저 민후라는 녀석한테 거는 기대가 큽니다.”

와디딕.

택일이 모두 마신 음료수의 빈 캔을 한 손의 힘으로 찌그러뜨리면서 강조했다. 촬영감독이 피식하고 웃으면서 ‘우리 김 PD님한테 인정받았으면 끝난 거지, 뭘.’ 하고 중얼거린다.

한참이나 스태프들을 위해 발 빠르게 뛰어다니다 보니 이마에서 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현재 시각은 10시 15분이었다. 처음으로 들어온 배우는 다름 아닌 김용재였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라고 민후는 중얼거렸다.

오늘은 첫 촬영 날인만큼 오늘 촬영 비중이 없는 모든 배우가 촬영장에 올 것을 담당 PD 김택일은 요구하였다.

어쩌면 김택일의 강압적인 요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PD라는 직책이나 감독을 맡은 이들에게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열정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 본인이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촬영하는 드라마 자체가 다 잘되자고 하는 것이었기에 웬만한 콧대 높은 배우들도 그들의 의견을 따른다.

민후가 욕한 이들은 아직 오지 않은 다른 녀석들이었다. 김용재는 MC나 개그맨으로서 인지도도 높았고 그들보다도 훨씬 연장자이다.

그런데 그가 왔는데, 다른 녀석들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 괘씸하다. 만약 자신이 교수 최강호였다면 호통을 크게 쳤을 것이다.

그나마 김용재 다음으로 17분 정도 되자 구민정이 들어왔다. 그녀는 밝게 웃으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차례대로 배우들이 하나둘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야야, 민후야, 너 담배 피우냐?”

“네, 피웁니다.”

“한 대 피우러 가자.”

“옙.”

조명감독의 말이었다. 민후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면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함께 움직였다.

모르던 사람도 함께 담배 한 대 피우면 친해진다는 것이 남자였다. 민후는 자신이 한 시간 동안 열심히 뛰어다녀서 얻어낸 노고가 무척이나 값졌다.

흡연장으로 나오자 촬영에 앞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던 스태프들이 보였다.

“여, 민후야.”

“예!”

그가 흡연장으로 오자 다른 스태프들이 반겨준다. 그는 빙긋 웃으면서 그들의 곁으로 쪼르르 움직였다. 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고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한 대 피워도 되겠습니까?”

장지훈이라는 아까 전 자신이 도와주었던 촬영팀 막내 인원만 제외하고는 전부 다 자신보다 한참 어른인 분들이었다. 그의 말에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뭘 그런 걸 묻고 그러냐.”

“이 녀석 예의 진짜 바르네? 마음에 든다! 들어!”

“감사합니다!”

말 한마디가 때로는 그들의 환심을 사기도 한다. 그들의 웃음 속에서 민후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어 붙을 붙였다. ‘후우.’ 하고 연기를 뿜는 그였다. 땀 흘린 노동을 하고 피우는 담배의 맛은 흡연자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저기…….”

“네.”

장지훈이라는 이가 슬쩍 말을 걸어왔다. 민후가 의아한 표정으로 보았다.

“아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하하, 아니에요. 할 일도 딱히 없던 차에 몸풀기나 하고 좋은 거죠.”

“솔직히 다른 배우들은 모르겠는데 민후 씨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일반적인 배우 이미지하고. 되게 친근하네요.”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은 거 아니겠어요, 도울 건 서로 돕고, 웃을 땐 웃고 이렇게 담배 한 대씩같이 피우는 게 인생이죠.”

지훈의 말에 잠시 그를 보던 민후가 빙긋 웃으며 한 말이다. 주위의 다른 스태프들이 ‘고러취!’ 하면서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담배 한 개비를 모두 피워낸 민후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김용재, 구민정, 김지현, 하진우, 홍수민. 이렇게 다섯 사람이 와 있었다. 오지 않은 사람은 김민준과 진후였다. 아직 시간은 10분 정도 남아 있었기에 잠시 기다렸다.

그 기다리는 동안에도 민후는 주위의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배우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첫 촬영 날이었고 많이 떨리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신인배우인 그들은 실상 스태프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분위기가 무척 좋아 보였고, 강민후라는 배우가 스태프들과 웃음꽃을 피우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떻게 한 거지……?’

‘뭐야, 저 녀석…….’

다른 배우들은 그런 그를 보면서 새삼 부러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정작 본인들은 아직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한 번도 나눠보지 못했는데, 민후는 마치 오랫동안 촬영팀과 일한 것처럼 편한 분위기를 일구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때마침 김민준과 진후가 함께 촬영장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두 사람은 늦게 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여유를 피우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김민준은 스태프와 웃고 떠드는 민후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건방진 새끼.’

그는 괜스레 민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번 대본 리딩 당시 담당 PD가 자신들을 비교해서 그런 것인지 녀석이 싫었다. 저 싹싹한 모습도, 예의 바른 모습도 말이다.

“안녕하세요.”

민후는 그런 두 사람에게도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며 인사했다. 진후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살짝 들어 올림으로써 답인사를 하고 민준은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다.

모든 배우가 오자 담당 PD가 다가왔다. 1편의 경우 진후와 지현의 충돌을 그린다. 대본 리딩 때처럼 지현이 진후를 치한으로 오해하고 폭행을 하기도 하고, 그런 두 사람이 영화 엑스트라 촬영장에서 우연처럼 만난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서 논스톱의 배경으로 잡힌 문화 예술대에서 학생회관 신축공사로 인해 동아리방이 모자라자 학교 측에서 인원이 적고 활동도 미미한 두 영화 동아리가 한방을 쓸 것을 요구한다.

본래의 동아리방의 소유인 ‘시네마 천국’의 주인은 김지현이 회장이고, 그 밑으로, 강민후, 홍수민 등이 있으며 그 동아리방으로 들어오는 팝콘이란 영화 동아리의 회장은 진후였으며 밑으로 하진우, 구민정 등이 있었다.

서로 다른 동아리가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게 될 이야기를 기점으로 잡아서 논스톱 5는 시작되는 것이다.

실상 1회에서 민후의 비중은 거의 없는 편이다. 다른 배우들이 ‘거봐, 쟤네들 우리한테 쫄았어.’라고 대사를 치면 ‘내가 봐도 그런 것 같아.’ 하고 받아치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 대사를 민후는 수십 번 수백 번을 연습하였다. 결론은 자신이 비중이 작다고 한들, 배우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곧이어 촬영이 시작되었다.

진행된 촬영은 그래도 꽤 수월하게 치러졌다. 김택일 담당 PD가 아무래도 저번에 크게 엄포를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배우들에게는 그들만의 자존심을 긁어낸 일이기도 할 것이다.

TV 한 번 출연하지 못하였던 이보다 자신들이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의 가슴에 적지 않은 불꽃을 지펴놨을 것이다.

동아리방 내에서의 촬영이었다. 본래 이 동아리방의 주인이자 시네마 천국의 이들이 이번에 자신들의 동아리와 같은 방을 쓰게 될 팝콘의 등장에 그들을 견제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는데, 여기서 구민정이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그들에게 보여주게 되고 그들이 ‘엽기적인 그대’라는 영화와 비슷하다고 말하자 순진하고 엉뚱한 이미지에서 확 하니 마녀 같은 캐릭터로 변모하는 캐릭터를 잡았다.

그녀의 캐릭터는 상당히 신선하고 좋았다. 때문에 상당히 좋은 역을 맡았지 않나 싶다.

배우들이 자리를 잡고 앉기 위해 동아리방에 들어왔다. 그들은 조금 어물쩍거렸다. 그들도 몇 번 드라마나 영화 출연을 해보기는 하였으나 경험이 많지 않아 카메라의 위치가 어디에 적합한지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 반면 민후는 카메라가 자신을 최상으로 잡을 수 있는 위치를 단번에 파악했다.

카메라가 돌고 있을 때는 얼굴의 각도, 몸의 움직임, 모든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었다. 그가 단번에 잡아내자 촬영감독이 ‘제법인데?’ 하고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의자 앞으로 당겨서 앉으시고요.”

촬영감독이 결국 어영부영하는 다른 배우들을 지도하였다. 아직 경험이 미숙해서 그런 것이다, 라고 판단하고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였다. 곧 촬영이 시작되었다.

구민정이 자신의 시나리오를 시네마 천국의 동아리 이들에게 보여주게 되고 그것을 읽은 그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어때, 괜찮은 것 같아?”

“음…… 재미는 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영화 하고 비슷한데?”

비슷하다는 말을 들은 순간 순진하고 귀여운 인상인 그녀의 표정이 확 하니 변한다. 그녀는 분노 어린 표정으로 조금 전 그 말을 하였던 이를 노려본다.

“뭐라고? 비슷하다고?”

그녀의 물음에 민후가 헛웃음을 짓는다.

“에이, 이거 엽기적인 그대하고 똑같잖아요.”

“그래그래, 비슷한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닌데, 뭘. 똑같아, 똑같아.”

홍수민이 민후의 말에 동조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후가 시계를 확인했다. 곧 수업시간이었다.

그가 가방을 챙겨서 일어선다. 막 그가 동아리방을 나서려는데 구민정이 살기 어린 목소리로 그를 부른다.

“야! 어딜 가. 어디가 비슷한지 얘기를 하고 가야지.”

“에이,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엽기적인 그대하고 비슷하다고.”

민후는 대수롭지 않게 밖으로 나서려 한다. 그 순간 민정이 들고 있던 볼펜이 그의 바로 앞으로 날아와 나무로 만들어진 문에 박힌다. 놀란 표정의 그가 그녀를 돌아본다.

“구체적으로 말하란 말이야, 어디가 어떻게 비슷한지.”

민후가 자신의 동아리방의 이들을 본다. 순진해 보였던 그녀의 마녀로서의 돌변에 심하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다른 이들도 놀란 것인지 그녀의 시선에 화들짝하면서 시선을 회피한다.

신 하나를 이번에도 수월하게 끝냈다. 더 찍게 될 내용은 팝콘이라는 영화 동아리의 아이들의 기를 죽이려던 시네마 천국의 이들이 되레 그들의 기세에 눌린다는 내용을 담았다.

일단 구민정은 자신의 시나리오가 다른 시나리오와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마녀로 변신하여 그들을 놀라게 하고, 하진우의 경우 시네마 천국 아이들이 부려 먹을 대로 부려먹고는 실상 그 본질을 파악해 보니 올림픽에 나가도 될 정도의 운동 천재에 모든 운동을 능통하게 해내는 무술의 유단자였던 것이다.

결국 시네마 천국의 아이들은 그들의 숨겨진 모습에 꼬리를 내리고 만다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대학교에서의 촬영 장면이 끝났다. 어느새 시간이 오후 3시를 훌쩍 넘었다. 다음 남은 신의 경우 밤에 촬영될 것이었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하였다.

“배우분들 식사하고 오시고 6시까지 다시 이곳으로 오시는 거로 하죠.”

김택일의 말에 배우들의 얼굴에 작은 웃음이 맺혔다. 배우든 아니든 식사시간은 누구에게나 반길만한 것이었다.

민후는 오늘 친해진 김에 스태프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갈까 하였다.

어차피 배우들 곁에 있어봤자 자신을 데려갈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고, 괜히 자신이 끼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수 있다는 판단하에서였다.

그 때문에 방실방실 웃으며 촬영감독한테 다가가려는 민후를 민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붙잡았다.

“어디 가, 민후야. 밥 먹으러 가야지.”

“예?”

먼저 밥을 먹으러 가자는 말에 민후는 조금 놀랐다. 벌써 자신을 이렇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인가 싶었다. 그에 민준이 짜증이 나는 표정을 보였다.

“쟤를 왜 데려가?”

“왜, 데려가자. 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밥 먹는 게 좋지.”

민준의 짜증 어린 음성에 도움을 준 것은 하진우였다. 그는 민준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다른 배우들도 그러자는 의견이었다. 실상 그들은 궁금한 게 많았다.

오늘도 민후가 자신들보다 노련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촬영감독한테 유일하게 지적받지 않은 이도 그였으며 첫 촬영인지라 수시로 나는 NG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역할에서 한 번도 NG를 낸 적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노하우 같은 것이나 혹은 평소에 어떤 식으로 연습을 하는지 그들은 무척 궁금하였다.

물론 처음 그를 봤을 때는 무시한 경향이 강하였지만, 그들도 신인배우였다.

한창 커야 할 때였고 더운물 찬물 가릴 때가 아니다. 다른 이들이 전부 수긍하자 민준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머리를 털었다.

“그러면 저야 좋죠.”

민후는 환영이었다. 스태프들과는 이미 친해졌으니 언제든 함께 식사할 기회가 많았다. 단지 배우들과는 친하지 않았는데 이 자리를 빌미로 친해지면 되는 것이 아니던가.

날이 추운 2월이었다. 고된 촬영과 추운 날씨 때문에 뜨뜻한 국물이 당기는 날이다. 배우들은 함께 전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왔다.

식당으로 온 이들은 배우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매니저나 코디네이터들도 함께 참석하였다.

그들은 분명 대부분이 신인배우이기는 하였지만 전부 번듯한 소속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만큼 소속사에서 그들에게 지원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였으며 그들로서는 그런 지원을 해주는 소속사에 그만큼의 합당한 인기를 가져가야만 하였다.

그리고 이중 민후를 다소 싫어하는 기색의 김민준의 경우는 아버지께서 한 회사의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의 까탈스러움과 차가운 이미지가 상당히 매치가 잘 되었다.

그는 차남이었고, 그 본인의 형이 후계자 직을 맡게 될 예정이었다. 때문에 그는 배우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현재 그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에이, 무슨 전골이야. 내가 더 잘하는 가게 안다니까.”

민준은 이곳에 와서도 투덜거렸다. 다른 배우들이 눈살을 조금 찌푸릴 정도였다. 도련님의 모습이 베여 있어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준이 돈 많은 집 자식이든 뭐든 다른 배우들의 관심은 ‘그’가 아니라 ‘강민후’에게 향해 있었다.

구민정이 물 잔에 물을 따라서 내밀었다.

“여기 되게 맛있어.”

“아, 그래요?”

민후가 빙긋 웃었다. 배우들의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이 한결 좋아졌다. 그 때문에 무척 기분이 좋았다. 실상 그는 처음 그들이 자신에게 모질 게 했던 것을 이해하는 편이다.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아무것도 보증이 없는 아마추어와 같았으니 말이다.

그와 마주 앉은 구민정이라는 배우는 귀여운 외모의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배우였다. CF로 데뷔를 한 그녀는 데뷔 전부터도 강남 5대 얼짱으로 이름을 날렸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이렇게 마주하고 보니 쾌활한 성격과 더불어서 남을 잘 챙길 줄 아는 사람 같았다. 그녀도 민후가 알고 있는 몇 년의 미래 내에서 확 하니 인지도 높은 배우로서 자리 잡는다.

그 외에도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배우가 논스톱을 시발점으로 잡아서 배우로서 자리를 굳힌다. 진후라는 배우는 영화 쪽으로 잦은 출연을 하게 되고 홍수민의 경우도 영화와 드라마 등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게 된다.

그리고 민후 본인을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김민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실상, 이 논스톱 5를 통해서 가장 주목받는 신인은 구민정과 민준이었으며 몇몇의 캐릭터가 하차하고 새로이 유입된 멤버들의 경우도 상당히 인기를 끌게 되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민후는 자신감이 어느 정도 있었다. 자신도 그들 못지않게 자신의 캐릭터를 높게 부상시킬 수 있었다. 노력. 그 하나만으로도 자신도 그들 못지않게 자리를 굳힘을 다짐하고 있었다.

민후의 눈에는 보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눈빛으로 민후의 그 연기도 잘하고 카메라의 위치 또한 정확하게 파악해내는 비법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라고 눈짓을 보내고 있음을 말이다.

궁금한 게 당연지사다. 연기 학원조차 다니지 않았던 이가 배우들보다 잘한다는 것이 궁금한 게 당연하였다.

“실은 내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그와 마주 앉은 구민정이 결국 운을 먼저 떼었다. 그녀는 컵을 어물쩍 만지면서 민망했던 듯 말한다.

“어떻게 하면 연기 학원도 안 다녔다면서 그렇게 연기를 잘해?”

“맞아, 너 연기 정말 잘하더라. 근데 카메라 위치 잡는 것도 잘하는 것 같던데 대체 비결이 뭐야?”

구민정이 운을 떼자 홍수민이 맞장구를 쳤다. 민후가 어색하게 웃었다. ‘애간장 좀 태워볼까?’ 하고 장난기가 동했다.

“그냥 뭐 열심히 하면 돼요.”

“에이, 그런 거 말고. 넌 어떻게 연습하는 데 그래서.”

“말해 줘, 응?”

민후의 장난스러운 표정에 민준을 제외한 그에게로 시선을 두고 있던 배우들이 진이 빠진다는 표정이다. 그에 그들은 이젠 자존심이고 뭐고 없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카메라는 책으로만 읽어봐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어요, 클로즈업이나 버스트숏, 웨이스트 숏, 니숏, 풀숏, 롱숏, 이런 기법만 익히고 어떤 상황에서 클로즈업이 나올 것 같은지,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 니숏이 나올 것인지 잘 알고 파악하면 어떤 기법으로 될지 아니까. 자기가 그 부분에 좀 더 신경 쓸 수 있죠. 예를 들어 클로즈업의 경우 얼굴을 집중적으로 찍고 있다고 가정하면 몸짓 연기보다는 표정 연기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얼굴 연기 쪽으로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생각하면서 임하고 이런 식으로요.”

“오.”

“알고 있던 사실이긴 한데, 실제로 그렇게 이용한다니까 새롭게 들리네.”

그들도 물론 이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아니다. 그들도 일단 배우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실전으로 그것들을 알고 이해하면서 촬영에 임한다는 이를 만나니 효율성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연기의 경우는 저 같은 경우는 집에 제가 장만한 카메라가 있는데, 대본은 정말 외울 때까지 계속 읽어요.”

“흠…….”

“음…….”

“미련한 짓이지, 그건.”

외울 때까지 읽는다는 말에 다른 배우들은 낮은 신음을 흘렸고, 민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나 민후는 민준의 반응을 처참히 무시했다.

자신이 하는 말을 들어본다면 그런 표정 못 지을 거다.

지금 자신이 알려주는 것은 자신이 교수로서 활동했을 때 많은 학생에게 알려준 방법이었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이 방법을 통해서 갖은 표정을 익혔고, 연기에 익숙함을 가지게 되었다. 충분히 효율성이 큰 방법이다.

“대본을 외운 다음에 카메라를 켜놓고 계속 동영상을 찍고 확인하고 찍고 확인하고 연습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론은 피나는 연습?”

조금 허무하게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민후는 여기에서 자신이 가르쳐주고자 한 것을 말해주었다.

“제가 한 번이라도 시나리오 들고 있는 모습 오늘 보신 분 있나요?”

그의 물음에 어떤 배우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빙긋 웃었다.

“결정적으로 제가 시나리오를 외우는 이유가 뭐냐면. 그 시나리오를 알아야 다른 극 중 사람들의 역할도 알고 자신이 맡은 임무에 대해서도 알아요. 또 본인이 해야 할 모습을 찾아낼 수 있죠.”

“오호라…….”

어느새 그들의 앞으로 반찬이 나오고 전골이 나왔다. 전골이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민후는 휘휘 그것을 저으면서 다시 한번 말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 시나리오에 적힌 것에 울라고 되어 있어서 운다고 가정해 볼게요. 근데 그 사람의 연기가 과연 진심으로 다가올까요? 앞뒤 내용 전부 모르는데, 그냥 울라고 해서 우는 건데 말이죠. 그래서 수십, 수백 번을 공들여서라도 시나리오를 외우고 이해하는 게 좋다, 라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네.”

“맞아.”

다른 배우들이 작은 감탄을 하였다. 그 배우가 자신의 역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이의 상황도 이해 못 했는데, 눈물을 흘린다. 그만큼 진실성 없고 비루한 연기가 어디 있겠는가. 확실히 강민후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민후는 마지막 ‘제 개인적인 생각이에요.’라고 말하면서 슬쩍 민준을 보았다. 그는 관심 없는 듯 휴대폰을 만지는 척하면서 슬쩍 듣고 있었던 것인지 흠칫하면서 다시 휴대폰을 만진다.

“그리고 솔직히 바빠지면 다 외운다는 게 말이 쉬운 일이기는 하잖아요. 저처럼 다 외울 필요만은 없고 그 대본의 상황만 이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또 자기 대사만 중요한 것처럼 여기기보단 남의 대사도 잘 이해하는 게 좋고요.”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후의 말이 확실히 와 닿았다. 자신들도 자신의 배역의 막중함을 느끼고 대본을 외울 때 상대방의 대본도 어느 정도 확인하기는 하나 자신들의 대사 중심으로 외우기 마련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대사마저 이해한다면 어떤 식으로 연기해야 할지 답이 먼저 떠오를 것이었다.

민정이 친절하게 국자로 전골을 한가득 퍼서 민후의 앞으로 건네주었다.

“크- 누나, 이거 진짜 맛있는데요?”

“그치? 많이 먹어.”

민후는 그녀가 떠준 국물을 한 번 먹어보고는 작은 감탄을 하면서 자연스레 ‘누나’라는 호칭을 붙였다.

이렇게 다른 배우들과도 친해지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형이 되고, 동생이 되며 친구가 되기도 하다 보면 꽤 친해질 터였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한 따뜻한 커피를 들고 촬영장으로 돌아온 민후와 배우들이다. 민후는 다른 배우들과 이야기하면서 이젠 웃을 수 있었고, 다른 배우들도 민후를 보면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단 한 사람, 김민준만 제외하고 말이다. 마지막 신에는 김민준과 진후가 출연하는 신이었다.

“어이, 민후! 어디 갔다 왔어. 국밥 한 그릇 사주려고 했더니.”

“아하하, 그래요? 그럼 이거 내일 얻어먹으면 되겠네요.”

“으음, 아니지. 오늘 네가 날 실망 시켰으니 민후, 네가 사야지.”

민후는 촬영시간 전까지 스태프들이나 배우들 사이를 왕래하면서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촬영 첫날이었지만 촬영장에서 그만큼 즐거운 웃음이 계속 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6시가 되고 김민준과 진후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민준은 생각보다도 노련한 연기를 선보였다. 민후는 그의 연기를 지켜보면서 턱을 어루만졌다.

‘저 친구도 노력 하나는 좋은 친구인가 보네.’

자신에게 살갑게 굴지는 않는 녀석이지만 민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눈에서 분명 노력의 빛을 상당히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배경을 생각해보자면 회사의 힘을 빌림으로써 소속사나 배우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으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능숙한 연기도 그러하였으며 카메라를 좇는 그의 시선도 그러하였다.

또한, 동선 파악도 정확하게 해냈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다가 진후의 앞으로 멈추는 신을 촬영하였는데 카메라맨들이 지시한 동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앞으로 멈춰 섰다.

동선을 만약 벗어난다는 것은 카메라 화면과 어긋난다는 것과 같았는데, 신인들이 자주 하는 실수였다. 그러나 그가 생각보다 노력이 강한 친구라고 한들, 민후가 먼저 다가설 생각은 크게 없었다.

자신 혼자만 달리기에도 벅찬데 그의 환심을 일부러 사서 그와 친해지고 싶진 않았다. 민준이 민후에게 마음이 있다면 알아서 마음의 문을 열 터였다.

“오늘 촬영 대단히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첫 촬영인데 고생들 했고, 특히나 배우분들 자신의 신이 없음에도 군말 없이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모든 촬영이 끝이 나자 김택일 PD가 한 말이다. 돌아가도 좋다는 PD의 말에 배우들의 얼굴로 웃음이 피었다.

민후도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체력의 소유자였지만 첫 촬영이라 그런지 피곤했다. 오늘은 헬스클럽만 갔다가 집에 바로 가야 할 것 같았다.

“민후, 고생했다-”

“강민후, 고생했어.”

“민후야, 휴대폰 번호 뭐야? 누나 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도 되지?”

퇴근하려고 준비하는 민후에게로 몇몇 스태프들이 와서 수고했다는 말과 더불어서 배우 몇몇도 그에게 붙었다. 그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있는 것인지 번호를 물었고 민후는 친절히 알려주었다.

배우고자 하는 학생에게는 따뜻하고, 배우려 하지 않는 이에게는 차가운 민후로서는 귀찮을 수도 있었으나 그의 가치관 상 반기고 있었다.

‘……부러운 새끼.’

스태프나 배우들로부터 ‘잘 들어가라’라는 말을 연신 듣고 있는 모습에 밴에 오르던 민준이 우뚝 멈춰 섰다. 그 모습에 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한숨을 쉬고는 밴에 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