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최 교수, 강민후 학생 되다
강민후는 열여덟 살이었다. 의무적이라고도 볼 수 있게 학교를 가야만 하였고, 학교로 돌아온 그는 빠르게 적응을 하였다. 그는 일단 민후의 추락한 성적을 올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우는 학창시절의 성적 또한 좋으면 좋았다.
각종 인터뷰나 보도 자료에서 ‘강민후 씨는 학창시절 때부터 우수한 성적의 우등생…… 중얼중얼’ 할 것이 뻔하였다. 요즘은 공부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는 만능이 유행하는 시대였다.
하물며 민후는 이 학교에서나마 배우를 위한 밑거름을 잡을 생각은 크게 없었다. 이 학교 안에서는 성적에 대한 공부를 할 것이고, 하교 후에 진짜 배우가 되기 위한 노력이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었다.
능통함의 영단을 먹었기 때문인지 민후는 보는 것마다 족족 흡수하기 시작하였다. 실상, 그가 능통함의 영단이 없었다면 조금 애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교수라고 할지라도 수학 공식을 수도 없이 풀어봤던 것은 아니다. 배우에 전념하고 배우로서 공부하며 다른 시간에는 교수로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학창시절에나 하였던 수학 공식이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한 번 보면 이해하고 풀어버리니, ‘아, 대단하다.’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영단의 효과는 놀라웠다. 또한 아침은 어떠한가.
일어날 때마다 너무나도 개운하였다. 몸이 결리는 곳이 없었고 오히려 몸 곳곳에서 힘이 솟아오를 정도였다. 이는 신체의 변화를 주는 주홍 영단의 힘이었다.
“이 새끼는 이거 왜 요즘 안 하던 공부를 하고 그래? 병원에 있는 동안 헤까닥 했나?”
“왔냐.”
민후는 일반적인 학생들보다 빠르게 오는 편이었다. 보통 등교 시간이 8시 10분이면 그는 7시 50분쯤에 도착하여서 공부하고는 하였다. 그의 변화 된 모습에 반 아이들도. 또한 뒤에서 ‘헤까닥 했냐’라고 말하는 민후의 절친한 친구인 한석태도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민후는 썩 모범생은 아니었다. 지각도 자주 하는 아이였고, 나쁜 아이 중에도 친구가 많았다. 그러나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는 게 새삼 다행이었다.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감은 있어도 다른 학생들에게 못되게 굴지는 않았다. 단지, 가난했던 배경이 어쩔 수 없이 일반적인 아이들보다는 나빴던 아이들에게 어울리게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민후의 절친한 친구인 한석태는 상당한 모범생이었다. 키도 컸고 얼굴도 훤칠하니 민후만큼 반반했다. 다른 여학교의 학생들이 그를 ‘제일고의 엄친아’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에 반면 민후는 잘생긴 얼굴이나 공부는 썩 잘하지 못해 ‘제일고 엄친아의 잘생긴 친구’라고 불린단다. 웃음이 나오는 소리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 그 어이없는 칭호는 벗을 생각이다.
석태의 성적은 전교 20등에서 왔다 갔다 한다. 얼마 전 모의고사를 보았다. 당연하게도 민후는 능숙하게 풀어내었고, 높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민후야.”
“응?”
“선생님이 찾는데.”
어느덧 시간을 확인하니 8시 30분이 되었다. 아침 조회를 할 시간이었다. 반의 반장 이미혜라는 공부 잘하는 안경 낀 모범생 아이의 말에 그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며 몸을 일으켜 교무실로 갔다.
교무실로 오자 올해 마흔두 살의 머리의 가운데가 벗겨지고 안경을 낀 중년의 담임선생님인 ‘김필두’가 그를 맞이해 주었다. 그는 자신의 마중 편에 민후를 앉히고는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다가 그를 보았다.
“선생님이 평소에 네 녀석 그래도 엇나가지 않고 참 학교생활 열심히 해줘서 고맙게 생각했던 거 아니?”
“네.”
그의 부드러운 음성에 민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필두는 빙긋 웃었다. 그러면서 책상 위에 올려놓은, 당구대를 잘라서 만든 매를 슬쩍 만지는 것이 보였다.
그의 팔이 움직이고, 민후의 팔 역시도 움직여 머리 위로 내리쳐지는 그의 당구대를 양 손바닥으로 잡아챘다.
“이 녀석이……!”
“무슨 이유인지는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민후는 침착했다. 그 침착함은 강호의 연륜과 평소 그의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매를 맞기 전 그 이유는 확실히 알아야지 않겠는가.
하물며 자신은 근래 모범생이었다. 매를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건 좋다! 그런데 컨닝이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응!?”
필두는 성난 목소리로 자신의 매를 잡고 있는 민후의 손에서 당구대를 뽑아내려 하였다. 그러나 당구대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차가웠던 물이 얼어붙어 당구대를 잡고 있는 것처럼 미동도 없었다.
“컨닝이라뇨.”
민후는 알 수 없는 소리라는 표정이었다.
“네 녀석이 171개? 70개를 맞아야 정상인 녀석이?”
필두의 목소리에는 대놓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민후로서도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따끔한 한마디가 필요했다.
“선생님, 너무 주관적인 판단이십니다. 무조건 컨닝이라고 믿는 것은 교사로서 어긋난 행동 아닐까요? 한 번쯤은 이 녀석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동안 공부를 했나 하고 생각을 할 수도 있는 부분이고, 교사로서 제자의 성적이 올랐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의심이 아니라 격려부터입니다. 그 후에 혹시나 성적이 오른 것에 대해서 묻고 진위 여부에 대한 파악이 이뤄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지금 행동은 어쩌면 다른 한 학생에게 상처를 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은 지금 저 자신을 ‘꼴통’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중한 어머니의 자식인 저를요. 그것이 옳은 것입니까?”
확실히 필두가 의심할 만하기는 했지만, 교수로 있었던 민후로서는 그의 행동에 조금 화가 났다. 때문에 필두의 말에 반론을 펼쳤다. 그는 똑 부러지는 말솜씨로 그가 벌인 잘못이 어떤 것인지 각인시켜주었다.
하물며 본래의 민후에게서 이러한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필두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보다가 놀란 듯 반응을 보였다.
“딸꾹! 딸꾹! 이, 이게 왜…….”
그는 자신에게서 나오는 딸꾹질에 민망했던 듯 서둘러 입을 막았다, 그러나 막히지 않는 것이 딸꾹질이요, 이미 창피는 다 당한 것이다.
“전 다시 학교에 오기 전 고등학교 2학년 전 과목을 피가 나게 공부하고 노력했습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그에 대한 문제를 내시고 확인 절차를 거치십시오. 이렇게 자신의 학생을 믿지 못하는 행동하지 마시고요.”
민후는 그제야 잡고 있던 당구대를 놓았다. 필두는 그의 기세에 눌려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당당하게 밖으로 나서자 다른 과목의 선생님들이 놀란 표정으로 민후를 보았고, 또한 필두를 보면서 ‘쿡쿡’거리고 웃는 이들도 있었다.
확실히 그는 자신이 무시한 ‘꼴통 학생’ 강민후에게 완전히 창피를 당해버린 것이다.
민후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경우 야간자율학습을 선택제로 운영한다. 실상 교육청이 야간자율학습 제도를 자율로 만든 것은 오래였으나 대부분의 학교가 실천하지 않고 강압적인 야간자율학습을 실시하는 반면, 이 학교의 방침은 민후에게는 좋은 부분이었다.
오후 수업이 끝이 나고 자율학습을 받지 않는 학생들은 하교했다. 그 중 강민후도 마찬가지였고, 교무실에 앉은 김필두는 이를 빠드득 갈면서 그의 요구대로 기출문제 스무 가지를 만들어서 녀석에게 풀 것을 말했다.
자신에게 준 창피에 대한 복수심이었고 ‘어디, 네 녀석이 정말 제 실력으로 했나 보자.’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시험을 치는 그의 옆을 떠나지를 않았다.
혹시라도 부정행위를 하려 한다면 잡아내어 혼쭐을 단단히 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녀석은 그런 기색 없이 자신이 내준 기출문제 스무 가지를 풀었다. 다른 과목의 선생님들에게도 어려운 문제만 골라 묻고 물어서 골고루 제출하였다.
이렇게 보면 참 쪼잔한 선생 김필두였다. 그러나 빨간색 펜으로 하나씩 하나씩 채점을 할 때마다 그는 낮은 신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문제지에는 동그라미가 눈에 띄게 많아졌고 김필두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펜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20개의 문제 중 19개가 맞았다. 점수로 치면 95점이었다. 어려운 문제들만 골라 넣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점수라니. 그는 한껏 자신의 얼굴을 비볐다.
“사실이었어……?”
그는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표정이다. 정말 강민후는 자신의 실력으로 풀어내어 모의고사 성적을 올렸던 것이다. 그런 강민후의 이번 모의고사 등수는 전교 12등이었다.
강민후가 학교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간이 부족했기에 12등이었지, 다음 모의고사 땐 1등을 노려볼 만했다.
하교하고 민후는 영어 학원, 일본어 학원을 다녀왔다. 하교 후는 성적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배우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 강호였던 시절 ‘독종’이라고 불렸던 그였고, 다른 국어를 필수적으로 능숙하게 해내야 했다.
민후가 알던 배우 중 그보다 후배 배우가 있었다. 그런데 그 후배 배우는 항상 다른 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였다. 한 번은 그가 그 이유를 물었다.
어째서 쉴 시간에도 다른 국어를 공부하느냐, 그러자 그는 빙긋 웃으며 답해주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배역이 들어올지 모르잖아요. 혹시 알아요, 할리우드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릴지요.’
그의 말에 그 당시의 민후도 꽤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어떠한 배우에게 할리우드에서 제의가 왔다고 치자, 그런데 그자가 영어에 문외한이거나 미숙한 사람이라면? 기회는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는 것이다. 여담이었지만 그 후배는 언젠가 할리우드에서 그의 말처럼 제의받아 영화 두 편을 촬영하게 된다.
그의 노력에 결국 소망이 이뤄진 것이다.
이 때문에 배우는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민후도 항상 부족하다 여긴 영어와 일본어에 충실했다.
실상 그가 확실히 뜨기 시작한 것은 40대부터였고, 40대 이후로는 너무나도 바빠 영어 공부나 일본어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다. 물론 시간이 날 때마다 하였고, 다른 이들이 보기엔 능숙했다.
그러나 그는 항시 부족하다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더욱 배우려 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그를 ‘독종’으로 만든 원동력일지도 몰랐다.
그는 영어, 일본어를 충분하다 싶을 때 끝이 나면 중국어, 불어까지도 배울 의향이 있었다.
일본어 학원이 끝나고 나자 시각은 11시를 가리켰다. 그러나 그는 집으로 가지 않았다. 어머니의 걱정 어린 전화가 왔지만, 운동을 하고 가겠다고 했다.
그는 곧장 헬스클럽으로 이동하였다.
배우로서 또 하나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체력관리였다. 흔히 알고 있는 여자 연예인들의 사과 두 쪽짜리, 닭 가슴살 한 덩이 식단은 그녀들에게만 해당하는 몸 관리는 아니었다.
남자 배우들도 자신의 체력을 게을리하면 안 되고 항상 완성된 몸을 갖추고 있어야 하였다. 요즈음의 영화들에는 뛰는 장면이 참 많았다. 특히나 액션 영화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남자 배우들은 숱하게도 액션 영화를 맡는다. 뛰는 장면, 싸우는 장면, 전속력으로 달리는 장면. 그러나 이것을 단 한 컷에 끊는다고 생각하는가? 감독은 만족하여도 더욱 만족스러운 장면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부러 컷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배우들은 그런 감독을 미워하거나 원망해선 안 된다. 자신이 배우를 맡은 작품을 더욱 성공시키기 위한 노력이기 때문이었다. 그처럼 배우는 많은 장면을 반복해서 촬영한다.
10m를 뛰는 장면이라 해도 실제로 배우는 5㎞를 10㎞ 이상을 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체력이 부족해서 ‘감독님, 못하겠어요.’라고 하면 촬영장 분위기가 그리고 감독이 봐줄 것 같은가?
어림없는 소리! 때문에 민후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여겼다. 그와 더불어서 단순히 자신의 육체와 체력만 강화시킨다고 좋은 것은 아니었다.
갖은 운동을 해봐야 했다.
요즘은 운동 관련 영화도 참 많았기 때문이다. 요즘의 시청자들은 리얼리티를 선호한다. 때문에 대역을 쓰면 뭔가 어쭙잖은 연기가 탄생하게 된다. 그 때문에 근래에 배우들은 만약 자신이 복싱선수 역할을 맡았다 하면 3개월간 복싱연습에 몰두한다.
그리고 최상의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배우들이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배우들은 반짝할 수 있지만 결국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최강호의 성공했던 비법 중 하나이자 모든 성공한 배우들의 공통점. 그것은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배웠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민후는 일단은 러닝머신 위로 올랐다.
현재 키 182㎝에 77㎏. 정상 체중에 가깝다. 그러나 배우들은 호리호리한 몸이 필요하다. 빈약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근력 운동으로 어깨를 더더욱 넓히고 몸을 단단히 하면 빈약해 보이는 것은 사라진다.
더군다나 민후는 다행히도 타고난 골격을 소유한 이였다. 이것이 플러스 요인이 되리라.
민후는 40분을 러닝머신을 뛰고, 그대로 웨이트 운동을 들어갔다. 웨이트 운동을 들어간 민후를 보는 덩치 큰 트레이너는 조소를 머금었다.
‘고등학생들이 요즘 너무 많이 와, 저거? 또 작심삼일뿐이겠지. 쯔쯔.’
그는 혀를 찼다. 작심삼일. 그가 지금 열심히 하는 것이 3일이면 끝날 거라고 그는 점쳤다.
요즘 고등학생들이 그러했다. 하물며 지금 시각을 보라, 12시가 다 되었다.
학원을 끝내고 간혹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오는 고등학생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힘에 부쳐 오래가지 못했다. 트레이너는 길어봐야 1주일이라고 점쳤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후는 운동을 열심히 하였다. 트레이너는 한 가지를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절대 알 수 없는 것. 민후의 몸 안에는 한때 ‘독종’이라고 불렸던 이가 들어있다는 것을 말이다.
* * *
민후가 깨어나고 처음 치른 모의고사 성적표를 본 어머니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이가 전교 12등을 기록한 것이다. 그녀는 진심으로 기뻤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들 민후가 걱정되었다.
170등에서 12등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노력을 해서라고 그녀는 믿었다. 실제 민후는 학교에서는 한 시간도 빼 먹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였다. 또한, 능통함의 영단이 한몫 단단히 했다 할 수 있었다.
능통함의 영단이 아니었다면 12등은 무리였고, 60등 정도까지밖에 되지 않았다. 능통함의 영단은 현실적인 것이었다.
완전한 천재로 만드는 영약은 아니었고, 한 번 보면 그 책 한 권을 외우게 만드는 능력은 없었다.
어느 정도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효력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물며 아들 민후는 근래에 영어 학원에 일본어 학원, 또 헬스클럽까지 다녀와 밤 1시가 되어야 돌아오고는 하였다.
그녀로서는 아들이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에 기뻤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했고, 또 그렇게 해서 이루고 싶다던 ‘배우’는 언제 할 건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아들이 성공한다 한들, 꿈을 이루지 못하면 안타까운 게 부모의 심정이다. 그래서 그녀는 주말 반으로 잡아서 연기 학원에 그를 집어넣었다.
어머니는 민후를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 아이가 기뻐할 모습이 눈에 보였다. 없던 시절에는 학원에 보낼 형편이 되지 않았다. 주 1회 교육을 하면서 월 40만 원이었다.
너무나 비쌌다. 그러나 이젠 형편이 되었고, 아들을 위해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고 싶었다. 역시나 민후에게 말하자 그는 무척 기뻐하면서 어머니를 꽉 껴안아 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주말, 연기 학원으로 가는 민후는 머리를 크게 털었다.
그녀의 심정을 알고 있기에 크게 기뻐하는 척하였지만. 실상 연기 학원에 다닐 필요성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자신이 교수였다. 방송연예과 교수.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기 학원에 다니는 많은 학생을 만날 수 있었고, 가끔 일부러 학원에서는 무엇을 가르쳐 주냐고 물었다. 그에 학생들은 대부분 비슷한 것을 말해 줬는데, 실제 배우인 민후는 어이가 없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들은 분명 배우는 것이 낫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인배우로서의 진입을 위한 것일 뿐. 시간이 차차 흐르면 오히려 그것들이 발목을 잡을 것이다.
배우는 무조건 규율에 얽매여서는 안 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연기 학원 다닐 시간에 다른 공부나 할까 했는데 어머니가 끊어놓았다니 일단은 가는 것이었다.
연기 학원 시간에 맞게 도착한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 학원의 방송연기(카메라를 보면서 하는 연기)에 대한 이론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들으면서 민후는 앞에서 연기를 가르치는 이가 도대체 배우로서 살아보기는 한 것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듣던 중, 결국 참을 수 없는 이론이 나왔기 때문에 그는 손을 들었다.
“선생님.”
“예, 무슨 일이죠?”
강의를 하는 이는 이제 갓 서른이 되었을까 하는 나이의 이였다. 그래도 연기 학원 강사라고 훈훈한 생김새의 사내였다. 민후가 손을 들자 그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방송 호흡을 익히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것에만 집중하게 되면 오히려 자신의 대사를 까먹지 않을까요?”
민후도 촬영할 당시 많은 신인배우를 만나봤다. 그중 앞의 이가 거론하였던 것처럼 방송 호흡을 익히고 있던 이들이 있었다. 요즘의 음향기기는 예전과 달리 무척 좋았다.
미약한 숨소리마저 포착해내기 때문에 더욱더 현실감을 크게 더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평소에 사람이 숨 쉬는 것처럼 숨을 쉬게 되면 음향적인 부분이 미흡해지고, 대사 부분이 부드럽지 않게 된다.
그러한 경우를 많이 보았던 민후였다. 그와 더불어 가장 큰 문제점은 호흡에 너무 집중해서 신인배우들은 자신들의 대사를 자주 까먹고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의 질문에 갑자기 손을 든 강민후를 의아하게 쳐다보던 학생들도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흡에만 신경 쓰게 되면 확실히 대사를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앞의 강사는 조금 당혹한 기색이 스쳤으나 노련하게 말했다.
“그런 경우도 간혹 있기는 합니다. 학생, 올바른 지적이에요. 하지만 이 호흡을 익혀야 카메라 앞에서 부드러운 대사가 가능해집니다. 현실과 영화촬영은 무척 다릅니다. 때문에 이 호흡을 인식하고 사용하면 더욱 부드러운 대사가 나오고 화면 역시도 편안하게 잡힙니다.”
학생들 앞에서 쪽은 당할 수 없을 터였다. 그는 능청스레 웃으면서 ‘이해됐나요?’란 표정이다. 이해는 개나 주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 배우 바닥에서 20년 구른 민후는 연기 학원에서 이렇게들 가르쳐 신인배우들이 자연스럽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무언가를 촬영하게 되면 본인이 극 중 그 역할이 완전히 돼야 하는데, 항상 일정한 호흡을 낸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것 같습니다. 어떠한 호흡을 내야 할지는 현장에서 배워나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었으니 신경 쓰지는 마셨으면 합니다.”
민후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아무리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학원에서 가르치는 것은 확실히 신인배우로서 발돋움하는 데는 도움이 될 터였다.
문제는 그 후가 문제가 될 뿐. 또 이 학원 자신이 마음에 안 든다고 배우는 학생을 다 내보낼 마음은 없었기에 꼬리를 말아주었다.
그러나 강사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다. 더욱 상했던 이유는 그의 말에 자신도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방송 호흡이 필요하다 할지라도 실제로 촬영장에서 호흡은 수시로 변하게 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 편안한 호흡은 오디션을 볼 때나 유용할지 몰랐다.
그런데 그 정확한 단점을 앞의 학생은 콕 집어 말한 것이다.
‘대체 뭐 하는 녀석이야, 저 녀석.’
그는 심드렁했지만, 괜히 건드리면 오히려 자신 쪽이 피해를 볼 것 같았다. 때문에 속으로 으르렁거릴 뿐. 다시 수업을 진행 시켰다.
수업이 끝나갈 시간이 되어갔다. 민후는 지루해 죽을 뻔하였다. 전혀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들뿐이었다. 물론 언급했듯이 신인배우를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받쳐줄 것이다.
그러나 그뿐, 발전은 힘들다. 더욱 발전하려면 그들이 스스로 배웠던 원칙에 싸인 것들을 버리고 나아가야 할 터였다.
강사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양손을 비볐다.
“오늘은 아시겠지만, 특별히 저희 원장님께서 직접 오셔서 연기지도를 해주신다고 한 거 아시죠. 실제 배우로도 왕성한 활동하시는 분이니까 지도도 받고 조언 같은 것도 많이 해주시는 분이니 질문할 것 하나씩은 생각해놓으세요.”
강사는 빙긋 웃었다. 다른 수강생들의 입으로 웃음이 피었다. 이곳의 원장이 배우라고? 대체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의 다른 수강생들은 실제 배우에게 연기지도를 받는다는 것에 몹시 떨리는 표정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거론된 이름에 민후는 ‘어쩐지…….’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류승훈 씨한테 연기지도라니. 뭘 물어보지?”
“글쎄, 아무래도 실전 경험이 많으신 분이니까 실제 촬영현장에 대해서 물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류승훈이라는 배우란다. 민후도 잘 알고 있는 배우였으며 그에게 많은 조언을 취한 적이 있었으나 말을 듣지 않았던 사람이다. 성격은 다혈질이고 배우가 지녀야 할 열정보다는 돈에 대한 욕심이 많은 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연기보다 돈을 추구했던 것처럼 발전이 없었다. 그 때문에 그는 많은 작품에 출연하기는 하였지만 결국 인지도 있는 조연 배우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수강생들에게는 조연 배우라고 할지라도 실전경험이 있고 TV에도 상시로 모습을 드러내는 그에게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무척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학원이 이상하더니, 류승훈이가 원장이었구만.’
쉰다섯의 그보다도 본래 열 살이 어렸다. 그렇다는 것은 현재의 그는 마흔 살이었다. ‘아마 이것도 돈 벌고 싶어서 차렸겠지.’ 하면서 그는 한숨을 쉬면서 나서는 수강생들을 뒤따라 나섰다.
다른 학생들의 뒤를 쫓아 ‘연기 지도실’이라고 적혀져 있는 곳으로 왔다. 안에는 방송용 카메라 한 대가 세워져 있었으며 그 옆쪽으로는 바로 모니터할 수 있는 화면이 설치되어 있었다.
연습실은 가수들이 춤 연습을 하는 연습실과 흡사하게 생겼다. 잠시 쉬는 시간인 듯 보였다. 다른 수강생들은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혹은 담배를 피우러 갔다.
그러나 민후는 그곳에서 그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설도 썩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흩어졌던 이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하였다.
카메라의 뒤쪽으로 3열로 줄을 맞춰서 앉았다. 그들이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전 그 강사와 함께 류승훈이 들어왔다. 류승훈은 날카로운 눈매에 솟아오른 콧대, 조금은 나온 입술을 가진 배우였다.
일반인으로 가장하자면 꽤 한 인물 할 것이나 배우들 사이에서는 평범함밖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어찌 보면 그의 연기력과 얼굴이 비례하다 할 수 있었다. 마흔 살의 중년의 조연 배우인 그는 학생들의 앞에 서더니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안녕하세요, ‘할 수 있다’ 학원의 원장. 배우 류승훈이라고 합니다.”
“와아아!”
“잘생겼다~”
“되게 훈훈하게 생기셨어요!”
그러나 수강생들에게는 그마저도 높은 자리에 선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배우들 사이에서 그는 평도 좋지 않고, 연기력도 노력을 하지 않는 만큼 큰 발전이 없었다.
그것을 아는 민후였기에 썩 탐탁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어- 오늘은 연기에서 가장 어려운 연기죠. 눈물 연기를 지도해 볼까 합니다.”
눈물 연기지도라는 말에 수강생들은 무척 좋아했다. 확실히 그의 말처럼 가장 어려운 연기 중 하나는 눈물 연기다. 자신이 울고 싶어서 운다. 그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었고, 수강생들도 그 때문에 고민일 터였다.
“실상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아- 나 오늘 울고 싶다! 그래서 울란다! 이거 하고 다른 게 없으니까요.”
“하하하!”
그래도 승훈은 학원의 원장답게 수강생들에게 웃음을 주는 비법은 알았다. 지루하였지만 민후도 일단은 들어보기로 하였다. 지금까지는 수월한 진행이었다.
“한 가지 장면을 제시할 거예요. 여러분 ‘가을소설’이라는 드라마 잘 아시나요?”
류승훈의 물음에 수강생들의 표정이 활기를 띠었다. 특히나 여성 수강생들은 얼굴로 웃음이 확 하니 피어났다. 근래에 방영되고 있는 이 드라마는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하물며 도원빈이라는 배우의 명대사는 크게 떴다.
‘사랑? 웃기지 마, 이젠 돈으로 사겠어. 돈으로 사면 될 거 아냐!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이 명대사는 먼 미래에도 계속 도원빈이라는 배우를 각인시키는 대사로 남았다. 그만큼 이 가을소설이라는 드라마는 크게 흥하고 있었다.
아까 전 이론 수업을 강의했던 강사가 수강생들에게 프린트물을 골고루 나눠줬다. 민후는 프린트물을 확인하였다. 극 중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친오빠에게 맞고 온 후, 윤준서라는 극 중 역할이 잠든 그녀를 보면서 우는 장면이었다.
장면은 괜찮은 장면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류승훈이 어떤 식으로 강의할 것이냐는 것이다. 류승훈은 수강생들을 둘러보면서 웃었다.
“오늘 해야 할 연기는 조금 어려워요.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오빠에게 맞고 와서 잠이 든 장면. 참 많은 생각이 나겠죠. 슬프고 가련하고, 미안한 감정이 복잡하게 섞일 거예요. 여기에서 울어야 하는데, 수강생분들은 쉽게 울지 못할 거예요. 그런데 바로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제가 한 번 울어보겠습니다.”
울어보겠다면서 그는 곧 먼 허공을 바라보았다. 허공을 바라보는 류승훈의 눈에서 눈물이 맺히고 이내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는 울먹였다.
수강생들은 그저 그 모습에 놀란 모습으로 자신들도 모르게 박수를 치면서 놀라워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우는가 감탄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후의 경우는 그저 묵묵히 그 모습을 보면서 놀라지도 다른 무언가를 느끼지도 못하였다.
“제가 여러분에게 팁을 하나 드릴게요. 눈물 연기를 할 때 자신의 슬펐던 기억을 생각하세요. 누가 아팠던 기억, 혹은 누군가 소중한 사람이 죽었을 때를 가정하고 눈물을 흘리세요. 스스로의 감정이입이 가장 편한 지름길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민후는 입 밖으로 ‘얼씨구!?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뱉을 뻔하였다. 그는 두 가지를 잘못하였다. 첫 번째, 그는 눈물을 흘리자마자 순식간에 표정이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태연하게 말하였다.
그것은 극 중 역할에 대한 몰입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즉, 실제 방송으로 방영이 되면 그의 눈물은 실제로 울컥하고 솟아오르는 그런 것은 없이 단지 ‘아- 슬퍼서 우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행동이다. 실제 극 중 역할에 몰입하여서 눈물 연기를 하는 배우 중 대다수가 오랫동안 자신의 역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계속 훌쩍인다.
두 번째,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떠올려서 울라? 코가 막히고 귀가 막히는 소리! 신인배우 중 이런 방법을 사용해 우는 이들을 많이 보았는데, 민후는 단번에 그가 자신의 기억으로 눈물 흘리는 것을 알아챘다.
배우는 일순간 그 극 중 역할의 삶을 살아야 하였다. 그것이 진정한 배우였고, 그런 배우들이 더욱 살아남는다. 그런데 극 중 역할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것을 어떠한 배우는 ‘거짓 눈물’이라고 표현한 바가 있다. 그에 민후도 동감하는 바이다. 그것은 거짓 눈물이다. 배우는 그 극 중 역할의 슬픔을 헤아려야 한다.
눈물을 흘릴 때 자신이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녀가 처한 상황 때문에 자신이 그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진실 된 눈물을 흘려야 한다.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고 명품 배우의 눈물 연기에 가슴이 울컥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전부 극 중 역할이 되어 그 역할로서 눈물을 흘린 것이다. ‘거짓 눈물’ 따위가 아닌 진짜 눈물 말이다.
거짓 눈물을 흘리는 이들은 배우로 데뷔를 할 수는 있으나 시청자들을 사로잡지는 못한다.
결국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강생들은 류승훈의 말이 맞을 거라고 판단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참담한 현실이었다. 만약 진짜 눈물을 흘리는 배우들이 이곳에 있었다면 수강생들에게 확실히 말했을 것이다.
‘극 중 역할이 되어라!’라고 말이다. 자신이 그 역할에 몰입하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 마련이다.
곧 류승훈은 학생들에게 차례대로 앞으로 나와 자신들이 나눠준 프린트물의 대사를 하면서 울어보라고 연기를 시켰다.
“헤헤…… 미, 민망해요.”
“잘 안 돼요.”
“흐흑, 크흐흑!”
그중 어떠한 수강생은 진지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려다가 웃음이 터져버리고, 어떤 수강생은 도전하려다 아예 포기한다. 어떤 수강생은 울기 시작한다. 주위의 다른 수강생들이 ‘오-’ 하는 탄성 소리를 낸다.
그러나 민후는 고개를 저었다. 저 울음소리가 잠을 자고 있는 사랑하는 여자의 앞에서 낼 소리인가? 대놓고 ‘나 너 때문에 운다, 일어나서 봐라.’ 이 소리였다. 극 중 상황에 맞는 눈물 연기가 필요했다.
물론 눈물을 흘린 것은 다른 수강생들보다는 잘한 일이다.
어느덧 민후의 차례가 다가왔다.
민후는 이 수강생들이 불쌍했다. 제대로 된 연기지도가 필요했다. 물론 이것은 오디션 때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진짜 연기는 아니었다.
앞으로 나선 민후를 보고 이론 수업을 진행하였던 강사가 카메라 뒤쪽에서 손가락으로 승훈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 녀석이에요.’
막 학원에 도착해 학원 앞쪽에 마련된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던 류승훈 원장은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강사의 인사를 받았다. 그러다 강사가 이상한 녀석이 있다며 ‘방송 호흡’에 관한 지적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류승훈도 가르치는 과제 중 하나인 방송 호흡이 큰 효율성은 없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의 문제점을 완전히 간파하여서 말한 학생이 있었단다.
그 학생을 본 승훈은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훤칠한 키에 다부진 체격, 잘생긴 얼굴. 카메라 촬영을 하면 최고의 비율을 내보일 것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 실력은 어떠할지가 궁금했다.
“저는 저의 슬펐던 기억보다는 극 중 역할이 그 상황에 처했다면 어떨까 하고 연기해 보고 싶어요.”
그래도 원장은 자신이 아니었고 승훈이다. 그리고 자신은 강사도 아니었다. 때문에 자신이 기억이 아닌, 극 중 역할의 상황이 되어 연기한다고 수강생들에게 밝혔다.
수강생들은 그의 등장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론 수업 때 강사를 당황하게 만들었으며 논리 있는 말을 뱉어낸 남학생이다. 하물며 생긴 것도 잘생겨 기대가 컸다.
‘극 중 역할……?’
되레 극 중 역할이 되겠다는 민후의 말에 승훈은 강사의 말처럼 예사로운 녀석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연기하면서 많은 선배 배우분이 조언해 줄 때, ‘진짜 눈물을 흘려라’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고치고 싶어도 잘되지 않았다. 극 중 역할에 몰입하려 해도 되지 않는다.
아마도 민후가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되었다면 그의 머릿속에 차 있는 온통 돈과 물질적인 것이 가득 차서라고 꾸짖었을 터이다.
그러나 속은 모르니 그런 말들은 다른 배우들도 하지 못하였다.
결국 포기한 그는 자신의 속편한 방식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제자리걸음인 것이다.
민후는 대본을 보았다. 대본은 이미 이해했다. 극 중 남성이 어떤 심정일지 잘 안다.
미안할 것이고, 보고 싶었을 것이고 지켜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안아주지 못한 게 한이었을 것이다.
한 손으로 대본을 든 그는 앞에 설치된 카메라가 어떤 기법으로 촬영될지도 인식했다. 그는 오른손으로 앞에 극 중 ‘은서’라는 여자가 있는 것처럼 머리를 쓰다듬듯이 하였다.
“잘 자, 은서야…….”
그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속삭이듯 한다.
“잘 자라는 말…… 잘 잤냐는 말…… 흐흑…… 나 그동안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이야…… 하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은서야…….”
보고 싶은 감정, 미안한 감정 갖은 복잡한 감정이 옭매였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은 떨리기 시작하고, 민후는 애써 울지 않기 위해서 울음을 참으려고 그녀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리고 결국 ‘미안하다, 은서야.’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떨구고는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막는다.
그의 눈물 연기가 끝난 후에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민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그의 눈시울은 눈물로 붉어져 있었다. 주위의 다른 수강생 중 마음이 약한 어떤 여학생은 되레 민후를 보고 그 연기에 몰입한 것인지 작은 눈물 한 방울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슬쩍 승훈을 돌아보자 그는 흠칫하고 놀란 표정이다. 예사롭지 않은 녀석이라 하였더니 그가 본 눈물은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명품배우들에게서 보이는 눈물이었다.
‘대체 이 녀석, 뭐 하던 녀석이야……?’
그는 놀랐다. 그러나 수강생들 앞이었다. 애써 태연했다.
“어, 하하. 학생이 정말 연기를 잘하네요. 박수.”
짝짝짝
수강생들은 진심으로 박수를 쳐줬다. 승훈에게 보냈던 박수와는 그 질이 다르다. 승훈은 다시 그에게 앉으라는 듯이 자리를 가리켰다.
“잘하셨고, 다른 수강…….”
자신보다 더 나은 눈물 연기를 보인 녀석이다. 빨리 묻어버리고 다른 수강생을 올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눈물을 흘렸던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들어가려던 민후는 우뚝 멈춰 섰다. 배우려는 학생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배우지 않는 자에게는 차가운 사람. 그가 바로 자신 아니던가.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아까 원장님 때보다도 저는 앞에 분 연기에 마치 그 상황을 보고 있는 것처럼 눈물이 났거든요? 극 중 역할이 된다는 게 정확하게 어떤 뜻이죠?”
울음을 흘렸던 여학생은 뽀얀 피부에 긴 생머리 작은 체구를 가진 아담한 여학생이었다. 남학생들에게 인기 꽤나 있을 것 같은 여자아이다. 그녀의 질문이 이어지자 민후를 들여보내려던 승훈은 당혹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민후를 억지로 들여보내면 수강생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터였다. 막지 못한다.
“어- 이건 정말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저는 배우가 연기를 하기 위해선 그 극 중 역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원장님께서 말씀하신 ‘자신의 슬펐던 기억을 떠올려라’도 괜찮은 방법에 속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의 눈물보다 그 극 중 눈물을 흘리는 배우를 더 원하지 않을까요?”
“아-”
여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수강생들도 원장인 류승훈보다는 민후에게 더욱 깊은 감정을 느꼈다. 다른 수강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원장인 류승훈은 묻혀 버렸다.
그 이후에도 다른 몇몇 수강생들이 질문을 던졌다. 민후는 친절히 답변해주고는 자신의 자리에 다시 돌아와 앉았다. 뒤쪽에서는 강사의. 앞쪽에선 원장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이것은 수강생들의 배우고자 하는 의지 아니었던가.
수업이 끝이 난 후 민후는 허망한 기분이었다. 학원에 와서 무언가를 배웠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가르쳐준 것이 더욱 많은 기분이다.
그래도 보람이 있던 것은 수강생들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조금 나눠줬다는 것이었다.
민후는 모든 수업이 종료되자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프론트로 갔다. 프론트에는 아까 전 이론 수업을 진행하였던 강사가 서 있었다. 강사는 민후가 다가오자 흠칫했다.
강사도 그의 눈물연기력을 보고는 다소 놀랐다. 오죽했으면 학원의 소속인 그가 속으로 ‘원장은 뭣도 아니었네……’라고 판단할 정도였다.
“무슨 일이시죠?”
“환불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민후는 더 이상 다닐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였다. 하물며 하루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환불도 가능할 것이었다. 강사는 슬쩍 난감한 기색을 보이려 했다.
분명 환불은 된다. 그러나 학원의 경우 환불받는 학생들을 최대한 잡고 싶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러나 담배를 피우러 가다가 그 모습을 발견한 승훈은 눈짓을 보냈다.
‘환불해 줘.’
그는 오히려 민후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대단한 친구였으나 자신 본인에게는 해가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이 섰다. 실상 원장보다도 더 연기를 잘하는 수강생이라니 말이 되는가.
강사는 그의 눈빛을 확인하고는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학원이 적성에 맞지 않으셨나 봐요. 다른 학원도 대부분 비슷해요.”
그는 조금 아쉽다는 투로 말하기는 한다. 전형적인 멘트였다. 그러나 민후는 그의 말에 콧방귀를 뀌고 싶었다. 모든 학원이 똑같다? 민후가 아는 후배 배우 중 한 여성이 운영하는 연기 학원이 있었다.
그녀는 본질부터가 달랐다. 류승훈이처럼 돈을 벌려고 학원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실제 유명한 배우 중 한 사람인 그녀는 촬영 시 유용한 팁이나 노하우 같은 것을 알려주고 실제와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를 가르쳤다.
하물며 그녀가 운영하는 학원의 목표는 수강생을 많게 하겠다가 아니라, ‘수강생들에게 진짜 필요한 교육을 시키겠다.’ 였다. 민후도 과거 그녀의 학원의 강의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자신 못지않은 훌륭한 강의였다.
그 때문에 교수 재직 시절 학생들이 학원을 간다고 하면 슬쩍 그녀의 학원을 추천하고는 하였다. 이렇듯 돈에 먼 이가 있다면 진짜 배우를 키우려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돈은 어떻게 드릴까요.”
“입금되었던 계좌로 그대로 다시 넣어주세요.”
“예. 이번 달이 총 4번 교육인데, 하루 오셨으니까 30만 원 입금해드리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민후는 미련 없이 학원을 나왔다. 학원을 나온 민후는 앞쪽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류승훈을 발견했다. 슬쩍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일단 외적으로는 그가 어른이고 원장이었으니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데 그의 인사에 승훈은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그러나 민후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갈 길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그의 등 쪽 옷깃을 잡아당겼다.
“저기요.”
“네?”
놀란 그는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하였더니 아까 전 자신에게 질문을 하였던 자신 또래의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수줍은 미소로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아까 하셨던 말 정말 도움이 크게 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이 분야에 어느 정도 아시는 분 같은데…… 커피 한잔하실래요?”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확실히 귀여운 아이다. 그러나 민후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일이 바빠서요.”
“아……! 그럼 혹시 수강시간은 항상 이 시간이세요?”
“저 이제 이 학원 안 나오려고요. 영 저하고는 맞지 않네요.”
민후는 민망한 표정의 그녀였지만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일단 이 부분에서는 확실한 그였다. 연애도 좋지만 일단 자신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녀에게서 적나라하게 민후에 대한 호감이 드러났지만, 관심은 없었다. 막 몸을 돌리려던 그는 뭔가 생각난 듯 돌아섰다.
“그리고 이런 말 하는 게 조금 이상할지 모르지만 배우려는 의지가 강하신 분 같던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학원보다는 강북구에 있는 ‘배우수업’이라는 연기 학원 추천드립니다. 저도 거기에서 배웠었거든요.”
“아, 가, 감사합니다.”
호감 있는 남성은 건지지 못했지만, 그가 건네주는 정보에 그녀는 활짝 웃었다. 확실히 그녀도 근래에 승훈의 학원에 다니면서 큰 활용성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민후가 괜한 친절을 베푼 이유는 그녀가 예뻐서가 아니라, 학구열이 조금 뛰어난 학생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학생인 만큼 이런 학원보다는 자신의 후배가 운영하는 학원이 더욱 도움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곧 민후는 미련 없이 자신의 갈 길을 갔다.
* * *
기껏 등록해줬던 학원을 민후가 환불을 받아오자 그녀는 의아해했다. 민후는 어머니에게 ‘다녀보니까 돈만 받아먹고 가르쳐주는 건 없었어. 비싸기만 하더라.’라고 얼버무렸다.
어머니는 그 말에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일렀다. 어느덧 민후가 ‘최강호’의 영혼을 받은 지 한 달이 훌쩍하고 넘어섰다. 한 달이 넘는 동안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일단 가장 큰 변화는 민후의 몸이지 않을까 싶었다. 민후는 타고난 골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운동을 한 것 같기는 하지만 꾸준한 운동은 하지 못한 듯 체지방량과 더불어서 덩치에 비해 근육량이 적었다.
현재 민후는 신체를 더욱 강화시키는 영단을 먹음으로써 근육량은 적어도 그 근육량보다 상당히 말도 안 되는 힘을 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본래 민후의 몸이 10㎏의 밴치프레스를 할 수 있는 근육량과 힘이라면 지금은 25㎏의 밴치 프레스를 소화할 수 있었다.
하물며 민후의 신체적인 힘이나 감각은 강화되었지만, 외적인 몸의 변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습지 않은가, 근육량보다 훨씬 방대한 무게를 들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근육량이 없는 모습.
그것은 분명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으며, 근육량 대비 많은 무게를 들기 때문인지 웨이트할 때마다 그의 몸은 몰라보게 빠르게 변해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민후는 헬스클럽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였다. 러닝머신을 뛰고, 웨이트 운동을 하였다. 웨이트 운동을 끝낸 그는 어느덧 훌쩍하니 시간이 2시간이 지났음을 알았다.
모든 운동을 마무리한 그는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샤워장 안에는 트레이너가 헬스클럽 이용자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수건들을 정리하여 통 안에 넣고 있었다.
‘이 녀석은 보통 고등학생같이 나약하지는 않구나.’
트레이너는 민후를 보자마자 먼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그가 민후를 인정한 것이다. 트레이너는 민후에게 살갑게 굴지는 않았었다.
인사를 해주면 받고, 그가 운동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는 ‘안녕히 가세요.’라는 형식적인 인사만 하였다. 그러나 3일이 지나고, 1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되자 그가 다른 고등학생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고 판단한 것은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과 노력이었다.
그는 운동을 한번 시작하면 딴짓을 하지 않는다. 대게 헬스클럽 이용자들은 항시 휴대폰을 소지하고 문자를 보내다가 운동을 하다가 반복하거나 하기 마련이고, 또 제풀에 지치면 쉬다가 운동을 하곤 한다.
그러나 민후에게는 그런 점이 전혀 없었다. 목표치까지 채우기 위해서 힘들더라도 운동을 한 후 쉬어 줘야 하는 1, 2분가량만 쉴 뿐이지 운동에 매진하였다.
더군다나 타고난 골격과 더불어서 노력. 그리고 보충제를 먹기라도 하는 것인지 빠른 속도로 잡아가는 몸 때문에 감탄했다.
스윽.
민후가 옷을 갈아입는 것을 보고는 트레이너는 또 한 번 감탄했다. 한 달 만에 몸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그의 뒷모습이 트레이너의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는데, 어깨에서 골반으로 내려오는 역삼각형이 멋들어지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는 그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주변 정리를 끝낸 트레이너도 곧 밖으로 나섰다.
옷을 갈아입은 민후는 어느덧 1시가 넘었음을 확인했다. 1시가 넘는 일이 빈번했지만 그럴 때마다 사실 꾸중을 듣는다. 그는 트레이너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 나서려다 그의 목소리에 잠시 멈춰 섰다.
“학생이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하네.”
그의 말에 민후는 작은 웃음을 지었다.
“난 그게 보기 좋더라고. 아, 그리고 딥스 할 때 있잖아. 어깨를 바깥보다는 안쪽으로 구부리려고…… 아니다. 내일 오면 내가 트레이닝 해주마. 내일 보자.”
트레이너가 빙긋 웃었다. 민후도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노력을 하면 또 하나 좋은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보라! 처음 민후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던 트레이너는 이젠 민후에게 큰 관심을 가지며 직접 트레이닝을 해주겠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였다.
노력하는 것은 자신 본인에게도 좋은 것이었지만 그 사람을 보는 주변 이들도 흐뭇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 * *
아침 조회 시간이었다. 그러면서도 얼마 전 시험 보았던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올 때도 되었다. 관심이 없는 애들이 있는가 하면 큰 관심을 가지고 성적표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는 아이들도 적잖이 있었다.
담임 김필두가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갈색 서류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그 안의 내용물을 교탁 위로 뿌려내고는 성적표들을 모아 교탁 위로 툭툭 밑동을 치면서 모양을 맞춰냈다.
“얼마 전 본 중간고사 성적표 나왔다. 1번에서 36번까지 차례대로 받아가.”
아이들은 긴장 어린 표정으로 하나둘 앞으로 나섰다. 그중 좋은 성적이 나온 아이는 작은 쾌재를 나쁜 성적이 나온 아이는 울상을, 그와 반면 성적에 관심이 없는 아이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민후의 차례가 되었다. 그가 앞으로 나서자 필두가 빙긋 웃어 보였다.
“오늘 우리 반에서 전교 3등이 나왔다. 바로 강민후! 모두 박수!”
짝짝짝짝!
“이야…….”
“재는 성적이 어떻게 저렇게 오르냐?”
“소문에는 병원에 있을 때 갑자기 천재가 되었다던데.”
아이들은 제각기 민후의 놀라운 성적에 감탄을 뱉어냈다. 아이들은 제각기 의견을 제시하면서 의문을 품었다. 아이들의 박수 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필두는 빙긋 웃었다.
“축하한다. 다음번에는 1등, 기대해 봐도 되지?”
“네.”
필두는 나쁜 선생은 아니었다. 단지 그 당시의 상황이 너무나 믿기 힘든 것이었기에 당연히 컨닝을 했다고 간주하고 그랬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실력임이 명백히 확실하게 인지가 되고, 필두는 자신을 한탄했다.
하위권의 성적의 학생이 최상위권으로 올랐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노력을 하였을까, 또 컨닝을 했다며 구박받은 그는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까 그는 충분히 민후의 입장이 돼서 생각해 보았고 자신의 잘못을 알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요즘 누구보다도 더 민후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성적표를 받은 민후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아 성적표를 보고는 피식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겠네.’
학생 강민후는 전교 3등의 성적표에서 가장 기쁜 것이 어머니였다. 학생 때 뭐 큰일이 있으랴, 성적이 좋으면 곧 부모님에 대한 효도가 아니겠는가.
그는 학생으로서 이젠 완전히 적응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