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88화 (에필로그) (188/188)

# 188

188화 에필로그

날은 빠르게 갔다. 2026년 성낙기는 LA다저스와의 경기에 등판 중이었다. 2025에 이어 월드시리즈 5연패를 노리는 마이애미와 다저스의 4차전 9회 초에 성낙기는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다저스타디움은 한인들로 가득했다.

“여러분은 마이애미 말린스 소속의 성낙기 투수가 월드시리즈 5연패를 하는 현장에 함께 계십니다. 불멸의 투수입니다. 자그마치 월드시리즈 5연패를 견인하며 단 1패도 허용하지 않았고 오로지 승리만을 거둔 위대한 투수. 그가 지금 기록을 세우기 직전에 와 있습니다.”

“한편으론 안타깝네요. 성낙기 투수는 월드시리즈 우승 후, 한국에 가기로 되어 있습니다. 마이애미 말린스가 천문학적인 연장 계약을 제시했지만 모두 거절했죠. 이제 그를 보기 힘들다는 생각에 매우 섭섭합니다.”

“하지만, KBO에서 소속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뜻을 이루고 나면 메이저리그 재진출을 고려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건, 정진수라는 에이전트의 립 서비스입니다. 성낙기는 한국에서 충분히 오래 선수로 뛸 생각이라더군요.”

팡.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아, 드디어 성낙기 선수의 5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입니다. 불멸의 기록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여러분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

<성낙기, 한국으로 돌아간다. 전 소속팀 삼호슈퍼스타즈로의 복귀>

<월드시리즈 5연패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올린 성낙기 투수의 귀향. 마이애미 팬들 피켓 시위>

<마이매미 말린스의 팬들이 구단에 모여 성낙기를 보내지 말 것을 요구, 몸싸움 도중 3명 부상>

<데릭 단장이 팬들을 설득하고 있다>

<월드시리즈와 사이영상을 휩쓴 성낙기 투수를 기념하기 위해 마이애미 성낙기의 날 제정>

<5연패를 이룩한 마이애미의 카퍼레이드에 성낙기는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져>

“휴, 생각보다 후폭풍이 거세군. 선수 하나의 힘이 이 정도일 줄이야.”

“그럴 만도 합니다. 역사를 바꾸지 않았습니까. 아마도 다시는 존재조차 불가능한 선수로 남을 겁니다.”

“그렇겠지. 이번에 5연패를 거두는 모습을 보고 솔직히 나도 좀 무서웠다네. 선수는 선수고 메이저리그는 영원히 계속되어야 하지. 이쯤에서 성낙기가 떠나는 것도 메이저리그 전체를 생각하면 괜찮은 선택이라고 봐.”

“하긴, 성낙기 때문에 월드시리즈의 승패가 너무 뻔하게 흘러간 면이 있죠. 어쨌든 그가 마이애미 말린스에 남긴 족적은 영원할 겁니다.”

“그래, 오스틴. 5연패를 하는 동안 자네도 고생이 많았네. 이제 성낙기 이후를 생각해야 할 때야.”

오스틴 단장과 구단주 데릭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속내를 이야기했다. 성낙기라는 투수로 인해 메이저리그가 단순화된 측면이 없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런 우려를 칼럼에 실었고 성낙기는 적당한 때에 KBO로 복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해는 하면서도 아쉽고 아쉬우면서 걱정이다. 과연 저 투수의 공백을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

성낙기가 한국으로 떠나는 날, 마이애미 공항은 인산인해, 그 자체였다. 마이매이 구단에서는 이례적으로 성낙기를 리무진에 태워 공항까지 에스코트했다. 성낙기와 오스틴 단장이 탄 리무진 주위로 경찰 사이드카가 따라붙었다. 그야말로 마이애미에서는 대통령 부럽지 않은 예우. 오스틴도 성낙기도 별말이 없었다. 두 사람 모두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오스틴은 성낙기가 떠난 이후가 내내 걱정이었고 성낙기 또한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오, 성낙기 이제 가는 거냐?

‘누구……?’

-하, 예 좀 봐. 그새 스승도 몰라본다 이거야? 월드시리즈 우승하고 나니 뵈는 게 없다 이거지.

‘아, 실바였군요. 난 또 누구라고.’

-난 또 누구라고? 허, 이 잡놈을 그냥 목을 졸라 버릴까.

‘오늘 나타날 줄 알고 있었어요. 적어도 작별 인사는 해야 할 테니까.’

-그래, 한국에 가면 뭐 할 거냐.

‘뭐 하겠어요. 배운 게 야군데 거기서도 씩씩하게 던져야죠.’

-애들 기죽지 않게 적당히 던져. 아무튼 너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왜요?’

-너를 통해 이미 메이저리그 역사를 썼고 더 이상 할 게 없잖아. 그럼, 물러나야지.

‘…….’

-이봐, 헤이드 존. 성낙기에게 할 말 없어?

-글쎄, 워낙 대단한 투수로 거듭나서 당최 조언도 할 게 없고… 하여튼 한국 가면 잘 먹고 잘 살아라.

‘…알겠습니다. 두 분도 언제나 잘 계시길 바랍니다.’

-이 자식은 근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를 않네. 우리가 이런 냉정한 놈에게 스탯을 물려준 거야?

‘냉정하지 않았으면 여기까지 왔겠어요? 하지만 두 분께는 항상 감사드려요.’

-좋아, 그 정도면 됐다. 이제 볼일은 없겠지만 우리가 늘 곁에 있다고 생각하고 꿋꿋하게 살아라.

‘알겠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안녕… 아 참, 근데 말이지. 너 김아경과 장하연 중에 누구를…….

-성낙기 그럼 굿바이.

헤이드 존이 드랙 실바의 입을 막고 마지막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라이베리아 모텔 옥상에서 뛰어내리던 순간, 저 둘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다. 성낙기는 실바와 존이 떠난 후, 손을 들어 눈을 훔쳤다.

***

2027년 3월, 성낙기가 한국에 들어온 지 석 달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이슈를 몰고 다닌 성낙기였지만 정작 한국에 온 뒤로 외부 활동은 전무했다. 광고와 TV 프로그램 등의 섭외가 끊이지 않았고 프로야구협회 등의 행사도 모두 거절했다. KBO는 떨떠름한 반응이었으나, 성낙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정치권에서도 발을 뻗어왔다.

“성낙기 선수는 대외 활동은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야구에만 전념하겠다는 선수 본인의 의지가 강합니다.”

에이전트 정진수와 삼호슈퍼스타즈 구단은 외부의 요청을 거절하느라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시범 경기가 시작되었고 성낙기는 개막전을 나흘 앞두고서야 모습을 보였다. 그것도 단 2이닝만을 소화한 채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리고 드디어 2027년의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렸다. 삼호슈퍼스타즈의 홈경기가 열리는 삼호파크는 일찌감치 매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캐스터 유시진입니다. 장종운 해설자 모셨습니다. 오늘 개막전은 강팀끼리의 대결이죠? 작년 3위 팀, 삼호슈퍼스타즈와 우승팀이죠, 모연비퍼스와의 경기입니다. 모연비퍼스는 그야말로 강타선이죠. 조창래와 천강조가 이끄는 타선은 KBO 사상 가장 강한 라인업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죠, 국가대표 라인업에 모연비퍼스의 타자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니까요. 조창래와 천강조는 일찌감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진을 칠 정도로 관심도가 높습니다. 과연 모연비퍼스의 타선이 성낙기라는 대투수를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성낙기 투수 마운드에 오릅니다. 열광하는 관중들입니다. 지난해 수위 타자 조창래의 타석입니다. 0.395이라는 경이적인 타격을 자랑했던 선수죠.”

“아깝게 4할 타율을 놓쳤을 만큼 공, 수, 주 삼박자가 갖춰진 선수입니다. 메이저리그에 가도 3할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 타자입니다.”

“성낙기 와인드업!”

팡.

“스트라이크.”

“아, 초구가 160㎞입니다! 전광판에 뚜렷이 아로새겨진 160이라는 숫자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성낙기 투수가 KBO 타자들을 상대로도 최선을 다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자만하지 않고 저런 공을 던지는 성낙기 투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성낙기는 1회에 세 타자를 맞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경이적인 공에 힘을 얻은 삼호슈퍼스타즈 타자들은 1회 말부터 3점을 내며 개막전 승리의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그러고 나서 맞은 2회 초, 타석엔 천강조가 들어섰다.

최고의 타자로 알려진 그는 지난해 50홈런에 130타점을 올리며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올해가 끝나면 메이저리그 진출 자격을 얻는 그에게 이미 거액의 연봉을 제안한 구단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야아, 성낙기 얼마만이냐. 두열아, 형 스타일 알지?”

“포심패스트볼 좋아하시는 거요?”

“그렇지. 어때, 시원하게 정면승부해 보자. 저 공으로 설마 피해가는 건 아니겠지?”

“뭐… 알겠습니다. 그렇게 사인 보낼게요.”

팡.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믿었던 천강조마저 성낙기의 포심패스트볼 구속을 따라잡지 못하고 삼구 삼진을 당했다. 압도적인 투구에 관중들은 할 말을 잃었다. 성낙기는 이후, 변화구를 적절히 섞어가며 모연비퍼스 타선을 농락했고 3안타 무실점의 성적으로 개막전 완봉승을 거뒀다. 삼호슈퍼스타즈는 이중호 등이 투런 홈런을 터트리며 6:0으로 모연비퍼스를 셧아웃 시켰다.

“와아, 내가 보면서도 못 믿겠네. 87구만에 완봉승이라니. 게다가 쟤는 4일만 쉬고 등판이 가능하잖아.”

“그렇습니다. 허봉호 감독님. 이런 페이스로 시즌을 마치면 과연 결과가 어떨지 두려울 지경입니다.”

허봉호 감독과 이계현 코치는 경기가 끝나고서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바야흐로 KBO에도 성낙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경기가 끝나고 성낙기는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엔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 여동생 서희와 장하연에 김아경까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김아경과 장하연은 한국에서의 활약이 감격스러운 듯 눈물을 글썽였다.

“낙기 씨, 오늘 정말 멋졌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이렇게 훌륭한 선수가 되어주셔서요.”

“낙기 오빠, 대단해요.”

기자들이 따라붙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고 김아경과 장하연이 성낙기와 다정히 안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겼다. 성낙기는 다소 어색해했지만 김아경과 장하연은 오히려 적극적이었다. 성낙기는 메이저리그에서 치른 경기 후에 이런 평안함과 익숙함을 느껴보지 못했다. 역시 한국이고 고향이며 가족이다. 더구나 그 이름도 익숙한 삼호슈퍼스타즈 소속으로 펼쳐 나갈 앞날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김아경과 성낙기는 과연 어떤 사이인가>

<개막전에 나타난 미모의 여인. 성낙기의 말대로 여동생의 친구인가?>

<스포츠 기자의 추적 결과 성낙기와 김아경, 만나도 너무 만났다>

스포츠 채널들은 개막전부터 각종 이슈를 쏟아냈다. 뭔가 이야깃거리만 있으면 성낙기의 기사는 시청률을 춤추게 만들 것이다. 성낙기의 개막전 승리에 대통령의 축전이 있었을 만큼 KBO로의 복귀는 온 국민들을 들뜨게 만들었다. 29세의 나이로 아직 전성기가 끝나지 않은 투수가 이룩할 성과에 미국의 스포츠 채널들도 일제히 관심을 보였다.

괴물 투수라는 미사여구로도 감당이 안 되는 한 투수의 업적에 언론들은 마침내 신인류라는 새로운 별명을 붙였다. 허봉호 감독은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여 삼호슈퍼스타즈 팬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성낙기는 제가 꾸준히 데리고 있겠습니다. 은퇴할 때까지 말이죠. 본인은 부인하겠지만 삼호슈퍼스타즈의 종신 선수로 남을 겁니다. 이제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한 퍼즐이 맞춰졌습니다. 기대하십시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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