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
185화 보스턴 레드삭스
팡.
“스윙 스트라이크.”
라파엘 디버스는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예상하고 배트를 휘둘렀으나 공은 전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치솟았다. 배트와 공의 유격은 20㎝에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타자는 큰 스윙으로 몸이 돌아갔다. 배트의 무게가 이끄는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홈플레이트에서 휘청거린 라피엘 디버스.
“너무 큰 걸 노리는 거 아냐?”
그 모습을 본 리얼무토가 한마디 했다. 라파엘 디버스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뒤, 리얼무토를 내려다봤다.
“초구부터 라이징패스트볼 던지는 건 솔직히 동업자 정신이 없는 거지. 챔피언십 시리즈 치르면서 1점도 안 주려고 전력투구 하냐.”
“그러게 말야. 나도 맘 같아선 서비스로 2, 3점은 주고 싶은데 투수가 워낙 짠돌이야.”
“그래? 저도 인간인 이상 퍼질 때가 있겠지. 어디 마음껏 던져봐라.”
라파엘 디버스는 대화 상대의 주체가 불분명한 마지막 말을 던지고는 스윙을 하며 타격 감각을 가다듬었다. 성낙기가 2구로 선택한 구종은 슬라이더. 타자의 몸 쪽으로 오다가 바깥쪽으로 휘어지며 뚝 떨어지는 공이다. 라파엘 디버스는 왼발을 크로스 오버시키며 멀어지는 공을 따라잡았다. 그와 동시에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아, 1루수 키를 넘겨 파울 라인을 따라가는 안타! 루이스 브린슨이 따라갑니다. 루이스 브린슨, 마음이 급한 나머지 공을 뒤로 흘립니다! 1루 주자 베닌텐디, 2루 돌아 3루를 향해 질주합니다.”
“루이스 브린슨이 결정적인 에러를 범했네요.”
정확히 말하면 두 번의 에러가 연달아 이어졌다. 1루수 브라이언 앤더슨은 무슨 착각을 했던 건지 역동작에 걸렸고 자신의 위를 지나가는 라이너 타구를 놓쳤다.
뒤늦게 점프해 봤지만 공은 이미 글러브를 통과한 상태. 거기에 루이스 브린슨마저 공을 뒤로 흘림으로써 연속 에러가 완성됐다. 그 대가는 컸다. 루이스 브린슨이 뒤로 돌아 공을 쫓고 중견수 시에라도 담장 밑까지 흐른 공을 향해 달렸다. 그 사이 발 빠른 베닌텐디는 2루를 돌아 3루를 향하고 있었다.
성낙기는 1루 베이스를 넘어 우익수 근처까지 달려가서 커트맨으로 섰다. 마침내 시에라가 공을 잡았다. 그의 눈에 성낙기가 보였다. 그는 2루수와 성낙기 사이를 저울질하다가 성낙기를 택했다. 보스턴의 3루 코치는 팔을 돌리며 베닌텐디를 홈으로 끌어들였다.
시에라는 이제 막 우익수 근처에 선 성낙기에게 공을 뿌리려는 찰나였고 그 사이 베닌텐디는 3루를 돌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넉넉한 세이프 타이밍. 타자 주자는 거의 2루에 다다랐다.
퍽.
시에라의 송구가 성낙기의 글러브에 들어왔다. 성낙기가 지체 없이 홈을 향해 공을 송구했다. 송구하는 순간 그의 입에서 낮고 짧은 발음이 새어 나왔다.
“전광석화(電光石火).”
성낙기가 공을 글러브에서 빼내어 뿌릴 때, 베닌텐디는 3루 베이스보다 홈 플레이트에 더 가까웠다. 바라보던 마이애미 팬들은 실점을 기정사실화했다.
아무리 성낙기가 빠른 송구를 한다 해도 이것만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캐스터와 해설자는 보기 드문 장면에 흥미를 보였다.
“성낙기 투수, 우익수 쪽으로 뛰어갑니다. 담장 아래서 공을 잡는 시에라! 베닌텐디는 3루를 돌고 있습니다.”
“오, 성낙기가 자신에게 던지라고 손을 드는군요.”
“시에라! 성낙기에게 공을 던집니다. 뜻밖에 커트맨으로 나선 성낙기 투수! 공을 받아 홈으로!”
“흠, 저걸 던지나요? 타이밍상으론 이미 세이프인데요.”
베닌텐디의 눈에 홈 플레이트가 보였다. 리얼무토가 그 앞에서 송구를 기다리는 중이다. 하지만 베닌텐디는 세이프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3루를 돌면서 힐끗 쳐다본 마이애미의 외야는 홈 승부는커녕 타자를 3루에 보내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일 정도로 느렸다.
그의 눈에 시에라가 송구하는 게 보였다. 시에라의 공이 커트맨에게 도발할 즈음이면 자신은 이미 홈 플레이트에 근접하리라. 홈 송구가 정확하다 해도 자신은 이미 홈 플레이트를 밟은 후일 것이다.
‘좋아, 일단 선취점 뽑고!’
베닌텐디는 홈 플레이트가 가까워 오자 슬라이딩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완전한 세이프 타이밍에 굳이 슬라이딩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자신의 허슬 플레이로 팀원들의 전투력이 배가된다면 기꺼이 몸을 던지리라. 여기까지는 지극히 타당하고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베닌텐디는 세이프를 의심치 않았고 보스턴 관중들 역시 선취점을 눈앞에 두고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성낙기의 능력이었다.
전광석화를 발음함과 동시에 쇄애애엑! 하는 소리가 났고 공은 홈 플레이트를 향해 뻗어갔다. 성낙기의 손을 떠난 공이 마치 미사일처럼 1루와 2루 사이를 지나고 마운드 옆을 지나갔다. 야구를 좀 아는 팬들이라면 이 장면을 보고 어이없어할 것이다.
투수가 외야로 나가 홈 송구를 하다니. 실제로 야구를 잘 아는 보스턴 팬들은 성낙기가 외야로 나갈 때부터 얼굴 가득 비웃음을 떠올렸다.
“어이, 저 투수 봐. 외야로 나간다.”
“응? 왜 저러지?”
“중견수가 2루수가 아닌 투수에게 공을 던졌어. 홈 송구를 투수가 하겠다는 건가?”
“미쳤군. 야수가 아닌 투수가 홈 승부를 하겠다니. 이런 장면은 처음 봐.”
“큭큭, 마운드에서 던지는 것과 같은 줄 아나 보지?”
“지 혼자 다하겠다는 욕심이 늘 일을 망치는 법이지. 저건 의욕 과잉이야.”
투수는 마운드에 서서 와인드업을 한 후, 공을 던진다. 두 다리로 몸의 균형을 잡고 골반과 허리와 어깨와 팔 스윙이 조화를 이루면서 원하는 것에 공을 꽂아 넣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 즉 몸의 중심을 잡는 일이다.
손에서 공이 떠날 때까지 흐트러짐이 없을 때에만 소위 말하는 제구력이 완성된다. 한데, 그런 투구에 익숙해진 투수가 외야로 나가 야수가 해야 할 홈 송구를 대신한다?
그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야수는 수년 혹은, 십수 년 동안 다리를 움직이면서 공을 던지는 것에 특화된 훈련을 한다. 급박한 상황에 홈으로 송구하는 동작이 일상화되어 있다. 좋은 야수는 몸의 균형이 흐트러진 상태에서도 송구를 정확하게 보내는 능력이 있다.
그에 비해 투수 훈련은 롱 토스 이외엔 그런 동작이 없다. 롱 토스조차도 와인드업에 가까운 자세로 공을 던진다. 그러니 평소에 훈련되지 않은 투수가 홈 송구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치 밖의 플레이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성낙기가 지금 그걸 하고 있으니 보스턴 팬들의 비웃음은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성낙기는 상식 밖의 일들을 저질러왔고 결과는 늘 상상을 초월했다. 바로 지금,
쇄애애엑!
손을 떠난 공은 홈 플레이트를 향해 빨랫줄처럼 뻗어갔다. 마치 눈이 달린 것처럼 리얼무토의 글러브를 향해 날아가는 공을 본 관중들은 입을 쩌억 벌렸다.
베닌텐디가 슬라이딩을 하는 순간, 공이 리얼무토의 미트에 들어왔기 때문.
펑!
엄청난 스피드의 공이 리얼무토의 미트에 들어왔고 리얼무토는 몸을 지탱하는 디딤 발이 뒤로 밀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손에서 시작된 그 충격은 어깨와 등, 허리와 다리까지 그대로 전달되었다.
리얼무토는 공을 받자마자 주자를 향해 몸의 중심을 이동했다. 베닌텐디는 슬라이딩을 하다가 갑자기 다가오는 포수의 미트를 보고 놀랐다.
그의 계산대로라면 홈 플레이트를 지나친 뒤, 일어서서 포효를 할 즈음에야 공이 들어오는 게 맞다.
‘뭐야, 속임수?’
비어 있는 미트를 자신의 다리에 갖다 대는 걸로 착각했을 만큼 베닌텐디는 홈 승부를 자신하고 있었다. 촤아아악, 하는 소리와 포수의 미트가 다리에 와 닿는 느낌은 묘한 이질감을 동반하면서 베닌텐디의 뇌를 울렸다. 저만치 서 있는 주심이 보였다.
“태그아웃!”
‘뭐? 태그아웃?’
베닌텐디는 얼이 빠진 얼굴로 주심을 응시했고 리얼무토는 미트에서 공을 빼어 다음 동작을 이어갔다. 리얼무토는 지체 없이 3루를 향해 송구했다. 라파엘 디버스는 홈으로 송구하는 틈을 타 3루로 돌진했다.
홈 승부는 무조건 세이프다. 거기에 자신이 3루까지 간다면 제 아무리 성낙기라 해도 흔들릴 것이다. 그는 이 승부로 성낙기를 마운드에서 내리고 싶었고 주저 없이 그 계획을 실행했다. 1실점을 한 후, 3루의 찬스가 이어지면 내야 땅볼로도 홈 승부가 된다.
즉, 2실점은 떼놓은 당상이다. ERA 0.80의 투수를 이런 식으로 농락하고 나면 마이애미의 사기는 땅에 떨어질 것이고 보스턴은 1차전을 잡을 힘을 얻는다.
“태그아웃!”
라파엘 디버스는 홈에서 나는 주심의 소리를 잘못 들었나 했다. 분명 세이프 타이밍이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3루에 다다를 즈음, 그의 눈에 송구를 받는 3루수의 모습이 보였다. 3루수는 공을 받고 라파엘 디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속을 멈출 수 없는 라파엘 디버스는 자연 태그아웃.
“젠장, 이게 뭐야.”
라파엘 디버스는 아웃을 당한 뒤에도 믿기지 않는지 한참이나 홈을 쳐다보다가 더그아웃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고개를 숙인 채였다. 수많은 의문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믿기 어려운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투수가 외야로 나가 홈 송구를 하더니 포수는 3루로 뛰던 타자를 아웃시켜 버렸습니다. 단숨에 투아웃을 만드는 마이애미 말린스의 배터리입니다.”
“내가 헛것을 봤나 싶을 정도의 홈 송구였어요. 어떻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송구가 가능한지 모르겠네요. 믿어지지 않는 송구 스피드였는데요. 괴물도 저런 괴물이 없네요.”
믿을 수 없는 플레이에 한풀이 꺾인 보스턴은 무득점으로 4회를 끝냈고 기세가 오른 마이애미는 4회 말에 대거 4득점, 승부의 추가 기울었다. 6회 말에도 2점을 추가해 6:0으로 앞서 나갔다. 성낙기는 7회까지 무실점 투구를 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팬 파일러와 야를린 가르시아가 정석대로 8, 9회를 분담하며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6:0 셧아웃.
***
기세가 오른 마이애미 말린스는 호세 우레나와 샌디 알칸타라가 선발로 제 몫을 하며 3연승을 거뒀고 보스턴의 홈구장에서 벌어진 4차전에서 성낙기는 2:1의 살얼음 리드를 한 가운데 9회 마지막 타자 미치 모어랜드를 맞고 있었다.
2회에 무심코 던진 커브를 받아쳐 성낙기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쳐낸 타자였다. 성낙기의 투구 수는 91개에 불과해서 알렉스 비토 감독은 성낙기를 내리지 않았다. 야를린 가르시아를 올렸다가 큰 거 한 방이라도 허용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ERA 0.80과 2.48은 큰 차이가 있다. 양키스와 다저스는 챔피언십 시리즈 전적 2:1로 양키스가 앞서는 가운데 나머지 경기를 전승하더라도 마이애미에겐 여유가 있다. 성낙기를 월드시리즈 개막전에 투입할 여유.
따악.
파울.
“투 스트라이크 원 볼인 가운데 성낙기 투수 사인을 내고 있습니다. 무슨 구종일까요. 이 한 개의 공으로 챔피언십 시리즈의 승자가 가려질 수 있습니다.”
“아마도… 100마일이 훨씬 넘는 강속구일 거예요. 중요한 순간엔 늘 그 미친 듯한 공을 던졌었거든요. 6회에도 104, 5마일을 넘나드는 강속구를 연달아 던진 적이 있죠. 바로 러피엘 디버스를 상대로요.”
“그렇다면 미치 모어랜드 역시 강속구에 타이밍을 맞추고 있겠군요.”
“그렇겠죠. 그 공 하나로 성낙기는 챔피언십 시리즈를 끝내려 하겠죠.”
성낙기는 심호흡을 한 뒤, 미치 모어랜드의 몸 쪽으로 공을 뿌렸다. 몸 쪽 깊은 곳이 아닌 확실한 스트라이크 코스. 미치 모어랜드는 빠른 타이밍에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성낙기가 던진 구종은 모두의 예상을 깼다.
부우웅!
배트가 먼저 돌아갔고.
팡.
공이 나중에 들어왔다.
똑같은 폼으로 던지는 85마일의 체인지업에 미치 모어랜드의 배트는 허공을 갈랐다. 느린 체인지업은 타자 앞에서 쑥 꺼지며 무릎 쪽을 파고들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끝!”
주심의 스트라이크 선언과 동시에 경기가 끝났다. 미치 모어랜드는 주저앉은 채 허탈해했다. 곧이어 다른 구장에서 벌어진 양키스와 다저스의 경기는 양키스의 승리로 끝났다. 이제 한 경기만 더 이기면 지난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두고 마이애미와 격전을 치르게 된다. 그리고 예상대로 5차전마저 양키스가 승리했다.
10월 22일, 마이매미 말린스와 뉴욕 양키스는 말린스 파크에서 맞붙게 되었다.
성낙기와 루이스 시크릿의 에이스 대결. 아론 저지와 지안카를로 역시 성낙기와의 승부를 벼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