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83화 (183/188)

# 183

183화 2023 페넌트레이스 5

양키스의 마운드는 그로부터 무너졌다. 시에라의 투런 홈런을 시작으로 안타와 사구가 이어졌고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까지 터졌다.

우익수가 공을 더듬는 사이, 타자는 3루에 안착했고 주자는 모두 홈으로 들어와 버렸다. 2회 초 수비에서 순식간에 역전을 허용한 양키스 벤치는 허탈, 그 자체였다. 4:3 역전.

타선의 선전에 힘을 얻은 호세 우레나는 2회 말을 삼자범퇴로 끝냈다. 이어 시작된 3회 초, 성낙기는 투아웃인 상황에서 다시 루이스 시크릿을 상대했다. 루이스의 눈엔 독이 올라 있었다. 벤치에 대한 원망도 함께였다.

벤치의 판단 미스로 볼넷을 내주는 바람에 연속 도루를 허용했고 그 바람에 자신은 흔들렸다. 흔들린 투수의 공은 볼 끝이 밋밋했고 제대로 통타당했다. 4점이나 내준 그 모든 근원이 바로 지금 타석에 서 있는 성낙기 때문이다.

‘10할 타자는 없다. 기껏해야 3할이 최선, 정면 승부다.’

루이스 시크릿은 이를 악물었다. 투아웃 주자 없는 가운데 부담도 없다. 제깟 게 안타를 치고 나가 봤자 한 타자만 처리하면 이닝 종료다.

하지만, 루이스 시크릿에게 이 승부는 중요했다. 또다시 루상에 나가 도루 등으로 내야를 휘젓는다면 팀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무조건 틀어막아야 한다.

팡.

“스트라이크.”

루이스 시크릿이 던진 초구는 바깥쪽 낮은 코스의 포심패스트볼이었다. 97마일의 스피드가 전광판에 찍혔다. 루이스 시크릿이 전력투구를 하고 있다는 증거. 성낙기는 1구를 흘려보낸 뒤, 타이밍에 맞춰 배트를 몇 차례 돌렸다.

“이봐. 꼭 그렇게 의욕을 불태워야겠어? 어차피 투아웃인데 진행 좀 빨리 하자.”

“집에다 맛있는 거라도 두고 온 거야? 아님, 술 약속 있어?”

“말귀를 못 알아먹니. 지루하다는 거잖아. 오늘만 경기가 있는 게 아니야.”

“지루하다면 하나 날려줄게. 조금만 기다려.”

양키스의 포수 게리 산체스는 성낙기의 말을 듣더니 제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마스크를 이마 위로 걷어 올리더니 주심에게 말을 건넸다.

“타자가 자꾸 시간을 끌면서 투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너도 그랬잖아.”

“전, 경기가 늘어지는 걸 방지하려고 했을 뿐이죠. 아무튼 경고라도 줘야 이런 버퍼링이 사라질 겁니다.”

“알았어. 성낙기 경고! 게리 산체스 경고!”

“아, 아니. 나는 왜……?”

“너도 지금 시간 끌고 있잖아. 어서 앉지 않으면 관중석으로 보내 버릴 거다.”

깐깐한 주심의 경고에 본전도 못 찾은 게리 산체스는 다시 앉아 사인을 냈다. 어떻든 타자의 리듬감에 변화를 준 건 사실이다.

가만히 끌려가는 것보다는 때로 흔들어야 변수가 많아진다. 물론, 투수의 리듬도 같이 흔들린다는 약점은 있지만 루이스 시크릿은 성낙기보다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다.

성낙기에게 2구가 날아왔다. 루이스 시크릿이 자랑하는 슬라이더. 이 슬라이더가 통하면 3구는 몸 쪽 하이볼로 헛스윙을 이끌어낼 계획이다.

따악.

그러나 성낙기가 슬라이더를 받아치면서 계획은 틀어졌다. 이번 공 역시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공인데 성낙기는 툭, 밀어치 듯이 배트를 돌렸다. 타구가 파울라인 경계선을 쭉 따라 날아갔다.

“슬라이더를 노려 친 타구! 1루수를 넘어 외야로 쭉쭉 뻗습니다. 아, 계속 날아갑니다! 파울이냐, 홈런이냐!”

“저런, 폴대를 맞추면서 경기장 안으로 공이 다시 들어왔네요. 홈런이에요.”

우익수 아론 저지는 성낙기가 친 공을 따라가다가 포기했다. 다만, 공의 낙구 지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처음엔 파울이 될 듯하던 타구는 경기장 안으로 살짝 휘더니 폴대를 맞고 떨어졌다. 파울이라고 생각했던 루이스 시크릿은 고개를 떨궜다.

“아마도 바람이 영향을 미친 것 같군요. 공이 경기장 안으로 휘었거든요. 행운의 홈런입니다.”

해설자의 말처럼 행운이 따른 홈런이었다. 성낙기는 공의 낙구 지점을 바라보다가 폴대에 맞자 싱긋 웃고는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았다. 경기 스코어 5:3.

***

성낙기는 양키스와의 2차전에서 지명 타자로 나와 5타수 5안타 1홈런, 4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9:5 승리를 견인했다.

경기의 mvp는 당연히 성낙기였고 양키스와의 2연전을 스윕했다. 그 후로 성낙기는 투타에서 발군의 활약을 이어갔다.

잘 치고 잘 던질수록 mlb 사무국에서 피를 뽑아가는 날도 많아졌다. 나중엔 정 안 되겠던지 종합 신체검사를 요구하기도 했는데 전례에 없는 일이어서 마이애미가 거절했다.

약물 복용 여부는 이미 판가름 난 상태였지만 사무국은 신체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작년까지는 의구심이었다면 올해는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신체의 근육과 뼈까지 관찰하길 희망했다.

구단의 거절로 일단락됐지만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다. 모르모트가 된 기분이었고 메이저리그가 한 선수에 너무 좌우되니 괴롭힘으로 트라우마를 남기려는 것처럼 보였다.

‘흥,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지. 한국에서 온 선수가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바꾸는 걸 원하지 않겠지.’

성낙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여기에 남아 있는 한, 모든 기록을 바꿔 버릴 참이었다. 이미 바뀌어 버린 기록에 대해서는 어쩌지 못할 것이고 사무국의 소리 없는 방해도 끝날 것이다.

***

2023년, 전반기가 지났다. 성낙기는 신기원을 이루고 있었다. 전반기에만 15승 1패, 방어율 0.67을 기록했다. 타격에서는 규정타석 미달이지만 18홈런에 0.423의 타율을 기록했다. 타점도 47타점으로 타석을 풀로 채운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경이적인 기록에 베이스볼을 다루는 관계자들은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성낙기가 힘을 내는 동안 마이애미 역시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승률도 높았다. 무려, 0.767의 승률. 이대로라면 지구 우승은 물론 월드시리즈 2연패마저 가시권이다.

“안녕하십니까. mlb 투나잇의 마이크입니다. 요즘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다니는 선수가 있죠?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입니다. 너무나 뛰어난 퍼포먼스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다 좋은데 성낙기 투수, 글쎄요. 이젠 투수라고 단정 짓기도 뭐하네요. 어쨌든 다소 싱거워졌죠?”

“그렇습니다. mlb 전체가 싱거워졌죠. 성낙기 투수가 등판하는 날은 뻔히 승부가 눈에 보이니까요. 그런데 이 선수가 관중은 또 구름처럼 몰고 다닙니다. 등판하는 모든 경기가 매진이었죠. 역사상 이런 경우는 없었어요.”

“그것도 기록이군요. 한마디로 기록 제조기입니다. 퍼펙트를 기록했고 얼만 전, 보스턴과의 경기에선 노히트 노런도 작성했습니다. 뿐입니까. 애틀랜타와의 경기에선 지명타자로 나와 6타수 6안타, 6홈런으로 메이저리그 기록을 바꿔 버렸습니다.”

“또 있죠. 한 경기 22삼진으로 완봉을 기록한 필라델피아 전도 있어요. 그 경기 역시 퍼펙트 각이었는데 수비 실수로 삼진 기록만 세웠죠. 말이 안 되는 기록들… 도무지 앞으로 얼마나 기록을 쏟아낼지 추측조차 할 수 없네요. 이게 좋은 일이기만 한지도 의문이고요. 그러니까, 다른 선수들을 모두 들러리로 만들어 버리는 성낙기이기 때문에 휴… 말을 맙시다.”

“지금 전반기가 끝났습니다만, 지구 우승이 유력하죠? 양키스와도 무려 6게임이나 벌어져 있습니다.”

“지구 우승뿐이에요? 월드시리즈 2연패… 게다가 내년은 또 어떻겠습니까. 부상도 없는 데다가 던질수록 스피드가 빨라지는 투수이니 과연 mlb를 얼마나 농락할지 상상도 못 하겠네요.”

전반기가 끝나고 이루어진 한 대담 프로에서 한 해설자는 성낙기의 지나친 활약에 불쾌해했을 정도로 메이저리그 야구는 그야말로 성낙기의 발아래에 있는 놀이 같았다.

모든 스탯이 정점을 찍은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이런 호들갑이라니. 성낙기는 여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지들 사정이다. 입맛에 맞게 적절한 인종차별을 하며 역사를 재단하기도 하는 애들이니 그러려니 해야지.

‘벌써 저러면 나중엔 모두 기절하겠군.’

***

성낙기가 올스타에 뽑힌 건 당연했다. 그는 홈런왕에도 도전했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라운드당 4분의 시간이 주어지며 1:1로 승부를 가려 승자가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

예상대로 각 팀에서 홈런깨나 치는 타자들이 나섰고 성낙기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결승에 진출했다. 다음 날 벌어진 결승전 상대는 예상대로 아론 저지였다.

홈런 더비가 벌어지는 양키스타디움은 아론 저지를 응원하는 관중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아론 저지는 전반기에만 27홈런을 때려내 홈런왕 등극이 유력한 슬러거. 2m가 넘는 키에 110㎏에 달하는 몸무게로 홈런을 칠 수 있는 최적의 신체 조건을 갖췄다.

먼저 선공에 나선 아론 저지는 초구부터 홈런을 치며 경기장을 달궜다. 홈런을 칠 때마다 관중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뒤흔들었고 아론 저지는 무려 27홈런을 기록하며 홈런 더비 우승의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이제 성낙기 투수가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 선수도 예선전에 21홈런까지 때려내면서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투수이면서도 홈런 더비 결승까지 올라온 저력이 대단합니다.”

“과연 승자는 누구겠습니까. 예상을 하신다면요.”

“27홈런은 경이적인 스코어입니다. 아무리 성낙기 투수가 타격에 일가견이 있다 해도 이 기록을 넘기는 버거워 보이는군요.”

“말씀드리는 순간, 아! 초구부터 홈런으로 연결하는 성낙기! 드디어 우승자를 가리는 홈런 더비의 마지막 타자입니다. 초구부터 홈런을 치는군요. 만만치 않습니다.”

“너무 적게 쳐도 싱거운 승부가 될 테니 적어도 20개는 넘겼으면 좋겠군요.”

초구 홈런을 친 성낙기의 눈앞에 글귀가 떴다. 초구를 넘긴 타구는 비거리 390피트로 간신히 담장을 넘겼다.

[행크아론의 타격 (5단계/5)가 활성화됩니다]

성낙기는 행크아론의 타격 스킬이 활성화되자 거침이 없었다. 비거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11개째의 홈런은 467(142m)피트를 기록한 아론 저지의 비거리를 상회하는 480(146m)피트의 홈런을 날려 모두를 경악에 빠트렸다.

주어진 시간 동안 한 구, 한 구 집중해서 치다 보니 어느덧 20홈런을 넘어섰고 30초를 남겼을 즈음엔 26홈런을 터뜨렸다.

“아, 26홈런입니다. 저런! 또 담장을 넘기는 성낙기 선수! 27홈런으로 아론 저지와 동률입니다!”

“…….”

“28홈런! 29홈런! 30입니다! 미쳤습니다!”

“아… 젠장.”

은근히 아론 저지의 승리를 바라던 해설자는 성낙기의 홈런이 계속 이어지자 사심이 들어간 욕설까지 내뱉었다. 성낙기의 홈런 레이스는 33에서 끝났다. 관중들은 너무 놀라 탄성을 지르거나 비음, 혹은 아우성 같은, 소음만을 허공중에 흩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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