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181화 2023 페넌트레이스 3
주심의 제스처를 본 관중석에서 환호가 터졌다. 마이애미 더그아웃에서 몇몇 선수들도 두 팔을 들며 기뻐했다. 주심의 판정은 아웃.
지안카를로가 승부를 걸었던 번트가 무위로 돌아갔다. 양키스 더그아웃은 허탈해했고 양키스 팬들은 그게 왜 아웃이냐며 우우, 하는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원아웃이라는 코드는 이미 전광판에 새겨졌다.
“아웃을 선언하는 주심입니다. 지안카를로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합니다.”
“아깝네요. 어떻게든 살아 나가려는 선수의 의지가 돋보인 번트였는데요. 정말 간발의 차이였습니다.”
“양키스 더그아웃이 가라앉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겨우 다섯 타자가 남았을 뿐이거든요. 양키스 타선이 분발하지 않으면 아,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네요.”
해설자는 차마 퍼펙트라는 단어를 꺼내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이미 양키스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는 마당에 함부로 입을 잘못 놀렸다가 정말 퍼펙트라도 되어버리면 두고두고 욕을 먹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캐스터와 해설자 모두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조심스러웠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성낙기가 5번 타자 미구엘 안두하를 삼진으로 잡아내 버리자 그것은 곧 현실이 될 조짐을 보였다. 7번 타자마저 1루 땅볼로 처리하고 이닝을 끝내고 나니 해설자의 조심스러움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
8회 말, 루이스 시크릿이 내려가고 불펜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마이애미의 1번 타자 퀸튼은 바뀐 투수가 던진 슬라이더를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을 만들었다.
게임 스코어가 1:0으로 벌어지는 순간, 마이애미 팬들은 무언가가 착착 맞아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루이스 시크릿이 내려가자마자 터진 1점 홈런을 성낙기는 지켜 내리라 믿었으므로.
“뭔가 조짐이 이상한데? 이러다가 정말 퍼펙트라도 하는 거 아니야?”
“성낙기는 아직 노히트 노런도 없는데… 음.”
“이제 겨우 세 타자가 남았을 뿐이야. 지금의 구위라면 충분해.”
“드디어 역사를 쓰는 건가? 월드시리즈 우승도 모자라서 이젠 각종 기록에 눈독을 들였군. 양키스가 불쌍해 보일 지경이라니.”
이닝은 9회로 넘어갔다. 성낙기의 앞엔 8번 타자가 초조한 모습으로 배트를 돌리고 있다. 무언가 중요한 임무를 띤 병사가 못 하면 어쩌지 하는 표정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타자는 조급해진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팡.
“스윙 스트라이크.”
팡.
“스윙 스트라이크.”
타자는 아무거나 얻어 걸리라는 심정으로 포심패스트볼 타이밍에 맞춰 스윙을 했지만 채드 왈라치의 사인은 모두 느린 변화구였다. 3구가 모두 볼인 구종이었는데 타자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 듯 싱겁게 타석을 물러났다.
이제 남은 타자는 둘, 9번 타자와 마지막 타자인 글레이버 토레스다.
***
‘아, 젠장. 어떻게 쟤하고는 늘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냐. 미치겠네.’
글레이버 토레스는 9회 말 마지막 타자로 성낙기를 상대하고 있었다. 볼 카운트 0-2. 공 하나에 퍼펙트가 달려 있다. 만약 자신이 안타를 쳐내면 게임은 지더라도 성낙기는 완봉으로 경기를 끝내게 될 것이다.
2구째 들어온 커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운 글레이버 토레스. 배트를 돌리며 성낙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직감적으로 느꼈다. 성낙기가 강속구를 던지리라는 걸. 설명하기 힘든 감이라는 게 있다. 바로 지금 글레이버 토레스에게 그것이 왔다.
‘좋아, 이번엔 무조건 친다.’
이를 악물고 글레이버 토레스는 마지막 공을 기다렸다. 성낙기가 볼을 던질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 않았다. 엄청난 구위를 가진 투수가 퍼펙트를 장식하는 마지막 공으로 타자를 속이는 일은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성낙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 하나로 경기를 끝내 버리자. 성낙기는 호흡을 조절하며 짧게 외쳤다.
“전광석화(電光石火).”
팡.
“…스, 스트라이크 아웃!”
주심은 공이 미트에 박히고 나서 말을 더듬었다. 공이 언제 들어왔는지도 미처 보지 못했다. 포수 미트에서 팡, 하는 소리가 났고 그걸로 공이 들어왔다고 판단했다. 궤적을 보지 못했고 순간적으로 공 자체를 놓쳤다.
다만, 포수의 미트가 스트라이크 존에 위치했으므로 뒤늦게 손을 올려 스트라이크 선언을 했을 뿐. 경기장 안의 관중들도 공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야간 경기여서 불빛 때문에 공을 놓치는 경우가 더러 있다지만 이 마지막 공은 경기장의 모든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어리둥절해하던 관중들은 전광판을 보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거기엔 선명하게 104mile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로 환산하면 무려 167㎞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속도.
바로 그 속도로 포심패스트볼이 홈 플레이트를 향해 날아갔고 갑자기 빨라진 공의 스피드에 사람들의 눈은 적응하지 못했다.
“104마일이닷.”
“으아아!! 104마일이야. 이건 사람의 공이 아니야.”
물론, 아롤디스 채프먼 같은 선수는 106마일의 공을 던져 관중들을 경악에 빠뜨린 적이 있었다. 그 공으로 그는 강속구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나, 성낙기는 다르다. 전혀 다른 스피드를 마지막에 꽂아 넣었다.
아롤디스 채프먼은 106마일을 던지기 전에도 계속 그에 근접한 공 스피드를 기록했었고 그렇기에 관중들은 놀라기는 했지만 그건 제어 가능한 놀람이었다. 그에 비해 성낙기는 최고 구속 100마일 정도를 오늘 경기에서 선보였을 뿐이다.
그랬던 선수가 마지막 9회 말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투 스트라이크에서 던진 공은 무려 4마일이 빨랐다.
비슷한 스피드에 익숙해진 눈들이 착시를 일으킨 것처럼 잠시 궤적을 놓친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아아아… 퍼펙트입니다! 퍼펙트입니다! 성낙기 투수,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퍼펙드를 이룩합니다!!”
“경이롭습니다. 퍼펙트를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관중석은 일순 정적에 휩싸였다가 환호성과 탄식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마이애미 말린스 팬들은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거나 두 팔을 치켜들며 기쁨을 나타냈다. 반면, 뉴욕 양키스의 팬들은 머리를 감싸 쥐거나 두 팔을 옆으로 벌리며 어이없어했다.
지난 시즌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패한 이후, 처음 만난 마이애미에게 퍼펙트를 당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상상도 못 했던 일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졌다.
***
[생애 최초의 퍼펙트 경기를 축하드립니다.]
[체력이 98로 오릅니다.]
[세기의 강속구가 98로 오릅니다.]
[포심의 제구력이 98로 오릅니다.]
[커브의 제구력이 97로 오릅니다.]
[슬라이더의 위력이 97로 오릅니다.]
[체인지업의 위력이 97로 오릅니다.]
[투심의 제구력이 95로 오릅니다.]
[포크의 제구력이 95로 오릅니다.]
[짐 캇의 수비력이 (5단계/5)로 오릅니다.]
[리키 핸더슨의 도주가 (5단계/5)로 오릅니다.]
과연 퍼펙트 경기의 보너스는 대단했다. 거의 전 스탯이 총망라되어 올랐다. 세기의 강속구는 101.3마일(163㎞)로 올랐다.
헤이드 존이 살아생전 던졌던 102.6마일(165㎞)에 근접한 수치. 제구력이 따르지 않는 구속은 큰 메리트가 없지만 드랙 실바의 제구력까지 98로 오른 스탯으로 따지면 이제 거의 9분할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드랙 실바는 전성기에 유일한 9분할 투수로 명성을 떨쳤던 투수였으니까. 그에게 다소 아쉬웠던 것은 공의 스피드였고, 강속구 투수였던 헤이드 존에게 조금 아쉬웠던 건 제구력이었는데 현재의 성낙기에겐 그 두 가지가 모두 있다.
강속구와 제구력, 거기에 근원을 알기 힘든 라이징패스트볼과 퀘이크볼.
그뿐인가.
슬라이더, 체인지업, 포크와, 투심과 커브까지 그야말로 던지지 못하는 구종이 없고 제구까지 핀 포인트가 가능하다. 성낙기는 퍼펙트 게임을 통해 더욱 스탯을 올림으로써 무적의 투수로 거듭나고 있었다.
<퍼펙트 경기를 이끈 성낙기, 아무도 그의 공을 치지 못했다>
<양키스의 강타선의 침묵, 퍼펙트를 선사하다>
<메이저리그의 앞날은?>
<동양인 투수에게 점령당한 mlb의 자화상, 거액의 연봉에 자만한 선수들의 민낯이 드러나다>
퍼펙트 경기를 축하하며 분위기를 띄운 사이트가 대다수였지만, 보수적인 사이트의 논조는 선과 악, 혹은 흑백의 대결처럼 몰아갔다. 더 이상 동양인 투수가 설치는 꼴을 보기 힘들다는 한 흑인 선수의 비공개 인터뷰도 곁들였다.
한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좌지우지하게 되면 흥행성은 떨어지고 지금껏 쌓아올린 메이저리거들의 위상 또한 추락이 뻔하다는 논리. 이게 곧 팬들의 식상함을 불러와 관중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논했다.
하지만, 성낙기가 2023년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등판한 경기는 모두 매진이었으므로 그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런 주장의 기저엔 백인 우월주의의 인종 차별이 존재했다.
“아주 가관이군. 이제 왕따 놀이라도 하려는 건가? 야구 전문가라는 놈들이 썩어도 한참 썩었어.”
“그러게 말입니다. 마이애미가 우승을 하니 배 아프던 차에 퍼펙트까지 당하니 공공의 적이라도 만들 심산이가 보죠.”
마이애미 구단주 데릭의 말에 단장 오스틴이 대답했다.
데릭은 현역 시절 양키스에 오래도록 몸을 담은 레전드 출신이다. 바로 그 양키스와 관련된 문제이니 기분은 더욱 좋지 않다. 양키스의 퍼펙트 패배를 핑계로 어떻게든 성낙기에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있는 기사인 건 분명해 보였다.
“항의를 해볼까요?”
“관둬. 그래봐야 그들의 의도에 말려드는 거야. 더 심해지면 그땐 끝까지 따라가야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뭐든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하고 그게 안 되면 시작하지 않는 게 상책이야.”
“유명세려니 해야겠네요. 그런데 사실은 성낙기의 기세가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도무지 꺾일 줄을 모르는 중인데 어디까지 갈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나도 궁금한 부분이야. 무서울 정도지.”
“이대로라면 사이영 2연패는 물론, 각종 기록을 모두 쓸어버릴 여지도 있습니다. 퍼펙트는 이미 끝났고 삼진왕에 방어율, 다승과 제로 볼넷을 달성할 가능성도 있죠. 그뿐입니까. 월드시리즈에서 보았듯 타격 또한 일품입니다. 개막 후, 현재까지 많은 타석은 아니지만 타율은 5할이 넘어갑니다. 경기에 출전한 날엔 빼먹지 않고 홈런을 때리기도 했죠.”
“무시무시하군. 혼자서 메이저리그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게 생겼어. 전무후무하달까. 자네 말대로 성낙기가 시즌 끝에 각종 성적을 갈아치운다면 사건일세. 메이저리그 100년의 역사가 휘청거릴 만큼일 거야. 생각해 보면 사이영상을 받는 투수가 사이영보다 월등한 성적을 기록하는 건 누가 보아도 정상이 아니긴 하지. 더구나 사이영보다 훨씬 성적을 내기 어려운 시대야. 삼진왕으로 군림했던 랜 존슨도 그렇고 페드로 마르티네스 같은 레전드도 마찬가지지. 이건 메이저리그 전체로 보면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야.”
“그럼……?”
“뭘 그럼이야. 어쩔 수 없는 거지. 성낙기는 어디까지나 우리 선수야.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선수이고. 만약 그렇게 된다 해도 그것 또한 메이저리그의 한 역사로 남겠지. 우린 역사를 재단하는 사람이 아니야. 역사를 따라 스포츠가 함께 흐르도록 할 책임이 있을 뿐이지.”
오스틴 단장은 데릭의 말에 동의했다. 그 말이 맞다. 당연히 성낙기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선수이며 마이매이의 자랑거리다.
그러나 한편으론 두려웠다.
한 투수가 바꿔 나갈 100년 메이저리그의 역사는 어떤 모습으로 다음 세대에 기억될 것인가. 한 선수로 인해 유구하게 쌓아온 전설들의 명성이 사라지는 일만은 없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또한 수많은 야구팬들의 몫이다.
이런 설왕설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2023년 5월,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퍼펙트를 기록한 성낙기는 다음 날 경기에 지명타자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