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79화 (179/188)

# 179

179화 2023 패넌트레이스 1

과연 뉴욕 메츠의 타자들은 작년과 달리 배트를 짧게 쥐고 컨택 위주의 타격을 선보였다. 1번 타자 아메드 로사리오는 투 스트라이크를 먹은 후, 연속으로 파울 타구를 날렸다. 하지만 연속 파울 타구를 날린 구종은 전력을 다하지 않은 포심패스트볼이었을 뿐, 라이징패스트볼을 구사하자 속절없이 배트가 딸려 나왔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뒤이어 나온 타자들은 모두 배트를 짧게 잡고 컨택 위주의 타격으로 맞섰다. 확실히 실력 있는 타자들이 그렇게 나오자 포심패스트볼은 커트가 되기 시작했다. 물론, 전력을 다하지 않은 패스트볼이라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틱.

“파울 팁 아웃!”

“ESPN의 카일입니다. 제임스 씨, 뉴욕 메츠의 타자들이 모두 배트를 짧게 잡고 나오고 있죠?”

“그렇습니다. 드디어 성낙기를 공략하기 위한 맞춤형 배팅 방식을 들고 나왔군요. 타자들로서는 저게 최선일 겁니다.”

“근래 보기 드문 모습입니다. 홈런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땅볼로라도 맞춰 나가겠다는 의지 같은데요.”

“작년엔 아무리 투수가 잘 던져도 저러진 않았죠. 1, 2번은 그렇다 쳐도 3번으로 나온 도미닉 스미스가 누굽니까. 지난 시즌 20홈런을 넘게 때려낸 파워를 가진 타자입니다. 저런 타자마저 배트를 짧게 쥐고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은 확실히 드문 현상이네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슬라이더를 커트해 내는 도미닉 스미스! 앞 타자들과 마찬가지로 볼 카운트가 몰립니다. 배트를 최대한 짧게 잡고도 그라운드 안에 공을 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트를 짧게 쥔다고 해서 모든 공을 컨택할 거라는 희망은 버리는 것이 좋겠죠. 그 정도 변화에 맞아나갈 투수가 월드시리즈를 혼자 이끌었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컨택 위주의 타격을 하게 되면 성낙기 투수에게도 영향은 있지 않겠습니까? 투구 수가 늘어난다든가 하는 거 말입니다.”

“글쎄요, 그건 좀 두고 봐야 알겠네요. 중심 타선조차 저런 방법을 택한 것은 사실, 메이저리그 스타일은 아니죠. 굉장히 수세적인 방식이거든요. 맞추기에 급급한 타자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겠어요.”

지난 시즌과는 확실히 달랐다. 약속이나 한 듯 배트를 짧게 쥐고 성낙기의 강속구에 대응하는 뉴욕 메츠의 타자들. 그들은 메이저리거라는 자존심조차 버리고 성낙기를 공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강속구에 타이밍을 맞추다 보니 변화가 심한 느린 커브에 도미닉 스미스는 자세가 무너지며 제 스윙을 해보지도 못하고 타석에서 물러났다. 2023년 개막전 1회 초에서 3타자 연속 삼진. 도미닉 스미스는 타석에서 물러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배트를 짧게 쥐고 콤팩트한 스윙으로 공략했지만 돌아온 것은 3삼진에 투구 수 12개. 목적으로 삼았던 투구 수에서도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다.

***

제이콥 디그롬은 특급 투수답게 마이애미의 타자들을 삼자범퇴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성낙기는 2회 초 마운드에 올랐다. 4번으로 나온 팀 티보는 지난해 30홈런을 넘긴 팀의 간판타자. 그런 팀 티보가 타석에 들어서자 관중들의 뉴욕 메츠 팬들의 기대감이 되살아났다. 적어도 1회처럼 무기력하게 당하지는 않을 거라는 그런 기대감. 하지만 팀 티보의 모습을 본 뉴욕 팬들은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 저게 뭐야. 홈런 타자가 말이야.”

“성낙기가 그리 무섭나?”

“에효, 메이저리거가 자존심도 없나?”

뉴욕 메츠의 팬들이 그럴만한 것이 팀 티보 역시 배트를 짧게 쥐고 타석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애초에 자신이 가진 배팅 스타일을 버리고 짧은 스윙으로 성낙기의 공을 치겠다는 건데 어딘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덩치는 산만 한 타자가 콤팩트 스윙이라니.

따악.

파울.

따악.

파울.

‘젠장, 이젠 포심패스트볼도 제대로 맞추지를 못하겠네.’

팀 티보가 속으로 되뇌는 말처럼 성낙기의 포심패스트볼의 궤적은 떠오르는 듯하면서 투심 성으로 휘어졌다. 제대로 맞지 않은 타구는 관중석 아랫단을 때리거나 뒷 그물망으로 날아갔다. 성낙기는 3구로 포크볼을 던졌다. 포심패스트볼과 같은 폼에서 던져지는 공. 타자 앞에 도달하기까지는 포심패스트볼과 다름없는 공. 팀 티보는 약간 의심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휘두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만약 포심패스트볼이라면 루킹 삼진 아닌가.

팡.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팀 티보는 3구 삼진을 당한 후, 배트를 내동댕이쳤다. 주심이 째려보다가 경고를 주지 않고 팀 티보가 더그아웃에 들어갈 때까지 주시했다. 주심도 그의 기분이 이해가 가는지 모르는 척 경기를 속개했다.

“팀 티보 선수마저 배트를 짧게 쥐고 나왔습니다만, 별 효과가 없습니다.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성낙기 투수!”

“무조건 짧게 쥐고 나서기로 한 모양인데, 글쎄요. 본래 자기 스윙은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요. 전 바람직한 공략법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더그아웃 지시 시항일까요?”

“지시 사항이라기보다는 의견이 일치된 결과겠죠. 요즘 메이저리거들이 벤치 지시라도 100% 수용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이건 자기 스윙을 희생하는 것이기 때문에요. 팀 티보 같은 선수마저 저럴 줄은 몰랐네요.”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일까요?”

“절박… 그렇겠죠. 월드시리즈를 봤을 테고 어마어마한 공을 공략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수포로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말해 무엇 하나요. 저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세이프티 번트라도 대서 내야진을 흔드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실은 그 방법도 지난 시즌에 시도를 해봤거든요.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죠.”

“그렇다면 성낙기 투수를 공략하는 방법은 없는 거겠네요.”

“아쉽지만 현재로서는 투수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려야 할 겁니다. 부상의 위험은 어느 투수나 있게 마련이죠. 적어도 배터리로 움직이는 로봇은 아니잖아요.”

“뉴욕 메츠에는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겠습니다만, 현재는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이군요.”

***

3회부터는 뉴욕 메츠의 타자들이 그라운드 볼을 굴리기 시작했으나 거기까지였다. 6회에 3루수 에러로 타자가 진출했을 뿐, 볼넷조차 얻어내지 못했다. 디그롬은 6회까지 6안타 1실점으로 제 몫을 해냈지만 7회에 나온 불펜진이 투런 홈런을 허용, 성낙기는 3 대 1로 앞선 8회 원 아웃을 잡고 자진해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투구 수는 81개에 불과했다. 뒤이어 나온 팬 파일러가 8회를 무사히 마쳤고 9회에 야를린 가르시아가 경기를 끝내면서 마이애미는 개막전 승리를 챙겼다. 성낙기는 8회 1사까지 던지며 무실점, 14삼진을 거두며 변함없는 위용을 과시했다.

개막전에서 탄력을 받은 마이애미 말린스는 샌디 알칸타라와 호세 우레나의 연속 승리로 뉴욕 메츠와의 개막전 3연전을 스윕했다.

타선에선 부상에서 돌아온 2루수 샤일록이 3연전 동안 5할이 넘는 쾌조의 타격감으로 팀 타선을 이끌었다. 뉴욕 메츠에게 개막 3연전 스윕패는 충격이었다.

만년 하위 팀이었다가 성낙기가 가세한 이후로 와일드카드를 경쟁하는 라이벌로 자리매김하더니 월드시리즈를 우승해 버렸고 2023 개막전에선 그야말로 완패를 당했다.

뉴욕 메츠의 팬들은 이토록 무기력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3연전 동안 타선이 낸 점수는 5점에 불과했다.

“메이저리그 이브닝의 테일런입니다. 올해도 성낙기 투수의 구위는 여전합니다. 예전에 제구력의 마술사로 불렸던 그렉 매덕스와 명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마이크 피아자 나와 계십니다. 요즘 마이애미의 상승세가 인상적인데요. 전력이 더 탄탄해졌다는 평가입니다. 어떻습니까.”

“그 동양 투수를 빼놓고는 설명이 안 되는 상승세죠. 1선발이 막강하니 2, 3선발 또한 안정감 넘치는 모습입니다.”

“성낙기 투수 말씀이군요. 그렉 매덕스 씨 올해도 마이애미의 월드시리즈 우승이 가능할까요?”

“현재의 기세로 보면 가능성은 상당합니다.”

“그 말뜻은 1순위는 아니라는 뜻인가요?”

“지난 시즌 성낙기 투수의 활약으로 월드시리즈를 거머쥐었죠. 이 투수가 200이닝을 넘겼고 23승을 달성한 뒤, 월드시리즈에서 4승에 직접적으로 관여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냈죠. 하지만 그도 사람입니다. 성낙기가 10월까지 같은 페이스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팀은 월드시리즈를 꿈꾸지 못하겠죠.”

“그 정도라고 보시는군요. 성낙기에게 이상이 생긴다면 월드시리즈 진출이 어렵다는 말씀이죠?”

“바로 그렇습니다. 아마도 지난 시즌과 동일한 성적을 내려면 성낙기 투수 역시 그 이상의 성적을 내야죠.”

“마이크 피아자? 어떻습니까.”

“이 정도 레벨의 투수는 메이저리그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100마일이 넘는 공을 던지면서도 전혀 지치지 않는 투수. 타자로 나와서 결승타를 날려 버리는 투수. 그야말로 초사이어인 같은 투수입니다. 개막전 역시 힘을 아끼면서도 뉴욕 메츠 타자들을 가지고 놀았죠. 올해 역시 성낙기의 해가 될 겁니다.”

“아, 생각만 해도 무섭군요. 2년 연속 한 투수가 이끄는 월드시리즈라니.”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소 엇갈렸지만 성낙기의 부상이나 구위에 이상이 없다면 월드시리즈에 또다시 진출하리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렉 매덕스처럼 성낙기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좋은 구위가 계속 이어진다면 마이애미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예상할 만큼 성낙기는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마치, 한 투수가 메이저리그를 쥐고 흔드는 모양새다.

어쨌든 마이애미 말린스는 개막전 이후, 뉴욕 메츠, 필라델피아 필리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파죽의 7연승을 달리며 상대 팀을 압도했다.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얻은 자신감에 의욕적인 겨울 훈련을 보낸 결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딕 에일은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성낙기라는 무적의 에이스가 버티는 효과는 투수들은 물론 타선에까지 영향을 미쳐 상대팀 에이스를 두들겨 점수를 냈다.

알렉스 비토 감독은 빅 볼과 스몰 볼을 조합한 경기운영으로 팀의 승리를 지켜 나갔다.

그렇게 4월 한 달이 지났다. 인터리그를 맞아 뉴욕 양키스 원정을 앞둔 시점의 마이애미는 기적과도 같은 성적을 거뒀다.

4월 한 달간 거둔 승리는 23승 7패로 무려 0.766의 승률을 거두고 있었다. 압도적인 성적 속에 만난 뉴욕 양키스의 선발은 에이스 루이스 시크릿이었다. 그 역시 4월 한 달간 6연승을 거두며 방어율 0.98의 대단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6승에 0.45의 방어율을 기록 중인 성낙기에게 견줘도 그리 뒤지지 않는 성적이었다. 지난해에 비해 제구력이 정교해졌고 공의 스피드는 더 빨라졌다.

뉴욕 양키스 역시 7할에 가까운 승률로 여전한 팀워크를 자랑했다. CNN은 이례적으로 뉴욕 양키스와 마이애미 말린스의 2연전을 대서특필했고 메이저리그 닷컴 역시 두 에이스의 대결을 빅뉴스로 꼽으며 불을 지폈다. 사람들은 미리 보는 월드시리즈라며 두 팀의 승부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5월 2일 양키스타디움은 일찌감치 매진이었다. 5만 7천에 달하는 관중들이 몰려 월드시리즈를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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