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
174화 스토브리그
<성낙기의 원맨쇼! 마이애미 말린스, 월드시리즈를 제패하다>
<역사에 남을 호투, 21삼진의 월드시리즈 6차전>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바꾼 그는 누구인가>
<이토록 강한 에이스는 없었다>
<마이애미 말린스의 기적. 와일드카드로 올라와 세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미국은 그야말로 성낙기의 기사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동양의 투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지 2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견인한 데다가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기 때문. 양키스의 아론 저지는 인터뷰를 거절했고 애런 분 감독만이 신경질적인 말투로 질문에 답했다.
“월드시리즈 준우승에 그쳤는데 소감 한마디 부탁합니다.”
-소감이랄 게 뭐 있습니까. 마이애미가 잘했고 우리는 못한 겁니다.
“성낙기 투수에게 완전히 눌렸는데 어떤 전략을 들고 나온 겁니까.”
-전략이 없었다는 얘기로 들리는군. 그 투수… 휴,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자세한 코멘트를 부탁합니다.”
-말한 그대로입니다. 그 투수의 스피드라든가, 어이없는 연투 능력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말이죠. 솔직히 지금도 믿을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지금 의혹을 제가하신 겁니까? 약물에 대한?”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자도 생각을 해보세요. 이런 투수가 있었습니까? 있었다면 이천 년대 초에 기본 능력을 상화하는 투수들이 등장했죠.
애런 분 감독은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으면서도 약물에 대한 의혹을 우회적으로 피력했다. 성낙기가 보여준 구위만 보면 가질 만한 의혹이었지만, 시즌 중에도 수시로 약물 검사에 임했던 성낙기라는 점에서 의혹은 의혹일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동양인 투수에게 두 시즌 만에 메이저리그가 농락당했다는 열등의식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난 성낙기가 해낼 줄 알았어. 양키스는 퍼펙트가 아닌 것에 감사해야 할 거야.
-으아아. 성낙기 미쳤다.
-양키스 애들 환장하겠군. 투수 하나 때문에 월드시리즈를 놓쳤으니 얼마나 황당하겠어.
-이제 마이애미 말린스의 전성시대가 오는 구나.
-성낙기 계약은 아직 4년이나 남았어. 이 투수만 있으면 내년 월드시리즈도 우리 거야.
-크흐흐. 양키스 놈들, 참 지랄 맞은 기분이겠네.
마이애미 팬들은 mlb.com에 댓글을 달며 양키스 팬들을 조롱했다. 양키스 팬들은 댓글에 반박할 힘도 없는지 조용했다. 그들에게 월드시리즈 6차전의 0봉패는 충격적이었다. 1차전의 충격도 충격이지만 5회까지 14삼진을 헌납하며 졌었던 월드시리즈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
“데릭,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래, 오스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네. 우리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성낙기의 계약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 선수가 있는 한 무적일 겁니다.”
“이제 원이 없네. 마이애미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감격적이야.”
“방송에서는 괴물의 출현이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맞아, 괴물이지. 저 선수는 신의 선물이야. 그렇게 이해하면 족해.”
데릭 구단주와 오스틴 단장은 월드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나누고 있었다. 월드시리즈 우승에 이어 혹사 논란에 시달렸던 성낙기는 멀쩡해 보였다. 9회 말 마지막 타자인 글레이버 토레스에게 99마일의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도무지 지치지 않는 어깨였고 구위는 마지막 타자를 상대할 때까지 싱싱하기만 했다.
선수단은 마이애미 공항에 도착했다. 수많은 인파가 그들을 반겼고 대기 중이던 차량으로 옮겨 탔다. 지붕이 없는 카퍼레이드 차량이었다. 마이애미 시내로 들어서자 길가에 남녀노소가 모두 나와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빌딩의 높은 곳에서는 오색의 종이가 떨어지며 흩날렸다.
두 개의 차선을 막고 경찰 사이카를 선두로 느리게 무개차가 따라갔다.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이 없는 축제의 현장에서 선수들은 시민들이 내미는 손을 잡으며 감격에 겨워했다.
“메이저리그 투나잇입니다. 제임스 씨와 전 마이애미 감독이시죠. 레인 피터 모셨습니다. 이번 월드시리즈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는데요. 어떻게 보셨습니까. 먼저, 레인 피터 감독님 말씀해 주시죠.”
“음, 성낙기라는 투수 하나가 지배한 월드시리즈라고 하겠습니다. 그야말로 언터처블이었죠. 사실, 제가 마이애미에 몸담았던 때만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진화하는 투수입니다.”
“그렇게 보시는군요. 하긴, 6차전의 투구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토를 달기 어렵겠죠. 제임스 해설자 소감은 어떻습니까.”
“마이애미가 의외로 탄탄했습니다. 5차전은 성낙기가 마운드에 서지 않고도 이겼거든요. 그게 컸어요. 불펜진도 쉽게 점수를 내주지 않았고 타자들은 팀 배팅에 주력했죠. 물론, 성낙기가 대단했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의 원동력은 하나로 똘똘 뭉친 팀 정신이라고 확신합니다. 알렉스 비토 감독이 해낸 거죠.”
“그런 면에서는 운이 좋은 감독이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트레이드와 FA 계약 등으로 전력을 보강한 것도 주효했죠. 퀸튼으로 테이블세터를 보강했고 디카엘로 영입으로 외야 수비가 단단해졌습니다. 불펜진에서는 데일 카론과 사무엘이 힘을 보탰죠. 한마디로 작년에 비해 뎁스가 좋아졌습니다.”
“레인 피터 감독님의 아쉬움이 크시겠어요. 팀을 나오신 다음에 그 선수들이 보강되었거든요.”
“휴, 두말하면 잔소리지. 하지만 요즘은 해설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
-진짜 미쳤다. 난 성낙기가 삼호슈퍼스타즈에 있을 때부터 크게 될 줄 알았어. 그때도 큰 경기에 강했거든.
-알기는 개뿔… 160㎞던진 줄 알았다고? 처음 메이저에 들어갈 때 성공한다던 놈은 하나도 없었지.
-맞아. 주둥이가 비뚤어졌나 보다.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니, 정말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100년 메이저리그에 저런 투수가 있었을까요?
-사이영도 있고 놀란 라이언도 있죠. 가깝게는 랜디 존슨도 있고.
-혼자 힘으로 월시 우승으로 견인한 건 성낙기가 처음이지. 타격으로도 죽여줬으니까.
-와, 도대체 이 선수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미국에 남아서 계속 우승?
-아마도. 아직 계약 기간이 4년이나 남았거든.
-앞으로 광고계약 쏟아지겠군. 연봉도 천문학적인데 우리나라도 이제 스포츠 재벌이 탄생하겠네.
-메이저리그에서 계속 뛰면 조 단위를 벌지도 몰라.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씹어 먹다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월드시리즈를 우승하자마자 성낙기에겐 유수의 회사로부터 광고 계약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이키, 아디다스, 언더 아머 등은 물론, 큰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는 구글과 애플, 삼성 등의 세계적 기업으로부터도 제의가 들어왔다. 그야말로 2년 동안 가장 핫한 스포츠 스타가 되어버린 성낙기였다. 월드시리즈의 상품성은 상상 이상이었다.
“아주 죽겠어요. 무슨 전화가 불이 나는지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다니까요.”
“말도 마세요. 성낙기 만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예요. 아우, 이거 월드시리즈 두 번 우승했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겠어요.”
마이애미 구단 프런트 직원들은 밀려드는 전화와 찾아오는 사람들에 치여 피로감을 호소할 정도였다. 기자들은 이미 사이영 상의 주인공을 성낙기로 확신하고 인터뷰를 따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마이애미 말린스 구단의 가치는 14억 달러에서 20억 달러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성낙기가 있었다. 그가 개척해나갈 앞으로의 기록에 대해 의심을 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포스트시즌을 거치며 보여준 내구성은 상당 부분 입증이 된 상태. 6차전에서의 강력한 구위가 모든 의구심을 잠재워 버렸다.
***
“야, 니들 어떻게 생각하냐?”
“뭘.”
“성낙기 말이야. 믿어지냐고.”
“글쎄… 믿어야지 어쩌겠냐. 보여줬잖아.”
월드시리즈가 끝나고 한국 강릉의 한 식당에서는 이중호, 이두열, 구문철, 안민기 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도 성낙기의 활약은 이해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공이 빨라진 것도 그랬고 월드시리즈를 혼자 치르는 듯한 모습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삼호슈퍼스타즈에서 늘 같이 지냈던 그들이기에 더 그랬다.
“니들 봤어? 성낙기가 160㎞ 찍는 거. 와, 난 보면서도 말문이 막히더라. 난 기껏해야 150㎞ 찍을까 말까인데.”
“민기 너, 최고 구속은 155㎞잖아. 난 145㎞만 나와도 원이 없겠다.”
구문철이 안민기의 말에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안민기는 어느덧 꽤 쓸 만한 투수로 성장했다. 일단은 구속이 빠르다.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 투 피치 투수에서 커브까지 장착해 팀의 에이스로 성장할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 현재의 에이스인 공성진이 들으면 어이없어 하겠지만.
월드시리즈가 끝난 후, 사이영상 발표가 있었다. 아메리칸리그에선 루이스 시크릿이, 내셔널리그에선 성낙기가 뽑혔다. 어느새 베테랑이 되어 있는 루이스 시크릿에 비해 성낙기는 단, 2년 만에 이룬 성과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23승을 거둔 것도 모자라 월드시리즈 우승과 사이영상 수상으로 2022년의 대미를 장식했다.
***
“드디어 오늘 성낙기 투수가 입국하는 날입니다. 수많은 팬들이 공항 근처에 노숙을 하면서 성낙기 투수를 뜬눈으로 기다렸습니다. 정말 스포츠 스타로서는 이례적일만큼 팬들의 반응이 대단합니다. 흡사 아이돌 그룹의 공항 모습을 재현하는 듯합니다.”
“구름 팬들이 모였네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성낙기 투수를 기다리는 광경이 참으로 경이롭군요. 성낙기 투수는 100여개의 사인볼을 미리 준비했다는 소식도 있고요.”
“그런가요. 준비성이 철저한 선수입니다. 아! 드디어 게이트의 문이 열리고 성낙기 선수가 공항 로비로 들어옵니다. 팬들이 경찰의 저지를 뚫으려고 애쓰는 모습입니다.”
“저러면 안 되는데요. 다칠 수가 있습니다. 특히, 소녀 팬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가 있거든요.”
2022, 메이저리그를 성공적으로 마친 성낙기가 입국하는 공항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다. 미남형도 아닌 한 야구 선수에게 아이돌 그룹과 맞먹는 팬들이 모였다는 것은 한국에서 성낙기가 갖는 인기를 실감케 했다. 월드시리즈 우승 후, 축전을 보냈던 대통령은 문화체육부 차관을 보내 청와대로 성낙기를 초청했다. 입국을 하자마자 청와대로 향했고 광고를 제의한 대기업 회장 등을 순차적으로 만나야하는 스케줄이 잡혔다.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만큼 그를 원하는 곳은 셀 수조차 없었다. 김아경이 나서서 중간중간 커트를 해야만 했다.
“후, 졸지에 내가 낙기 씨 비서가 된 기분이네.”
“직원들에게 맡기시지요.”
“아니에요.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은 제가 잘 알아요. 하는 수 없죠. 유명세를 치르는 수밖에.”
김아경과 정진수는 에이전트라는 직책 상, 성낙기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게 또 만만치 않았다. 수많은 요청을 일일이 거절하기도 힘들 지경. 성낙기가 입국하고 일주일 동안은 거의 섭외 요청 가부에 매달려야 했을 만큼 김아경의 고충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삼호슈퍼스타즈의 허봉호 감독과 약속을 잡은 것은 입국 후, 10여 일이 흐른 후였다.
“감독님, 내일 훈련장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