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73화 (173/188)

# 173

173화-월드시리즈-뉴욕 양키스 11

“안녕하십니까. 월드시리즈 6차전이 열리는 양키스타디움입니다. 오스왈도입니다. 해설가 제임스 씨와 랜 존슨 씨를 모셨습니다. 마이애미 말린스가 의외로 선전하고 있는 월드시리즈, 어떻습니까.”

“마이애미의 5차전 승리는 대단했습니다. 성낙기 투수의 도움 없이 일군 승리였거든요. 덕분에 성낙기 투수가 오늘 선발로 나서게 되었고요. 뉴욕 양키스는 저 투수를 공략하지 못하면 답이 없죠. 1차전 완봉의 악몽을 떨치고 심기일전해야 할 겁니다.”

“오늘 과연 마이애미가 이길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시리즈가 끝납니다만.”

“속단하긴 이르죠. 하지만 성낙기 투수가 와일드카드전부터 많은 투구 수를 기록했고 팔이 싱싱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뉴욕 양키스는 신중하게 공을 보면서 이 투수를 이른 이닝 안에 마운드에서 내려야 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성낙기 투수가 초구를 던집니다.”

팡.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스트라이크였다. 양키스의 글레이버 토레스는 투수를 한차례 바라본 후, 정신을 가다듬었다. 첫 타자인 자신이 허무하게 물러나면 팀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더구나 그는 시즌 중에 양키스 공격의 시발점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포심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출 수밖에 없어.’

글레이버 토레스는 강속구에 초점을 맞추면서 변화구엔 유연한 대응을 하기로 했다. 성낙기의 2구가 들어왔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을 본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전광판엔 100mile이라는 숫자가 선명했다. 헤이드 존으로부터 물려받은 세기의 강속구. (96/100)에 이르는 스탯은 ㎞로 환산했을 때 161㎞에 달했다. 헤이드 존의 강속구의 맥시멈은 165㎞, 즉 102.5마일이다. 전광석화(電光石火)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100마일을 던질 수 있게 된 것.

글레이버 토레스는 어이없는 눈빛으로 성낙기를 바라보았다. 흡사 괴물을 보는 듯한 모습이다.

‘도대체, 정체가 뭐냐.’

성낙기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을 만큼 글레이버 토레스는 불같은 강속구에 얼이 빠져 있었다. 성낙기는 인터벌을 짧게 한 후, 3구를 던졌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한참이나 늦은 배트 스피드. 공은 이미 포수 미트에 들어온 후였다. 이번에도 역시 전광판엔 100마일이 찍혔다. 1회 말, 선두타자에게 100마일의 공을 연달아 던지는 투수를 보고 양키스 팬들은 고요해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흥분에 들떠서 소리 지르던 몇몇 팬들도 맥없이 물러나는 1번 타자를 보고는 믿기 힘든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다봤다.

‘일단, 기선 제압엔 성공했군.’

성낙기는 강속구의 스피드를 따라오지 못하는 글레이버 토레스를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양키스 타자 중 컨택 능력이 가장 우수한 타자 아니던가. 그런 타자가 자신의 공에 손을 대보지도 못하고 물러났다.

[5회까지 모든 타자를 삼진으로 잡으세요. 모든 수치가 오릅니다]

성낙기는 2번 타자가 들어서는 홈 플레이트를 바라보다가 느닷없는 상태창의 미션에 황당했다.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지난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5회까지 연속 삼진이라니. 경기 시작 전에 강속구 스탯을 올려준 것처럼 말없이 올려주면 되는 거지, 굳이 이런 미션을 걸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션은 기회를 주는 겁니다. 즉, 미션 달성이 없으면 당분간 스탯 증가는 없을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아주 자알 한다. 이젠 협박까지 해가면서 공을 던지게 하다니.’

성낙기는 대꾸를 하고 나서도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고개를 저었다. 그런 한편, 만약 5회까지 미션을 달성한다면 노히트 노런이나 퍼펙트를 노려볼 수 있겠다 싶다.

‘좋아, 까짓것 해보자.’

성낙기는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해보다가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시작부터 회의적일 필요는 없다.

***

팡.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아, 아론 저지마저 허무하게 돌아섭니다. 1회 말을 삼진 3개로 깔끔하게 정리하는 성낙기 투수입니다.”

“월드시리즈에서 저토록 엄청난 공을 던지는 것도 놀랍지만, 배짱도 알아줘야겠네요. 올 시즌 홈런왕을 상대로도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1회 세 타자에게 모두 100마일에 달하는 공을 던졌고요. 이건 한마디로 미쳤습니다.”

“랜 존슨 씨, 2000년대의 강속구 투수셨죠. 성낙기 투수의 강속구를 어떻게 보십니까.”

“저도 현역 때 저 정도의 스피드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1회부터 저렇게 던진 기억은 없군요. 몸이 풀리는 3, 4회 정도부터 최고 구속이 나오곤 했습니다. 성낙기 투수, 오늘 얼마나 빠른 공을 던질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말씀드린 대로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서 저 정도라면 3, 4회엔 공이 더 빨라질 걸로 보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괴물 투수의 출현이군요.”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1회에 100마일을 펑펑 던지는 투수가 있다니요. 저 공을 과연 양키스 타자들이 얼마나 공략할지 우려됩니다.”

성낙기는 3회까지 거침이 없었다. 1번 타자부터 9번 타자까지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5번 타자 미구엘 안두하에게 던진 5구가 가장 많았을 만큼 투구 수도 경제적이었다. 이렇게 되자 양키스 벤치가 바빠졌다. 이대로 가다간 1차전 완봉패의 치욕을 다시 맛봐야 할지 모른다. 아니, 그러고도 남을 만큼 성낙기의 구위는 엄청났다. 타자들은 공을 제대로 건드려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양키스에게 다행이라면 마이애미의 타자들 역시 채드 그린을 공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3선발임에도 마이애미 타선을 단 1안타로 묶어놓고 있다.

“무슨 수가 없을까? 이대로 가다간 역사에 남을 패배를 하게 될 거야.”

“기습 번트라도 시도해 볼까요?”

4회 말, 성낙기가 마운드에 오르자 애런 분 양키스 감독은 초조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만 하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다. 프레이드 타격코치가 제안한 기습 번트 역시 좋은 대안이 아니다. 투수를 흔들어보려는 목적이지만 그 정도로 흔들릴 투수가 이렇게 잘 던지겠는가. 애런 분 감독이 망설이는 동안, 글레이버 토레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성낙기가 초구를 던졌고,

탁.

타격 코치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기습 번트를 시도하는 글레이버 토레스. 강속구였지만 정교한 번트가 3루 라인을 따라 굴러갔다. 글레이버 토레스는 공이 구르는 방향과 속도를 보고 희망을 가졌다. 시즌 중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가끔 기습 번트를 시도하곤 했었다. 1루에서 살 확률은 절반 이상이었다. 그리고 방금 굴린 그 정도의 코스라면 충분히 경합이 된다고 판단했다.

“마이!”

리얼무토가 3루 라인을 따라 공을 좆을 때, 성낙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낙기는 어느새 3루 라인에서 공을 맨손으로 낚아채고 있었다.

[짐 캇의 수비력이 활성화됩니다]

“아, 글레이버 토레스의 기습 번트입니다. 성낙기 투수, 절묘하게 흐르는 공을 맨손으로 잡아 1루에 뿌립니다! 정확하고 빠른 송구! 타자 주자 아웃! 글레이버 토레스의 발이 한참이나 미치지 못합니다.”

캐스터의 말대로 성낙기의 수비는 일품이었다. 번트를 대자마자 3루를 향해 발을 내딛었고 공을 잠아 역동작으로 송구를 하면서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송구 또한 빨랫줄이었다. 글레이버 토레스는 1루에 서너 걸음이나 남겨둔 상황에서 아웃을 당하자 망연자실했다. 설마 그 번트에 맥없이 아웃이라니. 성낙기는 다른 이유로 망연자실했다. 글레이버 토레스의 번트 때문에 연속삼진 기록이 깨졌고 미션은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

[번트는 미션에서 제외됩니다. 계속 진행하세요.]

그때, 상태창의 너그러운 멘트가 떴다.

***

경기는 5회 말, 성낙기는 투아웃을 잡아놓고 6번 타자 타일러 오스틴을 상대하고 있었다. 미션 성공을 위한 마지막 타자였다. 1회부터 5회 말 2사까지 14타자를 맞아 13삼진으로 메이저리그 신기원을 이룩하고 있는 성낙기. 모든 이의 관심은 월드시리즈 6차전의 승리보다 과연 성낙기의 삼진 퍼레이드가 어디까지 계속될지에 모아졌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미션 성공입니다]

[세기의 강속구가 97로 오릅니다]

[[포심의 제구력이 96으로 오릅니다]

[커브의 제구력이 95로 오릅니다]

[슬라이더의 위력이 97로 오릅니다]

[체인지업의 위력이 95로 오릅니다]

[투심의 제구력이 93으로 오릅니다]

[포크의 제구력이 93으로 오릅니다]

[라이징패스트볼이 (10㎝/10)입니다]

[퀘이크볼이 (5㎝/5)입니다]

상태창의 말은 사실이었다. 모든 스탯이 올랐다. 그렇게도 오르지 않던 라이징패스트볼도 정점을 찍었다. 세기의 강속구는 저 스탯 대로라면 162㎞가 된다. 그야말로 무적의 스탯을 성낙기는 쌓아올리고 있었다.

-으아아, 5이닝 14삼진이라니. 투수의 신이 등장했다.

-성낙기가 괴물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오늘 퍼펙트로 월드시리즈 우승하는 건가?

-도대체 어디까지야. 혹시 9회까지 삼진으로 가는 건가?

-우우, 믿을 수 없어.

중계를 보던 마이애미 팬들이 댓글에 놀라움을 나타냈고 양키스 팬들은 완전히 기가 죽은 나머지 댓글 창이 한산했다. 할 말을 잃은 듯.

-hhhhhhhhhhh

-제에에엔자아앙…….

-뭐-----

말이 되지 않는 문자만 나열했다.

***

경기는 어느덧 7회였다. 마이애미의 마운드는 여전히 성낙기가 지켰고 양키스는 세 번째 투수가 올라와 있었다. 마이애미는 성낙기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점수를 내지 못했다. 경기 스코어, 0:0. 성낙기는 6회에 내야 안타를 하나 허용했다. 빗맞은 공이 번트처럼 느리게 3루수에게 굴러갔고 가렛 쿠퍼가 송구했지만 1루에서 세이프. 퍼펙트를 걱정했던 양키스는 짐을 하나 덜었다. 그러고 맞은 7회 말, 2번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고 성낙기는 아론 저지를 만났다. 1회와 4회에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운 바 있는 아론 저지. 농락당했다고 할 만큼 성낙기의 강속구와 변화구에 배트를 크게 휘두르며 속수무책이었던 그가 이를 갈며 타석에 섰다.

‘아론 저지.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

아론 저지는 스스로에게 되뇌며 배트를 휘둘렀다. 클린업 트리오의 타순인 7회에 무언가를 하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쳐지는 편인 하위 타선이 성낙기에게 점수를 내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아론 저지는 눈을 크게 뜨고 날아오는 공에 배트를 휘둘렀다. 초구는 역시 바깥쪽 포심패스트볼. 무려 100.6 마일의 강속구다,

딱.

아론 저지가 때린 공이 텅, 하는 소리를 내며 1루 측 관중석 하단을 때렸다. 이전 타석에서는 때려보지도 못했던 공. 배트가 조금 느렸지만 이제 타이밍이 맞아 들어간다. 하지만 그걸 모를 리얼무토가 아니었다. 2구로는 느린 몸 쪽 커브가 들어갔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성낙기는 3구로 라이징패스트볼을 던졌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라이징패스트볼(10㎝/10㎝)

타자 앞에서 솟아오르는 볼에 아론 저지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배트와 공이 10㎝는 족히 차이가 나는 스윙. 다음 타자 지안카를로도 마찬가지였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아, 19삼진을 기록하는 성낙기 투수입니다. 지안카를로 선수 허무하게 타석에서 물러납니다.”

성낙기는 7회를 무사히 마쳤고 이어진 8회 초 투아웃에 터진 리얼무토의 솔로 홈런으로 승리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그러고 나서 맞은 9회 말, 성낙기는 변함없이 마운드에 오르고 있었다.

“이건 괴물이군요. 저런 투수는 메이저리그에 없었습니다.”

“정말 끝없이 던질 것만 같은 투수입니다.”

“괴물 투수입니다. 세 타자의 공격을 남겨두고 있음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양키스의 타선입니다.”

두 타자를 가볍게 잡아내고 9회 말, 투아웃에 양키스의 1번 타자 글레이버 토레스가 들어섰다. 시즌 내내 양키스 공격의 첨병이었으며 3할이 넘는 타율에 20 홈런을 훌쩍 넘기는 펀치력까지 갖춘 타자. 그가 힘없는 모습으로 타석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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