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71화 (171/188)

# 171

171화 월드시리즈-뉴욕 양키스 9

호세 우레나는 1회부터 전력 피칭으로 양키스를 상대했다. 3회까지 2안타 무실점으로 버티며 마이애미에 희망을 안겨주었으나 아론 저지부터 시작하는 4회가 문제였다.

아론 저지에게 슬라이더를 던지다가 솔로 홈런을 허용했고 다음 타자 지안카를로에게 초구를 통타당했다.

백투백(back to back) 홈런. 자신의 공이 맞아나가는 걸 확인한 호세 우레나는 그때부터 흔들렸다.

연속 2볼넷으로 타자를 내보내며 10월 말의 서늘한 날씨에도 땀을 흘렸다.

“타임!”

셜리번 투수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갔고 리얼무토를 비롯하여, 내야진이 모두 마운드에 모여 호세 우레나를 다독였다. 후세 우레나는 셜리번 투수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오자 긴 숨을 내뱉으며 외야석을 바라보았다. 관중으로 가득 찬 외야를 보는 순간, 저기로 타구가 넘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7, 8, 9번으로 이어지는 하위 타순이야. 3회까지 던지던 대로 던지는 게 중요해. 겨우 2실점을 했을 뿐이니까 지나치게 타자를 의식하지 마.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족하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셜리번 코치의 말에 힘을 얻은 듯 호세 우레나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이번엔 리얼무토가 한마디를 보탰다.

“호세. 넌 여러 해 동안 마이애미의 에이스였지. 많은 위기를 넘기면서 일구어낸 승리들이 있었어. 우린 널 믿어. 마이애미의 희망을 지켜줘.”

리얼무토의 말에 호세 우레나는 무언가 북받치는 게 있는 듯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렛 쿠퍼는 호세 우레나를 보며 자신의 글러브를 툭툭, 두드렸다.

수비가 든든히 지키고 있으니 걱정 말고 던지라는 제스처.

호세 우레나는 비록, 현재는 팀의 2선발이지만 연패 스토퍼로 마운드를 지키던 시절이 있었다.

리얼무토의 말을 들으니 그때의 자존감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코치와 선수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호세 우레나는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보았다. 7번 타자 그렉 버드는 타율은 2할 중반대로 낮지만 삼진이 거의 없는 타자로 컨택 능력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팡.

볼.

초구는 커브로 타자의 타격 의중을 떠보았고 타자는 배트를 자신의 몸통 중간쯤까지 내밀다가 급히 거둬들였다. 변화구를 노리는 듯한 타격 타이밍이다. 타자가 노리는 공이 변화구일 거라고 짐작한 리얼무토는 몸 쪽 포심패스트볼을 요구했다. 호세 우레나 또한 리얼무토의 사인에 신뢰성을 가졌다. 그러곤 망설임 없이 포심패스트볼을 강하게 뿌렸다.

따악.

양키스의 7번 타자 그렉 버드의 배트가 경쾌하게 돌아갔고 타구는 3루 강습이었다. 가렛 쿠퍼는 3루 베이스 쪽으로 굴러오는 강한 타구를 투 바운드로 처리한 뒤, 3루 베이스를 발로 터치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2루로 송구, 2루수 시클라멘은 공을 받아 1루 주자를 포스 아웃 시켰다.

여기까지의 과정으로 3루로 뛰던 2루 주자 아웃과 2루로 뛰던 1루 주자의 아웃으로 투아웃. 여기까지 만으로도 마이애미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노아웃 주자 1, 2루에서 선행 주자를 연속으로 아웃 시켰으니. 하지만 2루수 시클라멘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 아직 1루에 다다르지 못한 타자 주자가 보였다.

슈욱.

시클라멘은 경쾌한 풋워크로 양다리를 지탱하며 1루에 공을 송구했다. 강하고 빠른 송구가 1루로 날아갔고 1루수 브라이언 앤더슨은 최대한 다리를 벌리며 타자 주자보다 먼저 글러브에 공이 도착하기를 바랐다.

양키스 타자 그렉 버드 또한 전력으로 질주했으나 본래 이 타자는 발이 빠른 타자는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강하게 때린 타구를 3루수가 잡자마자 3루 베이스를 터치하는 것을 보았고 곧이어 2루로 뛰던 1루 주자마저 아웃되자 사력을 다해 1루로 달렸다.

팡.

브라이언 앤더슨의 글러브에 강한 송구가 꽂혔고 타자 주자 또한 거의 동시에 1루 베이스를 밟았다. 이제부터는 심판의 영역. 1루심은 타자가 1루를 밟고 지나간 후에도 베이스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고는 오른팔을 들면서 주먹을 쥐었다.

***

“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타자 주자마저 1루에서 아웃 당합니다. 2루 주자에 이어 1루 주자, 거기에 타자 주자까지 삼중살을 당하는 뉴욕 양키스! 대단히 좋은 노아웃 1, 2루의 찬스를 한 방에 날려 버립니다.”

“세상에! 제가 지금까지 해설을 해오면서 직접 삼중살을 눈으로 보긴 처음이네요. 게다가 이 경기는 월드시리즈입니다. 월드시리즈에서 삼중살은 무척 드문 경우인데요. 뉴욕 양키스가 절호의 기회를 날려먹고 마네요. 누가 이 수비를 마이애미의 수비라고 하겠습니까. 알렉스 비토 감독이 부임하고 난 후로 수비가 매우 탄탄해졌어요.”

“그렇습니다. 2루수 시클라멘의 수비가 좋았네요. 부임하고 나서 트리플 A에서 시클라멘을 주전으로 뽑아 올린 감독의 선택이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4회의 위기에서 삼중살로 자신에게 씌워진 굴레를 벗어버린 호세 우레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비록 양키스의 3, 4번 타자에게 백투백 홈런을 허용하긴 했으나 최선의 수비로 더 이상의 실점을 막은 것은 생각 이상의 수확이었다.

“와아, 저기서 삼중살을 당하나. 그렉 버드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냐.”

“완전 멍청이들이야. 저 상황에선 히트 랜드 런(hit and run)을 걸어서라도 삼중살은 피해야지.”

“감독이 아무 생각이 없는 무뇌아야.”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네. 노아웃 1, 2루의 기회를 저런 식으로 없애 버리다니. 이건 신이 노하지 않고는 있을 수조차 없는 일이야.”

“괜찮아. 어쨌든 2점을 뽑았잖아. 호세 우레나 같은 투수는 언제든 공략할 수 있으니 걱정 마.”

“젠장, 나가려던 똥이 내장에 다시 들어찬 기분이군.”

뉴욕 양키스의 관중석이 들썩였다. 2점을 홈런으로 얻어내긴 했지만 이후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찬스를 살렸으면 호세 우레나를 일찍 내리고 마이애미 투수력을 소진시킬 수 있었다. 성낙기가 혹, 투입되더라도 이른 시기일수록 양키스에 유리하다.

필승조 불펜의 투입도 마찬가지. 양키스 팬들이 좋다가 말았다면, 마이애미 팬들은 한숨을 돌리고 반격을 꿈꾸는 용기를 얻었다.

“좋아, 2점은 줬지만 위기에서 깔끔하게 막았어.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을 거야.”

“휴… 죽다 살았네. 가렛 쿠퍼의 3루 수비가 예술이었어.”

“이걸로 양키스의 타선이 한풀 꺾였으면 좋겠어.”

“걱정 마, 호세 우레나가 다시 살아날 거야. 한때는 마이애미를 먹여 살리던 가장이었어.”

양키스의 2선발 조던 몽고메리는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커브 등의 적절한 조화로 마이애미 타선을 3회까지 단 1안타로 묶고 있었다. 2점을 앞선, 4회 말에 조던 몽고메리는 다소 묘한 기분이 되어 마운드에 올랐다.

연속 홈런으로 선취점을 뽑은 건, 분명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절호의 찬스에서 맥이 끊겨 버린 느낌만은 마음에 걸렸다. 만약, 삼중살이 없었더라면 최소 2, 3점을 더 기대할 상황이었고 그랬다면 넉넉한 점수 차로 자신의 월드시리즈 승리투수가 눈앞에 보였을 것이다.

홈런으로 얻어낸 2점은 그런 면에서 기분 좋으면서도 다소 찜찜한, 묘한 기분을 조던 몽고메리에게 남겼다.

‘쟤가 2루수였지.’

조던 몽고메리는 선두 타자로 나선 2번 타자 시클라멘을 보자 경쾌한 풋워크로 1루에 뿌리던 송구가 생각났다. 타자로서는 별 볼 일 없는 스타일인데 수비로 먹고사는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시클라멘은 몸 쪽으로 강한 포심패스트볼을 뿌렸다.

따악.

시클라멘이 초구에 배트를 돌렸고 타구는 3루 강습이었다. 4회 초, 삼중살을 당할 때와 비슷한 코스. 양키스의 3루수 글레이버 토레스는 마이매미의 가렛 쿠퍼가 그러했듯 경쾌한 발놀림으로 3루 베이스에 붙어오는 타구에 글러브를 뻗었다.

턱-

하지만 강한 타구는 글레이버 토레스의 글러브에 들어갔다가 튀어나오며 3루 파울라인 밖으로 흘렀다. 볼을 놓친 글레이버 토레스는 공을 쫒아가 잡은 뒤, 1루를 보았지만 타자 주자는 이미 1루 베이스를 밟은 후였다.

3루를 쳐다보던 조던 몽고메리는 아쉬운 듯 고개를 돌렸고 마이애미의 다음 타자는 3루수 가렛 쿠퍼였다. 시클라멘, 기렛 쿠퍼, 브라이언 앤더슨.

공교롭게도 이번 회에 삼중살을 완성시킨 주역들이 차례로 타석에 들어서고 있다.

그런 우연의 일치 또한 조던 몽고메리에게는 달갑지 않다. 그런 와중에 나온 3루 실책은 불길하기까지 했다.

‘쩝, 왠지 기분이 별로군. 빨리 끝내야겠어.’

조던 몽고메리는 바깥쪽 슬라이더를 요구하는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저었다. 몸 쪽 낮은 포심패스트볼로 다시 한 번 내야 땅볼을 유도할 생각이었다.

1루 주자를 견제로 묶어두고 병살타를 완성시키는 것. 조던 몽고메리가 노리는 최상의 그림이다.

“1루에 연이어 견제구를 던지는 조던 몽고메리입니다. 아무래도 시클라멘의 리드가 길어 보이는 모양입니다.”

“초구에 히트 앤드 런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요. 견제구를 던져서 나쁠 건 없죠.”

1루 베이스에 주자를 더 붙여 놓은 후, 조던 몽고메리는 몸 쪽으로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투심이 가미되어 타자 쪽으로 살짝 휘어들어가는 움직임을 가진 공.

가렛 쿠퍼는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휘둘렀고, 타구는 내야에 바운드를 튀기며 유격수에게 굴러갔다.

여기까지는 조던 몽고메리의 생각대로였다.

문제는 유격수가 바운드를 맞추지 못해 타구를 뒤로 흘린 것. 시클라멘은 2루에서 여유 있게 살았고 노아웃에 주자는 1, 2루로 4회 초, 마이애미의 위기 상황과 같은 결과가 만들어졌다. 유격수 디디 그레고리우스가 조던 몽고메리에게 손을 들어 미안함을 전했지만, 조던 몽고메리는 이미 기분이 잡친 후였다.

‘젠장, 뭣들 하는 거야. 에러를 해도 정도가 있지.’

기분이 가라앉은 조던 몽고메리의 눈앞에 브라이언 앤더슨이 나타났다. 슬러거답게 호쾌하게 배트를 휘두르며 타석이 들어서는 마이애미의 4번 타자.

이런 타자들은 장타도 곧잘 날리는 반면, 병살도 많다. 우선 발이 느리고 타이밍을 잃으면 힘없는 타구를 내야로 굴리기도 한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간다.’

조던 몽고메리는 흔들리는 마음을 강하게 다잡았다. 포수 게리 산체스와 사인을 교환한 뒤, 몸 쪽으로 커브를 던졌다. 슬러거인 브라이언 앤더슨이 좋아하는 포심패스트볼을 배제하고 타이밍을 흔들어 놓으려는 볼 배합이다. 앞의 두 타자가 그랬듯이 브라이언 앤더슨도 조던 몽고메리의 초구를 공략했다.

따악.

이번에도 내야 땅볼이 되면서 조던 몽고메리의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하긴, 앞의 두 타자 모두 조던 몽고메리의 전략대로 내야 땅볼을 치기는 했다. 코스가 괜찮았고 에러가 겹친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브라이언 앤더슨이 친 타구는 앞선 타자들과 다르게 홈 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커다란 바운드를 만들어냈다. 타구는 투수의 키를 한참 넘겨 2루 베이스 바로 앞에서 투 바운드.

2루수와 유격수가 달려와 글러브를 내밀었지만 간발의 차로 베이스를 넘기고 중견수 앞으로 굴러갔다. 얕은 중견수 앞 땅볼. 홈까지는 무리다.

이어지는 타자는 5번 타자 디카엘로.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에서 성낙기에게 좌익수 자리를 빼앗기기도 했던, 나름대로 수모를 당한 기억 때문에 밤잠을 설친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 디카엘로였다.

노아웃에 주자는 만루였다. 디카엘로는 타석에 들어서면서 성낙기를 대타로 내지 않은 감독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좁아진 자신의 입지를 생각했다. 그러고는 배트를 휘두르면서 입술을 꼭 깨물었다. 까닭 모를 화가 가슴속에서 솟구쳤다.

‘내가 여기서 못 치면 사람 새끼가 아니다.’

그러고는 입 밖으로 새어나오려는 속엣말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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