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170화 월드시리즈-뉴욕 양키스 8
성낙기는 8회 원아웃까지 공을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팬 파일러와 야를린 가르시아로 이어지는 불펜진의 컨디션이 좋다고 판단한 알렉스 비토 감독의 결정이었다.
성낙기를 9회까지 던지게 만드는 것은 그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성낙기에 절대적인 의존도를 가지는 월드시리즈이지만 나머지 선수들에게도 최소한의 역할을 분담시켜야 시리즈 전체를 이끌어가는 데엔 낫다고 보기 때문.
감독이 불펜 투수들을 믿지 못하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팀원 전체에게 옮아갈 것이다.
알렉스 비토 감독은 성낙기가 활약한 경기에 불펜진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이, 원 팀을 위한 패턴으로 굳어지길 원했다.
따악-
첫 타자에게 안타를 내준 팬 파일러는 두 번째 타자의 내야 땅볼에 병살을 완성, 고비를 넘겼다. 시즌 중의 경기에서 주자를 내보내면 제구가 흔들리던 팬 파일러였고 지금은 더 큰 경기인 월드시리즈인데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와일드카드부터 올라오면서 숱한 위기를 겪다 보니 이젠 새가슴처럼 콩닥거리지 않는다. 위기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격언은 팬 파일러에게도 유효했다.
3:2로 1점 앞선 상황에 경기는 9회로 넘어갔고, 9회 초 뉴욕 양키스의 마지막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야를린 가르시아가 출격했다. 마이애미가 홈이므로 9회 말의 공격권을 가지고 있지만, 양키스 불펜진을 생각하면 크게 기대할 바가 못 된다.
어떻든 9회 초를 실점 없이 넘겨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마무리인 야를린 가르시아게 주어졌다. 타순은 7번 타자 그렉 버드 (Greg Bird)부터였다.
“마이애미가 3:2로 앞선 가운데 양키스의 7번 타자 그렉 버드 (Greg Bird)입니다. 야를린 가르시아가 마무리를 짓기 위해 마운드에 오릅니다.”
“아주 중요한 순간이죠? 마이애미가 승리의 기회를 거머쥐었네요. 언터처블 투수인 성낙기를 내리고 불펜진에 경기를 맡긴 알렉스 비토 감독의 담력이 대단하네요.”
“성낙기 투수가 계속 던졌으면 승리의 확률은 더 높아질 텐데 말입니다. 야를린 가르시아도 좋은 투수입니다만, 챔피언십시리즈에선 불안한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성낙기 개인에 의지해서는 월드시리즈를 우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겠죠. 물론, 오늘 승리를 결정짓는 데엔 성낙기 투수가 9회까지 던지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이죠. 알렉스 비토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팬 파일러나 야를린 가르시아가 강해지려면 오늘 같은 경기에서 던져야 합니다. 눈앞의 승리를 위해 불펜진을 쓰지 않으면 7차전까지 갈 경우, 문제가 됩니다. 감독의 중용을 받지 못하는 불펜진은 당연히 흔들리게 되고 투구 감각에도 이상 신호가 오는 거죠. 알렉스 비토 감독은 시리즈 전체를 보고 성낙기를 8회에 내린 겁니다.”
“음, 그렇군요. 야를린 가르시아 와인드업!”
파앙.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97마일의 강한 공을 뿌리는 야를린 가르시아. 투심의 회전력이 가미된 포심패스트볼의 구위가 위력적이다.
***
3차전이 끝난 다음 날, 성낙기는 채드 왈라치와 불펜 투구 중이었다. 채드 왈라치는 연이은 결장으로 의기소침한 상태. 리얼무토가 건재하니 가을 야구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래도 성낙기가 불펜 투구를 할 때는 자신을 찾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경기는 리얼무토와 뛰면서 연습은 채드 왈라치와 하는 것이 얼핏, 말이 안 되지만 그럼에도 실전에서는 무실점 투구를 이어가니 굳이 흠을 잡는 사람은 없다.
<야를린 가르시아, 3차전을 승리로 이끌다>
<마이애미 말린스 마무리의 위용을 뽐낸 야를린 가르시아, 2삼진으로 9회를 끝냈다>
<성낙기의 성공적인 중간 계투로 한발 앞서가는 마이애미>
-샌디 알칸타라의 뒤를 이어 롱 릴리프로 변신한 성낙기와 팬 파일러, 야를린 가르시아로 이어진 계투 작전이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3:2로 신승한 마이애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월드시리즈 우승컵 역시 성큼 다가오고 있다. 4차전 선발 딕 에일의 활약 여부가 시리즈를 결정짓는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성낙기의 출장 여부도 관심사다.
-Miami dot-com. 블레이드 기자-
3차전은 야를린 가르시아의 호투로 승리했다.
이제 마이애미 팬들의 관심사는 4차전으로 옮겨갔다. 월드시리즈 전적을 2:1로 앞선 가운데 4차전마저 승리하면 3연패를 하지 않는 한,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의 주인은 마이애미 말린스의 것이 되리라는 것.
그러므로 딕 에일의 컨디션 여부와 사무엘이나 데론 카일 같은 중간 계투진의 동정(動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또 하나는 성낙기의 좌익수 출장 여부였다. 실제로 마이애미는 성낙기의 활약으로 챔피언십시리즈의 승자가 된 경험이 있다.
그날의 활약에 대해서는 일시적이라는 평가와 본래의 실력이라는 평가가 함께 따랐지만 팬들은 당연히 후자였다. 성낙기가 타자로서도 지난 시리즈 7차전과 같은 역할을 하길 바랐다.
알렉스 비토 감독은 그 같은 1인 퍼포먼스에 회의적인 생각이었다.
혼자 다해 버리면 마이애미 말린스라는 팀의 존재 가치가 성낙기의 활약에 비례해 떨어진다.
만약,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더라도 마이애미 말린스라는 팀보다 성낙기라는 개인이 언론의 조명을 더 받는 일이 벌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개인은 언제든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할 개연성이 있고 트레이드 같은 의외의 상황으로 팀을 떠날 수 있다.
그런 경우, 한 선수의 부재만으로도 팀은 잃을 게 너무 많다. 인기 하락은 물론, 별 볼 일 없는 팀으로 전락해 버리는 변수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은 늘 팀 전체를 봐야 하며 한 선수에게 지나친 역할이 주어져 팀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는 지론도 가지고 있었다.
즉, 성낙기의 야수 투입은 최대한 배제한다는 게 원칙이다.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보면서 조마조마했던 기억도 그 같은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 부상 위험은 물론이고 어차피 체력은 무한대가 아니다.
-선발 출전 라인업에 성낙기는 없네.
-디카엘로가 조마조마했겠어. 투수가 야수까지 해버리면 자신은 할 게 없거든.
-아쉽다. 성낙기가 타자로 출전하면 4홈런을 때릴 텐데.
-성낙기가 좌익수로 뛰는 건 반대야. 수비하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월드시리즈는 해보나마나가 되지. 체력적인 부담도 상당해.
스포츠 기사 말미에 달린 댓글들은 대부분 성낙기의 결장을 아쉬워했지만, 나름 냉정한 분석을 앞세운 댓글도 있다. 양키스의 4차전 선발은 당연하게도 1차전 선발이었던 루이스 시크릿으로 정해졌다.
3일 휴식 후, 등판은 포스트시즌엔 흔한 패턴. 1차전엔 양 팀의 에이스끼리 맞붙었는데 이후로 일정이 갈렸다. 한 팀이 정면 대결을 꺼릴 때 나오는 경우인데, 마이애미는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성낙기의 등판을 무리하게 당긴 결과다.
물론, 성낙기를 일반적인 야구 선수로 놓고 보았을 때의 이야기다.
ESPN에서는 성낙기와 루이스 시크릿의 엇갈린 일정을 두고 토론이 한창이었다.
“제임스 씨 생각은 어떻습니까. 결과적으론 마이애미가 성낙기를 하루 일찍 올리면서 3차전을 가져갔는데요. 그 바람에 4차전의 선발은 상대적으로 양키스의 우위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흠, 그렇죠. 객관적으로 양키스가 유리해진 4차전이죠. 아마도 마이애미는 5차전과 7차전에 성낙기의 투입을 고려하고 있을 겁니다. 성낙기가 등판한 경기에서 다 이기면 마이애미의 계산대로 되는 거죠. 변수는 성낙기 투수의 체력이겠죠.”
“음, 마이애미의 승부수가 따로 있었구요. 듀크 카바니 씨는요?”
“안녕하십니까, 듀크 카바니입니다. 저 역시 마이애미가 승부수를 뒀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요. 양키스는 무리 없이 일정을 소화하는 반면, 마이애미는 모험을 한 거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더 유리할까요? 일단 시리즈 전적 2:1로 마이애미가 앞서고 있습니다만.”
“전력대로라면 양키스가 우세하죠. 그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고요. 알렉스 비토 감독이 그러니까, 사진 앵글로 치면 구도를 흔들었다고나 할까요. 일단은 3차전 승리로 성공을 했죠. 그러나 후유증은 남을 겁니다. 저렇게 잦은 등판은 핵심 투수 성낙기가 버티지 못하죠.”
“듀크 씨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원래 두 팀의 전력 차이는 확연합니다. 한 투수의 괴력으로 이 같은 결과를 만들었지만, 글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와일드카드, 디비전시리즈, 챔피언십시리즈에 이어 월드시리즈까지 같은 패턴의 등판이라면 투수 생명을 갉아먹는 결과를 낳을 겁니다. 아마 성낙기 투수가 5차전에 또 등판한다면 구위가 현저히 떨어질 겁니다. 비록, 스윙맨으로 출전했지만 3차전에 긴 이닝을 던지고 단 하루 휴식 후, 다시 던지는 거니까요.”
“두 분 모두 마이애미의 전략에 회의적인 반응이시군요.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챕터로 넘어가 볼까요?”
두 전문가의 의견처럼 대다수 야구인들은 마이애미의 모험과도 같은 전략은 3차전을 끝으로 실패할 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성낙기의 한계가 왔다고 보고 4차전부터 내리 3연패를 예측하는 전문가도 다수였다.
그리고 그들의 예측이 맞다는 것을 알려주듯 딕 에일은 4차전에서 무너졌다. 3이닝을 버티지 못하고 5실점, 일찌감치 승부가 갈렸다. 루이스 시크릿은 7회까지 1실점으로 마운드를 지켰고 경기는 원사이드하게 끝났다. 아론 저지와 스탠튼은 4개의 홈런을 합작했다. 4차전 경기 스코어 14:1. 그야말로 융단폭격이었다.
“아론 저지 선수 오늘 2홈런에 6타점을 기록했는데요. 타격감이 살아난 겁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시즌 끝나고 경기 감각이 떨어지다 보니 그동안 타이밍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내일은 성낙기 투수가 나올지도 모르는데요. 어떻게 상대할 생각입니까?”
“상당한 구위를 갖춘 투수지만 오늘 같은 타선의 응집력이라면 버티기 힘들 거라고 봅니다.”
“자신감을 되찾은 듯하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누구라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상, 정규 리그 홈런왕 아론 저지였습니다.”
타격에 불이 붙은 아론 저지는 확신에 차 있었다. 타격 사이클이 돌아온 이상, 거칠 것이 없다는 생각. 지금까지 성낙기에게 당한 수모를 갚아줄 때가 왔다는 듯 마이애미 더그아웃을 쳐다보며 의지를 불태웠다.
마이애미의 5차전 전략은 다시 성낙기의 불펜 대기였다. 선발이 무너지면 곧바로 투입되는 롱-릴리프. 챔피언십시리즈를 승리로 이끈 패턴이다.
그리고 마이애미에서의 월드시리즈 마지막 경기, 5차전의 날이 밝았다. 선발로 나서는 투수는 2차전 선발인 호세 우레나.
성낙기는 호세 우레나가 마운드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상태창을 떠올렸다.
[체력이 63입니다]
5이닝 정도는 가능한 체력이지만 그 이상은 힘든 체력 스탯이다. 막강한 양키스 타선을 상대로 승리하려면 후세 우레나가 최대한 견뎌야 한다. 시리즈 스코어 2:2.
오늘 경기를 내주면 6차전에서 월드시리즈를 내줄 개연성이 충분하다. 더구나 6차전부터는 양키스타디움. 성낙기는 심호흡을 하며 속으로 되뇌었다.
‘5차전이 월드시리즈의 분수령이다. 호세, 부딪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