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68화 (168/188)

# 168

168화 월드시리즈-뉴욕 양키스 6

2022년 10월 27일. 말린스파크 구장 앞은 암표상이 들끓었다.

몇 배의 웃돈을 지불해야만 표 구입이 가능했고 경기장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은 인근의 펍으로 몰려갔다. 집에서 경기를 지켜보느니 골수팬들끼리 뭉쳐 펍에서 응원전을 펼치면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며 함께 소리 높여 응원을 할 때, 그 순간만큼은 가족보다 더 끈끈해진다. 오직 승리를 향한 강한 열망이 그것을 가능케 해준다. 가끔은 아는 사람도 만난다.

“가만, 혹시 래퍼드 아닌가? 여름에 봤었지, 아마?”

“오, 지미. 자네도 여기로 왔군. 게으른 사람들은 늘 펍에서 만난단 말이야.”

“흠, 이것도 인연인데 합석하세나. 여기는 내 아내일세.”

“오, 미인이시군요. 여긴 내 아들이네. 성낙기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아이라네.”

“역시 아빠가 야구를 좋아하니 아들도 반듯한 청년으로 잘 컸군. 야구 좋아하는 사람치고 집안이 잘못된 경우는 없지.”

“지미, 자네는 역시 야구를 제대로 아는구만. 야구, 특히 월드시리즈는 클라이맥스지. 내가 살아서 마이애미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

“왜 아니겠나. 양키스와 1:1의 접전이야. 오늘은 정말이지,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치는 경기가 될 거야.”

야구에 여러 가지를 연결지어보다가 결국엔 경기의 상황을 열거하는 것으로 끝나는 야구팬들이 펍에 모여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화면엔 수많은 관중의 흥분된 모습과 캐스터와 해설자의 경기 예상 등이 어우러져 펍에 모인 사람들의 가슴에 뜨거움을 선사한다.

“자자, 한 잔씩들 하세나.”

그 뜨거움을 식히기 위해 일단은 목을 축이고 보는 것이다.

3차전 선발은 뉴욕 양키스의 채드 그린은 13승 7패 3.55의 ERA를 기록한 투수로 제구력이 좋고 평균 95마일에 이르는, 투심이 가미된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와 커터가 주 무기.

그에 비해, 마이애미의 3선발 샌디 알칸타라는 10승 8패 ERA 4.23으로 채드 그린에 비하면 조금 떨어지지만 최고 99마일에 이르는 강속구의 제구가 잡히는 날이면 기대 이상으로 던져주는 투수다. 기복이 있는 스타일.

객관적인 투수력은 마이애미가 불리하지만 야구는 해봐야 아는 법, 아무도 속단할 수 없다. 주심의 경기 시작 선언이 있었고 샌디 알칸타라는 마운드로 올라갔다.

올라가자마자 아론 저지와 스탠튼에게 연속 2루타를 맞고 1실점으로 1회를 마쳤다. 그 뒤로는 양 팀 모두 타선이 터지지 않아 0:1의 스코어가 4회까지 유지되었다. 그러고 나서 맞은 5회에 알칸타라의 연속 볼넷에 이은 안타로 0:2로 스코어가 벌어졌고, 이어진 노아웃 1, 3루의 위기에 드디어 성낙기가 마운드에 올랐다.

“0:2로 뒤지는 상황에서 성낙기 투수를 투입하는데요. 경기를 내주게 된다면 1선발 투수의 체력만 소모하는 결과 아닐까요?”

“승부수이긴 한데, 글쎄요. 불펜 투입을 뒤로하고 성낙기 투수의 투입은 저도 의외입니다. 오늘 나오지 않는다면 내일 선발로 나올 투수이기 때문이죠. 이 경기에서 힘을 다 빼고 내일도 선발로 나오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겠죠.”

0:2로 지는 상황에 노아웃 주자 1, 3루라면 1점을 더 빼앗길 확률이 높다. 땅볼 타구만으로도 3루 주자는 홈 승부가 가능하므로.

만약 그렇게 되어서 0:3으로 끌려간 후, 마이애미 타자들이 4점을 내주지 못한다면 경기를 내주게 된다.

강한 양키스의 불펜에게 4점을 얻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을 때, 알렉스 비토 감독의 투수 운용은 비상식적이었다. 사실은 알렉스 비토 감독도 성낙기의 등판에 회의적이었다.

‘감독님, 절 내보내 주십시오. 여기서 끊고 2점 승부면 충분합니다.’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마운드에 올라가면 5회 말에 저에게 타격 찬스가 옵니다.’

‘…….’

무모하다. 하지만 이대로는 무난하게 지는 코스다. 만약 알렉스 비토 감독에게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성낙기는 마운드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

4차전 선발을, 지고 있는 경기인 3차전에 당겨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그러나 성낙기는 비상식을 상식으로 만들어 버린 전력이 있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성낙기가 4차전에 나와 승리를 거둔다 한들, 양키스와 동률이 될 뿐이다. 여전히 어려운 건 마찬가지.

물 흐르듯 투수 로테이션을 가져간다고 해서 양키스를 이기지 못한다.

‘좋아, 성낙기 너를 믿겠다.’

알렉스 비토 감독의 승부수는 성낙기의 투입뿐이었다. 어떻게든 변수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라면 조금이라도 이른 3차전이 낫다고 봤다. 나머지는 운에 맡기는 거다. 이게 통하지 않는다면 젠장, 알렉스 비토 감독의 눈앞에 내일 쏟아질 비난의 언어들이 어른거렸다.

‘노아웃 1, 3루에서 지안카를로 스탠튼인가.’

위기에서 맞은 지안카를로는 어느 때보다 위압적이다. 더 이상의 실점은 위험하다. 오늘 던지는 것이 헛수고가 되고 만다. 성낙기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를 던졌다.

볼.

선구안이 좋은 지안카를로.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공에 반응이 없다. 2구의 사인은 체인지업이다. 몸 쪽으로 던져서 스윙이나 내야 땅볼을 유도하자는 리얼무토의 의중인데 성낙기는 고개를 저었다.

따악.

파울.

라이징패스트볼(9cm/10cm).

전광판엔 97마일이 찍혔다. 97마일의 라이징패스트볼은 좀처럼 던져본 적이 없는 공. 성낙기는 그만큼 전력 피칭으로 지안카를로를 상대하고 있었다. 파울 볼은 1루 측 관중석으로 날아갔다.

팡.

볼.

포크볼에 속지 않는다. 볼 카운트 투 볼 원 스트라이크.

제 4구로 성낙기는 체인지업을 선택했다. 몸 쪽으로 날아가다가 아래로 꺼지는 공. 포심패스트볼과 똑같은 폼으로 던지는 85마일의 체인지업이다. 포심패스트볼보다 무려 20km가 느린공에 지안카를로의 배트가 반응했다.

부웅-

팡.

배트가 휘둘러진 후에 공이 들어갔다. 지안카를로는 속았다는 듯 헬멧을 두어 번 두드렸다. 볼 카운트 투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성낙기는 지금까지 내지 않던 사인을 냈다.

그 사인을 본 리얼무토가 긴장했다. 바로 그때, 지안카를로가 말을 걸어왔다.

“역시 좋은 투수야. 그게 체인지업이었다니. 그런데 포심은 아껴뒀다가 경기 후에 던질 모양이지?”

“천만에, 성낙기가 피해간다고 생각하다간 큰 코 다칠걸.”

“글쎄, 다쳐도 좋으니까 서부의 총잡이들처럼 강(強) 대 강(強)으로 붙어봤으면 좋겠군. 요즘은 도무지 정면 승부를 즐기는 투수들이 없어.”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성낙기가 해줄 거야.”

“쯧, 리얼무토답지 않군. 사인을 내는 포수가 투수에게 책임을 전가하다니.”

“…….”

변화구 몇 개 던진 걸로 자신을 피해간다고 느낀 지안카를로가 오늘 따라 말이 많다. 리얼무토는 일일이 대꾸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제 곧 성낙기가 와인드업을 할 테니까. 리얼무토가 자세를 바로잡고 침을 꿀꺽 삼켰다. 와인드업을 끝낸 성낙기의 손에서 공이 뿌려졌다.

슈욱!

이전 공과 달리 바람을 가르는 소리.

파아-앙!

성낙기는 공을 놓으면서 낮고 짧게 전광석화(電光石火)를 발음했다. 공은 지안카를로의 몸 쪽으로 잔잔한 공기에 파형(波形)을 일으키면서 파고들었다. 지안카를로의 배트가 휘둘러졌다.

부웅.

하지만, 공은 이미 미트에 들어간 후였다. 체인지업에 스윙을 할 때와는 정반대의 스윙.

체인지업엔 스윙이 먼저였고 공이 늦게 들어왔다면 이번 공은, 공이 들어온 후에 배트가 움직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지안카를로는 주심의 삼진 아웃 선언을 듣고도 한참이나 리얼무토가 들고 있는 미트를 바라보았다. 마치, 이게 언제 들어왔지? 하는 표정.

전광석화(電光石火)이니 당연히 빠르다 해도 체인지업 다음에 들어온 강속구의 체감 속도는 그의 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102마일.

전광판에 새겨진 숫자였다. 경기장에 있던 3만 7천의 관중들은 경악했다. 말린스파크에서 저만한 강속구를 던진 투수는 단연코 없었다.

오오, 하는 탄성만이 경기장을 메웠을 뿐, 잠시 동안 언어를 발음하는 사람이 없을 만큼 경기장은 낯선 음들로 가득했다.

“성낙기 투수, 오늘 또 일을 냅니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선 101.5마일로 우리를 놀라게 하더니 오늘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조차 없습니다… 무려 102마일입니다……!”

“솔직히… 저 투수는 사기입니다. 차원을 넘어온 투수가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의 이 상황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물론, 102마일을 던지는 투수들은 있습니다만, 저렇게 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던지는 투수는 없거든요. 하, 정말 뇌 구조가 궁금합니다.”

“제가 놀라운 건 이 투수가 진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계속 빨라지는 공의 한계를 알기 힘듭니다. 지안카를로에게 엄청난 공을 던졌습니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아주 무거워 보입니다.”

“이건… 아직 종합적인 결과가 나온 게 아니라서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시즌 중에 성낙기 투수의 MRI를 찍은 적이 있었거든요.”

“아, 사무국에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가 마이애미에 처음 입단할 당시와는 차이를 보였다고 들었습니다.”

“전,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그럴 겁니다. 어떤 루트를 통해 흘러 들어온 이야기니까요. 어쨌든 MRI 자체가 분석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분석이 안 된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MRI 상에 빛이 보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특히 오른팔 근육 전체가 다른 부위와는 달리 빛 때문에 판독이 안 된다는 거죠. 조브 박사는 이게 혹, 어떤 에너지원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했다는군요.”

“하하… 이거 말씀을 나누다 보니 인체의 신비 쪽으로 말이 새는군요. 미구엘 안두하(Miguel Andujar)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캐스터와 해설자는 설왕설래. 성낙기가 던진 공 때문에 경기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관중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경기가 계속 진행되는 바람에 마음을 진정해야만 했다.

타자로 들어선 미구엘 역시 방금 던진 성낙기의 공을 보았고 내심 떨떠름한 기분이다.

자신에게도 그런 공을 던질 것인가. 쓸데없는 궁금증도 생겼다.

1구-스트라이크.

2구-볼.

3구-따악.

볼 카운트 원 볼 원 스트라이크에서 3구째 던진 체인지업에 배트가 나갔고 타구는 유격수 정면이었다. 홀랜드가 잡자마자 2루로 송구, 1루 주자가 포스 아웃(force out)됐고, 2루수가 다시 1루로 송구, 타자주자마저 아웃되면서 5-4-3의 병살로 이닝이 종료되었다.

경기장은 모두 기립하여 성낙기를 연호하는 마이애미 팬들의 외침으로 가득 찼다.

노아웃 1, 3루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낸 에이스에 대한 예우였다. 성낙기는 관중을 향해 모자를 벗어 보인 뒤, 더그아웃에 들어오자마자 배트를 집어 들었다.

5회 말은 7번 타자부터 시작, 샌디 알칸타라의 9번을 물려받은 성낙기도 타격 기회가 온다. 스코어는 여전히 0:2.

5회 말은 위기 뒤의 찬스라는 야구계 통설로 볼 때 중요한 이닝이다. 성낙기도 그걸 아는 듯 배트를 집어 들고 스윙 연습에 몰두했다.

[행크아론의 타격이 (5단계/5단계)로 오릅니다]

그리고 4단계였던 행크아론의 타격이 정점을 찍었다.

부웅-

배트를 휘두를 때마다 마치 자동차 배기음이 나는 느낌이다. 감각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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