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167화 월드시리즈-뉴욕 양키스 5
2022년 10월 25일, 마이애미 말린스 vs 뉴욕 양키스.
양 팀의 선발은 마이애미의 호세 우레나와 양키스의 조던 몽고메리로 정해졌다. 호세 우레나는 디비전시리즈 및 챔피언십시리즈의 부진을 털고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시선이 모아졌고, 조던 몽고메리는 잘할 때와 못할 때의 기복이 심한 투수로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경기 내용도 달라질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mlb.com’ 등은 대체적으로 몽고메리의 구위에 더 높은 점수를 매겼다. 볼 끝이 밋밋해진 호세 우레나에 비해 강속구가 살아 있고, 긁히는 날의 슬라이더는 언터처블이 되기 때문이다.
마리아노 리베라(Mariano Rivera, 2000년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
“양키스의 우세다. 조던 몽고메리가 상승세인 반면, 호세 우레나는 자신감을 잃었다. 변화구도 전체적으로 밋밋해서 통타당할 것이다.”
조시 베켓(Joshua Patrick Beckett, 2003월드시리즈 승리투수)-
“조던 몽고메리는 기복이 심하다. 경험도 떨어진다. 호세 우레나는 시리즈 내내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챔피언십시리즈를 기점으로 좋아지고 있다. 6회만 던져주면 마이애미 말린스가 이긴다.”
뉴욕 양키스 출신의 마리아노 리베라와 마이애미 말린스의 레전드 조시베켓은 모두 자신이 오래 몸담았던 팀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예상도 다분히 팀에 용기를 불어넣는 주례사 평이다.
마치 팀의 선수들이 자신들의 예상 평을 보고 파이팅하기를 바라는 듯했다. 도박사들은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승률로 양키스의 우세를 점쳤다. 경기장은 연속 매진이었다.
“플레이볼!”
주심의 말과 함께 시작된 경기는 1회 말에 예상치 못한 호세 우레나의 사구에 아론 저지가 마운드로 돌격하면서 격해졌다. 고의성이 없는 사구였지만 아론 저지는 반대로 판단했다. 한바탕 얽힌 후에 투아웃에 1루가 되었다. 호세 우레나는 벤치클리어링의 여파로 한참 동안 마운드에서 숨을 골랐다.
‘후우, 두 타자 잘 잡아놓고 이게 뭐람.’
그랬다. 강한 1, 2번 타자를 잘 처리하고 사구로 아론 저지를 내보낸 호세 우레나는 1루 주자를 보면서 찜찜했다. 거인 같은 놈이 마운드로 달려올 때, 피하지 않았다면 어디 한 군데 부러졌을지 모른다.
게다가 1루에서 아직도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감정을 추스를 새도 없이 타석엔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들어섰다. 리얼무토의 사인은 슬라이더. 강타자에게 어설픈 포심패스트볼은 먹잇감이 될 뿐이다.
호세 우레나는 신중을 기해 초구를 던졌다. 한가운데로 가다가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공.
하지만 호세 우레나는 공이 손을 떠나는 순간, 아차 싶었다. 마음먹은 대로 공에 손끝에서 채지질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이 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스트라이크 존으로 날아간다면 타자의 역량에 따라 타구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결과는 바로 나왔다.
따악-
“지안카를로가 친 공이 높이 날아갑니다. 치는 순간, 관중들이 먼저 반응하는 타구! 홈런입니다. 투런 홈런으로 앞서 나가는 뉴욕 양키스! 아, 475피트(145m)의 어마어마한 비거리가 나왔습니다. 1회부터 선취점을 올리는 양키스가 한발 앞서 나갑니다.”
“이번 공은 아주 밋밋하면서 한가운데로 들어왔네요. 저런 실투는 정말 던져서는 안 되는 공입니다. 월드시리즈에서는 더욱 가차 없죠. 상대는 양키스의 강타선이에요. 지안카를로가 역시 이름값을 하는군요.”
경기는 1회부터 난조를 보인 호세 우레나의 실점으로 양키스가 2:0으로 앞서 나갔다.
마음을 추스르고 2회와 3회를 범타로 잘 처리한 호세 우레나는 4회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하위 타선에서 연속 안타가 나오면서 다시 1실점으로 3:0.
5회엔 마이애미도 반격에 나서 2득점으로 경기는 혼돈에 빠져들었다.
5회 말까지 경기 스코어 2:3.
호세 우레나는 여러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5이닝 3실점으로 나름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
‘mlb.com’의 중계엔 댓글이 속속 달렸는데, 굳이 경기 중계로 보지 않고 댓글만 봐도 경기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팬들이 경기를 중계하다시피 하기 때문. 물론, 그들의 중계엔 사심이 들어간다.
-오, 조던 몽고메리 잘하네. 6회 초, 투아웃이야. 5번만 잡으면 이닝 종료. 7회엔 불펜을 가동하겠군.
-7회 좋아하네. 디카엘로가 만만해 보이나 보지?
-디카엘로?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성낙기에게 좌익수를 내줬던 그 선수지? ㅋㅋㅋ
-마이애미 애들은 통 모르겠어. 워낙 듣보잡들이 많아서.
-초구부터 스트라이크 꽂아버리네. 96마일의 포심패스트볼이야. 타자는 쫄았군.
-양키스 놈들 말 많네. 두고 봐. 디키엘로가 괜히 클린업트리오에 있는 게 아니지.
-풋, 클린업 좋아하네. mlb 하위 타선의 5번은 양키스에 오면 라인업에도 못 들어.
-어어.
-윽, 갔다아!
-홈-런!
-아, 씨 뭐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디카엘로의 동점 홈런! 역시 마이애미의 저력을 보여주는구나. 2연승 가자!
조던 몽고메리는 디카엘로에게 윽박지르는 포심패스트볼을 연속으로 던지다가 솔로 홈런을 얻어맞았다. 시즌 중에도 그리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기에 쉽게 보고 덤벼든 결과였다. 경기는 다시 팽팽해졌다.
호세 우레나는 6회 말에도 마운드에 올라 실점 없이 내려왔다. 6이닝 3실점의 퀄리티스타트로 그간의 부진을 씻어내는 호투였다.
“두 팀의 선발들이 모두 6이닝 3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습니다. 나름 잘 던진 결과인데요. 승패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초반에 무너질 듯하던 호세 우레나 투수가 잘 버텨냈다고 봐야겠습니다.”
“네, 맞아요. 호세 우레나 투수가 돌아왔네요. 이러면 모르는 겁니다. 오늘 경기 결과가 아주 중요하겠죠. 만약, 마이애미에 2연패를 당하면 양키스는 어려워지죠. 3차전부터 5차전까지는 적지인 말린스 파크에서 치러지기 때문입니다. 양키스로서는 반드시 잡아야 할 경기입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알버트 아브레유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7회 초부터 불펜을 가동하는 뉴욕 양키스입니다.”
“조던 몽고메리 투수, 104구를 던졌거든요. 더 이상은 무립니다. 아마, 이제부턴 불펜 싸움으로 가겠네요. 호세 우레나 투수도 100구에 가까워요. 구위도 떨어졌습니다.”
“불펜 싸움으로 가면 어느 팀이 유리할까요?”
“객관적인 자료를 보면 양키스의 불펜이 철벽입니다. 아롤리스 채프먼을 축으로 하는 필승조가 막강합니다.”
***
경기는 데일 카론이 7회에 2점을 더 내주면서 3:5로 끌려갔고 마이애미는 8회부터 필승조 대신 추격조를 투입했다. 지고 있는 상황에 필승조를 쓸 수는 없기 때문.
사무엘을 축으로 한 추격조는 홈런 포함, 5안타를 맞으며 추가로 4실점했다. 그리고 경기는 그대로 3:9로 끝났다. 2차전의 양키스의 승리로 시리즈 전적 1:1.
이동 시간을 겸한 하루 휴식 후, 마이애미 말린스파크에서 3차전이 열리게 된다. 3차전부터 5차전까지는 말린스파크에서, 6, 7차전은 다시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려 대망의 우승컵을 다툰다.
3차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성낙기가 마운드에 서느냐는 것이었는데, 일단 양키스는 루이스 시크릿의 3차전 선발은 없다고 못 박았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기는 했다. 이틀 쉬고 다시 선발로 서다니. 시즌 중엔 4일 휴식 후, 마운드에 서지만 포스트시즌엔 3일을 쉬고 다시 마운드에 서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2일은?
누가 보더라도 무리한 일정이다. 그걸 성낙기가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했고 월드시리즈에서도 한다면 그는, 시리즈를 끝으로 은퇴를 해야 할 거라는 말도 떠돌았다.
“데릭, 여기저기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습니다. 성낙기의 등판 주기에 관해서 말이지요.”
3차전을 하루 앞둔 말린스파크 단장실에서 구단주 데릭과 단장인 오스틴의 화제도 성낙기였다. 오스틴 단장은 투수 혹사라는 말에 대해서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눈치.
“그래? 그렇겠지. 아마 나라도 그랬을 거야. 자기 팀 선수가 아니면 입방아 찍어대기 딱 좋겠지. 오스틴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전… 사실 애매하군요. 성낙기의 팔에 이상이 없을지도 걱정이고 시리즈는 이겨야 하고… 진퇴양난입니다.”
“성낙기는 3차전 출전을 주장한다면서?”
“그렇습니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서도 그랬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주장대로 경기에 나가서 아주 잘 던진다는 겁니다.”
“맞아, 내 생각도 거기에 꽂혀 있어. 웃기는 게 성낙기는 자주 등판해도 구위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지. 공의 스피드나 볼 끝이 전혀 죽지 않기 때문에 정말 괜찮나보다 하게 되는 거야. 그런데 과연 그럴까? 자신의 팔을 그렇게 불사른 후에, 당장 다음 시즌 성적이 곤두박질친다면? 우리는 좋은 에이스를 잃게 되는 거지.”
“정확히는 월드시리즈 우승컵과 맞바꾸는 거겠지요. 우린 2억 5천만 달러의 투수를 잃는 거고요.”
“옵션을 빼면 1억 달러일세, 오스틴. 만약 그렇다 해도 난 기꺼이 우승컵을 택하겠어. 월드시리즈에 올라오기도 힘든 마당에 우승까지는 앞으로 얼마나 세월이 흘러야 할까. 이 기회를 놓친다면 자네와 나, 죽을 때까지도 우승컵을 만져보지 못할 거야.”
“그럼?”
“무조건 밀어붙이게. 성낙기가 하자는 대로 하는 거야.”
***
그 시각, 성낙기는 김현중 회장과 만나고 있었다. 언젠가 김아경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호텔의 로비. 마영진 단장과 허봉호 감독도 함께였다. 1차전을 완봉으로 끝내고 인사만 나눴고 오늘은 김아경이 정식으로 자리를 마련했다.
“내일도 던진다고?”
“아마도 그럴 겁니다.”
“아쉽군. 전지 훈련지를 알아보는 일정 때문에 오늘 애리조나행 비행기를 타야 해.”
“절 응원하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하하. 아경이가 자네 칭찬을 얼마나 하는지 몰라. 아주 입이 닳을 정도라네.”
“아이, 아빠. 제가 언제 그랬다고 그러세요!”
김아경이 얼굴을 붉혔고, 성낙기는 음료를 들이켰다. 일행들이 모여 반갑긴 반가운데 뭔가 찜찜한 표정이다. 성낙기는 허봉호 감독 등의 그 표정을 읽었다.
“전 괜찮습니다. 3차전에 던져도 이상이 없으니까 던지는 겁니다.”
“그려, 네가 던지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냐만, 한 번 상한 어깨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성낙기 네가 부상 경력이 있기 때문이야. 고등학교 때와 똑같은 패턴 아니냐.”
역시 이야기의 주제가 그쪽으로 옮겨갔다. 김현중 회장도 그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그런 것까지 관여한다면 감독 등은 할 말이 없어진다.
급한 성격에도 나름 배려가 있었던 셈. 성낙기는 잠시 고심했다.
어떻게 이분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아니, 이해를 떠나 걱정을 덜게 할까.
그들은 성낙기의 몸 상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 자신을 거둬준 스승이고 mlb에 진출하게 한 데다가 거액의 계약을 따낸 에이전트 역할까지 해준 은인들이다.
더구나, mlb에서의 경력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우선지명권을 가지고 있다. 삼호슈퍼스타즈의 에이스로 다시 활약할 가능성을 그들은 버리고 싶지 않은 것.
성낙기가 mlb에서 몸을 망가뜨린 채 KBO에 입성하면 삼호슈퍼스타즈로서는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mlb의 사이영상급 투수가 삼호슈퍼스타즈의 투수로 활약하면서 얻게 될 부가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므로. 가만 듣고 있던 성낙기가 마침내 입을 뗐다.
“이 자리에 오기 전, 알렉스 비토 감독님이 저의 선발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다만,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처럼 롱-릴리프(Long-Relief)가 제 역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