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163화 월드시리즈-뉴욕 양키스 1
<대망의 월드시리즈, 뉴욕 양키스 vs 마이애미 말린스>
<10월 24일 양키스타디움(Yankee stadium)에서 2022년의 월드시리즈>
<천신만고 끝에 올라온 마이애미 말린스, 체력 고갈로 불리>
야를린 가르시아는 7차전 9회 말에 마운드에 올라 원아웃 이후, 안타 두 개를 허용했지만 마지막 타자를 유격수 병살로 처리하고 포효했다. 꿈에 그리던 월드시리즈 진출을 자신의 손으로 결정짓는 기쁨도 누렸다. 마이애미 선수들은 마운드 주위에 모두 모여 샴페인을 뿌리며 감격을 만끽했다.
워싱턴 내셔널스의 관중들은 썰물처럼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남아 있는 건 마이애미 선수들과 팬들. 팬들은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열광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의 쾌거를 자축했다.
“메이저리그 투나잇입니다. 마이애미의 월드시리즈 진출, 아주 의외였는데요. 사실은 한 선수가 견인한 챔피언십시리즈의 승리였죠. 바로 성낙기 선수입니다. 요즘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제임스 해설 위원, 월드시리즈를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우선 마이애미 말린스 구단에 축하를 보냅니다. 열악한 가운데 모든 선수들이 원 팀으로 뛴 결과, 기적적인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뤄냈습니다. 성낙기 투수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대단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양키스의 승리를 예상합니다. 그것도 일방적인 월드시리즈가 될 걸로 예상합니다.”
“오, 그런가요? 오벨 마이어, 전직 스카우트시죠. 제임스 씨와 같은 생각이십니까.”
“제 생각도 같습니다. 마이애미는 이미 힘을 모두 소진했거든요. 여기까지 온 걸로도 칭송받을 만한 업적을 이뤘어요. 아마, 대다수 마이애미 팬들도 월드시리즈 진출은 꿈꾸지 못했을 겁니다.”
“힘을 소진했다… 그렇겠네요.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까요. 그런데 마이애미의 팀 컬러는 특이합니다. 이 팀이 와일드카드로 시작해서 월드시리즈까지 제패한 경험이 두 번이나 있었던 팀이기 때문이죠. 제임스 씨, 그런 저력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글쎄요, 저력은 있죠. 여기까지 올라왔으니까요. 전, 한계라고 봅니다. 워싱턴과 양키스는 비교 불가입니다. 투타가 탄탄하고 특히, 아론 저지와 스탠튼이라는 명예의 전당급 슬러거가 나란히 활약 중입니다. 어떤 투수도 이 두 선수를 넘어서지 못했고요.”
“음, 넘어서기 어렵다는 말씀이군요. 혹시, 마이애미 팬들이 이 방송을 보시면 섭섭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예상일 뿐이니 이해 바랍니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각종 매체에서는 마이애미와 양키스의 승부를 예측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양키스의 손쉬운 승리를 꼽았다. 성낙기를 제외하고는 투수 파트가 무너졌고 불펜마저 위태로웠던 챔피언십시리즈였기에 달리 반박할 여지도 없었다.
***
10월 22일 오전 10시, 성낙기는 마이애미 해변을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는 중이다. 그동안 경기 때문에 자전거를 탈 기회도 없었는데 머리도 식힐 겸, 페달을 밟았다.
파도가 치는 해변이 보이고 몇몇 관광객이 물에 들어가 수영을 즐기고 있다.
‘추울 텐데.’
성낙기는 그들을 보면서 쓸데없는 걱정을 잠시 했다. 그때 자전거 동호회인지 한 무리의 자전거족이 성낙기를 추월하고 지나갔다.
마치 자전거도로에서 시합을 하는 듯한 스피드다. 조깅을 하던 여자가 저전거 무리를 힐끗 보더니 왼편 가장자리로 몸을 피한다.
긴 생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잘 발달된 힙과 다리와 상체의 조화가 이상적인 몸매의 여자. 성낙기도 여자를 추월하기 위해 방향을 약간 틀었다. 처음엔 가벼운 조깅을 하는 듯하던 여자의 스피드가 점점 빨라진다.
‘와, 빠르네. 자전거와 비슷한 스피드라니.’
성낙기가 내심 감탄하면서 페달 밟는 속도를 올려 여자를 지나쳐 가려 했을 때, 여자가 힐끗 성낙기에게 눈길을 돌렸다. 성낙기도 슬쩍 여자 쪽을 바라다봤다.
건강한 구릿빛으로 얼굴이 탄 저 여자를… 내가 어디서 봤더라? 성낙기가 기억을 더듬을 즈음,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성낙기 투수? 맞죠?”
아아, 생각났다. 그녀의 이름이.
여러 달 전에 그라운드에 난입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경기장 보안 요원들을 쩔쩔매게 했던 미국 육상국가대표 엘리나 샤먼이 아닌가.
“엘리나 샤먼?”
“와아,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시네요.”
“여기서 운동하세요?”
“네, 가끔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땐 여기를 달리곤 하죠. 바닷가 바람이 상쾌하고 좋아요.”
“주 종목이 100m라고 했던가요?”
“200m요. 100m는 키가 좀 따라줘야죠. 보시다시피 전 170cm도 채 안되거든요.”
“아, 제가 그만 깜빡.”
“아니에요. 모든 걸 기억할 순 없죠. 월드시리즈 진출을 축하드려요.”
“고맙습니다.”
“성낙기 선수 아니었으면 꿈도 꾸지 못할 승리였어요. 7차전의 홈런은 제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운이 좋았죠.”
“힘들지 않으세요?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너무 많은 경기에 나오셨는데… 혹시 월드시리즈 1차전엔 못 나오시는가요?”
“나갈 겁니다.”
“정말요? 전 공을 너무 던져서 2차전에나 뵐 줄 알았는데 다행이에요. 아이, 그럼 어쩌지?”
“뭘요?”
“월드시리즈 1차전 입장권을 구하지 못했어요. 제 생각으로는 2차전에 등판하실 줄 알고 그때 표를 예매했거든요. 아휴, 전문가들 말만 믿은 내가 잘못이지.”
“저에게 마침 입장권이 있어요. 몇 장 드릴까요?”
“와아! 신난다. 감사해요, 세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돈은 나중에 지불할게요.”
“그건 안 주셔도 괜찮고요. 그날은 그라운드에 들어오지 마세요, 하하.”
“그렇잖아도 저 경고 먹었어요. 다음에 또 그러면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경기장에 입장 금지시킨대요.”
“하하, 그럴 거예요. 그라운드에 들어와도 워낙 빨라서 잡을 수도 없으니까.”
“20일 후에 저도 시합 나가요. 내년 세계선수권에 나갈 선수를 뽑는 순위 결정전이죠.”
“어디서 열려요?”
“여기서 멀지 않아요. 조지아주에서요.”
“그날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저도 응원 갈게요.”
“정말요? 으아!! 성낙기 선수가 오신다고요?”
“네, 맞아요.”
어느새 둘은 달리기와 자전거를 멈췄고 해변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거닐었다. 이번으로 세 번째 만남이다. 첫 만남은 그녀가 그라운드에 난입한 날이었고, 한참이 지난 후엔 호텔 근처의 펍에서 만났었다.
게다가 오늘은 우연한 만남으로 인연 또한 좋다. 건강하고 웃음 많은 그녀를 보고 있으니 성낙기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둘은 서로를 응원하는 뜻에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웃으며 헤어졌다.
***
큰 경기를 앞두고 팬들의 기 싸움은 필수다. 어느 팀이든 팀의 선봉에 서서 전투력을 배가시키는 극성팬들이 존재한다. 마이애미와 양키스도 마찬가지였다.
내일로 다가온 월드시리즈에 앞서서 메이저리그 스포츠 게시판엔 댓글이 넘쳐났는데 주로 마이애미와 양키스 팬들이었다. 처음엔 내일 경기에 대한 파이팅 차원의 댓글로 시작하다가 양키스 팬이 마이애미의 전력을 평가절하 하고부터 댓글이 폭주했다.
마이애미 팬들도 양키스를 놀려댔고 나중엔 서로를 향한 욕설과 비방도 서슴치 않았다.
-내일 경기는 하나마나야. 마이애미 애들 똥꼬가 헐어서 질질 짜겠지.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만신창이로 올라온 애들이 월드시리즈 진출했다고 좋아하는 걸 보면 우스워 죽겠어.
-네가 이해해. 와일드카드로 올라온 근본 없는 애들이 뭘 알겠어.
-1차전에서 아예 20점 정도 몰아쳐서 기를 죽여 놓자. 뉴욕에 온 걸 후회하도록.
-역대 월드시리즈 중에서 이렇게 전력이 기우는 건 처음이다. 시리즈는 4:0으로 끝난다. 불쌍한 마애이미 놈들.
-근본이 없는 건 양키스 네놈들이야. 잘나간다고 싸가지를 밥 말아 먹었지.
-치졸하고 야비한 족속들이지. 상대를 존중할 줄도 몰라.
-양키스는 원래 북쪽 지방 사람들이란 뜻이야. 그 말은 못 배운 야만인 놈들이란 거지.
-마이애미 거지새끼들이 감히 양키스에 엉기다니. 옛날 같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 벌어지고 있어. 이번에 다리를 분질러서 바닷가에 보내 버리자.
다소 격한 댓글이 있는 반면, 나름대로 경기를 분석하는 마니아도 있다.
-마이애미의 선발이 성낙기라는데 과연 그가 시즌처럼 잘 던질 수 있을까? 6차전을 완투하고 겨우 3일을 쉬고 나오거든. 챔피언십시리즈 내내 혹사에 시달렸지. 의욕을 보이는 투수도 문제지만 감독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너희들은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아니, 전혀 당연하지 않지. 곧 한계가 올 거야.
-7차전엔 결승 홈런까지 때려내면서 타석에서도 팀에 봉사했지. 난 그가 가여워.
-성낙기에 비해 루이스 시크릿의 어깨는 싱싱하기 이를 데 없지. 객관적으로 마이애미는 1승도 버거울 거야.
마이애미 팬들도 가만있지만은 않았다.
-좋아, 양키스가 강한 건 인정하지. 그런데 강팀이 무조건 우승하나? 만약 그랬다면 야구가 100년을 이어오지는 못했을 거야. 양키스는 들떠 있지. 마치 월드시리즈를 가져간 것 같은 분위기야. 근데 이거 알아? 우린 강팀 킬러야.
-루이스 시크릿의 ERA는 2.65에 불과해. 20승을 달성했지만 성낙기는 23승이지. ERA는 월등하고. 그는 양키스 너희에게 악몽을 선사할 거야.
-이제 우린 경기 감각이 최고로 올랐어. 어렵게 올라오면서 팀워크가 다져진 것은 덤이지. 이제 시작이야.
-우승을 위하여 가자!
***
한편 한국시리즈에서 삼호슈파스타즈는 세화스쿼럴스에 시리즈 전적 4:2로 패했다. 공성진과 필 서든, 이중호 등이 분전했지만 가을 야구에 눈을 뜬 세화스쿼럴스의 큰 경기 경험은 삼호슈퍼스타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삼호슈퍼스타즈로서는 아쉬운 결과였지만 한국시리즈 준우승은 창단 이래 최대의 쾌거였고 구단주 김현중 회장은 선수단에 20억의 보너스를 내놓았다. 한국의 야구팬들은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열리는 월드시리즈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이미, 몇 천을 헤아리는 한국의 팬들이 월드시리즈 개막전 표를 구입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현중 회장과 김아경, 그리고 허봉호 감독과 마영진 단장, 이계현 코치, 정진수 에이전트 등도 월드시리즈 개막전 입장권을 구입했다.
성낙기는 제자이면서 연인이자 사위가 될 가능성도 함께 지닌 특별한 존재였다. 아울러, 삼호슈퍼스타즈를 빛내는 최고의 메이저리거였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삼호슈퍼스타즈에 우선권이 있고 큰 이변이 없는 한, 팀의 기둥이 될 선수이기도 하다.
한국 시리즈를 준우승한 마당에 같은 팀 출신 성낙기의 월드시리즈 개막전 선발은 한국 야구의 위상을 알리는 뿌듯한 일. 삼호슈퍼스타즈 사단의 미국 출장은 어쩌면 당연했다.
드디어 2022년 10월 24일, 월드시리즈 개막전의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