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61화 (161/188)

# 161

161화 챔피언십시리즈-워싱턴 내셔널스 9

“너 오늘 던졌잖아.”

“48구입니다. 모레쯤이면 체력이 거의 찹니다.”

“애가 무슨 게임하듯이 얘기를 하네. 뭐, 6차전에 지면 끝이니 총력전을 할 수밖에. 어차피 투수들은 모두 대기해야 해.”

알렉스 비토 감독은 성낙기의 말을 듣고는 내심 기뻤다. 애는 자신이 없으면 말을 안 하는 스타일이다. 특히, 자신이 던지겠다고 나선 경기에서 항상 팀이 이길 기회를 만들어왔다. 모래 던지겠다고 하는 건 자신이 있다는 거다. 비록, 하루의 휴식이지만 왠지 성낙기는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던진다고 구속이나 구위가 떨어진 적이 없다. 이미 일반적인 투수의 틀로 성낙기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후, 성낙기가 6차전을 던지면 결국 7차전 승부로 가는 건가?’

알렉스 비토 감독이 이렇게 생각할 만큼 성낙기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다음 날, 선수단에 하루 휴식이 주어졌다. 투수 파트는 자율, 야수들은 기본적인 수비 훈련과 타격을 점검하는 수준의 훈련만을 소화했다.

성낙기는 아예 훈련장에 나가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밀린 잠을 잤을 뿐.

그렇게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체력은 조금씩 오르고 있으니 땅 짚고 헤엄치기가 따로 없다.

2022년 10월 19일, 워싱턴 내셔널스 파크.

4만 2천의 관중이 6차전을 관전하기 위해 운집했다. 워싱턴 팬들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이미 데이브 마르티네스 감독이 7차전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기 때문. 그러니까, 워싱턴 역시 6차전을 시리즈의 끝으로 보고 있다는 거였다.

거기에 걸맞게 워싱턴의 선발 투수는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였다.

4차전에 던진 스트라스버그가 지친 기색을 보이면 언제라도 2, 3선발을 투입을 계획. 그야말로 내일이 없는 작전이다. 일견, 성낙기가 마이애미의 선발로 발표된 상태에서 워싱턴의 총력전은 자칫 7차전에서의 투수 고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기도 했다. 데이브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성낙기가 6차전에 나온다고? 성낙기는 1차전과 3차전에 출전했고 5차전까지 나와서 공을 던졌어. 그러고도 6차전에 나온다는 건 한마디로 미친 짓이지. 의욕은 좋지만 어깨는 의욕만으로 안 되는 거야. 그렇다면 6차전에 끝내주지.’

‘1, 2, 3선발을 모두 대기시키겠습니다. 스티븐이 조금이라도 위기를 맞는다면 한 박자 빠른 교체로 마이애미 타선의 힘줄을 끊어놓겠습니다.’

‘좋아, 7차전까지 가서는 월드시리즈 승산 없어. 제아무리 성낙기라도 5회가 맥시멈일 거야. 어쩌면 더 빠를 가능성도 많고, 구위도 현저히 떨어질 테지. 우리에겐 어쩌면 성낙기 선발이 기회가 될 수 있어.’

경기 전 나눴던 데이브 감독과 잭 나이프 투수 코치의 대화였다.

요는 그들도 6차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것. 아직 보이지도 않는 뉴욕 양키스의 그늘은 그만큼 대단했다. 워싱턴이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을 자신들의 계획에서 삭제할 만큼.

***

1회 초에 마운드에 오른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는 좋은 컨디션이 아닌 듯 볼넷과 안타를 허용했으나, 병살을 만들어낸 유격수의 호수비로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마이애미 팬들의 응원 속에 성낙기가 1회 말 마운드에 올랐다.

“성낙기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1, 3, 5, 6차전에 던지게 되는 건데요. 승리에 대한 엄청난 갈망은 좋습니다만, 팔이 온전할지 걱정입니다.”

“음, 한 3회 정도만 막아달라는 거겠죠. 그 이상은 힘들 겁니다.”

캐스터와 해설자도 성낙기의 무모한 선발에 의문을 가졌다. 3일도 아니고 2일도 아니고 딱 1일을 쉬고 선발 등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투수 로테이션이다.

하지만 성낙기는 마운드에 섰다. 늘 그렇듯 자신만만한 표정. 리얼무토의 사인을 보며 상태창을 떠올렸다.

[체력이 89입니다]

상당한 체력이 복구되었다. 전에 어깨와 팔의 근육과 악력이 9단계에 접어들고 나서 생긴 변화는 전보다 체력 회복의 시간이 단축되었다는 것. 그리고 강속구를 던져도 많은 체력 소진이 없다는 것이다. 성낙기는 상태창을 보고 나서 샐쭉 웃었다. 잘하면 완투까지 가능한 체력이기 때문이다.

팡.

“스트라이크 아웃!”

“아, 1회 말에 세 타자를 모두 삼진 처리하는 성낙기입니다. 브라이스 하퍼 선수, 헬멧이 벗겨질 만큼 큰 스윙이었는데 다소 성급했네요.”

“그렇죠. 피니쉬로 포크볼은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성낙기 투수 괴력이네요. 5차전과 다름없는 스피드와 구위입니다. 좀 두고 봐야겠습니다만, 워싱턴 벤치가 머리 아프겠는데요.”

1회 말이 끝나고 캐스터와 해설자의 반응이 180도 달라졌다. 그들이 확인한 성낙기의 구위는 1차전의 완봉승을 거둘 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다르지 않았을 뿐더러 변화구는 오히려 더 좋아진 느낌마저 들었다.

1회 말을 덧없이 보낸 워싱턴의 벤치는 심각했다. 데이브 감독은 타자가 삼진을 당할 때마다 얼굴이 붉어졌고, 브라이스 하퍼마저 삼진으로 물러나자 어이없어 했다. 잭 나이프 코치가 성낙기의 상태를 알렸다.

“믿을 수 없지만 성낙기의 구위가 전혀 변함없습니다.”

“아냐, 사람이라면 오늘은 한계가 오게 되어 있어. 1회는 젖 먹던 힘까지 냈을 거야. 그럴수록 강판이 빨라질 테니 기다려 보도록 하지.”

데이브 감독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이미 시리즈에 들어서서 성낙기가 던진 공의 개수는 200개가 넘어섰다. 보통의 투수라면 오늘 등판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어깨에 무리가 오게 된다. 그건 수십 년간 축적된 데이터에 바탕을 둔 과학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곧 어깨에 무리가 오리라.

2회부터 데이브 감독은 성낙기의 투구 수를 늘리는 데 주력했다. 타자들의 커트가 많아졌고 짧은 스윙으로 일관했다. 투구의 밸런스를 흔들기 위해 기습 번트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데이브 감독이 맥시멈으로 잡았던 5회가 끝났고 스코어는 마이애미가 1:0으로 앞서고 있었다.

도루와 악송구가 겹쳐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는 3회에 1실점을 하고 강판 당했다. 마이애미는 6회에 시에라가 바뀐 투수 코다 글로버에게서 솔로 홈런을 뺏어냈다. 스코어는 2:0.

그리고 성낙기는 6회 말에도 마운드에 올라갔다. 그러자 캐스터와 해설자, 워싱턴의 벤치와 심지어 관중들마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믿어지십니까? 성낙기 투수가 1차전에 이어 다시 한 번 완봉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투구 수는 97구로 워싱턴의 커트 작전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투구 내용을 선보였습니다. 믿기 힘든 기적 같은 완봉승입니다.”

“와아… 저도 놀랐네요. 팔이 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투구였습니다. 저 정도라면 정말 괴물 투수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외계인 마르티네스도 저렇게는 던지지 못했었죠. 지금까지 쌓아온 야구 지식을 다 비워내고 싶을 정도네요.”

캐스터와 해설자의 폭풍 칭찬은 당연했고 그에 비례해 워싱턴의 충격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였다. 경기는 2:0으로 셧아웃 당했다. 모든 계획이 빗나간 데이브 감독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

마침내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이 워싱턴 내셔널스 파크에서 열렸다. 어제의 충격적인 패배에도 관중들은 열심히 워싱턴을 연호했다. 성낙기는 괴물이니 차치하고 적어도 오늘은 등판 불가이니 승리는 워싱턴의 것이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

그 믿음 위에 터지는 환호성이었다. 7차전 선발은 워싱턴의 트레버 고트와 마이애미의 호세 우레나였다. 선발의 이름값으로 보면 호세 우레나가 앞서지만 시리즈 들어서 그리 좋지 못했던 데다 트레버 고트는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느는 젊은 피. 결코 쉬운 승부가 아니다.

-억, 뭐냐. 엔트리에 성낙기가 들어가 있다.

-오, 정말. 투수가 아니라 야수로 나서다니. 오 마이 갓!

-좌익수 디카엘로가 빠졌고, 그 자리에 성낙기가 들어갔어.

-디카엘로가 시리즈에서 2할 초반의 타율이라지만 수비만큼은 수준급인데 투수를 그 자리에 넣다니.

-알렉스 감독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성낙기를 타자로 기용한다는 생각 같은데 수비는 전적으로 다른 문제야. 저건 아무리 좋게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선수 기용인데.

경기 전, 중계 사이트에 마이애미 팬들의 댓글이 폭발했다. 엔트리를 본 그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시즌 중에 전혀 수비 연습조차 해보지 않은 투수를 좌익수로 기용하다니. 간혹, 재미로 내, 외야에서 수비를 할 때를 빼고는 좌익수 근처도 가지 않은 투수를 말이다.

‘오스틴 단장이십니까, 저는 한국의 프로야구 감독입니다. 성낙기의 스승이기도 하지요.’

‘그런… 데요?’

‘한 가지 정보를 알려드리기 위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무슨 정보를 말입니까?’

‘성낙기는 외야 수비도 가능합니다.’

‘뭐라고요? 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셔널리그는 지명타자 제도가 없지 않습니까. 성낙기는 일반 타자보다 타격 재능이 월등한 선수입니다. 7차전에 타자로 내보내야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겁니다.’

‘그러니까, 성낙기가 외야 수비를 볼 수 있으니 기용하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듣지 않은 걸로 하겠습니다.’

어제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 통화 내용이었다. 통역은 김아경이 했고 오스틴 단장은 불쾌함을 내비쳤다. 지가 한국에서 스승이면 스승이지 감히 메이저리그 단장에게 전화를 해서 선수 기용을 간섭해? 이건 월권을 넘어 공갈 수준이다.

성낙기가 엔트리에 들지 않으면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할 거라는 말과 다름없지 않은가. 전화를 끊고 열불이 났지만 어딘지 찜찜했다. 자신의 기분보다는 팀의 월드시리즈 진출이 더 중요한 건 말하나 마나.

‘이봐, 윌슨. 자네도 알고 있었나?’

‘뭘 말입니까.’

‘성낙기가 한국에 있을 때 야수로 출전한 적이 있었다는 거 말이야.’

‘스카우트로 한국 구장을 누빌 때이니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었죠. 주로 좌익수로 뛰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나.’

‘솔직히 말하면 혼자 게임을 쥐고 흔들 정도였습니다. 타자로 나설 때에 홈런과 타점 생산력이 엄청난 수준이었죠. 신통한 것은 수비도 별로 안 해본 투수가 좌익수 수비도 기막히게 해낸다는 거였죠. 그런데 왜 물으십니까.’

‘그런 일이 있었나… 정말 괴물 중의 괴물이군… 알렉스 비토 감독에게 내가 좀 보잔다고 전하게.’

어제의 일이었다. 알렉스 비토 감독은 성낙기를 좌익수로 세워 두고 타구를 보냈고 그 뒤는 두말할 필요 없이 대단한 퍼포먼스의 연속이었다. 7차전에 성낙기가 좌익수로 나선 배경이다.

[짐 캇의 수비력이 활성화됩니다]

[리키 헨더슨의 도주 능력이 활성화됩니다]

성낙기가 1회 말, 좌익수 수비에 들어가자 상태창이 반응했다.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전력은 워싱턴의 우위였고 마이애미의 열세였다.

하지만 그런 모두의 예상에 성낙기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