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58화 (158/188)

# 158

158화 챔피언십시리즈-워싱턴 내셔널스 6

워싱턴 내셔널스 파크에서 열린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의 결과는 처참했다.

2:16. 16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그야말로 맹폭이었다.

6회의 타자 일순은 물론이고 홈런을 4개나 맞은 후의 투수들은 패잔병처럼 너덜너덜해졌다. 샌디 알칸타라, 사무엘, 댄 스트레일리, 딜런 피터스 등이 차례로 털렸다. 나중엔 워싱턴 타자들이 때리다 지칠 정도였으니 더 말해 뭐할까. 그렇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필승조를 쓰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었으나, 팀의 사기는 그만큼 더 떨어졌다.

마이매이 말린스파크에서 3차전을 벌이게 되는 두 팀의 선발은 다음처럼 정해졌다.

워싱턴 내셔널스-엔니 로메로.

마이애미 말린스-호세 우레나.

알렉스 비토 감독은 성낙기의 3차전 출전을 신중히 고려했으나, 애초에 이틀 휴식 후, 선발 출전이라는 전례도 드물뿐더러 만약 3차전을 지게 되면 시리즈 전체를 내준다고 봤다.

성낙기를 내보냈다가 체력 저하로 지게 되면 4차전은 물론, 시리즈가 넘어간다고 판단한 것. 감독이라면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수순이다. 그럼에도 호세 우레나가 3차전을 책임진다는 믿음은 떨어졌다.

팡.

“좋아, 호세 우레나. 스피드를 조금 더 올려보자고.”

3차전을 하루 앞둔 마이애미 말린스파크에선 불펜 투구가 한창이다. 리얼무토는 호세 우레나의 공 스피드가 맘에 들지 않는지 다소 심각한 표정이다.

올 시즌, 예년에 비해 부진했다고는 하지만 방어율은 3점 후반 대에서 지켜냈다. 그러다가 디비전시리즈에서 2선발로 나와 세인트루이스에 두들겨 맞은 이후, 자신감이 사라졌는지 로케이션이 살아나지 않는다. 스피드는 물론이고 제구력의 정교함이 확 떨어졌다.

그동안 컨디션 조절과 불펜 투구로 다시 약간 올라오기는 했지만, 아직 시즌 중의 그것에 못 미친다.

‘후우, 참 묘하군. 갑자기 구위가 평범해져 버렸고 살아나지 않고 있어.’

셜리번 투수코치는 체력의 한계를 지적했다.

몇 년 동안 팀의 에이스로 자주 출격하다 보니 후유증이 왔다는 것.

호세 우레나가 등판하면 전임이었던 레인 피터 감독은 최대한 긴 이닝을 끌고 갔었다.

불펜이 약한 팀 에이스의 숙명 같은 거였지만, 어쨌든 호세 우레나는 3년 내내 200이닝을 넘게 소화해낸 것.

올해는 자잘한 부상의 여파로 163이닝을 던졌다. 정작 답답한 이는 투수 자신, 즉 호세 우레나였다. 시즌 후, 스토브리그에서 FA로 풀리는 마당에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그동안 팀을 위해 던져온 희생을 보상받지 못하기 때문.

쿠바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난민으로 미국에 들어왔고 그 당시, 96마일을 던지는 모습에 반해 싱글A에 입단한 게 불과 6년 전이다.

더블A를 거쳐 4년 전에 마이애미에 콜업이 되자마자 9승을 올렸고 그 이듬해부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3년 내리 200이닝 이상의 공을 던지며 마이애미에도 쓸 만한 투수가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 여파로 올해는 햄스트링과 팔꿈치 염증 등의 자잘한 부상이 있었고 구위가 조금 떨어졌다.

팡.

슬라이더가 원바운드로 리얼무토 앞에 꽂혔고 호세 우레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몸의 균형이 어딘지 흐트러진 느낌인데 원인을 알 수 없다. 셜리번 투수 코치는 체력 저하로 인한 낮아진 릴리스 포인트를 지적했지만, 의식적으로 높여도 제구력이 말썽이다. 20여구를 던진 호세 우레나가 리얼무토에게 물었다.

“성낙기 어디 있지?”

“성낙기는 왜 찾아? 아마, 라커룸에서 노래나 듣고 있을 걸?”

“헤이, 딕 에일. 내가 좀 보잔다고 성낙기에게 전해줘.”

성낙기는 영문도 모른 채, 불펜 투구를 지켜보게 되었다. 호세 우레나는 성낙기를 세워놓고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연달아 던지는 공이 어떤 때는 잘 제구가 되지만, 또 어떤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한참이나 벗어난다.

특히, 호세 우레나의 장점인 슬라이더가 말썽이다. 호세 우레나는 한참을 던진 후, 성낙기에게 물었다.

“뭐가 문제야? 릴리스포인트야?”

“글쎄… 나도 잘 모르겠…….”

“넌 알 텐데? 느낌대로만 솔직하게 말해봐.”

“와인드업 시, 테이크백이 커진 건 분명해. 그래서 하체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흔들리지. 테이크백을 작게 하거나, 셋 포지션으로 던지면 제구력은 좋아질 거야.”

“음, 역시 그런가? 스피드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투구 폼이 커진 게 사실이야. 나도 의식은 하고 있었지.”

“물론 알고 있었을 거야. 하지만, 제구력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볼 끝도 무뎌졌지.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바로 그 볼 끝이야. 구위에만 신경 쓰다가 볼 끝을 놓친 결과지. 타자가 느끼는 체감 속도는 결코 스피드만이 아니라고 생각해.”

“…네 말이 맞다. 내가 지금껏 그걸 간과했어. 맞아, 정말 그 말이 정답이야. 고맙다, 성낙기.”

호세 우레나는 뭔가 힌트를 얻은 듯, 간결한 투구 동작을 유지하려고 애썼고 투구 폼이 안정될 때까지 리얼무토는 공을 받아줘야 했다.

***

마이애미 말린스 파크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1:1의, 외견상으론 팽팽한 시리즈인 데다가 호세 우레나와 엔니 로메로라면 해볼 만하다 여겼기 때문인데, 마이애미 타자들의 타격감이 올라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팬들은 그런 깊은 걱정은 없어 보였다. 애국가를 부르기 위해 미국의 유명 여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Taylor Swift)가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관중들의 함성은 최고조에 달했다. 가수이자 영화배우이며 178cm의 늘씬한 키에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만인의 연인 같은 이미지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테일러가 공공연하게 자신이 마이애미 팬임을 드러낸 적이 여러 번이었기에 팬들의 환영은 당연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다. ESPN의 에일 라몬입니다. 듀크 카바니, 레전드 투수 출신이죠. 해설 위원으로 모셨습니다. 오늘 3차전이 시리즈의 향방을 결정지을 거라는 말들이 있죠?”

“맞는 말입니다. 특히, 마이애미는 오늘 경기를 놓치면 어려워지겠죠. 전력상, 열세인 것만은 분명하니까요. 성낙기 투수가 4차전에 나오고 7차전에 나온다고 가정할 때, 3승뿐이잖습니까? 1승이 부족하죠.”

“아, 그 말씀은 성낙기가 등판하면 무조건 승리한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이를테면 그렇다는 거죠. 그렇게 3승을 거둬도 3승 4패로 시리즈를 넘겨주게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그런 면에서 호세 우레나와 엔니 로메로의 선발 대결에 귀추가 모아집니다.”

“양 팀 선발이 그리 강하지는 않죠?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어느 팀이든 적어도 4, 5점은 뽑아내야 승리에 가까워질 겁니다. 선발이 일찌감치 무너질 개연성도 있죠.”

호세 우레나는 박수를 받으며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고는 어제 불펜 투구를 한 감각을 살리면서 최대한 간결한 자세로 공을 던졌다. 성낙기의 레슨은 효과가 있었다! 브라이스 하퍼를 2루 땅볼로 처리했을 때, 호세 우레나는 내심 감격했다.

그렇게 무사히 1회를 마친 호세 우레나는 관중들의 환호에 모자를 벗고 흔들었다.

워싱턴으로서는 거슬리는 행동. 호세 우레나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뿐이었다.

경기는 의외로 투수전으로 흘렀다. 호세 우레나는 4회에 1실점 했지만, 이닝을 잘 넘겼고 엔니 로메로는 무실점으로 마이애미 타자들을 솎아냈다. 기대 이상의 투구에 알렉스 비토 감독은 희망을 품었다.

타선만 터져준다면 승리가 가능해 보이기 때문.

0:1이면 충분히 해볼만 하다는 기대는 관중도 마찬가지였다.

“의외로 호세가 잘 던지고 있어. 엔니 로메로에게 묶여서는 안 돼.”

“타자들이 의욕이 없는 건지… 95마일을 전혀 공략을 못하는군.”

“아직은 몰라. 호세가 조금만 버텨주고 3점 정도만 득점하면 승산 있어. 불펜이 괜찮거든.”

“불펜은 워싱턴이 더 좋아. 뭘 알고 얘기를 해야지.”

“중요한 건 타자들이 무기력하면 답이 없다는 거야. 저래서는 아무것도 못해.”

“제발 하나만 쳐줘.”

팬들의 바람을 아는 듯, 마이애미 타자들은 엔니 로메로를 상대로 5회 말에 3점을 뽑아냈다. 전세는 역전되었고 경기장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그도 잠시, 6회 초가 되자 호세 우레나는 선두 타자에게 홈런을 허용, 워싱턴이 2:3으로 따라붙었다.

“타임!”

알렉스 비토 감독이 곧바로 투수 교체를 하기 위해 마운드로 올랐다. 호세 우레나는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오르는 걸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불만을 드러냈다.

잘 던지다가 겨우 솔로 홈런 하나에 투수 교체라니.

6회 2실점이면 호투라고 봐도 무방한 성적 아닌가. 불펜이 공을 이어받는다고 해도 1점을 지키리라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자신이 더 낫지 않겠나 생각한 호세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했다.

“조금 더 던지겠습니다.”

“아니, 성낙기가 올라올 거다.”

“아…….”

“이해하지?”

“알겠습니다.”

성낙기가 올라온다는 말에 호세 우레나는 할 말을 잃었다. 자신보다 훨씬 막강한 투수가 올라와서 팀의 승리를 지키겠다는데 반대할 명분도 변명도 찾을 수 없다. 그라면 1점 차를 지키고 팀을 승리로 이끌 거라는 믿음도 작용했다.

공을 넘겨받은 감독이 불펜을 향해 손을 들었고, 불펜에서 성낙기가 나와 마운드로 향했다. 성낙기의 등장에 워싱턴의 팬들과 감독과 선수들은 모두 놀라 입을 벌렸다.

4차전 선발로 예견되던 투수가 이틀 휴식 후, 3차전 불펜 투구라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투수 운용이기 때문이다.

“좀, 의외네요. 여기서 성낙기 투수를 투입하다니요. 그럼, 내일 선발은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 애매하군요.”

“벼랑 끝, 전술이네요. 오늘 무조건 막고 투구 수를 봐서 5차전이나 6차전에 또 투입하겠다는 겁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알렉스 비토 감독의 승부수입니다.”

***

바로 어제, 성낙기는 알렉스 비토 감독의 호출을 받았다. 알렉스 비토 감독은 다짜고짜 성낙기에게 물었다.

‘너, 셜리번 투수 코치에게 3차전 던질 수 있다고 했어?’

‘네, 그렇습니다. 감독님. 그렇게 던져도 어깨의 후유증은 없습니다. 3차전과 6차전 선발을 생각하고 있죠.’

‘안 될 말이야. 만약 그랬다간 팔이 남아나지 못해. 23세이니 앞으로 10년 이상은 던진다고 볼 때 이 시기의 혹사는 선수 수명을 절반으로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지. 어릴 땐 누구나 의욕만 앞서는 법이기도 하고.’

‘의욕이 아닙니다. 이건 그냥 사실일 뿐이죠. 제가 선수 생명을 걸고 이런 짓을 할 만큼 미련하지는 않습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호세 우레나가 버티지 못하면 투입을 고려해 보는 걸로.’

알렉스 비토 감독은 모험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호세 우레나가 이른 시기에 털리면 대체할 만한 투수가 요원했다. 4차전 선발 성낙기를 불펜에 대기시키는 것이 옳은가, 싶었지만 선수를 믿은 측면이 컸다. 그간에 성낙기가 보여준 투구는 늘 알렉스 비토 감독의 상상을 벗어났으므로.

바로 그렇게 성낙기의 6회 불펜 투입이 결정되었다. 살얼음판 리드에서 필승조 불펜 투수 대신 성낙기를 택한 알렉스 비토 감독. 성낙기가 마운드로 향하는 내내 마이애미 팬들의 기립 박수가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이제 돌아갈 다리를 스스로 태웠다. 무조건 1점을 지켜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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