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154화 챔피언십시리즈-워싱턴 내셔널스 2
2022년 10월 13일, 드디어 워싱턴 내셔널스파크에서 챔피언십시리즈가 열렸다. 이례적으로 워싱턴 시장이 시구를 했고 인기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미국 애국가를 불렀다.
41,000명의 관중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애국가를 따라 불렀다. 애국가가 끝나자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여기저기에 메아리쳤다.
원정 팀들의 선수들은 주눅이 들 정도의 엄청난 데시벨의 소음과 진동이 내셔널스파크를 뒤흔들었다.
주심이 플레이볼을 선언하고 성낙기는 언제나 갈망하던 챔피언십시리즈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섰다. 경기의 주심은 윌프레드. 꼬장꼬장하기로 소문난 주심.
특히, 홈팀에게 관대한 스트라이크 존과 원정팀에 인색한 스트라이크 존이라는 한결같은 지조로 뭇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중이다.
SNS도 하지 않는지 자신에 대한 비판에 전혀 흔들림이 없는, 사이코 기질까지. 하긴, 60이 넘은 주심이니 SNS 같은 걸 알 리가 없지.
‘퓨,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오늘 애 좀 먹겠군.’
어쩔 수 없다. 이런 주심을 만나면 구위로 승부하는 수밖에. 아니면 맞춰 잡든가, 둘 중 하나다. 리얼무토도 까다로운 주심이기 때문에 일부러 마운드까지 올라왔다.
“성낙기, 전에도 말했지만 저 주심은 맛이 갔어. 그러니까, 스트라이크 존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마. 네 구위라면 스트라이크 존 따위는 상관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아, 리얼무토. 예전의 성낙기가 아니야. 걱정 마.”
성낙기는 리얼무토의 염려를 뒤로 하고 외야를 바라보았다. 푸른 잔디 위에 선 선수들, 그 위로 관중석에 꽉 찬 관중들.
야구라는 스포츠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생활의 활력을 찾아가는 사람들. 단지 그뿐일까.
얼마 전엔 한 팬으로부터 열정을 대해 쓴 편지를 받았다. 장애인인 자신은 그라운드에서 뛰지 못하지만 성낙기 선수의 진지한 열정과 공을 던질 때의 카리스마에 감동했다고 썼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항상 용기를 줬다고도 했다.
‘그래, 난 지금 공을 던지는 사람이지만 이 행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다른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퍼포먼스야. 그런 퍼포먼스라면 천 번, 만 번이라도 해야 한다.’
성낙기는 공을 던지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며 오늘 꼭 이겨야만 하는 이유를 가슴에 새겼다. 그러고 나서 와인드업을 했다.
타석에 선 타자는 3할 타자로 잘 알려진 트레아 터너. 컨택 능력과 장타력을 겸비한 팀 공격의 첨병이다.
팡.
볼.
역시, 윌프레드 주심이다. 바깥쪽 라인에 걸치는 공인데 요지부동이다. 거의 90%는 스트라이크 콜을 받던 코스인데도 윌프레드 주심은 뭔 일 있냐는 듯 외면한다.
“츳, 내 저럴 줄 알았지. 윌프레드가 주심일 줄이야.”
“와, 저 고약한 영감탱이! 분명 스트라이크였어.”
“이봐, 메나도. 저 주심 성향을 몰라서 그래? 언제나 홈팀에게 돈을 먹는단 말이야. 이건 공공연한 비밀이야.”
“정말이야?”
“당연하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 저런 행동이 설명이 돼?”
“안 되지.”
“거봐. 그러니까 내 말이 맞지. 성낙기가 꽤나 힘들 거야. 자꾸 저러면 뭐라도 던져 버려야 해.”
마이애미 팬들은 초구가 볼이 되는 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재수 없게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만났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성낙기는 초구가 볼이 되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와인드업.
팡.
“스트라이크.”
이번 공은 거의 가운데로 들어갔다. 내야 땅볼을 노린 퀘이크볼이었다. 아무리 윌프레드라고 한들 스트라이크를 주지 않을 수 없는 코스. 이제부터는 주심과 성낙기의 인내심 싸움이다.
팡.
볼.
슬라이더가 바깥쪽에 꽂혔는데 손을 들지 않는 주심. 사실은 손이 올라가려다가 멈칫, 했다. 마이애미 팬들이 일제히 야유를 퍼부었다. 다음 공은 초구보다 좀 더 안쪽 코스의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에 꽂혔다.
팡.
볼.
순식간에 스리 볼 원 스트라이크가 되어버렸다. 다른 주심이었으면 이미 삼진이었을 공들이다. 성낙기가 던진 4개의 공이 모두 스트라이크 존에 걸쳐서 들어왔다.
마이애미 팬들은 분명한 스트라이크가 연달아 볼로 선언되자 마침내 폭발했다.
본래부터 윌프레드 주심의 판정에 불만을 품어왔던 터다. 시즌 때는 부글부글한 속을 달래며 넘어갔지만 오늘은 그런 경기와는 차원이 다른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이다.
“때려 쳐. 시발.”
“니가 주심이야? 니미, 그런 심판은 나도 보겠다. 영감탱이야.”
“우우우우우.”
“심판을 퇴장 시켜!”
“퇴장! 퇴장! 퇴장!”
급기야 읠프레드 주심이 마스크를 벗고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마이애미 관중들의 야유가 더 심해졌다.
윌프레드 주심이 관중 몇을 향하여 쉿, 하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관중들이 격해지면서 몇이 일어나 마시고 있던 캔을 던졌다. 홈 플레이트에 캔 몇 개가 날아들었고 윌프레드 주심은 뭐라고 소리쳤다.
마이애미 팬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야유와 함께 몇이 그라운드로 난입했다. 그러고는 곧장 윌프레드에게 달려갔다.
윌프레드 주심이 위험을 느끼고 1루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보안 요원들이 난입한 팬들을 제압한 뒤 데려갔지만, 관중들의 소음은 더 극심해졌다.
이윽고 알렉스 비토 감독이 주심에게 다가갔다.
“저 소리 들려요? 난동이 일어날지도 몰라요.”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저러는 거야.”
“몰라서 물어요?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했는데 볼을 선언하니까 그렇지요.”
“뭐? 당신 지금 말 다했어? 퇴장을 주는 수가 있어.”
“알아서 하슈. 난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마이애미 팬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가만있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아까부터 반말하시네. 경기 말아먹고 싶으면 당신 맘대로 해. 뒤지든지 살든지 난 모르니까.”
“퇴장시킬 거야.”
“퇴장 좋지. 한번 시켜 봐. 그랬다간 당신이 먼저 맞아 죽을 걸?”
“…….”
***
윌프레드 주심이 한풀 죽었다. 차마 퇴장을 주지는 못하고 얼굴 표정이 수시로 바뀌었다. 꼴통으로 소문난 주심이지만 관중들의 소요는 또 다른 문제였다.
프로야구는 관중이 절대적이다. 메이저리그를 이끌어 가는 건 기업도 구단주도 선수들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은 팬이 없으면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바로 그 팬들이 경기장으로 난입하도록 만들고, 분노하도록 만들고, 야유를 퍼붓게 만든 윌프레드는 난동으로 몇이 붙잡혀 간 후에야 자신의 위치를 깨달았다.
야유는 계속되고 있었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 무엇보다 팬을 건드린 죄.
팬들을 향해 도발적으로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해서 흥분하게 했고 소리도 질렀다. 무엇보다 챔피언십시리즈라는 중요한 경기의 분위기마저 망쳐 버렸다.
‘젠장, 이게 뭐야. 왜들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
그도 사람인지라 마이애미 팬들의 야유에 멀쩡하진 않았다.
더욱이 경기장 난입 직후라 더 그랬다. 아까만 해도 홈 플레이트에 가만있었으면 몇 대 맞았을 것이다. 윌프레드 주심은 생애 처음으로 스트라이크 판정으로 두려움 비슷한 것을 느꼈다. 만약 저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에 난입하여 자신을 해한다면……?
그건 상상하기도 싫었다.
보안 요원이 있어봐야 저 많은 관중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오싹했다.
좀 지난 얘기지만 브라질 같은 나라에선 축구를 하다가 심판의 목을 자르고 토막 내는 사건까지 있었다. 엄연히 21세기에 일어난 일. 교양 있는 미국인들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사람 일은 장담 못 한다.
지금 경기장의 분위기는 자신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스트라이크 존을 조금 넓히면 되는 걸 갖고 왜들 난리야.’
그는 결국 자신과 타협하기에 이르렀다.
팡.
“스트라이크.”
스리 볼 원 스트라이크에서 던진 성낙기의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고 볼 카운트는 스리 볼 투 스트라이크가 되었다.
윌프레드 주심이 엉거주춤 마지못한 듯 손을 들었고 트레아 터너는 아까와 다른 스트라이크 존에 당황했다. 윌프레드 주심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니, 이게 왜 스트라이크예요. 초구하고 같은 코스잖아요.”
“살짝 안쪽이야. 홈 플레이트 통과했어.”
“볼 판정이 이렇게 들쭉날쭉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네 눈으로 똑똑히 봤어? 스트라이크가 맞아. 자꾸 토 달면 퇴장 시킨다.”
“…….”
팡.
“스트라이크 아웃!”
마지막 6구 역시 바깥쪽에 걸치는 스트라이크였다. 이 공 역시 트레아 터너가 보기엔 3구째 던진 슬라이더와 같은 코스다. 볼과 스트라이크라는 차이만 있을 뿐. 트레아 터너는 주심의 아웃 콜이 떨어지자 배트를 내동댕이쳤다. 윌프레드 주심은 마스크를 벗고 곧바로 퇴장을 선언했다.
“퇴장!”
윌프레드 주심의 팔이 포물선을 그리며 관중석 쪽을 가리켰다. 마이애미 팬들의 야유는 주심의 퇴장 선언에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이젠 워싱턴 팬들이 들고 일어났다. 워싱턴의 홈이니 수적으로도 훨씬 많다. 야유가 또 쏟아지자 경기장이 쩌렁쩌렁 울리다시피 했다. 마치 노아가 탄 방주처럼 경기장이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
한바탕의 소란이 끝나고 경기가 속개됐다. 챔피언십시리즈 사상 1회 말에 볼 판정에 시비가 붙어 관중이 난입하고 첫 타자가 퇴장 당한 사례는 없었다.
윌프레드는 결과적으로 완전한 악수를 두고 말았다.
홈팀에 다소 유리한 판정을 하려다가 마이애미 팬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이에 다른 심판들처럼 S존을 넓히다가 워싱턴 팬들의 야유를 받았다. 양쪽으로부터 심한 야유와 분노의 목소리들이 윌프레드의 노구(老軀)를 휘청거리게 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한쪽에 판정을 불리하게 하면 한쪽으로부터는 환호성을 받는 게 당연한데 오늘은 아니다.
양 팀 모두의 관중에게 욕이란 욕은 다 들으면서 경기를 해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아, 말년에 무슨 고생이람. 정말… 쉬고 싶다. 확 그냥 다 때려치워 버릴까…….’
속으론 그런 맘이 굴뚝같았지만 만약 그랬다간 지금까지 쌓아올린 명예는 온데간데없을 거다. 성낙기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투구에 임했고 윌프레드의 볼 판정은 바깥쪽이 조금 넓어졌다. 성낙기는 나머지 두 타자는 수월하게 범타 처리하고 1회를 끝냈다.
“성낙기, 고생했어. 이젠 함부로 편파 판정은 못 할 거야.”
“아까 그 팬 분들은 퇴장 당했어요?”
“퇴장 당했지. 아마 블랙리스트에 오를 거야. 그렇게 되면 당분간 경기장 출입이 금지되지.”
“후, 그렇군. 마이애미에 가면 인사라도 해야겠어요.”
“오, 성낙기. 마음 쓰는 게 상당한데? 마이애미에 가면 필히 주선해 볼게. 덕분에 윌프레드 주심의 S존이 넓어진 것만은 분명해.”
“그러게요. 역시 사람은 행동 대 행동이라니까.”
경기는 정상적으로 흘러갔다. 1회 소란의 효과가 있었다고 할까. 3회까지 깔끔하게 틀어막자, 눈앞에 글귀가 떴다. 포심패스트볼의 스탯이 오르고 나서 다른 변화구도 대칭적으로 따라 오르는 느낌이다.
[커브의 제구력이 93으로 오릅니다]
[체인지업의 위력이 93으로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