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152화 디비전시리즈-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4
야구는 선수들의 게임이다.
감독이 아무리 잘해봐야 선수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 제아무리 투수 교체 시기가 좋고 적재적소에 선수를 투입해도 기본적인 역량이 되지 않으면 하나마나한 짓이다.
반대로 선수들은 잘하는데 감독이 경기를 말아먹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특히 투수 교체 시기를 정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너무 늦은 투수 교체로 경기를 내주는 일이 허다하고 너무 이른 교체로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지금의 마이애미가 그랬다.
데일 카론은 나오자마자 볼넷을 허용했고 안타와 홈런을 맞고 강판되었다. 노아웃이었다.
성낙기에게 억눌린 응어리를 푸는 듯 어중간한 강속구에 세인트루이스 타자들은 여지없이 공을 후려갈겼다.
“타자들이 강속구에 적응하는 건 어쩔 수 없어. 성낙기가 포심패스트볼 위주로 공을 던졌으니까.”
“그럼, 변화구를 많이 섞을까?”
“아니야. 그리 좋은 생각이라고는 할 수 없어. 변화구를 노리고 들어오면 그것도 문제가 돼. 내 공에 믿음 가져. 지금은 그것뿐이야.”
“알겠어, 리얼무토.”
팬 파일러는 바뀐 포수 리얼무토와 이야기를 나누고 외야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저기로 공이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팬 파일러는 98~99마일을 던지는 208cm의 거인형 투수다. 강속구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다만, 앞선 투수 성낙기는 자신과 비슷한 강속구를 던져서 팬 파일러의 장점을 상쇄해 버렸다. 아무래도 눈에 익은 강속구는 잘 쳐낼 수밖에 없기 때문.
딱.
파울.
역시 잘 쳐낸다. 방금 공은 1루 관중석으로 라인드라이브를 형성했다. 팬 파일러는 이를 악물고 공을 뿌렸다.
따악.
파울.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한 타자를 잡고 나자 용기가 생겼고 그때부터 내리 범타로 타자를 솎아냈다. 7회를 잘 막은 팬 파일러는 8회에도 나와 1안타 무실점으로 9회를 야를린 가르시아에게 넘겼고 야를린 가르시아는 볼넷과 안타를 맞고 원아웃 1, 2루로 몰렸으나, 마지막 타자를 병살타로 잡아내는 기염을 토하며 경기를 매조지 했다. 게임 스토어 4:3으로 마이애미의 승리.
“후우, 용궁 갔다 왔네. 졌으면 잠도 못 잤을 거야.”
“그나마 다행입니다. 데일 카론이 그렇게 무너질 줄은.”
알렉스 비토 감독과 셜리번 투수 코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2차전 후, 하루 휴식을 취하고 3차전은 마이애미의 홈구장인 말린스파크에서 열렸다. 샌디 알칸타라가 선발로 나섰고 경기는 팽팽하게 흘러갔다.
샌디 알칸타라는 의외로 호투를 이어갔고 6이닝 2실점했다. 무실점으로 잘 던지던 상대 투수 카를로스는 6회에 3실점으로 강판 당했다.
경기 결과는 마이애미의 3:2 승.
전문가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였고 마이애미의 불펜진이 탄탄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경기이기도 했다. 2차전에 스리런 홈런을 맞았던 데일 카론은 7회부터 8회 2사까지 호투하며 빚을 갚았다.
나머지는 팬 파일러와 야를린이 나눠 맡으며 승리. 선발만 탄탄하게 유지되면 언제든 지킬 수 있는 마이애미의 저력을 보여준 경기이기도 했다.
<마이애미의 뚝심이 이겼다>
<샌디 알칸타라의 호투, 시리즈 전적 2:1의 우위를 가져오다>
<4차전 선발은 케일럽 스미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ERA 5.90의 무지막지한 방어율>
<성낙기의 4차전 선발 가능성은?>
ESPN에서는 해설가들을 불러 4차전을 예상했다. 타격전이 승부를 가를 것이라는 예상이 압도적이었고 모두 세인트루이스의 우세를 점쳤다.
선발이 무너지면 타격이 좋은 세인트루이스의 승리가 무난하다는 평가.
“혹시, 혹시 말이죠. 4차전에 성낙기 투수나 조단 힉스가 나올 가능성은 없겠습니까?”
“글쎄요, 세인트루이스는 조단 힉스가 나올 가능성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3일 휴식 후, 마운드에 선다면 구위가 현저하게 떨어지겠죠. 그리 좋은 선택 같지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가 4차전에 패하면 5차전의 유력한 승리 옵션을 잃게 되죠.”
“성낙기 투수는 더 안 되겠나요?”
“성낙기 투수는 이틀을 쉬고 4차전에 나선다는 말인데… 더 어렵습니다. 2차전에 80구 내외만을 던졌지만 아직 어깨가 식지도 않았을 거예요. 5차전에 조단 힉스와 성낙기 투수의 에이스 대결을 예상합니다.”
모든 전문가들의 생각이 비슷했다. 4차전은 세인트루이스의 우세라고. 조단 힉스와 성낙기의 등판은 어려울 거라고. 5차전을 성낙기에게 맡기면 마이애미는 디비전시리즈의 승리에 방점을 찍을 수 있다.
문제는 두 팀 모두 5차전까지 가면 전력 소모가 극심하다는 것. 마이애미는 2:1로 앞섰을 때 4차전에 끝내야만 뒤탈이 없다.
“케일럽스미스의 방어율이 너무 떨어져. 퀵 후크밖에 없겠군. 아니면, 1차전처럼 상황에 따라 경기를 내주든가.”
“저, 감독님. 성낙기를 만나고 오는 길인데 4차전에 던지겠답니다.”
“뭐? 4차전에 던지겠다고? 겨우 이틀 휴식 후에?”
“아무렇지도 않답니다.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그날 던지겠다고…….”
“그래? 성낙기 불러와봐.”
***
알렉스 비토 감독은 난처했다. 5차전 선발로 내정된 성낙기가 4차전에 던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런 경우의 판단이 어렵다. 무려 23승을 거둔 투수이기에 더 그렇다.
보통의 투수라면 치기 어린 말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었겠다. 성낙기는 그런 투수가 아니다. 지금까지 하겠다고 나서서 못한 적이 없고 항상 승리를 안겨줬던 수호신과 같은 선수.
그런 선수가 이틀 휴식 후, 던지겠다고 나서니 고민이었다. 곁에 있는 셜리번 코치조차 선뜻 뭐라고 말하기가 애매했다.
“내일 선발로 나서서 몇 이닝이나 던질 수 있겠어. 더구나 구위가 떨어질 것은 당연한데.”
“4차전에 끝내고 싶습니다. 7이닝은 충분합니다.”
“휴, 이거 원. 다른 투수도 아니고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왠지 믿고 싶어지지만…….”
알렉스 비토 감독이 말끝을 흐렸다. 내심 성낙기가 4차전에 끝내준다면 워싱턴과의 챔피언십시리즈도 한결 수월할 것이다. 감독이라면 그런 욕망이 없을 수 없다.
“좋아, 믿어 보지. 다만, 조금 안 좋으면 바로 내릴 테니까 그렇게 알도록.”
성낙기의 4차전 등판은 그렇게 결정되었고 4차전의 날이 밝았다. 말린스파크는 들뜬 관중들의 모습으로 이 경기에 거는 희망을 짐작케 했다.
그들은 한편으론 성낙기의 이른 등판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론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성낙기가 선발을 자원했대. 4차전에 끝낼 거라고.”
“나도 들었어. 말린스파크에서 끝내야 홈팬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고도 했어.”
“그런 말도 했어?”
“그렇다니까.”
“내가 듣기론 챔피언십시리즈에 1차전 등판을 원한다고 하더군. 그래야 월드시리즈 진출의 희망을 키울 수 있다고 말이지. 하여튼 대단한 투수야.”
“흠,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늘 잘 던져야 그런 말들이 쓸모가 있는 거지. 구위에 문제가 있으면 초반부터 맞아 나갈 거야.”
***
1회 초, 성낙기는 마운드에 올라왔다. 마이애미 팬들은 경기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한쪽에서는 성낙기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어린이들은 성낙기의 유니폼을 입고 부모를 따라 응원했다. 성낙기는 마운드에 올라 스파이크로 흙을 쓸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성낙기는 상태창을 떠올렸다.
[체력이 97입니다]
예상대로 3일 전의 투구에 따른 체력 소모는 이미 채워져 있는 상태였다. 체력 스탯을 보자 가슴 가득 자신감이 차올랐다.
[디비전시리즈 마지막 등판 보너스입니다. 세 타자를 같은 변화구로 아웃시키면 능력치 1이 오릅니다]
‘뭐야, 그럼 아웃카운트를 잡을 때의 구질이 같은 변화구면 된다는 거지?’
[맞습니다. 디비전시리즈 특별 보너스입니다]
성낙기는 세인트루이스 타자들을 맞아 포심패스트볼과 퀘이크볼로 카운트를 잡은 뒤 세 타자 모두 피니쉬로 슬라이더를 던져 삼진 하나와 내야 땅볼 둘로 1회를 마쳤다. 더그아웃으로 내려오는 도중 눈앞에 글귀가 떴다.
[슬라이더의 위력이 91로 오릅니다]
이 정도면 특별 보너스가 맞는 것 같다. 같은 구종으로 세 타자를 상대해서 아웃 카운트를 잡으면 되는 거니까.
세 타자만 잡으면 1씩 올라가니, 만약 같은 슬라이더를 9회 내내 던진다면 최대 9를 올릴 수 있다는 계산. 물론, 성낙기만의 계산이다.
그동안 숱하게 던져왔던 변화구인데 스탯 증가는 인색하기 짝이 없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특별하다.
‘좋아, 그동안 가장 올리고 싶었던 게 슬라이더였어.’
살아있을 때의 헤이드 존은 102.5마일에 이르는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만으로도 월드시리즈를 제패했다.
그의 슬라이더는 예상을 하고도 치지 못하는 구종이었다. 그만큼 강속구와의 조화가 좋았고 홈플레이트 앞에서 예리하게 휘어지는 브레이킹은 압권이었다. 타자 앞에 올 때까지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구분이 안되니 공략이 불가능했던 것은 당연했다.
바로 그런 슬라이더의 스탯을 성낙기는 올리려고 마음먹었다.
***
경기는 의외로 팽팽하게 전개됐다. 5회까지 양 팀 모두 득점이 없었다. 세인트루이스의 선발 투수인 멕시코 출신 지오반니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5안타 무실점으로 호투 중이었다.
까다로운 싱커성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에 마이애미 타자들은 속속 범타로 물러났다.
그 와중에 성낙기는 2안타만을 허용했고 슬라이더만으로 9타자를 잡아 스탯을 3이나 올렸다. 체인지업으로도 세 타자를 잡아내어 스탯을 1올렸다.
[슬라이더의 위력이 93으로 오릅니다]
[체인지업의 위력이 91로 오릅니다]
타선이 자신의 호투를 받쳐주지 않아 다소 아쉽지만 스탯의 증가는 그런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마침내 7회 말에 시에라의 투런 홈런이 터졌다.
하위타선이지만 가끔씩 뜬금포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선수답게 오늘 그 명성을 되찾았다. 잘 던지던 지오반니는 마운드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자신을 자책했다.
성낙기는 8회 초에도 마운드에 나와 세인트루이스 타자들을 돌려세웠다. 그러는 동안 스탯은 계속 증가했다.
[슬라이더의 위력이 94로 오릅니다]
[슬라이더의 위력이 95로 오릅니다]
성낙기가 8회를 마치고 내려오자 알렉스 비토 감독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92구의 투수에 3안타만을 맞은 선발 그대로 갈 것이냐, 마무리로 바꿀 것이냐. 2:0으로 앞선 상황에서 애매하다.
보통 이런 경우 선발 투수가 워낙 잘 던졌으므로 완봉까지 참아주는 게 맞다. 그러나 챔피언십시리즈가 기다리고 있고 마무리가 깔끔하게 끝내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문제는 야를린 가르시아가 100% 신뢰할 수 있는 투수는 아니라는 점이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3점 초반의 시즌 방어율을 보였으니까.
“안 되겠어. 그냥 성낙기로 가지.”
알렉스 비토 감독은 셜리번 코치와 대화를 나누다가 조금 더 확실한 쪽을 택했다. 겨우 2점을 앞선 상황에서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회가 끝날 때마다 성낙기의 상태를 점검했지만 성낙기는 거짓말처럼 사흘 전에 던진 후유증이 전혀 없었다. 구위는 오히려 더 쌩쌩해졌다.
9회에도 망설임 없이 투입할 수 있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