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51화 (151/188)

# 151

151화 디비전시리즈-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3

셜리번 코치도 성낙기의 포심패스트볼을 보고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저건 거의 신더가드급의 스피드 아닌가. 미트에 꽂히는 소리도 흡사 대포가 터지는 것처럼 강렬하다.

무언가 놀라운 변화가 몇 차례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큰 경기를 앞두고는 처음이다. 적어도 셜리번 코치가 생각하기로는 그랬다. 그가 보기엔 성낙기의 컨디션은 최고였다.

“와우, 공 좋아, 성낙기!”

한마디 해주고는 걱정 없는 얼굴로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방금 오른 투심패스트볼도 휘어지는 각이 달랐다. 바깥쪽으로 던지면 몸 쪽으로 휘어지는 상당한 각이다.

역방향으로 꺾이는 투심패스트볼인데도 백도어 슬라이더처럼 휘어지는 반경이 크다. 슬라이더와 다른 점은 볼 끝이 마지막까지 살아 오른다는 점이다.

성낙기는 그렇게 한결 빨라진 포심패스트볼과 투심패스트볼을 장착하고 1회를 막아내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ESPN의 오스왈도입니다. 제임스 해설가 모시고 말씀 듣겠습니다. 오늘 경기 마이애미의 성낙기 투수가 나오는데요.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세인트루이스의 타선이 어제 폭발했습니다. 성낙기 투수가 시즌에 잘 던졌다고는 하지만 오늘은 다를 겁니다. 이 선수가 큰 경기 경험도 부족한 반면에, 세인트루이스 타자들은 가을 야구 DNA가 있죠. 정규 시즌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아, 그 말은 성낙기 투수가 버티기 어렵다는 뜻인가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세인트루이스 타선이 물이 오른 데다 성낙기 투수는 큰 경기를 치른 적이 없어서 상당히 긴장할 것으로 봅니다. 1회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문제입니다.”

“의외의 예상을 해주셨는데요. 과연 성낙기 투수가 1회를 잘 넘길지 두고 보겠습니다.”

성낙기는 채드 왈라치의 사인을 받았다.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이다. 타석에 선 선수는 세인트루이스의 내야를 이끌고 있는 콜튼 웡이었다.

0.288의 타율에 21홈런 23도루를 기록한 선수로 20-20을 달성했다.

호타 준족의 상징.

어제 경기에서 6타수 4안타로 타격감이 한껏 올라 있다.

“하이, 채드. 오랜만이야.”

“응, 콜튼 너도.”

“오늘도 힘든 경기가 될 거야. 미안하지만 우리 팀의 선수들이 공이 수박처럼 보인다네.”

“그래? 그건 투수에 따라서 다르겠지. 이제 곧 알게 될 거야. 야구공이 골프공보다 작아 보인다는 걸.”

“후훗, 채드도 농담이 많이 늘었구나. 포수 자리에 앉으면 그렇다더니 정말이네.”

“농담 아닌데…….”

팡.

“스트라이크!”

성낙기가 던진 공은 전광판에 97마일이 찍혔다. 초구부터 156km의 엄청난 볼이다. 콜튼 웡의 눈이 커졌다.

그가 알아왔던 성낙기의 공은 이 정도는 아니었다. 가끔 엄청난 공을 던지기도 하지만 평소엔 95마일 내외의 공을 던지는 투수다.

데이터에도 나와 있는 수치. 그런데 오늘은 초구부터 97마일이라는 엄청난 스피드의 공을 던진다.

콜튼 웡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저 동양인 투수가 이 정도였던가?’

고개를 갸웃했을 정도로 초구의 반향은 컸다. 채드 왈라치는 그것 보라는 듯 웃는 얼굴로 콜튼 웡을 바라본다.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는 콜튼 웡. 배트를 두어 번 휘두른 후에 2구를 기다렸다.

파앙.

휘잉.

“스윙 스트라이크!”

이번 공도 역시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이었다. 콜튼 웡은 포심패스트볼을 짐작하고 배트를 휘둘렀으나 생각보다 공이 더 빨랐다.

전광판엔 98마일이 찍혔다. 세인트루이스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

“놀랍습니다. 성낙기 투수, 98마일을 던지고 있습니다. 아, 이건 예상하지 못한 강속구인데요. 시즌 때보다 더 빠른 강속구를 어떻게 보십니까.”

“후우, 나도 놀랐습니다. 98마일을 던질 줄은… 그것도 1회에 말이죠. 게다가 제구력도 무척 안정적이군요. 큰 경기에서 투수는 신중하기 마련인데 성낙기는 거칠 것이 없네요.”

“말하는 동안, 3구를 던지는 성낙기! 아… 콜튼 웡 선수, 스윙을 해봤습니다만, 공과 배트 사이가 멉니다. 3구가 모두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인데 배트에 맞추지도 못하고 돌아섭니다. 삼진 아웃!”

“아직 빨라진 구속에 타이밍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네요. 정규시즌보다 2마일이 빨라진 공을 던진다… 정말 불가사의한 투수입니다. 저러니 약물을 의심하는 팬들이 있는 거죠.”

“하지만, 여러 차례의 검사에서도 아무런 혐의점이 없었죠?”

“그래서 더 불가사의한 거죠. 날이 갈수록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이니까요.”

“이십대 후반까지는 구속에 빨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그럴 수도 있겠죠. 투구 폼을 교정한다거나 팔 스윙의 메커니즘을 다르게 한다거나 해서 말이죠. 하지만 성낙기는 그런 것도 없이 공이 빨라지는 거거든요. DNA가 남다른 선수라고밖에는 말할 도리가 없겠네요.”

성낙기는 1회에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2번 타자가 들어설 즈음, 눈앞에 떠오른 글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9번 타자까지 모두를 삼진으로 잡으십시오]

‘잡으면?’

[보너스가 주어집니다]

‘그러니까 그 보너스가 뭐냐고.’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먼저 미션을 달성하십시오]

‘그게 무슨 비밀이라고… 뻔한 걸 가지고. 변화구 레벨이나 좀 오르겠지.’

성낙기는 채드 왈라치의 사인을 받고 와인드업을 했다. 이번엔 슬라이더다. 첫 타자와 패턴을 달리하는 사인을 내는 걸 보니 채드 왈라치도 여우가 다 되어간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파앙.

“스윙 스트라이트 아웃!”

세 타자를 연속으로 잡고 성낙기는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1회를 한껏 기대했던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세 타자가 연속으로 삼진을 당하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3번 타자 타일러 오닐 같은 선수는 3할을 넘기는 타율인데도 결과는 같았다. 경기장 안은 1회를 마치고 조금 어수선해졌다. 웅성거리는 팬들이 많아졌고 어이가 없는 나머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는 팬들도 보였다. 물론 그래봐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겠지만.

***

성낙기의 호투에 각성했는지 마이애미 타선은 1회에 2점이나 뽑아냈다. 성낙기로서는 승리를 거둘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셈이다.

성낙기는 여세를 몰아 3회까지 세인트루이스의 모든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파울이 몇 번 있었고, 페어 지역으로 떨어질 뻔한 외야 타구도 있었으나, 운이 좋았다.

[어깨 근육 강화가 (9단계/10단계)로 오릅니다]

[팔 근육 강화가 (9단계/10단계)로 오릅니다]

[악력이(9단계/10단계)로 오릅니다]

상태창의 알림과 함께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성낙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팔과 어깨의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였고 손으로 이어지는 근육도 마찬가지였다. 낮은 단계의 스탯 증가에서는 경험할 수 없던 고통이 따랐다.

성낙기는 더그아웃에 들어가자마자 라커룸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뛰어갔다.

아무도 없는 빈 라커룸에서 혼자 신음을 흘리며 십여 분 동안 근육이 당기고 풀리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조여지는 고통을 참아냈다.

“크으으으으.”

그렇게 한참을 참아낸 끝에 고통은 잦아들었고, 어깨부터 손끝까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에너지가 넘실거리는 걸 느꼈다.

단단한 골프공도 부숴 버릴 것 같은 악력과 투포환을 해도 끄떡없을 것 같은 팔과 어깨의 근육도 함께 느꼈다. 성낙기는 그렇게 의식을 치르듯 한 차례의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4회 초를 맞은 팀은 1점을 추가하고 주자를 두 명이나 내보내고 있었다. 오늘은 클린업 트리오가 힘을 내고 있다.

가렛 쿠퍼는 2안타를 기록했고 브라이언 앤더슨은 2타점으로 타선을 이끄는 중이다. 벌써 3:0이니 오늘 경기는 수월하게 이길 수 있다.

“오늘 느낌 좋은데? 성낙기를 굳이 오래 세워둘 필요 없겠어.”

“와일드카드처럼 6회에 내리시게요?”

“그렇지. 80구 내외만 던지게 하고 불펜으로 가도 될 것 같은데?”

“이번 회에 점수를 더 뽑으면 충분하지만 3점 차이로는 좀…….”

“불안하다는 얘긴가?”

“불펜이 무적은 아니라서요. 야를린 가르시아의 ERA도 2점대입니다.”

“좋아. 딴은 그렇군. 상황을 봐가면서 결정하자구.”

알렉스 비토 감독과 셜리번 투수 코치는 성낙기를 언제 내려야 할까를 의논했다. 빨리 내릴수록 4차전에 투입이 가능하기 때문.

9회까지 던져도 삼 일 쉬고 5차전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4차전은 고작 이틀을 쉴 뿐이다. 에이스를 최대한 아껴야만 하는 명제가 그들에게는 있었다.

물론, 72시간이면 0인 체력도 풀로 차는 스탯을 지니고 있기에 걱정은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낙기만의 비밀이다.

***

“오, 성낙기 정말 미쳤구나. 어떻게 저런 퍼포먼스가 가능하지? 5회까지 퍼펙트라니. 안타는 물론이고 볼넷 하나도 없는 경기를 할 줄이야.”

“아빠 말씀대로 퍼펙트하네요. 5회 말까지 삼진이 13개에 휴… 그 흔한 외야 플라이조차 없어요.”

“정말 마이애미는 보물을 건졌구나. 올 시즌 초만 해도 과잉 계약이니 뭐니 말들이 많았는데 이젠 그런 말이 쑥 들어갔어. 23승에 ERA 1.14에 삼진이 자그마치 323개니 할 말이 없겠지.”

“삼진이 많기는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기록엔 못 미쳐요. 랜디 존슨만 해도 372개의 기록을 갖고 있죠. 1위는 놀란 라이언의 383이고요.”

“알렉스 비토 감독이 성낙기의 체력을 감안해서 6, 7회에 내린 경우가 상당히 많았지. 아마 그래서 삼진 기록이 줄었을 거다.”

“여하튼 낙기 씨는 사람을 여러 번 놀라게 하는군요. 오늘은 1회에 98마일을 던졌어요.”

“흠, 아경아.”

“네?”

“너, 성낙기라는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니?”

“성낙기요? 그야, 훌륭한 투수이고 앞으로 전설이 될 사람이죠.”

“아니, 그런 거 말고 그… 남자로 여긴 적은 없었니?”

“아하하, 아빠도 참. 낙기 씨랑 제 나이 차가 자그마치 다섯 살이에요.”

“뭐, 어때. 남들은 7, 8년 차이도 많던데. 특히 스포츠 스타들은 그런 경우 많잖아. 축구 선수 기선용과 한예진을 봐라. 8년 차이잖냐.”

“곤란하게 하시네요. 저희들 아직은 그런 사이 아니에요.”

“아직은……? 그럼 앞으로는 그럴 수 있다로 들리는구나. 흐흐, 애들 봐라. 뭔가가 있긴 있군. 네가 미국에 자주 갈 때부터 낌새는 있었지만 말이야.”

“아이, 참, 아빠. 오늘따라 짓궂으세요.”

삼호 그룹 회장실에서 김현철 회장과 김아경은 야구 외적인 대화까지 나누는 중이다. 성낙기는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자기들끼리 성낙기를 사위, 혹은 연인쯤으로 생각하는 분위기.

아직 그들은 장하연의 존재를 모르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이겠지만.

성낙기는 6회에 안타 하나를 맞고 일찌감치 마운드를 내려갔다. 퍼펙트가 깨진데 다가 불펜 투수들이 싱싱하다.

FA로 온 사무엘과 데일 카론이 건재하고 팬 파일러는 성낙기의 도움으로 제구가 잡힌 뒤로 승승장구를 거듭, 2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마무리는 가끔 블론 세이브가 있었지만 야를린 가르시아까지 있으니 7, 8, 9의 3회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는 되지 않는다. 4:0으로 앞선 7회 말에 데일 카론은 자그마치 스리런 홈런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7회에 4:3이 되어버렸고 알렉스 비토 감독은 당황했다.

“타임!”

“아, 투수를 바꾸는군요. 팬 파일러가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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