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150화 디비전시리즈-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
디비전시리즈는 세인트루이스의 홈에서 열렸다.
1, 2차전은 세인트루이스의 홈에서, 3, 4차전은 마이애미에서 열리게 되고 그래도 승부가 나지 않을 시, 다시 세인트루이스의 홈으로 가게 된다. 경기장은 당연히 만원이었다.
“마이애미 애들, 뭐 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왔나. 3차전에서 끝내고 푹 쉬게 해주자.”
“오늘 선발은 호세 우레나야. 우리 타선이면 5, 6점은 나지. 조단 힉스가 넉넉잡고 3점 안으로만 막아도 무조건 승리야.”
“맞아, 마이애미는 결국 성낙기의 원맨쇼로 올라온 팀이거든.”
“지금 마이애미 따위에 연연할 때가 아니야. 우리 상대는 워싱턴이거든. 어서 스트라스버그와 브라이스 하퍼를 봤으면 좋겠어.”
세인트루이스의 팬 몇이 나누는 대화처럼 홈구장 팬들은 마이애미 말린스라는 팀을 깔보는 빛이 역력했다. 성낙기라는 투수가 엄청난 활약을 한 덕에 뽀록으로 올라온 팀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한마디로 성낙기가 마운드에 서지 않는 경기에선 언제든 이길 수 있다는 의미.
내셔널리그의 특성상, 투수가 타격까지 하게 되니 성낙기가 마운드에 서는 날은 타격을 겸하게 된다. 성낙기는 중요한 경기에서 결승타를 날리는 투수였다.
그런 투수가 없는 날은 투타의 강함이 사라진다는 판단. 딴은 일리가 있는 생각이지만 야구가 어디 그런가.
한 투수가 아무리 잘 던지고 잘 쳐도 다른 팀원들이 받쳐주지 않으면 말짱 황이다.
혼자 잘 쳐서 루상에 나가도 위에 나오는 타자의 안타가 없으면 점수로 연결되지 않고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모든 타자를 삼진으로 잡을 순 없다.
땅볼 타구를 놓쳐도, 플라이볼을 안타로 만들어줘도, 마운드의 투수는 순식간에 별 볼 일 없는 투수로 전락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잘 던지고 잘 쳐도 팀원들의 도움이 없으면 그는 패전투수가 되는 것. 그러므로 세인트루이스 팬들의 낙관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성낙기 외의 선수들이 무기력했다면 와일드카드를 따내지는 못했을 것이기에.
***
경기가 시작되었고 호세 우레나가 마운드에 섰다. 잔뜩 긴장한 모습. 수만 명이 모인 세인트루이스 팬들의 함성에 주눅이 든 모습이다.
호세 우레나는 성낙기가 마이애미에 입단하기 전, 에이스 역할을 해왔으나 큰 경기 경험은 없었다. 그가 에이스로 활약하는 동안, 마이애미는 와일드카드 근처도 가지 못했으므로.
그래서 오늘의 등판은 호세 우레나에게 가장 큰 경기다.
세이트루이스의 1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경기장 안에 일제히 함성이 쏟아졌다. 호세 우레나는 심호흡을 한 뒤, 포심패스트볼을 뿌렸다.
팡.
볼.
94마일의 공, 하지만 바깥쪽으로 높게 들어왔다.
팡.
볼.
2구로 던진 포심패스트볼 역시 볼. 이렇게 되면 3구는 변화구를 던지기 어려워진다. 특히 커브 같은 경우는 더 그렇다.
그나마 가장 나은 슬라이더를 던질 수는 있겠지만 포심보다 스트라이크 확률이 줄어든다. 그럼에도 리얼무토는 슬라이더 사인을 냈다.
팡.
볼.
그러나 또 볼. 첫 타자가 나오자마자 스리볼이다. 1, 2구로 던진 포심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였다면 타자는 3구로 던진 슬라이더를 공략했을 것이다.
삼진을 당한 수는 없기에.
하지만 지금은 느긋하게 기다린다. 볼 카운트가 타자의 대응을 다르게 만들었고 투수를 초조하게 했다.
‘젠장, 기다리기 하는 거야?’
팡.
“스트라이크.”
4구는 볼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갔다. 그럼에도 타자는 선뜻 배트를 내지 않는다. 경기의 중요도 때문인가? 신중하다. 어떻게든 1루에 나가겠다는 의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팡.
볼.
5구로 던진 포심패스트볼마저 바깥쪽으로 빠졌고 첫 타자가 볼넷으로 나갔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호세 우레나는 난조에 빠졌고 볼넷 두 개와 장단 3안타와 에러를 곁들여 대거 6실점. 1회에 세인트루이스는 콜드게임을 시키려는 듯 인정사정없이 몰아쳤다. 알렉스 비토 감독은 답이 안 보이는지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
“이래서는 경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가 걱정이군.”
알렉스 비토 감독은 심란한 얼굴로 마운드의 호세 우레나를 바라보았다. 1회에 2선발이 무너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그다.
심지어 성낙기가 등장하기 전엔 팀의 에이스였다.
“큰 경기라 부담이 되었나 봅니다. 스윙맨으로 갈까요?”
“글쎄, 1회에 투수를 바꾸면 9회까지 버틸 재간이 없을 텐데. 그렇다고 필승조를 낼 수도 없지. 내일 경기를 위해선 아껴둬야 하니까.”
“그야, 그렇지만 너무 두드려 맞아서 말입니다. 팀 사기에도 악영향이 올 테고.”
6점을 내준 뒤, 리얼무토는 마운드로 올라갔다. 셜리번 코치와 함께 올라온 후로 1회에만 두 번째다. 그가 본 호세 우레나는 이미 넋이 나가 있다.
그런 그를 다독여줄 사람은 자신뿐이다. 어떻게든 그를 일깨워서 더 이상의 실점은 막아야 한다.
“이봐, 호세. 원아웃에 2루야. 이번 위기만 넘기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와.”
“후우, 내 공이 다 읽히고 있어. 타이밍도 너무 잘 맞고.”
“괜찮아,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이야. 구위는 나쁘지 않아.”
“구위가 괜찮은데 왜 맞는 거지? 볼 배합이 읽힌 거 아닐까?”
“뭐, 그럴 수도 있고.”
“리얼무토. 방금 그 말은 무책임하지 않아? 난 지금 심각하다고. 더 이상 맞으면 내년 연봉 협상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거야.”
“야! 호세. 이미 6점을 내줬는데 뭐가 두려워서 그래. 그냥 막 던져. 치면 치는 거고 못 치면 못 치는 거지. 얼빠진 얼굴 그만 하고 던지라는 곳에 전력으로 던져, 알겠어?”
“…아니,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니가 답답하게 만들잖아. 닥치는 대로 던지란 말이야!”
리얼무토는 호세 우레나에게 소리친 후, 마운드를 내려왔다.
리얼무토에게 막말을 들었다고 느낀 호세는 리얼무토 뒤에서 뭐라고 구시렁거렸다. 그런 호세 우레나의 눈빛은 리얼무토가 마운드에 올라오기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언가 오기 같은 게 생긴 듯, 속에서 올라오는 화를 삭이는 모습이다.
리얼무토가 포수 자리에 앉아 커브 사인을 냈고 호세 우레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커브를 던졌다.
‘억, 뭐야.’
타자가 당황한 얼굴로 배트를 툭 갔다 댔고 호세 우레나는 자기 앞으로 오는 공을 잡아 2루로 송구했다. 주자는 이미 스타트를 끊고 되돌아오다가 2루에서 객사, 2루수는 1루로 송구했다.
“아웃!”
운 좋게 병살을 시켰고 그렇게 1회가 끝났다. 리얼무토의 화 돋우기가 먹혀서 그 정도에서 끝난 거라고 봐도 무방한데, 호세 우레나는 더그아웃에 와서도 리얼무토를 곁눈질하며 미간의 주름을 접었다.
아직 덜 풀린 눈치. 하지만, 성낙기가 생각하기에 리얼무토가 그러지 않았다면 호세 우레나는 더 시달렸을 것이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던진 커브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브레이크가 걸렸고 타자는 타이밍을 잃고 힘이 실리지 않은 타구를 쳐냈다.
오히려 호세는 리얼무토에게 감사해도 부족하다.
***
경기는 호세 우레나가 4회에 추가 2실점을 하고 강판됐고 추격조 불펜투수들이 나머지 이닝을 나눠 맡았으나 3:12로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추격조들이 계속 털렸고 세인트루이스의 조단 힉스는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고 내려갔다. 뒤이어 올라온 투수에게 2점을 뽑아냈으나 거기까지였다. 8회 말에 투입된 마무리 투수는 9회까지 던지며 경기를 끝냈다.
경기 전에 대략 예상한 결과였지만 이토록 큰 스코어 차이로 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마이애미 팬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이건 좀 심각한데… 아무런 힘도 못 써보고 널브러졌잖아.
-조단 힉스는 정말 잘 던지네. 유망주에서 에이스로 컸어. 시리즈에 또 나올 공산이 커.
-추격조라지만 해도 너무한다. 무차별적으로 두들겨 맞았네.
-세인트루이스 타격감만 오르게 만들어줬어. 예열 완료.
-내일 성낙기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이 가겠어. 안타 맛을 안 본 타자가 없잖아.
-야야, 오늘은 포기하고 가는 작전이야. 내일부터가 진짜 디비전시리즈지.
-내일 성낙기가 해결해 주지 못하면 바로 나락이야.
-설마. 성낙기는 이제 신급으로 올라섰어. 세인트루이스쯤이야, 발라먹을 준비가 끝났지.
그에 반해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이번 시리즈를 축제로 여기는 분위기다.
“오늘 깔끔했어. 8회에 케리가 2점을 내준 것은 옥의 티였지만 전반적인 로케이션은 좋았어.”
“축제가 시작되었는가.”
“3연승으로 올라가자!”
“내일 마이애미 에이스가 나오는 날이야. 근데 이 투수가 쉽지가 않아. 자그마치 23승을 거둔 투수지. 사이영상은 애초에 맡아 놨고.”
“방어율도 어마어마해. 0점대가 아닌 것에 감사해야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투수지. 이건 괴물에 가까운 성적이야.”
“흥, 그건 정규리그이고 이건 디비전시리즈야. 엄연히 투수들이 느끼는 부담도 다르고 타자들의 집중력도 다르지. 정규리그에 잘 던지다가 시리즈에 올라와서 털리는 투수들도 많아.”
“글쎄, 성낙기라는 투수는 그런 레벨이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혹시 마이애미 팬이냐? 그깟 동양 놈에게 우리 타자들이 당할 것 같아?”
“잭 플래허티라면 마이애미 타선을 충분히 요리할 거야. 팽팽한 승부가 예상 되는군.”
세인트루이스의 팬이 언급한 잭 플래허티는 전반기에 부상으로 빠졌다가 후반기에 연전연승으로 9승에 ERA 1.85의 성적을 거둔 투수다.
출전이 많지 않아 저 수치가 투수의 실력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긴 어렵지만 지금의 기세라면 성낙기와 팽팽한 승부가 예상된다는 것.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겠지만 세인트루이스 팬들이 기대를 걸 만한 선수임은 분명했다.
***
성낙기는 경기 전, 불펜에서 구위를 점검하고 있었다. 채드 왈라치가 공을 받았다. 사흘 전의 투구로 인한 체력 소모는 이미 풀로 찬 상태였다.
96마일에 이르는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 등의 변화구를 골고루 던지면서 부시스타디움에 모인 관중들을 보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인산인해였다.
[디비전시리즈 데뷔를 축하합니다]
[체력이 97로 향상됩니다]
[세기의 강속구가 93(98마일)으로 오릅니다]
[투심의 제구력이 90으로 오릅니다]
“웃.”
성낙기는 공을 던지다 말고 눈앞에 떠오른 글귀를 읽었다. 디비전시리즈 데뷔전이라고 퍼주는 건가? 그렇게 던져도 잘 오르지 않던 체력과 포심패스트볼의 스피드가 올랐다.
특히, 포심패스트볼의 스피드는 비약적이다. 98마일이면 157.7km의 어마어마한 수치.
이 정도면 가히 강속구로 불릴 만했다. 성낙기가 던지기를 멈추자 채드 왈라치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성낙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음… 있어. 아주 좋은 일이 있지.”
“좋은 일? 하하, 그게 뭔데?”
“말해줘도 모를 거야. 그런 게 있어. 자, 포심패스트볼 던질 테니까 잘 받아봐.”
“OK!”
파앙!
“……!”
채드 왈라치는 미트에 들어온 포심패스트볼에 놀랐다. 방금 전까지 던지던 그 구위가 아니다. 이건 마치 포탄 하나가 미트에 들어온 기분이다. 그만큼 공의 위력이 출중했다.
“…너, 도대체 지금 뭘 던진 거야?”
채드 왈라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성낙기에게 물었다. 진화하는 성낙기를 여러 번 봐왔지만 이런 공의 스피드는 너무 급작스럽다. 2마일이 증가한 공은 채드 왈라치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