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149화 디비전시리즈-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
리얼무토에게 물동이와 샴페인 세례가 이어졌다.
내셔널리그 4강은 2003년 와일드카드로 진출하여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해 버렸던 기적의 해 이후, 처음이었다.
더구나 와일드카드 결정전으로 4강에 안착한 상황도 같다. 마미애미 말린스의 팬들이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이봐, 옷이 다 젖었잖아.”
“지금 옷이 문제야. 히어로가 그렇게 나약하면 안 되지.”
“들이부어!”
“야아, 그만! 옷 찢어졌어.”
“그라운드에 눕히자. 자꾸 도망가서 안 되겠어.”
리얼무토는 끝내기 한 방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평소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단의 리더를 자처하는 그이지만 오늘은 그런 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베테랑은 그런다 치겠지만 이제 막,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새까만 신입도 리얼무토의 머리 때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급기야 관중들도 그라운드에 난입했다. 아저씨 여럿이 리얼무토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고, 경기장 보안 요원들이 잡으려고 달려갔다.
마이애미 관중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액션을 지켜보며 즐거워했다.
이윽고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리얼무토는 더그아웃 앞에 마련된 인터뷰 장소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상의는 찢어졌고, 갈색 머리칼은 물에 젖어 머리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선수들의 세리머니가 힘들었던 듯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리얼무토 선수, 축하드립니다. 대단한 홈런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사실 운이 좋았어요.”
“바깥쪽 강속구를 밀어 쳤는데 홈런이 될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생각 못 했습니다. 워낙 좋은 투수고 시즌 내내 성적이 별로 안 좋았기 때문에요.”
“홈런을 친 구질은 포심패스트볼이었고 스피드는 98마일이었는데 구질을 미리 짐작하셨나요?”
“대략은… 그랬습니다. 포심이 워낙 좋은 투수여서 그 공으로 승부할 거라고 생각했죠.”
“모레는 세인트루이스와 디비전시리즈가 열리는데 한 말씀 부탁합니다.”
“컨디션 관리를 잘해서 꼭 이겨보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선다는 건 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와일드카드로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전적이 있을 정도로 단기전에 강합니다. 계속 지켜보신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런가요? 이상, 리얼무토 선수였습니다.”
기자는 리얼무토의 말이 길어지자, 서둘러 인터뷰를 끝냈다. 마이매이 선수들은 라커룸에 들어가서도 떠들썩하게 승리를 자축했다.
***
“성낙기 선수? 저 엘리나 샤먼인데요. 기억하시겠어요?”
“기억하죠.”
“오늘 경기 승리 축하해요. 아주 잘 던졌어요.”
“고마워요.”
“맥주 한잔 할래요?”
“맥주… 좋죠.”
“그럼, 숙소 뒤쪽에 있는 펍으로 내려오세요.”
재미있는 여자다. 전에 경기장에 난입해서 웃음을 준 이후로 딱 한 번 만났었다. 그녀는 정말 미구 국가 대표 육상 선수였고 그중에서도 유망주였다.
성낙기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고백했는데 자기 할머니가 한국계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동양인의 피가 섞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격도 활발했고 자기주장도 강했다. 그날도 생맥주를 한 잔하고 헤어졌었지. 엘리나가 본 성낙기는 말 그대로 괴물투수. 자기 집안이 야구광인데 성낙기 같은 투수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날이 갈수록 공이 빨라지냐며 팔뚝을 만져보기도 했다.
유쾌한 여자였다.
“여기예요.”
펍에 들어가자 한쪽 구석에서 엘리나가 손을 흔들었다. 밤이 이슥해서 펍은 거의 문 닫는 분위기였다. 때문에 손님도 한두 팀밖에 없었다.
엘리나는 미리 주문을 해 두었고 성낙기가 가자마자 맥주가 나왔다.
“오늘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승리 축하드려요.”
“후우, 간신히 이겼어요. 9회 말에 끝내기가 나올 줄은 몰랐거든요.”
“성낙기 선수가 오기 전엔 리얼무토 선수가 마이애미 타선을 이끌다시피 했죠. 저는 홈런을 기대했어요.”
“오, 저보다 더 아시는군요.”
엘리나가 대답 대신 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본다. 밝은 갈색의 긴 생머리를 뒤로 동여맨 자태가 꽤 곱다. 언뜻 보면 육상 선수와는 거리가 있지만 자세히 보면 넓은 어깨와 팔 근육이 일반인과 다르다.
물론, 허벅지는 탄탄하기 그지없다. 얼굴도 훈련으로 적당히 그을려서 그야말로 건강미가 물씬 풍기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전에도 궁금했는데 그날, 그라운드엔 왜 들어왔죠?”
“하하, 그거요? 왠지 집에 그냥 가기엔 심심하고 장난기가 발동했어요.”
“그저 장난으로 경기를 스톱 시켜요?”
“왜요, 관중들도 무지 좋아했잖아요. 가끔 그런 이벤트도 활력을 주는 요소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성낙기 선수를 그라운드에서 직접 만나고 싶은 희망도 있었고요. 어쨌든 그게 인연이 되어서 오늘 이 자리에 같이 있은 거 아니겠어요?”
“딴은 그렇네요. 뭐, 팬이 그렇담 그런 거겠지요.”
“피, 맥 빠지는 소리.”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참았어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그러다간 몰매 맞게요. 대신 응원석에서 열심히 응원했어요. 날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아주 흥미로웠고요.”
엘리나는 생맥주를 손에 쥐더니 목이 마른 사람처럼 벌컥벌컥 들이켰다.
위 아래로 움직이는 목젖이 그녀의 생동감을 대변해 주는 듯 섹시하다. 성낙기도 잔을 들어 엘리나의 잔에 부딪고는 원샷을 했다.
***
“세인트루이스는 뉴욕 메츠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팀입니다. 작전에 능하고 스몰 야구로 상대를 괴롭힐 줄도 알죠. 그렇다고 거포가 없는 거도 아니고요. 아주 까다로운 유형입니다.”
“그래서 더 문제지. 호세 우레나가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야. 워낙 시즌 내내 들쭉날쭉해서 안정감이 떨어져.”
셜리번 투수 코치의 말에 알렉스 비토 감독의 대답이 왠지 힘이 떨어져 있다. 와일드카드 전에서 성낙기라는 에이스를 써 버렸기 때문에 이틀 후의 세인트루이스 1차전엔 호세 우레나가 나서야 한다.
12승 8패 ERA 3.86.
작년에 비해 모든 수치가 떨어졌다.
“샌디 알칸타라는 어떨까요. 전반기엔 꽤 좋은 모습이었습니다만.”
“그렇지. 전반기 성적을 생각하면 샌디가 2선발이겠지. 하지만, 후반기에 ERA가 무려 4.55야. 전반기의 3.12에 비하면 폼이 확 떨어졌지.”
“처음으로 풀타임을 뛰어서 지쳤을 겁니다. 세인트루이스와의 경기에 만약 나선다면 일주일만의 경기가 되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나면 구위가 달라질 거라고 봅니다.”
“그럴 수도 있지. 지금 당장은 호세 우레나가 맞아.”
“강하게 맞붙을 수 없다는 게 핸디캡이네요.”
“어쩔 수 없지. 저쪽에선 아마 조단 힉스가 나오겠지. 1차전은 지더라도 전력 소모를 최대한 줄여야 해. 성낙기가 나오는 2차전부터 승부를 거는 것이 낫겠어.”
세인트루이스의 에이스로 성장한 조단 힉스는 102마일의 강속구를 던지는 신성이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강한 공을 뿌리는 투수. 17승 5패에 ERA 2.11로 사이영상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성적을 내고 있다.
그런 투수와 호세 우레나의 대결이니 아무래도 기대감이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약 팀이 강팀을 이기는 이변이 늘 일어난다.
마이애미 타자들이 조단 힉스의 공을 공략하지 말라는 법이 없고 그날, 투수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결과는 아무도 모르게 된다.
“내일은 가볍게 회복 훈련을 하고 컨디션 조절에 만전을 기해야 해. 어차피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가려면 체력을 아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몸 푸는 정도로만 훈련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같은 시각, 세이트루이스의 맨시니 감독은 단장인 케이만과 대화 중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한결 나았다.
마이애미가 올라왔지만 뉴욕 메츠와의 경기는 생각보다 격전이었고 필승조 불펜 투수들도 어깨를 달궜다. 반면, 세인트루이스 투수들은 휴식을 취했다.
디비전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다보면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던진 20~30구의 투구는 마이애미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1차전엔 조단 힉스로 충분한데 2차전이 문제군. 성낙기라는 투수가 워낙 강해.”
“강하죠. 괴물 같은 투수가 되어버렸어요. 솔직히 말하면 공략이 어려운 수준입니다.”
케이만 단장의 말에 맨시니 감독이 동조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2차전이 문제다. 성낙기는 2차전을 던진 뒤 5전 3선승제의 디비전시리즈에 다시 한번 등판할 가능성이 높다.
“2차전은 제대로 던진다고 봐야 해. 오늘 던졌지만 6회에 내려갔지. 2차전을 위한 강판일 거야. 하지만, 2차전에 던지고 4차전에 또 던질 수 있을까? 던진다고 해도 어깨에 무리가 오겠지. 내 말은 마이애미와의 경기는 무조건 4차전에 끝내야 된다는 거야. 5차전까지 가면 성낙기가 거의 정상 컨디션으로 나올 테니까.”
“맞습니다. 성낙기만 아니라면 나머지 투수들은 언제든 두들길 수 있습니다. 단장님 생각이나 제 생각이 같군요. 마이애미는 후반기 들어서 뉴욕 메츠와의 2위 싸움 때문에 총력을 기울여 왔죠. 체력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죠.”
“잘 봤어. 타자들의 타격 사이클도 그리 좋아보이진 않더군. 불펜 투수들도 상당히 많은 투구수를 기록하면서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이겼고 말이야.”
“사실, 마이애미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마이애미를 이긴 뒤, 콜로라도와 워싱턴의 승자와의 게임이 문제죠. 아마도 워싱턴이 올라오겠죠. 바로 그때를 위해서 마이애미전을 4차전 안에 끝내겠습니다.”
“역시, 맨시니야. 믿겠네.”
***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제대로 던져본 적이 없어. 포심과 슬라이더 위주였는데 그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쳐냈지. ERA도 형편없어.”
“ERA가 얼만데?”
“4.36. 말을 꺼내기도 부끄러운 수준이지.”
호텔 룸안엔 호세 우레나와 샌디 알칸타라, 리얼무토와 채드 왈라치 등이 모여 있었다. 이렇게 모인 이유는 내일 있을 세인트루이스전 때문이었는데 호세 우레나가 그다지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한 때문이기도 했다.
거포가 많은 팀엔 호세 우레나의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 효과적인데, 세인트루이스는 상대적으로 교타자가 많아서 승부구로 던지는 변화구를 커트해 버리기 때문에 긴 승부로 가기 일쑤였다.
교타자를 상대로 풀카운트 싸움을 몇 번 하고 나면 자신감이 떨어지는 동시에 알게 모르게 구위마저 떨어지게 된다. 호세 우레나의 걱정 섞인 말에 리얼무토가 반응을 보였다.
“시즌 때와 볼 배합을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리얼무토의 말에 호세 우레나가 호기심을 보였다.
“슬라이더 대신 커브를 적극 활용해 보자. 포심 95마일에 커브의 조합이면 타이밍을 빼앗을 수 있어.”
“글쎄, 커브의 제구가 잘 잡히지 않아서 문제지. 지금껏 왜 적극적으로 던지지 않았겠어.”
호세 우레나가 리얼무토의 말에 약간의 회의가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내 생각도 리얼무토와 같아. 주자가 없을 때는 활용 가능한 옵션이야.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지 않더라도 타자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기엔 적격이야.”
옆에서 듣고 있던 성낙기도 리얼무토의 의견에 동의했다. 호세 우레나가 성낙기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마치, 성낙기까지 저렇게 말한다면 인정하겠다는 듯한 몸짓이었다. 그들은 밤늦도록 시즌 때 승부를 겨뤘던 세인트루이스 타자들의 장단점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