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148화 와일드카드 결정전 3
“와, 성낙기 위기네. 아메드라는 선수 엄청 빠르거든. 리얼무토가 잡아낼 수 있을지 몰라.”
“뛴다고 보는 거야?”
“내가 감독이라면 무조건 도루를 감행하겠어. 정상적인 방법으로 흔들릴 성낙기가 아니야.”
한국의 삼호슈퍼스타즈 선수들은 호텔 로비에 모여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세화스쿼럴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일정에 다소 여유가 있다.
시즌 중의 체력 소모로 회복 훈련을 하면서 플레이오프를 기다리는 상황. 한때, 동료였던 성낙기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이들에게도 몹시 흥분되는 일이었다.
큰 기대 없이 미국에 건너간 선수가 팀의 에이스를 뛰어넘어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한 것부터가 믿기지 않았다.
공성진과 구문철, 안민기 등 투수조들은 더욱 성낙기의 투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자신들도 곧 가을 야구의 마운드에 서야 한다.
“일단 견제구를 두어 차례 던져 줘야지. 역모션이 걸리면 의외로 쉬운 게 견제사야.”
공성진이 화면을 보면서 말했다. 대다스의 선수들이 공성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견제사를 가장 많이 솎아낸 선수가 바로 공성진 투수였기 때문이다.
한 시즌에 무려 9차례나 1루 주자를 없애 버렸으니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말을 들은 듯 성낙기는 1루에 연달아 견제구를 던졌다.
***
마이클 콘포토는 나오자마자 번트 자세를 취했다. 그대로 번트를 대려는 것인지 페이크 번트 앤 슬래쉬(Fake bunt and slash)를 하려는 것인지는 헷갈렸다.
좀체 번트를 대지 않는 잭 스나이프 감독의 성향을 생각하면 후자가 맞고 성낙기의 구위를 생각하면 전자가 맞다.
팡.
휘잉.
“스트라이크!”
“아, 1루 주자 2루로 뜁니다. 초구에 도루를 감행하는 아메드 오사리오! 리얼무토 포수의 송구가 2루로 날아갑니다. 아웃이냐! 세이프냐! 아, 2루심이 세이프를 선언합니다. 아메드의 도루 성공!! 대단한데요?”
“의외입니다. 초구에 2루를 훔치다니. 리얼무토 포수의 송구가 좀 높았어요. 타이밍은 사실 아웃 타이밍이었거든요. 성낙기의 구위를 감안한 뉴욕 벤치가 승부를 걸었네요. 이제 내야 땅볼 하나면 3루로 진출하죠. 1점을 선취하겠다는 작전입니다.”
‘제기랄,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초구에 뛸 줄은 몰랐어.’
리얼무토는 높은 송구를 한 뒤 자신을 질책했다. 공을 제대로 쥐지 못한 상태에서 송구를 했고 아메드를 2루에서 살려줬다. 노아웃 2루의 위기.
이제 안타가 아니라도 1점을 빼앗길 수 있다. 성낙기는 마운드에서 팔을 흔들며 걱정 말라는 몸짓을 리얼무토에게 했다.
따악.
파울.
따악.
파울.
볼. 볼.
투 볼 투 스트라이크. 주심의 존은 여전히 좁다. 라이징패스트볼을 파울 타구로 만들고 슬라이더와 커브를 골라낸 타자. 엄청난 집중력이다. 연달아 던진 변화구를 참아낼 줄이야. 성낙기는 잠시 고민했다. 리얼무토의 사인은 퀘이크볼이었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오, 저 볼을 보십시오. 한가운데로 날아오다가 마치 그림처럼 아래로 꺾입니다. 변화구를 연달아 골라냈지만 마지막 포크볼에 배트를 휘두르고 마는 마이클입니다.”
캐스터의 말처럼 성낙기는 포크볼을 선택했고, 예리한 각에 타자는 중심이 무너지면서 헛스윙.
[포크볼의 제구력이 91로 오릅니다]
덤으로 보너스까지. 1회에 병살타를 친 도미닉이 타석에 들어섰고, 성낙기는 초구에 체인지업을 던졌다. 길게 끌수록 불리하다고 생각한 도미닉의 배트가 바로 나왔다.
따악.
“아웃!”
“아웃!”
투수 옆을 스치는 라인드라이브 타구에 성낙기가 몸을 날렸고 타구는 글러브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스탯 중 하나인 짐 캇의 수비력이 유감없이 발현됐다.
자신이 아이스하키의 골리라도 되는 양, 공이 자신의 범위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되면 아낌없이 몸을 던졌던 짐 캇. 193cm 100kg의 거구였던 캇의 별명은 빅 캣이 아니라 새끼 고양이 키티(Kitty)였다.
바로 그 수비력이 성낙기의 몸을 날리게 했고 타자는 아웃, 성낙기는 넘어졌다 일어나며 2루로 공을 던졌다.
“와아, 신기를 보여주네. 3루로 뛰려다가 아웃되었어. 아메드 웃기네. 도루까지 했는데 2루에서 비명횡사라니.”
“하여튼 우리 성낙기는 못 하는 게 없어. 타격이면 타격 수비면 수비, 강심장에 언제나 여유가 넘치지.”
“정말 도미닉은 돌아버리겠다. 1회에 이어 연속 병살타를 쳤어.”
“하하, 만약 4연속 병살타라도 치면 정말 기가 막히겠다. 이렇게 위기를 벗어나는군.”
“경기 끝나면 성낙기 헹가래라도 쳐주자.”
“아서, 그러다 다치면 넌 팬들에게 죽은 목숨이야.”
3루 더그아웃 위의 관중 몇이 경기를 지켜보며 대화했다. 일행인 듯한 그들은 모두 성낙기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마이애미에서 얼마나 인기 있는 존재인지 느끼게 해주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4회 초가 끝났다.
***
위기를 벗어난 뒤, 기세를 탄 마이매미는 4회 말에 타석에 들어선 가렛 쿠퍼의 안타와 브라이언 앤더슨의 홈런으로 2점을 앞서갔다.
신더가드가 여차하면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주자를 1루에 두고 뜻하지 않은 홈런을 맞은 터여서 교체 타이밍을 잃었다.
디그롬은 4회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갔고, 5회 말엔 신더가드가 스윙맨으로 마운드에 섰다. 성낙기는 6회에 뉴욕 메츠의 하위 타선을 맞아 내야안타와 야수선택이라는 보이지 않는 에러로 원아웃 1, 2루의 위기를 맞았고
외야 뜬공을 우익수가 놓치는 바람에 싹쓸이 2루타를 허용했다. 그렇게 2실점을 내주고 말았는데 중요한 경기의 실책에 관중들의 아쉬움은 극에 달했다.
“누가 수비를 저렇게 하라고 시켰지? 내 마이애미 경기 5년 출석하면서 저런 거지 같은 에러는 또 처음 본다. 평범한 뜬공을 뛰어 들어오다가 키를 넘기게 만들다니.”
“루이스 브린슨 요새 왜 저러지? 원래 수비 요정이었잖아.”
“수비 요정? 요정씩이나 되는 놈이 저러는 거라고?”
“아휴, 다 이긴 게임인데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네. 뉴욕 메츠도 참 징글징글하다.”
성낙기는 감독의 의도대로 6회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리고 경기는 2:2 동점인 채로 9회까지 이어졌다. 양 팀 모두 필승조 불펜을 마운드에 올렸다. 9회 초를 실점 없이 막은 마이애미는 9회 말 마지막 공격만을 앞두고 있었다.
공교롭게 9회 선두 타자는 6회의 에러로 2점을 헌납하게 만든 루이스 브린슨.
-감독이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오늘 지면 끝인데 성낙기를 왜 아껴?
-알렉스가 가끔 미친 짓을 해. 와일드카드가 날아가는 판국에 디비전 시리즈 준비하고 자빠졌어.
-저러다 혹시 지면 팬들한테 무슨 욕을 먹으려는지 생각만 해도 암담하네.
-9회 말에 점수 못 내면 연장인데…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저런 돌대가리로 어떻게 감독을 맡았을까. 지기만 해봐라.
-성낙기가 타격도 잘해서 결승타를 여러 번 날렸는데 6회에 빼 버리니 질질 끌려가잖아.
포털 사이트는 알렉스 비토 감독의 선수 기용법에 의문을 품은 마이애미 팬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9회까지 올라오는 신더가드로부터 점수를 낼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9회 말, 마이애미의 첫 타자는 리얼무토였다.
수비와 프레이밍, 볼 배합에 강점이 있지만 타율이 2할 초반대인 것이 옥의 티인 선수. 홈런도 12홈런에 그쳤기에 이번 시즌은 평균 이하의 성적이다. 그걸 잘 아는 리얼무토는 타석에 들어서기 전부터 굳은 표정으로 배트를 닦았다.
“리얼무토, 경기 시간이 길어지고 있어. 호텔에 가서 좀 쉬었으면 해.”
성낙기는 그런 리얼무토에게 은근히 압력을 줬다. 첫 타자이니만큼 어떻게든 살아나가라는 말과 다름없다. 성낙기의 농담을 평소에 잘 받아주는 리얼무토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전장에 나가는 병사에게 쓸데없는 말은 집중력을 흐리게 할 뿐이다. 싸움을 앞둔 사람에게, 너 죽으면 안 돼, 라고 말한들 뜻대로 되겠는가. 실력이 우위인 놈을 만나면 누구라도 죽는 것이다.
“너랑 농담 따먹기 할 기분이 아냐. 가만 내버려 둬.”
리얼무토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성낙기는 두 팔을 들어 어깨를 움찔하면서 다소 어이없다는 제스처를 했다. 평소엔 서로 부담을 주는 말을 나누면서 대화를 이어가고는 했었는데 오늘은 시즌의 한 경기가 아니다.
한 해의 농사를 결정하는 경기, 와일드카드 결정전이었다. 리얼무토는 비장한 얼굴로 타석에 들어섰다. 신더가드 역시 신중한 모습으로 포수의 사인을 받았다.
초구의 사인은 바깥쪽 포심패스트볼. 가장 자신 있는 구질인 동시에 타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공이다.
팡.
“스트라이크.”
“초구를 그냥 보내는 리얼무토입니다. 9회 말, 첫 타자의 부담 때문일까요. 표정이 굳어 있습니다. 긴장한 듯 침을 삼키는 모습도 보이네요.”
“당연히 그렇겠죠. 9회의 공격으로 승부가 결정 날 수 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다른 경기의 열 배 정도는 되는 부담감일 겁니다. 그만큼 중요한 타석이에요. 이런 경기에서 진가를 보여 줘야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죠.”
“신중히 사인을 받는 신더가드. 제 2구 던졌습니다.”
따악!!
“아, 포심패스트볼을 밀어치는 리얼무토! 잘 맞았습니다. 공이 외야로 죽죽 뻗어갑니다. 뭡니까, 넘어가나요? 넘어갑니까! 홈런입니다. 리얼무토의 홈-런!”
“하하, 굿바이 홈런이네요. 대단합니다. 거기서 신더가드에게 홈런을 쳐내는군요.”
“관중들이 모두 일어섭니다. 우중간 펜스를 간신히 넘어가는 솔로 홈런! 이 한 방으로 와일드카드 진출권을 따내는 마이애미 말린스입니다.”
“세상에! 어마어마한 퍼포먼스네요. 투수가 누구입니까. 노아 신더가드입니다. 강속구를 그대로 밀어 쳐서 담장을 넘겨 버리네요.”
경기장은 뜻밖의 홈런에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마이애미 팬들은 모두 일어서서 환호성과 함께 마구 뛰었고, 뉴욕 메츠의 팬들은 관중석에 앉아 고개를 수그리거나 눈을 감았다. 허탈하게 웃는 이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리얼무토!! 와아아! 나가자!!”
“홈-런!”
“굿! 대단해! 리얼무토.”
마이애미 선수들은 리얼무토의 홈런이 터지자 모두 일어나 홈 플레이트로 나갔다. 리얼무토는 빠른 걸음으로 3루를 돌아 홈 플레이트 가까이에 와서 헬멧을 던지고 환한 웃음을 얼굴 가득 떠올렸다.
올해 내내 결승타 한 번 때려내지 못한 한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풀었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성낙기도 선수들과 함께 홈 플레이트에 서서 리얼무토가 들어오는 순간, 머리칼을 쥐고 흔들며 기뻐했다.
알렉스 비토 감독 또한 더그아웃에서 나와 선수들의 액션을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경기가 연장으로 갔다면 불펜 투수들의 소모가 많았을 것이고, 그렇게 상처를 입은 채로 디비전 시리즈에 나서야 한다.
피로는 누적되는 것이어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9회에 터진 홈런은 그야말로 알렉스 비토 감독에게 단비와 같았다.
경기를 내줬다면 성낙기를 이른 시기에 강판한 것까지 모두 떠안아야 할 짐이었는데 리얼무토의 한 방은 모든 숙제를 일시에 해소시켜준 의미 있는 홈런이었다.
<마이애미 말린스, 디지번 시리즈에 진출하다>
<리얼무토의 홈런이 승부를 가르다>
<이틀 후, 디비전시리즈에 도전하는 마이애미의 위대한 여정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