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46화 (146/188)

# 146

146화 와일드카드 결정전 1

성낙기의 완봉으로 마이애미는 뉴욕 메츠와의 3연전에서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남은 2연전은 물량을 쏟아부을 준비가 끝났다. 그러고 나서 치른 2연전은 1승 1패로 끝나 두 팀의 게임 차는 2경기 그대로였다.

3연전이 그렇게 끝나고 하루 휴식일이 주어졌는데 때마침 장하연이 찾아왔다. 김아경은 첫 경기 완봉을 보고 한국으로 돌아간 터였다. 오랜만에 보는 장하연은 이제 무르익은 대학생 티가 났다. 하긴, 2학년도 끝나가는 무렵이다.

“야아,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뉴욕에서 무지 멀 텐데, 힘들지 않았어?”

“힘들긴요. 오빠 어떻게 지내나 체크해야죠. 전 서희에게 부모님께 오빠 소식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거든요. 친구 좋다는 게 뭐예요.”

“엥?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넘어가요. 아우, 비행기 오래 탔더니 허리가 아프네.”

“몇 시간이나 걸렸니?”

“글쎄, 두 시간 반이면 여기 오죠. 물론 거기서 기다리고 발권하고 그런 게 더 성가신 거죠.”

“대학 생활은 잘 하고?”

“오빠도 야구 잘하는데 저도 당연히 잘 지내야죠. 요즘 공부에 푹 빠져 살았어요. 덕분에 1학기 학점도 A였고요.”

“적응 잘하는구나. 혼자 몸으로 정말 대단하다. 나야 팀 소속이니 같이 움직이면 되지만 넌 그게 아니잖아.”

“후훗, 나도 친구들하고 같이 움직이죠. 공부도 같이 하고요. 그동안 많은 애들을 사귀었어요. 처음엔 서먹했지만 잘 대해 주던데요.”

“자고로 예쁘면 동서양 가릴 것 없이 편견 없이 잘해주게 되어 있지. 그게 사람이고.”

“경기하는 거 힘들진 않아요? 오빠 너무 잘 던지던데요. 우리 과에서 내가 오빠에게 간다니까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하는 애들이 많았어요. 뿌리치고 오느라 혼났네. 가끔 믿어지지가 않아요. 서희 오빠가 메이저리그에서 이렇게나 유명해지다니.”

“나도 이럴 줄 몰랐어. 하지만 유명해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니. 너처럼 차근차근 꿈을 밟아가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지.”

“빈말이라도 고마워요.”

***

성낙기는 만나면 술을 마시고 서핑을 즐기던 김아경과 달리 장하연을 데리고는 놀이공원에 갔다. 애들이 타는 말도 타고 인형을 뽑기도 하고 범퍼카를 몰면서 서로 부딪히며 웃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갔는데도 성낙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서 사인을 해주기도 했는데 줄이 금방 불어났다.

아이들조차 성낙기를 알아보고 사인을 조르는 바람에 30분을 허비하고서야 겨우 빠져나왔다. 같이 간 장하연에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

한국이라면, 성낙기 일반인과 열애 중, 이라는 기사 정도는 떴을 거다. 그렇게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둘은 다음을 기약했다.

<성낙기 21승을 거두며 마이애미를 부동의 2위로 견인>

<엄청난 퍼포먼스로 뉴욕 메츠전 완봉승을 따낸 코리아의 철인, 사이영상에 도전한다>

<마이애미에 이토록 압도적인 투수는 없었다>

마이애미의 지역 커뮤니티는 연일 성낙기의 활약에 감탄을 표했다. 처음 시즌을 시작할 때만 해도 2억 5천만 불이라는(옵션이 붙은 금액이지만) 어마어마한 계약을 한 데릭 구단주를 욕하는 팬도 많았는데, 이젠 그런 말이 쏙 들어갔다. 오히려 잘한 계약이라며 오스틴 단장과 데릭 구단주를 칭송했다.

***

“이제 와일드카드뿐 아니라 디비전 시리즈까지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어. 야수 쪽은 부상을 조심해야 하고 특히 투수들 어깨를 쉬게 해줄 때야. 내가 걱정하는 건 디비전 시리즈에 나갈 에이스야. 성낙기가 얼마나 던졌지?”

“200이닝을 넘어섰습니다. 아마 시즌 끝까지 던지면 230~240 이닝은 던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알렉스 비토 감독의 말에 셜리번 코치가 대답했다. 타격 코치와 수비 코치등도 자못 심각한 표정이다.

“내가 걱정하는 게 그거야. 시즌 중엔 잘 던지다가 피로가 누적되어서 정작 중요한 경기에서 뭇매를 맞는 일 말이지. 커쇼 같은 투수가 대표적이지. 시즌 중엔 언터처블급 활약을 보이지만 가을 야구에선 그렇지 못하단 말이야. 뭐, 구위는 비슷하다는 말도 있지만, 시즌 때보다 더 잘 던져야 하는 게 포스트 시즌이야.”

“그럼, 어떤 생각이신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임박해서는 성낙기의 출전을 말려야겠어. 조금이라도 더 싱싱한 어깨로 던져야만 신더가드나 디그롬을 누를 수 있을 서야. 지금부터는 일단 나머지 선발을 최대한 길게 끌고 가고 불펜 소모를 줄이는 일도 병행해야만 해.”

“지금 성적으로도 2위를 겨우 지키고 있는데 틈을 보이면 메츠가 바로 치고 올라오지 않겠습니까.”

“셜리번 자네와 내가 최대한 운용의 묘를 살려 보자고. 조금만 더 가면 돼. 종착지가 얼마 남지 않았어.”

***

메이저리그를 중계하는 스포츠 채널들은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의 디비전 시리즈 진출 팀을 가려내기 시작했다. 우선, 순위가 뒤바뀔 틈이 없는 지구 1위 팀을 가려냈고 와일드카드 진출 가능성이 높은 팀도 가려냈다.

내셔널 리그의 동부 지구는 스트라스버그와 브라이스 하퍼가 버티는 워싱턴이 1위를 굳게 지키고 있고 서부 지구는 콜로라도, 중부 지구는 시카고 컵스가 1위였다.

그중, 동부 지구는 2위와 3위가 5할 중반에 가까운 승률을 기록 중이었는데 이건 순전히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애틀랜타의 삽질에 기인한 바가 컸다.

두 팀이 공히 4할에도 못 미치는 승률을 올리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 두 팀으로 인해 마이매미와 뉴욕 메츠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갈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전, 성낙기의 8이닝 1실점의 투구로 5:1 승리를 거둔 마이애미 말린스. 동부 지구 2위와 3위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나>

<다른 지구보다 동부 지구 3위가 승률이 높은 이유는 리빌딩 중인 두 팀 때문>

<성낙기 23승 6패의 성적으로 마이애미 선발진을 이끌다>

<알렉스 비토 감독-성낙기의 선발은 없다. 그동안 많이 던졌다>

<성낙기가 23승의 옵션을 채우자마자 와일드카드전까지 휴업 선언. 성낙기, 아쉬움 토로하다. ‘난 더 던질 수 있다’>

알렉스 비토 감독의 계획대로 성낙기는 9월말로 예정된 애들랜타전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호세 우레나가 잘 던져 승리를 거뒀다.

뉴욕 메츠와는 1게임 차로 좁혀졌지만 이제 두 팀의 순위 경쟁은 별 의미가 없었다. 이변이 없는 한, 두 팀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큰 변화 없이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샌디 알칸타라가 워싱턴을 상대로 완투승을 거주는 기염을 토했다.

시즌 끝.

마이애미와 뉴욕 메츠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10월 7일로 잡힌 가운데 하루 휴식이 주어졌다. 딱 하루만 쉬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른 뒤, 다시 하루 휴식 후 5판 3선승제의 디비전 시리즈를 치러야 하는 살인적인 일정이다.

와일드카드 진출 팀은 디비전 시리즈에서 에이스를 낼 수 없으므로 여러모로 불리하다. 알렉스 비토 감독의 걱정도 그런 거였는데, 사실 그는 뉴욕 메츠를 이기고 디비전 시리즈에서 최대한 이른 시점에 성낙기를 투입해야만 승산이 있다고 봤던 것이다.

***

“성낙기, 내일 선발인데 컨디션 어때?”

“나야 늘 괜찮지. 상대 팀 타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문제겠지.”

“네가 7회까지만 버텨줘. 8, 9회는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 거야.”

“완투나 뭐 이런 게 아니고?”

“아직 잘 모르는구나. 디비전 시리즈 일정을 생각하면 성낙기 네가 완투를 해선 안 되지. 적어도 2차전엔 나와야 하고 그런 다음 4차전이나 5차전에 또 던져야 하니까.”

“아하, 그러니까 와일드카드부터 날 혹사시키겠다는 말이나 다름없군. 근데 그거 리얼무토 혼자 생각이지?”

“천만에. 알렉스 감독이 시즌 막바지에 널 쉬게 한 이유를 모르겠어? 조금이라도 아꼈다가 최대한 많이 던지게 하는 거지.”

“그렇다면 디비전 시리즈에 내 말이 고장 난다는 말이네.”

“그럴 수도 있지. 일정이 너무 빡빡해. 특히 우리에겐 더 그렇지. 지구 1위를 해야 컨디션 조절을 해가면서 월드 시리즈도 대비하는 거야.”

“그런데 왜 디그롬이 선발일까? 신더가드도 잘 던졌는데 말이야.”

“시즌 마지막 3경기 ERA가 0점대거든. 그걸 감안했겠지. 2점 이내로만 막자. 나머지는 타자들이 해줄 거야.”

“좋아, 리얼무토.”

***

그리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날이 밝았다. 말린스파크엔 발 디딜 틈 없는 인파로 북적였다.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표가 매진되었고 경기장 밖엔 암표상들이 들끓었다. 경기장에 입장하지 못한 팬들은 경기장 근처의 펍에서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드디어 이날이 왔습니다. 내셔널 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날입니다. 말린스파크는 이미 팬들로 꽉 찬 상태입니다. 마이애미의 선발 투수는 성낙기, 그리고 뉴욕 메츠의 선발은 제이콥 디그롬입니다. 정말 이름만으로도 흥분되는 선수들이죠.”

“매우 흥미로운 대결이네요. 디그롬과 성낙기. 뉴욕 메츠의 도미닉 스미스와 팀 티보의 타선에, 마이매미의 가렛 쿠퍼와 브라이언 앤더슨이 이끄는 타선의 격돌도 기대가 되는군요.”

“마이애미는 와일드카드로 디비전 시리즈에 올라가서 월드 시리즈까지 거머쥔 전력이 있지 않습니까?”

“맞아요.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이나 그랬죠. 그래서 더 흥미로운 거고요.”

“양쪽 관중들의 환호성도 대단합니다. 선수가 소개될 때마다 귀가 따가울 정도입니다.”

“워낙 두 투수가 막강해서 투수전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본래 포스트 시즌엔 타자들의 집중력이 대단하죠. 두 투수 모두 몸이 덜 풀린 1회를 잘 넘겨야 할 겁니다.”

1회 초는 원정 팀인 뉴욕 메츠의 선공이다. 성낙기는 마이매미 팬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마운드에 섰다. 체력은 가득 차 있고 컨디션도 좋다. 오늘처럼 관중이 많이 온 날은 기분도 좋아져서 9회까지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헤이, 성낙기. 오늘 무리하지 마. 불펜 투수들의 컨디션이 좋으니까 완투할 생각 말고 실점만 조심해. 80구 내외로만 던지고 내려와. 뒤는 알아서 할 테니까.”

“80구요? 그 정도면 6회도 쉽지 않죠.”

알렉스 비토 감독의 말에 성낙기는 약간 불만어린 제스처를 했다. 겨우 80구로 뭘 한단 말인가.

“내 말이 그 말이야. 6회까지만 막아도 충분해.”

“투구 수를 제한하는 이유가 있겠죠?”

“당연히 있지. 디비전시리즈 2차전엔 네가 나가야 하니까. 적지에서 2연패를 당할 순 없잖아.”

알렉스 비토 감독의 머리엔 디비전 시리즈가 들어 있었다.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은 상대의 에이스가 나오기 때문에 승리가 어렵다고 봤다. 성낙기더러 2차전을 책임져 주라는 말. 성낙기는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볼!”

주심이 경기 시작을 알렸고 야구장은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들썩거렸다. 성낙기는 로진백을 한 차례 만지고는 연습 구를 던졌다.

팡.

경쾌한 소리와 함께 포심패스트볼이 미트에 꽂힌다. 연달아 직구를 던지며 구위를 점검했다. 그리고 드디어 뉴욕 메츠의 톱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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