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45화 (145/188)

# 145

145화 에이스 대 에이스 3

신더가드는 역시 신더가드였다. 성낙기와 비슷하게 1회 말을 2삼진과 파울플라이로 끝냈다. 그때부터 0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뉴욕 메츠의 타선은 성낙기의 변화무쌍한 공을 공략하지 못했고 마이애미는 신더가드의 강속구에 눌렸다.

관중석 특별석에서 마이애미의 데릭 구단주와 오스틴 단장, 그리고 윌슨 스카우트가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으로 묘령의 여인이 경기를 함께 보고 있었다.

“양 팀 투수들이 대단하군. 성낙기도 성낙기지만 신더가드는 완전히 베테랑이 되어 버렸어. 완급 조절을 하며 강속구 타이밍에 변화구를 섞어서 마이애미 타자들이 감을 못 잡고 있어. 오스틴, 오늘 경기 어떻게 흐를 것 같나.”

“글쎄요, 데릭. 성낙기가 워낙 좋아서 승리를 기대합니다만, 신더가드도 만만치 않네요. 결과적으론 우리 불펜이 나으니 가능성을 조금 더 두겠습니다.”

“윌슨 자네는?”

“성낙기 투수가 완투승을 할 거라고 봅니다. 예전부터 워낙 큰 경기에 강했던 선수니까요. 오늘 경기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을 겁니다.”

“좋아, 올해는 와일드카드전에서 승리를 해야만 해. 그런 다음엔 우승도 바라볼 수 있지. 그게 마이애미의 전통이었으니까 말이야.”

“…….”

“…….”

“흠, 내 말에 둘 다 꿀 먹은 벙어리군.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가?”

“객관적으로 보면 우린 워싱턴에게도 힘든 승부를 벌이고 있지요. 그리고 그 위엔 양키스가 있습니다. 양키스의 전적이 7할에 육박합니다. 투타에서 당할 팀이 없죠. 냉정히 평가하면 마이애미는 디비전시리즈에서 선전할 정도의 전력입니다. 성낙기 외에는 압도적인 투수가 없고 타선도 강화되었다고는 하나, 워싱턴과 양키스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 윌슨 자네 생각도 같나?”

“단기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약 팀이 강팀을 꺾을 여지도 있는 게 사실이죠. 작전과 팀워크, 그리고 선수들의 의지에 따라 의외의 결과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다만?”

“그런 걸 배제하고 순수한 전력으로만 평가한다면 오스틴 단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흐음, 그렇군. 그럼 이쯤에서 먼 곳에서 오신 숙녀분의 얘기를 안 들어 볼 수가 없겠군. 김아경 씨?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하면 와일드카드도 벅찹니다. 우승권은 바라볼 건덕지도 없지요. 성낙기를 제외한 선발 평균 ERA가 4.23입니다. 이래서는 아무래도 약하죠. 불펜이 보강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까지 버텨온 겁니다. 물론, 성낙기 투수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와일드카드는 작년에도 획득했지요. 올해는 불펜과 타선이 더 보강되었지 않습니까.”

“그만큼 워싱턴이나 뉴욕 메츠도 강해졌습니다. 전력상으로 보면 오늘 경기에 이긴다 해도 시즌 막판까지 뉴욕 메츠와 와일드카드 경쟁을 벌일 겁니다.”

“하아… 마이애미에 아주 박하시군. 성낙기를 보내주고도 그리 마이애미를 못 믿으시니 의외군요. 그럼, 내년엔 전력 보강을 더 해야 한다고 느끼는 건가요?”

“선발의 보강이 절실합니다. 타선도 그렇고요.”

“그런가요? 삼호슈퍼스타즈라는 팀에서 스카우트 팀장을 맡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투수를 영입해야 한다고 보는 겁니까.”

“가성비가 남다른 투수들이 있습니다.”

“오, 그런 투수들이 있어요? 내 눈에 그런 투수들은 보이지 않던데.”

“메이저리그만 볼 게 아니고 KBO에 눈을 돌려 보십시오. 충분한 재능을 가진 투수와 타자들이 있습니다.”

“KBO라… 알겠습니다. 시즌이 끝나면 생각해 보죠.”

경기는 어느새 8회 말, 마이매미의 공격이었다.

신더가드의 투구 수는 87개로 9회까지 던지고도 남을 페이스였다.

***

“대타로 시에라 대신 스탈린 카스트로가 나서는군요. 이 선수도 중견수 수비를 곧잘 하는 선수입니다. 최근 발목이 좋지 않아서 보름 이상 결장을 했었는데 중요한 순간에 대타로 출장합니다.”

“알렉스 비토 감독의 승부수네요. 시에라 선수가 필요할 때 한 방씩 쳐주던 타자인데 요즘 부진하거든요. 스탈린 카스트로 이 선수 역시 가끔 뜬금포를 잘 날리는 선수입니다. 홈런이 12개에 머물고 있지만 영양가 만점이에요. 결승타가 두 개나 됩니다.”

“하지만, 투수가 워낙 잘 던지는 신더가드라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스탈린 카스트로는 강속구에 타격 사이클을 맞추고 있었다. 어차피 변화구는 보여주기 위한 것이 크다. 투심의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는 패스트볼에 7회까지 타자들이 적응하지 못했다.

따악.

“아, 쳤습니다. 스탈린 카스트로! 유격수 깊은 공입니다. 아메드 로사리오 1루로 송구! 세이프!”

“스탈린 카스트로 선수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전력 질주였습니다. 노아웃에 좋은 기회를 잡는 마이애미 말린스네요.”

“다음 타자는 투수 성낙기입니다. 좋은 찬스인데 대타를 내지 않고 그대로 가는 알렉스 비토 감독입니다.”

“음, 저건 의왼데요? 불펜 투수들이 건재한 마당에 승부를 걸려면 대타가 나을 듯 싶은데 말이죠. 성낙기의 한 방에 기대를 거나요?”

관중석에 있던 구단주 데릭 역시 의아했다.

“왜 성낙기를 바꾸지 않지? 오스틴. 나라면 여기서 대타를 내겠어. 마침 루이스 브린슨 같은 선수가 있잖아.”

“글쎄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만, 알렉스 비토 감독은 성낙기 투수의 타격을 기대하나 보군요.”

“김아경 씨 생각은 어때요?”

“알렉스 비토 감독의 생각을 존중합니다. 제가 감독이었다 해도 같은 선택이었을 거예요. 성낙기 투수는 타격을 못 해서 안 하는 게 아니거든요.”

“못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마운드에서 잘 던지기 위해 타격을 안 할 뿐입니다. 그가 타격을 하겠다면 어느 투수도 막아내기 힘들 거예요. KBO에선 그야말로 엄청났었지요.”

“그 정도였어요?”

“작년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올해는 타격을 쉬었던 거라고 보시면 돼요. 하지만 이제 시즌 막바지죠. 앞으론 누구보다 잘 칠겁니다. 본능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걸 치는 선수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이번 회를 기대해도 좋겠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구단주 데릭은 김아경의 말에 내심 시큰둥했다. 자기가 데려온 선수이니 당연히 방패막이를 하고 싶겠지.

하나, 지난 시즌에 타격 재능을 보였지만 올해는 아니다.

2할도 채 안 되는 타율 아닌가.

성낙기는 배트를 움켜쥐고 타석에 섰다. 앞의 두 타석에서는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번 타석은 다르다.

자신이 쳐야만 승을 추가한다. 신더가드를 상대로 점수를 낼 만한 타자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음, 이러다가 완투를 못 할 수도 있겠는데 뭐 어쩔 수 없지. 지는 것보단 낫잖아.’

파앙.

“스트라이크.”

1구로 포심패스트볼이 들어왔다. 몸 쪽으로 꽉 차는 공이었는데 전광판에 98마일이 찍혔다. 신더가드가 투수라고 해서 방심하지 않고 전력을 다한다는 증거.

투심성이어서 까다로운 궤적을 갖고 있다.

“하나 치겠다는 거야? 몸 쪽인데 전혀 물러서지를 않네?”

케빈 플라웨키가 성낙기의 의중을 떠본다. 그가 보기에도 앞선 두 타석과 자세와 의욕이 달라 보인다. 성낙기가 슬쩍 쳐다보고는 배트를 힘 있게 두어 번 돌렸다.

“늘 그냥 서 있다 들어갈 줄 알았어? 이번 타석에서 쳐야 승리투수가 되지.”

“오, 승리투수씩이나 바라고 있었어? 그러니까 안타를 치고 나가겠다는 거네. 9회엔 나오지 않을 모양이지?”

“아니, 나올 거야. 완봉해야지. 일단은 바로 이 타석에서 살아 나가는 게 중요해.”

“그래, 100마일 강속구 잘 받아 쳐봐라.”

팡.

휘잉.

“스윙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를 먹은 성낙기는 자신을 질책하듯 헬멧을 두드렸다.

방금 공은 스피드를 죽인 슬라이더였는데 패스트볼로 착각한 것.

타석에서 오랫동안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선구안이 흐려진 느낌이다.

‘제발 낙기 씨 하나 쳐요.’

관중석의 김아경은 두 손을 모으고 성낙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8회까지 무실점 투구에도 승리하지 못한다면 어느 팀이든 타격이 크다.

투수는 말할 것도 없다.

신더가드는 포수의 사인을 받고 온 몸의 힘을 끌어 모았다. 성낙기의 타격을 모르지 않는다. 당한 적도 있다.

파앙.

볼.

“아, 99마일이 찍히는 포심패스트볼입니다. 신더가드 투수가 전력으로 성낙기 투수를 상대하는군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투수라 해도 방심해선 안 되죠. 두 투수가 모두 완봉을 눈앞에 두고 있거든요. 아주 중요한 순간입니다.”

팡.

볼.

“이번 공은 커브였는데 성낙기 투수가 골라냅니다. 침착하네요. 볼 카운트 투 볼 투 스트라이크입니다.”

‘브레이킹 볼에 속지 않다니. 놀랍군.’

포수인 케빈 플라웨키는 따라 나오지 않는 성낙기의 인내심에 놀랐다.

이제 승부를 해야 할 때. 어쩔 수 없다.

가장 자신 있는 공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사인을 받은 신더가드도 예측하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전력으로 강속구를 뿌렸다.

따악.

성낙기가 거침없이 배트를 돌렸고 신더가드는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가슴속에서 절망의 기운이 몽글거리며 피어났다.

‘끝났어. 젠장.’

***

-간닷!

-갓따.

-와… 성낙기 기가 막히네!

-우하하, 신더가드의 100마일 직구를 그대로 넘겨 버렸어.

-홈런!

-미쳤다, 성낙기.

-저게 사람이냐. 신더가드한테 투런 홈런이라니.

-이게 바로 KBO의 저력이다. 메이저리그 아무것도 아니네.

-공성진도 빨리 진출하면 좋겠다. 연준후도 충분히 통할 거고.

-연준후는 단년 계약이라 가능해.

-성낙기 홈으로 들어온다. 하하.

-마이애미 관중들 난리 났네. 엇, 김아경도 있다.

-와, 정말 김아경이다. 데릭 구단주랑 함께 있어. 언제 저기 날아갔지?

-성낙기랑 사귄다는 루머가 있는데 정말이었네. 이젠 루머가 아니야.

-2:0! 마이애미 승!

한국에서 인터넷 중계를 보던 팬들도 흥분했다. 8회 말에 신더가드로부터 투런 홈런을 때려내다니. 더욱이 투수가 말이다.

신더가드는 마운드에서 힘이 남아 있지 않은 모습으로 씁쓸함을 더했다.

뉴욕 메츠의 팬들은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맙소사!’를 연발했다.

“내가 뭐랬어요. 성낙기 투수가 마음만 먹으면 친다고 했죠? 하하하.”

“굿! 김아경 씨, 성낙기를 너무 잘 아는군요. 거기서 투런 홈런이라니. 정말 엄청난 퍼포먼스입니다.”

“고마워요, 데릭.”

김아경은 신이 났다. 자신이 데려온 투수가 오늘 같은 중요한 날 한 방을 쳐줬다.

마이애미의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며 성낙기를 응원했다.

더그아웃에 들어가자 어찌나 헬멧을 두드리는지 셜리번 코치가 말려야만 했다.

“노, 노! 아직 9회가 남았어. 뇌진탕으로 쓰러뜨릴 작정이야?”

농담이었지만 다분히 진심도 섞여 있었다. 이럴수록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좌절한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과격하게 세리머니를 했다가 손가락 하나라도 꺾이면 시즌이 끝난다. 뉴욕 메츠는 신더가드를 내리고 불펜을 투입하여 악몽 같은 8회를 마쳤다.

[체력이 10 남았습니다]

성낙기는 9회에 마운드에 올라가 세 타자를 삼자범퇴로 처리하고 완봉승을 거뒀다. 3안타만을 허용한 완벽한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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