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141화 퀘이크볼 4
성낙기의 집에선 아버지 성용구 씨와 멍청이순대집 주인과 부동산을 하는 황 사장이 모여 국수에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홀 안에 TV를 큰 걸로 바꾸고 메이저리그 중계가 있는 날이면 몇몇이 모여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하아, 우리 아들 오늘 물 만났네. 덩치 크다란 애들이 줄줄이 아웃 당하는 거 봐. 어뗘, 부럽제?”
“그나저나 아들이 벌어다준 돈은 다 어떡하고 아직도 국수 장시를 하고 있는겨. 듣기로는 연봉이 어마어마하다던데 국수 한 그릇 내주고 입 싹 닦을 거여?”
“한 그릇 좋아하네. 지금까지 서비스 준 것만 열 그릇은 되겠다.”
“이제 그만 국수 접고 제수씨 쉬게 해 드리게 이 사람아. 저런 아들 덕을 봐야지. 국수 못 삶아서 죽은 귀신 있어?”
“어따, 황 사장도 참. 내가 하고 싶어서 하나. 집사람이 고집을 부리니까 이러고 있는 거지. 낙기가 돈 벌어다 줘봐야 나한테는 그림의 떡이라니까.”
홀 안엔 젊은 손님들이 제법 있었다.
그들은 모두 국수를 맛보며 TV를 시청 중이었는데, 모두 성낙기의 집이라는 걸 알고 찾아온 손님들이었다.
오룡 시장에서 성낙기의 국숫집은 꼭 거쳐 가야 하는 필수 코스가 되었는데, 오로지 성낙기의 유명세 때문이었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메이저리그에서 이름을 날리는 성낙기의 국숫집을 보고 싶어 했고 성용구씨의 일거수일투족은 사람들의 가십거리로 오르내렸다.
“풋, 성낙기 아버지 정말 웃겨. 완전 촌사람이야.”
“그러게. 그 돈이면 떵떵거리고 살만도 한데 아직도 저러고 있으니.”
“여기 시장 사람들하고 막걸리 마시고 싶어서 떠나지 못한대.”
“참, 신기해. 아버지나 엄마가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유전자를 이어받았을까. 보통 운동선수 출신 자식들은 자질을 타고나는데 성낙기는 이해가 안 가.”
“돌연변이라고 봐야지. 아니면 기연을 얻었거나.”
“야, 기연은 일단 절벽에서 떨어져야 하는 거야. 거기서 만년설삼 같은 걸 먹는 스토리로 가는 거지.”
“혹시 아나. 성낙기도 떨어졌을지.”
어머니 양연숙 씨는 밀려드는 손님에 정신을 못 차렸고 여동생 서희도 학교 마치고 일손을 거드느라 바빴다.
아버지 성용구 씨는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가 국 솥에 담긴 국수를 저었다.
***
틱.
파울.
딱.
파울.
‘응? 얘 타격이 왜 이렇지?’
채드 왈라치는 마이클의 타격을 보고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스윙 자체가 1회와는 완전히 달랐다. 짧고 간결한 궤적으로 배트를 휘둘렀고 성낙기가 던진 공은 뒷 그물로 날아갔다.
헌데 자세히 보니 스윙의 궤적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배트를 내는 스피드는 1회와 다를 바 없었지만, 뭔가 힘이 실리지 않는 스윙이다.
그러니까, 멀리 공을 보내려는 타격이라고 하기 힘든 느낌이 왔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퀘이크볼을 두 개나 파울로 만들었다.
“마이클, 너 스윙이 좀 이상한데? 치려는 거야, 마려는 거야?”
“흥, 치려는 거지.”
“그래가지고 외야로나 나가겠어? 타이밍도 이상하고 말이야.”
“글쎄… 네 눈이 잘못된 건 아닐까?”
틱.
“파울팁-아웃!”
간신히 1번 타자를 잡았지만 6구나 던졌다. 3회까지 21구를 던진 것에 비하면 꽤 끈질기다.
채드 왈라치의 마음에 의문이 살짝 일었다가 사라졌다. 그렇게 묻어둔 의문은 다음 타자에게서 다시 살아났다.
틱.
파울.
틱.
파울.
“타임!”
채드 왈라치는 타임을 부르고 마운드로 올라갔다. 성낙기 역시 타자들의 스윙이 달라진 것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전에 몇몇 팀들이 자신의 공을 커트해 내며 경기를 질질 끌고 갔던 바로 그 패턴 말이다.
“성낙기,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겠어?”
“대충은 알 것 같아.”
“어떻게 알고 있는데?”
“바라는 공이 아니면 커트를 해가면서 투수의 진을 빼는 작전이지.”
“노우, 그뿐이 아니야.”
“그뿐이 아니라고?”
“응, 아니야. 네가 말한 것 외에 하나가 더 있어.”
“뭔데?”
“아까 마이클부터 느낀 건데 쟤들은 공을 페어 지역으로 날려 보내려는 생각이 없어. 1루나 2루로 나가기 위해서는 저런 스윙을 하면 안 되지. 타이밍도 의도적으로 늦추는 것 같고 손목 스냅만 시용하고 있어. 이건 네 투구 수를 늘려서 강판을 노리는 작전이야.”
“설마…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그런 작전을 쓴단 말이야?”
“치졸하지만 너에게 더 이상 끌려가지 않겠다는 거겠지. 완투나 완봉은 내주지 않겠다는 거지.”
“음… 그럼 심각한데? 컨택 능력이 상당한 타자들이잖아. 맞춰 잡는 투구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당연히 안 되지. 우리도 대책을 세워야 해. 이대로 가면 6, 7회 정도가 맥시멈일 거야.”
***
“채드 왈라치가 성낙기 투수에게 다가가는군요.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요.”
“LA에인절스 타자들의 스윙이 달라졌거든요. 저 타격은 순전히 투수의 투구 수를 늘리는 작전입니다. 치기 위한 스윙이 아니에요.”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성낙기 다음 투수에게 승부를 걸겠다는 거군요.”
“그렇죠. 어쨌든 불펜 투수들이 그마나 공략하기 쉬우니까요. 오타니 투수도 잘 던지고 있으니까 불펜 투수에게서 2점 정도만 뽑아내도 된다는 계산일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낙기를 최대한 빨리 내려야만 하죠.”
“채드 왈라치 포수가 급히 마운드에 올라간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다. 대응책을 마련할까요?”
“하겠죠. 이제까지와는 다른 구질을 섞어야죠. 저런 스윙으로도 속을 수밖에 없는 패턴 말입니다.”
홈 플레이트로 돌아온 채드 왈라치는 힐끗 타자를 본 후, 사인을 냈다.
볼 카운트 원 볼 투 스트라이크.
타자는 어떻게든 맞추기만 하겠다는 자세로 배트를 컨트롤할 셈이다.
팡.
“스윙-스트라이크 아웃!”
LA에인절스의 2번 타자 저스틴 업튼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성낙기를 바라보다가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3회까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퀘이크볼을 노렸지만, 아니었다. 콤팩트한 스윙으로도 절대 맞출 수 없는 곳으로 공이 떨어졌다.
‘쉣! 거기서 포크볼을 던지다니. 여우같은 놈들이군.’
배트 컨트롤이 완전히 달라진 이상, 퀘이크볼이나 라이징패스트볼도 위력적인 구질이라 할 수 없다. 어떻게든 건드릴 확률이 높다.
포심패스트볼이나 투심도 마찬가지. 커브나 체인지업 계열의 브레이킹볼이 필요한 시점이다.
채드 왈라치와 성낙기는 다른 무엇보다 포크볼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 놓은 뒤, 포크볼을 던지면 배트를 내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 공이 퀘이크볼, 혹은 포심패스트볼일 수도 있으니까.
배트를 내밀고 나면 거둬들이기 힘들다. 타자의 히팅 포인트에 와서야 변하는 포크라면 무조건 걸려들게 되어 있다.
‘포크를 던졌어?’
컨택으로 성낙기를 내리려던 라몬 타격 코치는 볼 배합을 보고 일이 틀렸음을 직감했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알아챘다.
퀘이크볼이나 포심패스트볼로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놓고 포크 계열의 브레이킹볼을 던지면 배트가 따라가지 못한다. 파울을 만들 수도 없다.
***
결국 소시아 감독은 작전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볼도 아니고 포크를 던지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이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엔 포심패스트볼에 대비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포크볼 계열은 쥐약과 같다.
직구와 같은 코스로 오다가 아래로 꺾이는 볼에 대응하려면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하는 게 우선인데 그 자체가 쉽지 않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걷어내는 게 목적인 타자에게 선구안은 제 2의 옵션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
자연히 선구안은 약해지고 공을 건드리는 것에만 급급한 타자들에게 원 바운드성 포크볼은 빈 스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질이었다.
워낙 꺾이는 각이 커서 건드리기 힘들고 타자 바로 앞에서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휘두르지 않을 도리도 없다.
“포크볼을 던지네요. 좋은 선택입니다. 저렇게 되면 LA에인절스의 작전은 빗나가게 되겠죠. 아무리 컨택 능력이 좋아도 성낙기의 브레이킹볼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치지 않는 것이 유일한 해법인가요?”
“그렇죠. 브레이킹볼이 날아들 때 반응을 하지 말아야죠.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브레이킹볼을 골라내다가 갑자기 포심 계열의 공이 들어오면 또 속수무책입니다.”
“그렇겠군요. 성낙기의 공이 워낙 볼과 스트라이크의 구분이 어려우니까요.”
성낙기에 대한 작전이 변경되고도 LA에인절스는 6회까지 안타를 생산하지 못했다.
LA에인절스의 더그아웃은 초상집에 가까울 만큼 침울했는데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선수들은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다.
“모두 정신 차려. 지금 성낙기가 71구를 던졌다. 이제 조금씩 체력이 떨어질 시기이니 힘들 내. 저러다가 둑이 무너지듯 무너지기도 하니까 말이야.”
라몬 타격코치의 말은 선수들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마이애미 관중들은 성낙기의 K를 세고 있었다.
KKKK…… K가 무려 12개.
6회까지 경기를 치른 현재, 4이닝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는 말이 된다.
성낙기의 퀘이크볼은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
[체력이 95입니다]
[세기의 강속구가 90입니다]
[포심의 제구력이 93입니다]
[커브의 제구력이 90입니다]
[슬라이더의 위력이 87입니다]
[체인지업의 위력이 87입니다]
[투심의 제구력이 85입니다]
[포크의 제구력이 85입니다]
[라이징패스트볼이 (8cm/10cm)입니다]
[퀘이크볼이 (5cm/5cm)입니다]
[어깨근육 강화 (8단계/10단계)]
[팔 근육 강화 (8단계/10단계)]
[행크아론의 타격 (4단계/5단계)]
[짐 캇의 수비력 (4단계/5단계)]
[리키 헨더슨의 도주(4단계/5단계)]
[악력(7/10)단계]
[전광석화(電光石火) +7km. 9이닝 5구]
갑자기 상태창이 떴다. 이런 식으로 뜰 때는 뭔가가 있다는 이야기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뭘까. 성낙기는 상태창을 훑어보며 그동안 변화구의 스탯이 너무 오르지 않았다고 느꼈다.
[7회에 공 9개로 삼구 삼진을 잡으면 포크볼의 제구력이 오릅니다]
[7회에 공 9개로 삼진을 잡으면 체인지업의 위력이 오릅니다]
[단, 결정구는 포크볼이어야 하며 카운트는 체인지업으로 잡으십시오]
이상한 제한에 성낙기는 의아했다.
‘어라, 너 약 먹었냐. 프로 경기에서 스탯을 올리려고 구질 제한을 한다고?’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뭐야.’
[스탯을 골고루 올려야 완성형 투수가 되는데 특정한 공 위주로만 던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하, 그래서 상대적으로 떨어진 스탯을 보강해 주겠다, 뭐 이런 거야?’
[잘 아시네요. 바로 그렇습니다]
‘하기 싫다면?’
[하기 싫으시다면 페널티가 들어가서 당분간은 어떤 스탯도 오르지 않을 겁니다]
‘아주 지 맘이군.’
성낙기가 투덜거렸다. 느닷없는 상태창의 명령에 가까운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