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40화 (140/188)

# 140

140화 퀘이크볼 3

한국의 스포츠 사이트는 성낙기와 오타니의 맞대결로 뜨거웠다.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많은 댓글이 달릴 만큼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많은 야구팬들이 한일전 축구 못지않게 나라를 대표하는 라이벌 투수로 인식한 결과였다.

-오, 기다리던 대결이다. 성낙기가 오타니를 이길 수 있을까.

-성낙기와 오타니가 드디어 붙는구나.

-오타니가 성낙기에게 찾아가서 뭐라고 했을까.

-오타니 강속구를 볼 수 있겠네. 아마 전력 투구 할 거야.

-둘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케이스.

-엄청난 하이레벨의 야구를 감상하겠군. KBO는 짜증 나서 못 보겠어.

경기가 시작되었고 오타니는 마운드에서 연습구를 던졌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가볍게 던진 공은 98마일 대를 기록했는데 몸이 덜 풀린 1회라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스피드였다. 그리고 기대대로 오타니는 1회를 가볍게 끝냈다. 뒤이어 성낙기가 마운드에 올라갔다. 포수는 채드 왈라치였는데 후반기엔 채드 왈라치의 쓰임새가 많아지는 분위기다. 성낙기로서는 퀘이크볼을 같이 연습하던 터여서 든든했다.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선두를 달리고 있는 LA에인절스와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2위를 기록하고 있는 마이애미의 3연전입니다. 오늘은 두 팀의 에이스가 맞붙게 되었는데요. 어떤 승부를 예상하십니까?”

“아, 먼저 마이애미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서 뉴욕 메츠와 함께 공동 2위를 달리고 있죠. 두 팀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중입니다. 워싱턴이 멀리 앞서 나가고 있고요. LA에인절스는 2위 휴스턴에 3게임 앞선 선두를 지키고 있어요. 투타에 상당한 활약을 보이는 오타니의 공이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에이스가 출동한 경기니 투수전을 예상하는 게 당연하겠네요.”

“요즘 성낙기 투수의 성장세가 두드러지죠? 후반기에 승은 추가 못 했지만 여전히 좋은 커맨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투수예요. 작년에도 그랬지만 이토록 큰 기복 없이 던지는 투수도 드물 겁니다. 여러 구질의 변화구도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고 공의 스피드 또한 작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빨라졌습니다.”

“아, 성낙기 투수가 마운드로 올라오는군요.”

***

삼호슈퍼스타즈 선수들은 그 시각, 낮 경기를 끝내고 호텔로 돌아와 휴식 중이었다.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TV에 눈길을 주는 선수들. 그들이 익히 아는 얼굴이 마운드에 서서 포수의 사인을 기다리고 있다.

“우연처럼 마이애미가 동부지구 2위고 우리도 2위야. 성낙기가 저렇게 잘 던질 줄은 몰랐어.”

삼호슈퍼스타즈의 베테랑 타자인 김석문이 TV를 보면서 운을 뗐다. 성낙기는 이제 막 1구를 던지려 하고 있었다. 어느새 팀의 간판타자로 자리 잡은 이중호는 성낙기의 모습을 보고 기쁜 표정이었다.

불과 재작년까지 함께 룸메이트로 생활하던 동료였다. 그랬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엄청난 이슈를 몰고 다니는 스타가 된 사실은 볼 때마다 믿기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 같아요. 제가 아는 사람이 맞나 싶다니까요.”

“중호 너만 그렇겠냐. 나도 같은 생각이다. 2군부터 함께해 오던 선수가 이제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다니.”

“아무튼 메이저리그에서 한국 투수 위상을 높이고 있으니까 좋네요.”

“너도 나중엔 가야지. 뭐, FA되려면 멀었겠지만.”

***

성낙기는 첫 타자 마이클을 맞아 초구부터 퀘이크볼을 던졌다. 지난 며칠 동안 날마다 연습하며 다져왔던 구질이다.

“채드, 오늘은 퀘이크볼을 많이 사용하고 싶어. 아직 완전하다고 할 수 없거든. 실전에 되도록 많이 사용해서 확실한 주 무기로 만들 거야.”

“퀘이크볼? 좋지. 아마 다들 놀라 자빠질 거다.”

“미리 말해둘게. 이 공은 체력 소모가 커서 많이 던질수록 소화 이닝이 짧아지는 단점이 있어. 즉, 오늘은 길게 던질 수 없다는 얘기지.”

“뭐, 좋을 대로 해. 성낙기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누가 토를 달 수 있겠어.”

팡.

“스트라이크.”

바깥쪽으로 들어오는 공을 보고 타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변화의 폭이 큰 구질은 아닌데 날아오는 동안 천변만화하는 느낌이다.

기존에 그가 알아왔던 변화구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구질.

LA에인절스의 1번 타자 마이클은 눈만 껌벅거리며 얼어붙었다.

‘방금 내가 본 변화구가 도대체 뭐지?’

마이클은 속으로 의문을 품고 2구를 기다렸다. 2구 역시 바깥쪽 같은 코스의 같은 구질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가 내민 배트는 간발의 차이로 공을 비껴갔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채드. 방금 던진 변화구 이름이 뭐야? 궤적이 너무 이상해.”

“오, 마이클. 굳이 알려고 하지 마. 이제까지 없던 구종이야. 일명 퀘이크볼이라고 하지.”

“아니야, 내가 이 공을 알아. 성낙기가 나에게 던진 적이 있었거든. 하지만, 그때와는 너무 달라.”

“당연하지. 변화의 각이 더 커졌고 예리해졌어. 치기 힘들 거야.”

“후…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마이클은 채드 왈라치의 말을 듣고 절망했다.

예전의 구질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하기 어려운 공인데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는 말 아닌가.

어떻게 저런 투수가 나타나서 타자들을 궁지로 내모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마이클은 성낙기를 슬쩍 본 후, 배트를 곧추세웠다.

***

팡.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마이클은 어떻게든 공을 건드려 보려 했으나 아래로 살짝 꺾이다가 위로 다시 솟다가 마지막엔 아래로 꺼지는 삼단 변화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보통의 타자들은 퀘이크볼이 처음 아래로 꺾이다가 약간 솟아오르는 지점에 맞춰 공격한다.

라이징패스트볼을 낮게 던지면 그런 효과가 나타난다. 타자의 무릎 근처를 파고들 듯 낮게 깔리다가 다시 솟아오르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두 번의 변화를 일으키는 지점이 또한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기 바로 전의 위치이고 보면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 백이면 백, 두 번째 변화에 배트의 위치를 가져간다.

‘젠장! 바로 앞에서 또 변화했어.’

마이클이 투덜대는 것처럼 두 번의 변화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세 번의 변화를 겪은 타자들은 멘탈이 붕괴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의 변화에 배트를 맞춰가는 순간, 타자는 또다시 변하는 공을 느낀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늦다.

“후, 인간의 운동신경으로 따라갈 만한 구질이 아니야. 변화가 너무 급격해. 저런 공은 그때그때의 변화에 대응하기보다 아예 히팅 포인트를 설정하고 대응하는 게 나아 보여.”

LA에인절스의 투수 코치 허드슨 필머의 말이었다. 그는 2008년까지 LA에인절스에서 뛰다가 만년 코치로 있는 프랜차이즈스타였다.

차기 감독은 그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도는 LA에인절스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

“이봐, 허드슨. 저런 공을 제대로 쳐서 히트를 만들긴 어려워. 차라리 투수가 지치는 걸 기다리는 편이 확률이 높지 않을까?”

허드슨의 말에 대답하는 이는 LA에인절스의 타격 코치 라몬 그릿이었다.

둘은 성낙기의 퀘이크볼이 예사롭지 않음을 첫눈에 알았다.

팀의 수위 타자인 마이클이 허무하게 물러나는 걸 보고는 오늘 경기가 쉽지 않을 것도 함께 깨달았다. 프로 팀의 코치들답게 빠른 대응 방법을 모색하려는 중이다.

“지치길 기다린다? 그건 소극적이지 않아? 완투와 완봉을 손쉽게 하는 투수가 지칠 리가 있겠나.”

“가만있으면 지치지 않겠지. 하지만, 저 투수에게 점수를 얻겠다는 마음을 접으면 7회 이전에 내리는 게 가능할지도 몰라.”

“어떻게?”

“요즘 내가 KBO 영상을 자주 보는데 좀 특이한 리그더군.”

“어떤 점에서 그렇지?”

“그쪽 타자들은 빠른 공 투수나 공략이 어려운 투수의 공엔 풀스윙을 하지 않아. 끈질기게 커트해내면서 기회를 엿보지.”

“글쎄… 그 방법은 성낙기를 상대하던 몇 팀이 시도해 본 걸로 아는데.”

“아니, 그들은 시도해 보지 않았어. 정확히 말하자면 풀스윙을 자제하면서 단타를 노렸지. 그리고 그게 패착이었고.”

“헤이, 라몬.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를 해봐.”

“히트를 노려서 점수를 낼 생각 자체를 버려야 그마나 공략법이 나온다는 거야, 내 말은. 배트를 짧게 쥔다거나, 콤팩트한 스윙을 한다거나 하는 건 결국 점수를 내기 위함이지. 상대 투수를 무너뜨려야 하니까.”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프로야구 타자가 투수의 공을 히트로 연결시키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미친 짓이지.”

“우린 지금 그 미친 짓을 해야만 해. 히트를 노리고 들어가는 타자와 그저 공을 맞추는 데 초점을 맞추는 타자는 달라도 많이 다르겠지. 왜냐하면 목적의식이 다르니까.”

“음… 무슨 뜻인 줄은 알겠지만 타자들이 따라줄까? 그들은 성적을 올려야만 존재 가치가 있는 프로 선수들이야. 애초에 1루타도 포기하고 들어가는 그런 타격을 할 가능성은 없겠지. 우리가 아무리 코치라 해도 그런 타격을 강요할 수는 없어.”

“맞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거야.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은 것만은 확실해. 이대로 끌려가면 3, 4회쯤엔 말이 먹히지 않을까? 어차피 당하는 건 똑같으니까.”

***

라몬 코치의 생각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보였지만, 경기의 내용은 꼭 그렇지도 않게 흘러갔다.

“아, 3회까지 성낙기 투수의 공을 제대로 때려보지도 못하는 LA에인절스 선수들입니다. 본래 치기 힘든 투수인 데다 오늘은 퀘이크볼이라고 불리는 구질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켜서 던지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답이 없어요. LA에인절스 타자들이 3회까지 7삼진인데… 솔직히 치욕적인데요. 다른 투수를 상대할 때와 같은 스윙으로는 절대 저 투수 공략 못 하죠. 방어율이 괜히 1점대이겠습니까. 오타니도 나름 잘 던지고 있지만 2안타를 허용했거든요. LA에인절스 타자들도 뭔가를 해줘야죠.”

캐스터와 해설자가 걱정을 할 만큼 성낙기는 맥시멈에 다다른 퀘이크볼을 구사하며 타자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타석에서 맥없이 물러난 타자들은 한결같이 답이 안 보인다는 표정이었다. 이대로 가면 완봉은 물론이고 퍼펙트나 노히트노런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저 감독님, 저 투수를 빨리 내리는 길밖에 없겠습니다. 저도 사람인데 지치지 않겠습니까.”

“무슨 묘수가 있나?”

타자들보다 더 답답해하던 마이크 소시아 감독은 라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다 듣고난 후, 심각한 표정을 했다. 뭔가, 프로야구 선수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생각일 뿐더러 선수들이 따라 줄지도 의문이다.

‘가만 생각하면 일리가 있긴 한데…….’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소시아 감독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기로 했다.

4회가 시작되자 선수들을 불러 모았고 성낙기의 공략법을 말했다.

선수들의 반응은 다양했는데 얼굴부터 붉어지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감독의 말을 비웃는 듯한 선수, 또는 진지하게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선수도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다. 이대로 가면 기록의 제물이 될지도 몰라. 팀을 위해 희생하자.”

구단의 프랜차이즈인 허드슨 필머 투수 코치까지 거들자, 선수들의 의견은 코칭스태프의 말을 따르는 것으로 굳어졌다.

어차피 루상에 나가지 못할 바에야 괴롭히기라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4회 말 마이클은 1회와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타석에 섰다.

‘좋아, 히트는 포기한다. 대신 우리가 어떤 팀이란 걸 분명히 보여주지.’

마이클이 속으로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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