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39화 (139/188)

# 139

139화 퀘이크볼 2

성낙기의 말은 사실이었다.

2회부터 체인지업과 커브와 포크볼 등을 적극 이용해서 타자의 타격 타이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필리스 타자들은 힘이 실리지 않은 타구를 내외야로 보냈다.

디카엘로는 3회에 세 타자를 연속으로 플라이볼 처리하며 뜬 공 수비의 감각을 익혔고, 공을 잡을 때마다 3루로 송구하며 송구 역시 가다듬었다.

그는 3회가 끝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면서 성낙기가 손을 드는 것을 보았다.

“저, 정말이었어. 평소보다 덜 가라앉는 공으로 뜬공을 만들다니.”

가렛 쿠퍼가 3루에서 기다려 같이 들어오면서 눈을 찡긋거렸다.

“봐, 내 말이 맞았지? 저놈은 저러고도 남을 놈이라니까.”

“이거 안 믿을 수도 없고… 저렇게 뜬공 유도하다가 홈런 맞으면 어쩌려고 그러지?”

디카엘로는 성낙기가 진지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수비 연습까지 생각하는, 오지랖이 넓은 것인지 헷갈렸다.

그 생각을 가렛 쿠퍼에게 전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수비를 염두에 둔건 맞지만, 방금 던진 패턴은 그동안 던진 브레이킹 볼보다 변화가 작았어. 슬라이더만 보더라도 변화가 작은 대신에 스피드는 더 빨랐지. 공 밑동을 치게 만든 거라고 봐야 해. 커브 역시 슬러브에 가까웠어. 덕분에 타구엔 힘이 실리지 않았지.”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은데… 과연 마운드에 선 투수가 그게 가능한 걸까? 수비 연습… 공교롭게 타구가 나에게만 왔어. 만약 이게 진짜라고 치고 필리스 타자들이 투수의 의도를 알게 된다면 야구 때려치운다고 지랄을 할 거야.”

“하하, 그렇겠지? 나도 100% 확신하지는 못하니까 우리 둘만 알고 있자. 필리스 타자들이 우리 생각을 알더라도 지들이 어쩔 거야.”

가렛 쿠퍼는 자신조차 진짜인가 싶으면서도 성낙기의 의도성을 디카엘로에게 강조했다.

성낙기와 친한 사이라는 것을 알리는 또 다른 방편이기도 했다.

그러려면 디카엘로가 모르는 성낙기의 성향을 알려줘야 했다. 마지막 퍼즐로는 성낙기가 자신의 말을 이행하는 것이었고.

3회의 연속 뜬공은 그런 점에서 볼 때 성공적이다.

가렛 쿠퍼는 내심 4회를 기대했다. 디카엘로의 아리송한 표정에 쐐기를 박을 만한 투구가 필요하다.

따악.

“아, 평범한 3루 땅볼로 아웃되는 토미 조셉입니다. 공수 교대. 3회엔 연속으로 좌익수 플라이 볼이었습니다만, 4회엔, 연속 세 개의 3루 땅볼이 나옵니다. 공교롭게 두 선수가 모두 1회엔 실책을 했던 선수들인데요.”

“하하, 날카로우시네요. 언뜻 들으면 투수가 야수의 수비 연습을 시킨다는 뉘앙스네요. 물론, 우연의 일치겠지만요. 아무런 느낌 없이 관전하는 것보다는 이런 저런 상황을 짜 맞춰 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겠어요.”

캐스터와 해설자조차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 상황이 절묘해서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마치 각본처럼, 여섯 타자를 세 타자씩 끊어서 공을 보내다니.

타자와 투수가 짜지 않고는 나오기 힘든 그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의심을 할 상황은 아니었다.

미치지 않은 이상 필리스 타자들이 연속 아웃을 당하면서 공을 그리로 보낼 리는 없겠지.

사실, 캐스터와 해설자뿐만은 아니었다. 눈치 빠른 관중들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는 듯 웅성거렸다.

***

[퀘이크볼이 (5cm/5cm)로 완성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성낙기는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9회까지 완투했다.

추가 실점은 없었다.

필리스의 새내기는 의외로 잘 던져서 7회까지 2실점을 하고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마이애미 타자들은 9회까지 필리스의 불펜을 공략하지 못했다.

따악.

“홈런입니다. 필리스의 딜런 코젠트 선수, 연장 10회 말에 끝내기 홈런을 쳐냅니다. 필리스의 3:2 승리! 극적입니다. 마이애미의 에이스 성낙기의 15승을 저지시키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입니다.”

“필리스를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강팀에 강한 면모를 보이거든요. 9회까지 완투한 성낙기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네요. 이게 야구입니다. 사무엘 투수 대신 데론 카일이나 팬 파일러 투수가 어땠을까 싶은 결과네요. 아마, 알렉스 감독은 더 긴 승부를 예상했던가 봅니다.”

해설자의 말처럼 야구는 실력대로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약팀이 우승팀을 꺾기도 하고 5선발이 상대팀 에이스를 궁지에 몰아넣기도 한다. 성낙기는 끝내기 홈런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늘 승리투수가 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가 쳐주지 못하면 진다. 아무리 잘 던지고 내려가도 불펜이 난조를 보이면 그것도 진다.

[마지막 단계로 올라선 퀘이크볼의 연습 투구를 권합니다.]

‘무슨 연습 투구? 다음 경기에 마운드에서 던지면 되는 거 아니었어?’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던져도 괜찮았지만, 마지막 단계는 몸으로 습득하셔야 합니다.]

‘완전 지 맘이네.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원래 그렇게 정해진 스탯입니다. 두말 안 함.]

‘어쭈. 이제 혀 짧은 소리도 내고 많이 컸네.’

[…니다.]

다음 날 성낙기는 불펜 투구를 하기 위해 오전부터 시티즌스 뱅크파크를 찾았다. 채드 왈라치는 피곤한지 연신 하품을 해댔다.

하긴, 어제 오랜만에 풀타임을 뛰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웅, 도대체 왜 이렇게 설치는 건데. 너 오늘 선발도 아니잖아. 어제 완투한 투수가 어깨 아작 나려고 그래?”

“아직 체력 남았어.”

“체력이 남았어? 체력이 문제가 아니고 어깨가 문제라니까.”

“알아, 어깨 체력 말하는 거야. 앞으로 내가 체력이라고 말하면 어깨인 걸로 알면 돼.”

“그럼, 살살 던지면서 굳은 어깨 풀 거야?”

“앉아 보면 알아.”

채드 왈라치는 성낙기가 시키는 대로 포구 자세를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받으면 되겠지 싶었다.

어차피 완투 뒷날이니 무리해서 던진다는 건 자살행위나 같을 테니까.

하지만, 채드 왈라치는 성낙기의 초구를 놓쳤다.

터억.

글러브를 내밀었지만 공은 반듯하게 날아오지 않았다.

처음엔 가라앉는 듯 하다가 포수 앞으로 와서 다시 치솟는 움직임을 가진 볼이었다.

황급히 글러브를 옮겼으나 공은 미트 위쪽을 맞고 뒤로 날아갔다.

그 바람에 채드 왈라치는 뒤로 넘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

“무슨 공이 변화가 이렇지? 혹시 퀘이크볼이야?”

“맞아.”

“윽. 어마어마하다. 지금까지 던졌던 볼과는 차원이 다른 변화였어.”

“어떻게 다른데?”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느낌이야. 중력의 영향을 전해 받지 않는 공처럼 느껴져. 와… 이건 사건이다. 확인해야겠어, 하나 더 던져봐.”

팡.

이번엔 채드 왈라치가 간신히 잡았다.

받고 나서도 믿기지 않는 눈치.

성낙기도 4cm일 때와 다른 5cm의 위력을 절감했다.

변화는 고작 1cm일지 모르지만 눈으로 보면 변화가 확연히 차이가 났다.

팡.

“웃! 던질수록 변화무쌍해지는 것 같다. 무슨 공이 이래? 마구라고 해도 믿겠다.”

“오늘 퀘이크볼만 80개 던질 거야.”

***

던지면 던질수록 퀘이크볼은 제구력 또한 영점이 잡혀갔고 공의 변화도 초구를 던질 때보다 확실해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손을 떠난 공이 어느 지점에서 처음 변화하고 또 포수 앞에서는 어느 지점에서 변화를 일으키는지가 확실해졌다는 의미다.

두 번의 변화. 그게 퀘이브볼만의 강점이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두 가지의 변화를 보이는데, 하나는 반듯하게 가던 공이 밑으로 조금 가라앉았다가 다시 올라온다.

그런 뒤 마지막으로 포수 앞에서 다시 가라앉는 형태를 보이는 것이다.

팡.

“어때?”

“공이 가라앉았다가 솟아오르다가 다시 가라앉아. 즉, 세 번의 변화를 보이는 거야. 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은 정말 너무나 확실한 궤적이 나오고 있어.”

“그래? 그럼 이것도 받아 봐.”

팡.

“엇!”

“아… 이건 거꾸로다. 속았다가 가라앉은 뒤 다시 솟아올랐어. 무섭네… 그런데 공은 궤적이 좀 덜하게 느껴진다.”

“알아. 그래서 연습하는 거야. 지금부터는 두 번째 패턴으로 갈 거야.”

팡.

팡.

성낙기는 80구를 다 채우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채드 왈라치는 성낙기를 마치 무슨 귀신 보듯 했다.

지금까지 던진 퀘이크볼과는 질적으로 다른 궤적을 보였는데 사실, 이런 구질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 놀라운 구질이 더 확연하고 큰 변화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오늘 던진 성낙기의 공은 배트 가운데에 맞출 확률이 극히 떨어지는, 마구에 가까운 공이었다.

“오늘 성낙기가 던진 공은 아주 잘 던져진 너클볼과도 같아. 아니, 너클볼이 두 번 정도의 변화를 보이는데 반해 네 공은 세 번의 변화이니 더하지.”

“그 정도야?”

“장담하건데 이 공을 제대로 받아 치는 타자는 거의 없을 거야. 너클볼보다 변화가 심한 건 아니지만, 이건 훨씬 빠르거든. 오늘 던진 공들은 모두 93~94마일을 넘겼을 거야.”

“칭찬은 고마운데 아직 더 가다듬어야 해. 앞으로 한 일주일은 매일 던지고 싶어.”

“와, 그게 아직 완벽한 볼이 아니었단 거야? 미치겠군.”

“미치지 말고 채드, 내 공을 받아 줘.”

***

일주일이 훌쩍 넘어갔고 성낙기의 선발일이 다가왔다.

필리스와 3:2로 진 뒤, 성낙기는 한 번 더 선발로 나섰지만 자책점으로 기록되지 않은 실점이 있었고 경기는 역전 승, 승리는 불펜 투수에게 넘어갔다.

후반기 두 번의 등판에서 승을 추가하지 못했다.

7월 30일, 찌는 듯한 무더위에 성낙기는 LA에인절스전 선발이었다.

상대 투수는 일본의 오타니.

한때 부상을 당했었지만 다시 일어나 올 시즌 9승을 수확 중이다.

ERA 2.12로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뿐이면 그렇다 하겠지만, 오타니는 이도류라는 무기를 가진 선수.

규정 타석엔 모자라지만 후반기가 조금 지난 현재, 80타석에 들어서서 0.298에 12홈런을 기록했다.

승수는 성낙기보다 작다. 투타 겸업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등판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

투수로만 나서는 것보다 팀에 확실한 도움이 되고 있다. 결승타도 세 번이나 때려낼 만큼 찬스에도 강한 투수이자 타자이다.

“야, 오타니가 너 찾아 왔는데?”

에인절스타디움에서 동료들과 몸을 풀고 있을 때, 리얼무토가 알려줬다. 오타니는 웃는 얼굴로 성낙기에게 다가왔다.

“성낙기 선수, 뵙고 싶었습니다. 나는 오타니라고 합니다.”

“아, 반갑습니다. 성낙기입니다.”

“당신처럼 잘 던지는 투수와 대결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살살 던져 주세요.”

“하하, 당신은 더 잘 던지고 잘 치는 투수이고 타자잖아요.”

“그렇지만, WBC에서 당신에게 졌지요. 오늘 좋은 승부 부탁합니다.”

오타니는 그렇게 말하고 에인절스 더그아웃으로 갔다.

WBC를 아직까지 생각하고 있었군. 대단하다.

저런 승부욕이 프로다운 프로를 만드는 건가. 적으로 만났지만 좋은 선수다. 성낙기의 가슴 한쪽이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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