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138화 퀘이크볼 1
올스타전은 끝났다. 브라이스 하퍼는 예상대로 MVP를 가져갔고 성낙기는 관중들에게 웃음을 전해준 뒤에 스마일맨이라는 애칭이 다시 붙었다.
괴물투수, 또는 마운드의 악마 정도로 불리기 위해 요 근래 정색을 하며 경기에 나섰던 노력은 물거품으로 변했다.
그리고 어느덧 후반기 시작이다.
7월 20일, 성낙기는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포수는 채드 왈라치가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상대는 애틀랜타와 치열한 꼴찌 경쟁을 펼치고 있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였고 경기장은 시티즌스 뱅크파크로 필리스의 홈구장이다.
성낙기는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가벼웠다.
전반기를 훌륭하게 마쳤고 올스타전도 마지막 이상한 짓을 빼고는 2이닝을 깔끔하게 막으면서 언터처블의 위용을 과시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 괜찮은데 후반기 시작의 첫 상대가 필리스다.
‘오늘은 가볍게 몸 푼다는 생각으로 던지면 되겠군.’
성낙기는 불펜에서 연습구를 던지며 후반 시작부터 승을 추가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채드 왈라치 역시 성낙기의 공을 받으며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지난 시즌에 그랬던 것처럼 올해도 후반기에 자신이 많이 투입될 것이다.
전반기 내내 주전으로 뛴 리얼무토의 체력이 해마다 여름이면 조금 쳐지기 때문이다.
채드 왈라치는 체력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다.
리얼무토보다 도루 저지율이 떨어지고 타격에 약점이 있지만, 수비만큼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공이 좋아, 성낙기. 오늘 완봉 가자.’
채드 왈라치는 자신이 포수로 나서는 경기에 성낙기가 완봉을 하길 바랐다.
리얼무토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요소는 투수 리드를 잘해서 최소한의 실점을 하는 것이다.
“마이애미와 필리스가 맞붙는 시티즌스 뱅크파크입니다. 마이애미는 성낙기가, 필리스는 라모스가 선발로 나섭니다. 후반기 첫 경기가 곧 시작되겠습니다.”
“선발이 좀 기울지요? 마이애미는 에이스인 성낙기의 등판이고 필리스는 5선발 라모스가 나섭니다. 경험은 많지 않지만 젊은 투수이고 기본적으로 강속구를 구사합니다.”
“왜 필리스는 1선발을 내지 않을까요.”
“성낙기와 맞대결을 피했을 겁니다. 아꼈다가 다음 투수와 승부하려는 거겠죠. 또한, 제이크 아리에타는 마이애미 상대로 그리 좋지 않습니다. 어차피 리빌딩 중인 필리스는 젊은 투수를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
1회 초는 가볍게 삼자범퇴.
생각보다 라모스의 볼 끝이 좋다.
1회 말에 성낙기는 마운드에 올라 관중석을 훑어 봤다.
매진은 아니지만 2/3는 들어찬 상태.
1번 타자를 맞은 성낙기는 초구로 93마일의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따악.
상대 선수가 친 공이 유격수와 3루수 사이를 절묘하게 갈랐다.
선두 타자 초구 안타. 성낙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가운데로 몰린 공이 아니었는데 타자가 쳐냈고 땅볼로 내야를 통과했다.
잘 맞는 공은 아니었지만 워낙 코스가 좋았다.
‘어라?’
채드 왈라치 또한 너무나 쉽게 내준 안타에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야구는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가 친 타구의 코스가 좋으면 안타가 된다. 바로 방금 전의 안타가 그랬다.
주자를 1루에 두고 맞은 2번 타자는 성낙기의 3구를 공략했는데 잘 떨어진 체인지업을 휘둘러 1루수 키를 넘기는 텍사스성 안타를 만들었다.
노아웃에 1,2루.
‘헐, 어이가 없네.’
두 타자 모두 잘 맞은 타구가 아니었다.
하나는 코스가 좋았고 나머지 하나는 빗맞은 타구가 아무도 잡을 수 없는 곳에 떨어졌다.
별 기대 없이 경기를 지켜보던 필리스 팬들은 의외의 연속 안타에 소리쳤다.
“필리스! 필리스!”
채드 왈라치는 볼 배합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경기 초반이라서 성낙기의 주무기인 라이징패스트볼과 퀘이크볼 사인을 내지 않았다.
성낙기가 던진 포심패스트볼은 전력투구도 아니었고 체인지업은 그동안의 공에 비해 약간 밋밋했다.
필리스의 다음 타자는 오두벨 에레라였는데 컨택 능력과 힘을 겸비한 필리스 최고의 타자였다.
성낙기는 채드 왈라치의 사인대로 투 스트라이크를 잡은 다음, 4구째 퀘이크볼을 전력투구했다.
따악.
이번 타구는 평범한 3루 땅볼이었다.
가렛 쿠퍼는 공을 잡아 병살을 시키기 위해 전진 스텝을 밟으며 맨손으로 공을 잡았다.
아니,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공은 손가락에 슬쩍 맞고 외야의 파울라인으로 굴러갔다.
“앗, 공을 빠뜨리는 가렛 쿠퍼입니다. 쉬운 공을 잡지 못합니다. 2루 주자 3루를 돌아 홈으로 뜁니다. 좌익수가 잡아 홈으로 송구합니다. 저런. 홈 송구가 엉망이네요. 그물망까지 흐르는 공입니다.”
캐스터의 흥분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마이애미 수비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처음, 가렛 쿠퍼의 에러에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와 버렸고 좌익수의 악송구에 채드 왈라치가 공을 빠뜨리면서 1루 주자마저 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타자는 2루까지 진출했다.
어이없이 2점을 헌납한 실수 연발이었다.
***
“뭐야, 갑자기 왜 저래.”
“올스타전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모양입니다.”
“지들이 올스타전 치렀어?”
“올스타전 기간 동안 여가를 즐기는 선수들이 있거든요. 이를테면 술자리를 갖는다든가 하는…….”
“그걸 말이라고 해? 이봐, 마인 허지스. 수비 코치가 그런 걸 핑계 삼으면 안 되지.”
“연습 때는 딱히 지적할 만한 선수가 없었습니다.”
올스타전 이후로 분위기가 어수선하긴 했다.
조용히 개인 훈련을 하며 몸을 만드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가렛 쿠퍼 같은 경우, 모처럼 사흘 밤낮으로 친구들과 낚시를 즐겼다.
생선을 안주삼아 술자리를 가진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꼭 그 때문에 오늘의 실책이 나왔다고 보긴 어렵다.
그 정도의 타구는 손쉽게 처리할 타구였다. 원인이라면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뿐이다.
“저는 성낙기 투수가 1회에 2실점 하는 건 처음 보는군요. 안타 같지 않은 안타 2개와 실책 2개가 한 회에 한꺼번에 나오면 투수는 할 게 없죠. 모든 타자를 삼진 처리하지 않는 이상은 말입니다.”
해설자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말하는 중간 중간 한숨을 내쉬었다.
세계의 프로야구를 대표한다는 메이저리그에서, 저런 플레이를 해선 안 된다는 말을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마운드의 성낙기도 내심 어이가 없었다.
‘무슨 상황이 이래. 치면 안타 코스고 평범한 타구는 뒤로 흘려주고… 홈 송구는 그물망을 겨냥한다는 것인가? 맞아, 이거슨 새로운 야구를 발명하기 위한… 휴…….’
개그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 상황은 도를 넘었다.
아웃 카운트는 하나도 잡지 못하고 2실점에 주자가 2루라니.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10실점도 가능하다. 채드 왈라치가 허겁지겁 마운드로 올라왔다.
“성낙기 괜찮아?”
“채드라면 괜찮겠어? 던지는 공마다 안타고 타구는 바로바로 놓쳐주는 센스에 송구는 관중석을 겨냥해서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는, 우리 팀의 성낙기 죽이기 작전인데.”
“아니야. 올스타 기간에 쉬어서 몸들이 덜 풀렸어. 야! 가렛. 성낙기가 너 와보래.”
채드 왈라치가 뜬금없이 가렛 쿠퍼를 불렀다.
가렛 쿠퍼는 미안한 마음에 우물쭈물하다가 마지못해 마운드로 왔다.
성낙기가 가렛 쿠퍼를 바라보았고 가렛 쿠퍼가 허공으로 눈을 돌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거참, 이상하단 말이야. 분명히 튀어 올라야 하는 공이 튀지를 않아. 이건 분명히 주최 측의 농간이 있었다고 봐.”
“알았어, 가렛. 이번은 그냥 넘어가줄 테니까 다음엔 놓치지 마. 또 그러면 절교야.”
“하하, 애가 농담도 잘하네. 걱정 마. 3루로 오는 공은 다 잡을게.”
가렛 쿠퍼가 돌아가고 성낙기는 자신이 사인을 내기로 했다.
채드 왈라치는 볼 배합 때문이 아니라는 걸 말하다가 먹히지 않자, 약간 삐져서 홈 플레이트로 돌아갔다.
***
[1회부터 실점을 하셨군요. 이후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면 퀘이크볼이 맥시멈에 도달합니다.]
‘주자가 2루에 있는데 그게 쉬워?’
[어려우니까 미션이죠]
‘퀘이크볼이 지금 (4cm/5cm)인데 멕시멈이라고 해봐야 1cm잖아.’
[1cm지만 맥시멈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위력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상태창의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의욕이 생긴다. 성낙기는 타석에 선 필리스의 4번 타자를 봤다.
딜런 코젭트라고 198cm에 106kg의 거구인데 무려 23홈런을 기록 중이다.
걸리면 넘어가는 유형이면서 단점은 삼진도 그만큼 많다는 것.
팡.
“스윙-스트라이크!”
그가 좋아할 만한 몸 쪽 라이징패스트볼을 던졌다.
역시 예상대로 몸 쪽 높게 형성되는 볼에 헛스윙.
성낙기는 연이어 라이징패스트볼을 던져 포수 파울플라이로 타자를 잡아냈다.
그 시각, 한국의 네티즌들은 스포츠 TV를 시청하면서 댓글을 달고 있었다.
-와, 성낙기가 2실점 하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본다.
-마이애미 탈출해라. 저런 수비는 사회인 야구도 하것다.
-쿠퍼가 왜 그랬지?
-후반기 첫 경기부터 초치네. 마이애미가 괜히 마이애미가 아니지.
-던질 때마다 무실점이면 뭔 재미… 이렇게 치고 박고 그래야 재밌지.
-방어율 금가는 소리 들리네.
성낙기는 정면 승부 패턴에서 유인구를 적절히 섞어가며 1회를 추가 실점 없이 마쳤다.
혹시 털리나 싶었던 성낙기가 추가 실점 없이 1회를 넘기자 알렉스 비토 감독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불행 중 다행이군.”
“저도 조마조마했습니다. 후반기 시작부터 에이스가 무너지면 팀이 흔들리니까요.”
“노아웃에 주자 2루에 두고 삼자범퇴 시키는 걸 보면 구위뿐만이 아니라 경기 운영 능력도 수준급이야. 셜리번 자네가 잘 가르쳤어.”
“아, 아닙니다. 성낙기는 제 범위 밖입니다. 작년에도 무작정 털리는 경기는 없었죠. 구위도 구위지만 멘탈도 최상급입니다.”
“어쨌든, 오늘 시작은 좋지 않군. 마음 같아선 더 이상 실점이 없었으면 좋겠어.”
“아마 모두들 정신을 차렸을 겁니다.”
더그아웃에 들어온 선수들은 성낙기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들을 건넸다.
공을 빠뜨린 3루수 가렛 쿠퍼와 홈 악송구를 한 디카엘로는 어깨를 툭툭 치며 미안함을 알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성낙기가 얼굴을 들고 둘을 보고 한마디 했다.
“뭐야, 나 위로하는 거야?”
“응. 다음부턴 잘할게. 걱정 마.”
가렛 쿠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할 소리다. 너희야말로 걱정하지 마. 아직 몸이 안 풀려서 그런 거야.”
“사실은… 그런 점이 없잖아 있었지. 이건 아주 드문 경우라고.”
디카엘로는 자신이 한 실책이면서도 뭔가 억울한 듯했다.
“맞춰 잡는 투구를 해야 할 것 같아. 필리스 선수들의 집중력도 대단하고 모두 큰 걸 노리는 스윙이 아니야. 삼진을 많이 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지. 그러니 2회부터 각오해. 내가 수비 연습 많이 시켜줄게.”
“아… 하하… 하여튼 성낙기는 개그 코드가 독특해. 우리 수비 연습 시켜준다잖아.”
디카엘로가 웃었다.
“아니야, 성낙기는 진심일 거야. 요즘 우리가 훈련에 소홀했잖아.”
“설마.”
“성낙기를 잘 모르는구나. 얘는 원래 진담을 농담처럼 하지.”
가렛 쿠퍼가 앉아 있는 성낙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디카엘로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에이스 투수인 건 알지만, 팀의 수비 연습까지 시켜가면서 공을 던질 거라고?
미쳤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