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136화 올스타전 2
‘또 너냐. 휴, 덩치도 별론데 유독 저놈에게만 성적이 좋지 못해. 이번 기회에 꺾어야 후반기가 편해진다.’
아론 저지의 성낙기 상대 전적은 2할 중반대로, 0.302를 기록하고 있는 자신의 타율에 비해 한참이나 떨어진다.
하지만, 성낙기의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타자다.
걸리면 넘어가는 파워에 자신의 공을 건드려 2할 중반이면 다른 타자에 비해 적응을 잘한다는 말도 된다.
성낙기의 올해 피안타율은 0.195에 불과하기 때문.
‘쟤는 볼 때마다 인간이 아닌 것 같어. 뭔 놈의 인간이 201cm에 127kg이냐고. 소련의 레슬링 선수 알렉산더 카렐린이 192cm에 120kg인가 그랬다는데 저게 어디 레슬링 무제한에 나갈 체급이지, 야구를 할 체구냐고.’
[알렉산더 카렐린은 134kg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헐, 어이가 없군. 기껏 한다는 말이 kg이 얼마냐를 알려주는 거야?’
리얼무토는 바깥쪽 라이징패스트볼을 초구로 선택했다.
타자가 타자이니만큼 성낙기의 생각도 비슷했다.
현재 성낙기가 던질 수 있는 최대 구속은 96.3(155km)마일.
메이저리그에 처음 왔을 때, 140km 초중반 대였던 포심패스트볼 구속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을 한 셈이지만, 아론 저지 같은 타자를 만나면 부족하게 느껴진다.
슈우욱!
팡.
라이징패스트볼(7cm/10cm)
최대 10cm가 떠오를 수 있는 라이징패스트볼은 현재 7cm가 맥시멈이다.
하지만, 타자에게는 가라앉지 않는 것만으로도 떠오르는 느낌을 준다.
성낙기의 라이징패스트볼은 가라앉지 않는 수준을 떠나 아예 7cm나 떠오르는 것. 거기에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구속까지 섞었다.
“스트라이크!”
주심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성낙기가 던진 공은 낮은 코스의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날아오다가 타자 앞에서 솟구쳐 올랐다.
떠오름의 수치가 7cm에 머물지만 전혀 가라앉지 않는 데다가 떠오르기까지 하는 공은 아론 저지에게 20cm쯤의 상승을 하는 걸로 보였다.
‘후욱, 볼 때마다 경이로운 공을 던지는군.’
아론 저지는 숨을 짧게 내뱉으면서 연습 스윙을 했다. 이대로 물러나지 않으리라. 그는 온몸의 신경을 배트에 집중했다.
***
팡.
볼.
몸 쪽으로 오다가 쑤욱 가라앉는 체인지업에 아론 저지는 나가려는 배트를 거둬들였다.
“보기 힘든 대결입니다. 최고의 홈런 타자와 전반기 방어율 1위에 빛나는 투수가 물러설 곳 없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났습니다.”
“방금 공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오다가 가라앉는 체인지업이었는데 아론 저지가 참아내는군요. 엄청난 자제력이네요. 저건 누가 보더라도 스트라이크거든요.”
“맞습니다. 저도 포수 미트에 꽂히기 전까지는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타자는 어떻게 볼인 걸 알고 배트를 멈췄을까요?”
“볼 인줄 알았다기보다는 엄청난 연습 끝에 만들어진 감각 같은 것일 겁니다.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 날아오는 걸 보고 치기엔 이미 늦죠. 초구로 95마일이 넘는 라이징패스트볼이 날아왔거든요.”
“보통 사람이 느끼기 힘든 판별력이 있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이 가능할까요?”
“글쎄요, 확실히 인지를 하고 배트를 내면 그땐 늦을 거라는 거죠. 흔히 동물적 감각이라는 말을 쓰죠. 아론 저지가 2구의 체인지업에 배트를 멈춘 건, 아마도 뇌에 확실한 정보가 도달하기 전에 일어난 일일 겁니다.”
“오묘하군요. 마치 제 3의 눈이 작용한 결과처럼 들립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제가 오버했을지도 몰겠네요. 하지만, 그만큼 두 선수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평가하기 힘든 경이적인 신체 능력을 가졌습니다.”
리얼무토는 체인지업을 골라내는 아론 저지를 보면서 감탄했다. 분명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높이와 코스였는데 그걸 참아냈다.
“아론, 왜 그렇게 신중해? 어제 홈런의 왕자가 되었으면서 아직 만족하지 못하는 거야?”
“아, 리얼무토. 네 말은 여기서 삼진이라도 당하라는 것 같은데… 맞나?”
“그건 오해야. 홈런은 어제 실컷 쳤으니까 오늘은 2루타 정도면 안 되겠냐는 거지. 마운드의 투수가 불쌍하지도 않아? 네가 타석에 설 때부터 벌벌 떨고 있었어.”
“흥, 그런 투수가 라이징패스트볼에 체인지업을 그렇게 날카롭게 던져? 웃기지 마.”
“원래 사람은 공포에 질리면 초인적인 힘이…….”
“시끄럿! 올스타전이라고 가리지 않고 막말해도 되는 줄 아나본데, 천만에! 난 인격이 완성된 인간이 아니야. 자꾸 건들면 갱들하고 싸울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걸 잊지 마.”
“…어휴, 무셔라.”
리얼무토는 아론 저지의 말을 듣고 정말 무서웠다.
재작년인가.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졌을 때 동료 선수 하나가 아론 저지에게 앵겼다가 솥뚜껑 같은 손에 맞은 적이 있었다.
서로 3게임 정지를 먹은 간단하다면 간단한 벤치클리어링이었지만 아론 저지에 맞은 그 선수는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그 뒤로 성적이 곤두박질쳤고 마이너로 내려간 일이 있었다.
마이애미 선수들 사이엔 그 뒤로 아론 저지를 말할 때마다 ‘마이너 아론’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한 대 잘못 맞으면 마이너리그로 내려간다는 뜻이었는데 그만큼 선수들 사이에서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기도 했다.
‘좋아. 당하고 있을 순 없지.’
리얼무토는 성낙기에게 사인을 냈다.
자신의 사타구니를 스윽 긁으며 내보이는 손가락 하나.
이 사인은 바로 불가사의하다고 알려진 전광석화(電光石火) 사인이었다.
성낙기는 마운드에서 사인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리얼무토가 좀체 내지 않는 사인인데 의외다.
‘아론 저지하고 무슨 대화를 나눴길래 저러지……?’
성낙기는 글러브를 가슴에 모은 후에 심호흡을 했다. 타석엔 아론 저지가 타석이 꽉 차는 거구의 몸으로 다음 공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의 눈에서는 맹수의 그것 같은 푸른빛이 돌았다.
“전광석화(電光石火).”
성낙기는 낮고 짧게 발음한 뒤 공을 뿌렸다.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이자, 혼신의 힘을 다한 공이 홈 플레이트를 향해 날아갔다.
슈우욱!
파아아앙!
“스윙 스트라이크!”
아론 저지는 스윙을 하고나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성낙기와 포수 미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스윙이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다.
아론 저지로서는 예상치 못한 스피드였고 바로 이전의 공은 느린 체인지업이었다.
체인지업 다음의 강속구가 속도감을 증가시키는 건 상식이지만 이 공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아론 저지는 갱이 어쩌고 할 때의 전투력 넘치는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영혼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
잠깐의 침묵이 찾아왔다.
타자인 아론 저지도, 양 팀의 더그아웃도, 그리고 관중들도 갑자기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말을 잃었다.
캐스터와 해설자도 마찬가지였는데 잠시의 충격을 갈무리하고 캐스터가 소리쳤다.
“와우!!! 다시 그 공이 성낙기에게서 뿌려졌습니다. 전광판을 보십시오. 100.5마일입니다! 성낙기 투수가 100마일이 넘는 공을 던졌습니다! 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올스타전에서 일어났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됩니다. 저 투수는 어떻게 계속 구속이 증가하는지 모르겠네요. 일찍이 메이저리그에 저런 선수는 없었어요. 강속구 투수는 많았지만, 구속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저런 선수는 외계인이라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아론 저지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초리로 성낙기를 바라보다가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리얼무토는 자신이 그 공을 원했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놀라고 있었다.
그가 생각했던 성낙기의 최대 스피드는 99마일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스피드건 에 찍힌 공 스피드를 전광판을 통해 확인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99마일을 던질 때보다 훨씬 빠르고 묵직했고 살아 오르는 볼 끝의 질도 달랐다.
미트에 박히는 공의 위력 때문에 손이 저릴 지경이었다.
‘…도무지 말이 안 나오네. 100마일이 넘는 공을 던지다니.’
지난 시즌과는 너무나 다른 성낙기의 공에 리얼무토는 경악했다.
같은 지구의 팀으로 이루어진 내셔널리그 더그아웃도 마찬가지였다.
투수 코치 역할을 하고 있는 알렉스 비토 감독조차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네 팀 투수는 정말 괴물 중의 괴물이군. 하아, 저러니 정규 리그 내내 우리 타자들이 죽을 쒔지.’
잭 스나이프 감독의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만큼, 알렉스 비토 감독은 경이적인 성낙기의 모습에 정신을 추스르기도 어려웠다.
아론 저지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고 뒤이어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타석에 들어섰다. 성낙기는 마운드에서 긴 숨을 내쉬었다.
아론 저지를 무사히 잡았지만 산 너머 산이다. 스탠튼은 아론 저지보다 경험이 많고 컨택 능력도 우수한 베테랑이다.
“너희 팀 투수… 성낙기 말이야…….”
스탠튼이 타석에 들어서서 준비 동작을 하면서 리얼무토에게 말했다.
“응……? 성낙기가 왜?”
“어떻게 된 거지? 한계가 없는 투구를 하고 있어. 내가 아는 한, 저런 류의 투수는 없었거든. 설명 좀 해줄래?”
“글쎄… 니가 판단하면 되는 걸 왜 나에게 설명을 강요하지?”
“호, 리얼무토 많이 컸네. 전엔 내 말 한마디면 절절 매던 친구였는데… 너도 올스타에 나왔다 이거야?”
“후, 오늘 왜들 이러냐. 지금 시비 거는 거야?”
“그렇게 받아들이는 거야? 너 이제 보니 콤플렉스가 있구나. 그걸 감추기 위해 자존심을 내세우는 거고 말이야.”
“휴…….”
리얼무토는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나오는 타자마다 자신을 슬슬 건드린다.
포수의 토크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미리 선수를 치는 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올스타전 아닌가.
축제에서마저 신경전을 벌일 이유가 없는 데도 지레짐작으로 그러는 건가 싶어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 대신,
‘좋아, 너도 잠재워 주지.’
아론 저지 때와 마찬가지로 리얼무토는 승부욕이 끓어올랐다.
그러고는 또다시 전광석화 사인을 냈다.
연속 3구로 삼진을 잡아버릴 생각이었다. 마운드의 성낙기는 리얼무토의 사인을 보고는 기가 찼다.
‘아니, 또 전광석화를 던지라고……? 미쳤군.’
성낙기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리얼무토는 막무가내였다.
본래 저토록 고집을 피우는 포수가 아닌데 묘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
슈욱!
팡!
“스윙 스트라이크!”
리얼무토의 생각대로 성낙기는 전광석화를 던졌다.
이번에도 100.2마일이 찍힌 공이었다.
스탠튼은 무지막지한 스피드의 공이 바깥쪽으로 들어오자 배트를 냈지만 헛스윙.
그의 생각보다 더 빠른 공이었다.
‘젠장, 공이 들어오고 나서 배트가 돌았어.’
성낙기의 공을 치기 위해서는 더 빠른 준비 동작과 배트 스피드가 필요했다.
타이밍을 더 빠른 템포로 잡고 스윙할 필요성을 느꼈다.
리얼무토와 성낙기는 이심전심으로 스탠튼은 꼭 잡아내겠다고 마음먹었다.
리얼무토의 사인을 받은 성낙기가 와인드업을 했다.
따악.
2구에 스탠튼의 배트가 돌았고 타구는 1루 관중석으로 날아갔다.
이번 공은 93마일의 몸 쪽 투심이었는데 100마일의 공에 타이밍을 잡고 있던 스탠튼의 배트가 너무 빨리 돌았다.
볼 카운트 노 볼 투 스트라이크.
‘좋아, 3구로 끝내자.’
리얼무토는 속으로 되뇌면서 사인을 보낸 뒤, 성낙기의 3구를 기다렸다.
공 하나면 삼진을 잡을 수 있는 상황.
관중들은 성낙기가 그 무시무시한 공을 던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