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135화 올스타전 1
-오우, 성낙기 인기 좋은데? 신더가드와 스트라스버그에 이어 3위야. 커쇼를 제쳤어.
-성적으로 치면 1등해도 부족해. 전반기에만 15승을 올릴지도 모르는데 말이지.
-인지도가 약하다고 봐야지.
-성낙기를 올스타에서 보게 되는 거야? 와, 내로라하는 타자들 삼진 잡는 거 보고 싶다.
-올스타전에서 완봉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겠지만.
-왜 완봉이야. 퍼펙트도 있는데.
-성낙기는 마이애미에 내린 신의 선물이야.
-그는 알고 보면 무척 착한 남자야. 팬 서비스도 최고야.
마이애미 팬들은 성낙기가 올스타 투표에서 3위를 달리는 것에 고무되었다. 지난 시즌에도 올스타에 나간 바 있는 리얼무토는 올해도 역시 4위에 올라 있다.
베스트 멤버는 아니지만, 감독 추천으로 뽑힐 가능성은 있다.
그에 비해 성낙기는 전 메이저리그를 통틀어 3위를 달리고 있으니, 올스타 출전은 따 논 당상이다.
이는, ESPN 등의 스포츠 채널이 성낙기의 구질을 이슈화하는 바람에 불가능한 공을 던지는 투수라는 인식이 팬들에게 접목되었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2년차 투수가 올스타 투수 부문에서 3위를 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물론, 2022년 전반기의 성적이 워낙 좋았다.
“우리 팀에선 성낙기와 리얼무토뿐인가?”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뭐, 그대로 가겠지. 순위가 갑자기 뒤바뀔 것도 아니고.”
구단주 데릭과 오스틴 단장은 내심 마무리인 야를린 가르시아나, 퀸튼 정도가 뽑히길 바랐는데 그들은 순위에서 밀렸다.
그나마 성낙기가 투수 부문 3위로 구단의 위상을 지켜준 것에 대해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
성낙기는 7월에 1승을 더 추가하여 전반기에만 14승이라는 성적을 기록했다. 스트라스버그와 신더가드, 커쇼와 같은 성적이었는데 올해는 20승을 넘길 만한 투수들이 최소 6, 7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140게임 언저리의 KBO와 달리 162게임을 치르는 메이저리그의 여건상 충분히 가능한 수치였다.
KBO와 또 다른 점은 스트라이크 존이 넓다는 거다.
위쪽 공을 잘 잡아주고 홈 플레이트를 스치며 떨어지는 브레이킹 볼도 곧잘 잡아준다.
몸 쪽에 조금 인색한 건 사실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위협구를 뿌림으로써 벌어지는 벤치클리어링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웬만하면 바짝 붙이는 스트라이크 존은 던지지 말라는 소리.
그걸 인정해 주기 시작하면 타국에서 모인 선수들의 특성상, 문제가 복잡해진다.
몸에 맞는 선수가 늘어날 것이고 갈등은 증가할 것이다.
어쨌든 올스타전의 날은 밝았고 성낙기와 리얼무토는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투 포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내셔널리그의 감독은 뉴욕 메츠의 잭 스나이프였고 마이애미의 알렉스 비토 감독은 투수 코치로 정해졌다.
올해 올스타전은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리게 되었다.
LA에서 하는 경기다 보니 한인들이 경기장 곳곳에 보였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들은 성낙기의 팬들이다.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터전을 일군 그들에게 성낙기라는 존재는 반딧불이 같은 거였다.
한국인이라는 걸 내세울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성낙기라는 엄청난 투수가 태평양을 건너와서 메이저리그에 회오리를 몰고 왔다.
수많은 한국 투수들이 메이저리그를 거쳤지만 두 자리 승수를 올린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그마저도 요즘은 뜸하다.
박찬오 이래로 15승을 넘긴 투수는 성낙기가 유일했다.
더구나 올해는 전반기에만 14승을 거두는 믿기 힘든 활약을 펼치고 있으니 오늘 같은 날, 야구장에 오는 것은 당연했다.
“성낙기, 중간에라도 나오겠지?”
“글쎄, 3위로 순위권에 들었으니 나오긴 하겠지. 하지만 짧게 던질 거야.”
“저 선수 국적이 한국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아. 신체적으로 뒤지는 동양인이 서양 선수들과 겨뤄서 거의 톱이잖아.”
“안 믿을 수 없지. 실력으로 보여줬으니까.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
한인들은 끼리끼리 모여 앉아 성낙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단 한 명의 선수로 인해 상당한 자긍심을 가지는 그들이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인종차별은 있고 텃세와 비하가 은연중 깔려 있는 사회, 거기에서 그들은 살아내고 있었다.
모국에 대한 그리움과 설움 같은 것이 늘 있던 차에 성낙기라는 선구는 코리아라는 나라의 존재감을 메이저리그에 각인시키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느껴졌다.
***
어제 있었던 홈런더비에서는 예상대로 아론 저지가 같은 팀 스탠튼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 둘은 오늘 올스타전의 라인업에 3번과 4번으로 자리하고 있다.
마이크 트라웃이 5번이었는데 셋의 홈런 개수를 합치면 전반기가 끝난 현재, 90개에 육박한다.
이들의 존재만으로 클린업트리오의 파괴력은 아메리칸리그의 우세다.
여가수가 미국 국가를 불렀고 주심이 플레이볼을 선언했다.
“와아아아아!!!”
경기 시작을 알리자 다저스타디움에 모인 5만 6천의 관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올스타전을 즐기는 동시에 이곳에 모인 별들의 전쟁에 대한 기대감이 그런 함성을 가능케 했다.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웅장한 함성이었고 듣는 이의 피를 끓게 만드는 뜨거운 노래였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ESPND의 오스왈도입니다. 드디어 2022년의 올스타전이 열리는 다저스타디움입니다. 엄청난 함성과 함께 경기가 시작됩니다. 아, 저런 함성은 참으로 감격적입니다. 제임스 씨와 카바니 해설자 모시고 해설 듣겠습니다. 정말 대단한 관중들의 호응인데요.”
“저도 놀랐습니다. 올스타전에 거는 팬들의 기대가 사뭇 다릅니다. 더구난 오늘은 한인들이 무척 많이 오셨네요. 구장 관계자는 오늘 5만 6천의 관중석 중에 한인이 1만을 넘을 거라고 귀띔을 했습니다. 제 생각엔 아마 그들이 성낙기에게 보내는 함성일 겁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코리아는 예전부터 무슨 일이 있으면 단합을 잘하기로 유명하죠. 예전에 로드니킹 사건 때도 그랬고 월드컵 축구를 할 땐 수백만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심지어는 대통령을 탄핵할 때에도 그들은 촛불을 들고 전국의 주요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아주 잘 아시네요. 유독 단결력이 좋은 국민들인 건 확실합니다. 이런 응원을 등에 업은 성낙기 투수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무척 기대가 되는군요. 이미 그는 메이저리그를 평정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경기 시작과 함께 신더가드가 마운드에 올랐다.
포수는 케빈 플라웨키.
투 포수를 모두 뉴욕 메츠로 채운 건 다분히 잭 스나이프 감독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아메리칸 리그의 1번 타자는 클리블랜드의 호세 라미레즈로 3할이 넘는 타율에 27도루를 기록 중인 호타 준족의 상징 같은 선수였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역시 신더가드는 달랐다.
첫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더니 3번으로 나온 골드슈미트까지 중견수 플라이로 잡으며 이닝을 끝냈다.
깔끔한 출발이다.
1회 말 아메리칸 리그의 선발 투수는 보스턴의 크리스 세일이었다.
현재까지 12승 3패에 ERA 2.04를 기록 중이다.
내셔널리그의 1번 타자는 시카고 컵스의 하비에르 바에즈였다.
역시 3할을 웃도는 타율에 도루가 19개로 팀의 성적을 이끌고 있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그러나 결과는 1회 초와 비슷했다.
크리스 세일은 첫 타자를 보기 좋게 삼진 처리하더니 나머지 두 타자를 범타로 돌려세웠다.
그동안 올스타전은 아메리칸리그가 내셔널리그에 전적으로 약간 뒤처져 있었지만, 지난 시즌의 승리에 이어 올해까지 가져가면 동률이 된다.
내셔널리그는 그 조금의 격차를 유지하려 애쓰고 아메리칸리그는 동률을 넘어 역전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와, 크리스 세일 공 뿌리는 거 봐. 초반부터 98마일이야. 조금 있으면 100마일 나오겠어.”
“100마일?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래. 올해 102마일까지 던진 적도 있었어.”
“정확히는 101.6마일이었지.”
“그게 그거지, 넌 꼭 그런 걸 짚고 넘어가야겠냐?”
크리스 세일의 강속구에 관중들도 달아올랐다.
***
신더가드는 2회 초에도 나와 솔로 홈런 하나를 얻어맞았다.
조금 더 던지게 해서 MVP라도 타게 하려던 잭 스나이프 감독은 3회부터는 투수를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뒤를 이은 투수는 제이콥 디그롬.
좋은 투수인 건 사실이지만, 뉴욕 메츠의 투수가 연달아 나오니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내셔널리그도 안타 하나와 2루타로 1:1이 되었다. 팽팽한 올스타전이었고 투수들의 긴장감은 더 고조되었다.
-잭 스나이프 웃기네. 자기 팀 선수 위주로 마운드에 올리고 있어.
-두 선수가 인기투표 투수 부문 1, 2위야. 뭘 알고 이야기를 해야지.
-흥, 인기투표대로 마운드에 올릴 것 같으면 감독이 왜 필요하겠어. 인기 투표대로 가면 되지.
-우리 팀 윌리엄스도 꽤 던지는데 디그롬 다음에 나왔으면 좋겠다.
-아니, 인기투표대로 하면 다음 투수는 성낙기야.
포털 사이트에서도 야구팬들이 반응을 보였다.
디그롬은 3회를 잘 막아냈고 초고구속 100.3마일을 던지며 관중들을 놀라게 했다.
4회엔 드디어 성낙기가 마운드에 올랐다.
성낙기가 마운드에 올라오자 포수는 케빈 플라웨키에서 리얼무토로 바뀌었다. 같은 팀 배터리끼리 잘해보라는 잭 스나이프 감독의 배려라면 배려다.
“앗, 성낙기 나왔다.”
“좋아, 성낙기 코리아가 어떤 나라인지를 보여줘.”
“한 2이닝 정도 퍼펙트로 막으면 우수 투수 정도는 되지 않을까?”
“오늘 같은 날은 상대 타선이 엄청나기 때문에 무실점은 쉽지 않아.”
“3번 타자부터 시작이네. 아론 저지, 스탠튼, 트라웃 순이야.”
“와아, 이름만 들어도 지리겠네. 성낙기를 이 순간에 올린 감독의 저의가 의심스러운데?”
한인 팬들이 걱정할 정도로 클린업 트리오의 이름은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만큼 대단한 타자들이었다.
성낙기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연습구를 던지며 구위를 가다듬었다. 연습구가 끝나고 리얼무토가 마운드로 왔다.
“어차피 정규 시즌도 아니고 축제니까 늘 던지던 대로 던져. 편안하게. 알았지?”
“타순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오줌 나오는 거 억지로 참고 있구만.”
“하아,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다. 엄살 피우지 말고 세 명 다 셧아웃 시켜 버려. 혹시 아니? 인상 깊었다며 MVP라도 줄지.”
“휴, 말을 말자.”
“뭐라고?”
“아녀요. 잔소리 그만하시고 공이나 좀 받아주시죠.”
타석엔 아론 저지가 관중들의 뜨거운 환호성을 받으면 들어섰다. 축제인 올스타전 타석인데 굉장히 긴장한 모습이다.
1회에 범타로 물러나고 나니 4회의 승부가 더 중요해졌다.
어젠 홈런더비 우승으로 30만 달러의 상금을 받은 아론 저지.
기세를 이어가 올스타전 MVP의 등극이 그의 목표다. 4회에 뭔가 하지 않으면 MVP가 물 건너갈 수도 있다.
아론 저지는 마운드의 성낙기를 바라보며 전의를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