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134화 미션 달성하기 3
경기는 어느덧 5회로 치닫고 있었다.
크리스 세일은 삼진 머신답게 성낙기와 같은 8삼진을 기록 중이었다.
성낙기는 5회 초에 마운드에 올랐다. 성낙기는 4회를 지나는 동안 단 1안타로 보스턴 타자들을 요리했다.
“성낙기 투수, 4회까지 8삼진입니다. 엄청난 구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크리스 세일도 8삼진을 잡아냈습니다. 5회 초, 보스턴의 공격은 5번 타자 샘 트레비스부터입니다.”
“1회에 벤치클리어링을 했으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네요. 보통은 스스로 자제력이 무너지기도 하거든요. 흥분한 나머지 구위로 찍어 누르려 한다든가, 빠른 승부로 일관한다든가 하는 것 말이죠. 그런데 성낙기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네요.”
“네, 맞습니다. 마치 야구만을 위한 심장을 가진 선수처럼 보입니다.”
“야구만을 위한 심장이라… 표현이 좋은데요? 아무튼 오늘의 투수전도 몹시 재미있습니다.”
성낙기는 5회 초에 마운드에 서서 2타자 이상을 삼진으로 잡아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생각보다 쉬운 미션이 아니다.
더구나 5회 초의 첫 타자는 0.287의 타율에 볼넷과 삼진의 비율이 1:1에 달할 만큼 삼진 확률이 적다.
‘샘 트레비스가 문제다. 나머지 두 타자는 삼진 비율이 높아.’
성낙기가 속으로 되뇐 것처럼 샘 트레비스만 잡으면 뒤의 두 타자에게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삼진을 뺏어올 수 있다.
두 타자 연속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뒤의 두 타자에게서 2개의 삼진이 나오지 않는다면 미션은 물 건너간다.
[이 타자와의 승부가 중요합니다.]
상태창도 샘 트레비스 승부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성낙기는 초구부터 유인구보다는 정면 승부를 택했다.
유인구를 던지다 보면 타자는 스트라이크와 볼의 구분에 집중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좋은 공을 기다리는 경향이 생긴다.
즉, 스트라이크인지 유인구인지 몰라서 공을 맞추는데 전력을 다하게 된다. 그 말은 삼진 잡기가 어려워진다는 얘기.
반대로 처음부터 정면 승부를 하면 타자도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게 되고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자기 스윙을 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작은 차이지만 유인구 위주의 투구와 정면 승부는 그런 장단점이 있다.
따악.
파울.
라이징패스트볼(7cm/10cm)
역시 잘 걷어낸다. 바깥쪽 높은 코스인데도 스윙에 무리가 없이 결대로 밀어 친다.
타구는 1루 측 관중석으로 날아갔다.
2구 사인은 리얼무토가 체인지업 사인을 냈다.
성낙기는 고개를 젓고 바깥쪽 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따악.
파울.
이번에도 1루 쪽으로 공이 굴렸다.
외곽에 꽉 차게 들어와서 제대로 된 타격에 애를 먹는 샘 트레비스.
뜻대로 안 되는지 한숨을 쉬고는 타격 자세를 잡았다.
리얼무토는 3구째의 사인에도 고개를 젓는 성낙기를 보고는 마운드로 올라가려다 참았다.
성질 같아선 마운드에 올라가 군밤이라도 때리고 싶은데 그래봐야 주심에게 경고나 먹겠지.
‘어……? 그 공을 던지겠다고?’
성낙기는 더욱 더 빠른 공으로 샘 트레비스를 잡아낼 작정이었다.
비록 라이징패스트볼과 투심패스트볼이라는 빠른 공에 익숙해졌을 터이지만, 그 공들보다 7km가 빠른 공에는 적응이 힘들 것이다.
“전광석화(電光石火)”
성낙기가 낮게 읊조릴 때 샘 트레비스는 투수가 발음하는 한국말을 들었다.
그 짧은 순간, 무의식적으로 희한한 투수라고 여겼다.
공을 던지면서 말을 하는 투수는 그가 아는 한, 메이저리그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홈 플레이트로 올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파앙.
부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그의 상상을 벗어난 스피드를 가졌고 뒤늦게 배트를 돌렸지만 공은 이미 포스 미트에 박힌 뒤였다.
영상으로 보기도 했고 간혹, 다른 팀 타자에게 그런 소문을 듣긴 했지만 직접 당해보니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마치 완행열차가 느리게 가다가 갑자기 ktx의 스피드로 급가속을 하는 느낌이었고 그 느낌은 공의 스피드와 무관하게 경이적인 체감 속도를 샘 트레비스에게 선사했다.
‘도대체… 뭐가 지나간 거야?’
***
“성낙기 투수 다시 그 공을 던졌습니다. 99마일입니다.”
“한마디로 미친 공이네요. 저걸 어떻게 칩니까. 내내 93~94마일의 공을 뿌리다가 99마일을 던지면 타자는 전혀 대응할 수 없습니다. 타자들의 뇌가 기존의 스피드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죠. 100마일을 계속 던지면 적응이 되지만 갑자기 던지는 저런 공은 105마일보다도 빠르게 느껴질 겁니다.”
성낙기는 샘 트레비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나머지 두 타자마저 삼진으로 셧아웃 시키면서 코라 감독을 멘탈을 붕괴시켰다.
5이닝 11삼진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미션 달성을 축하드립니다.]
[세기의 강속구가 90으로 오릅니다. 최고 구속 96.3마일(155km)의 어엿한 강속구 투수가 되셨습니다.]
***
5이닝 11삼진에 강속구 스탯까지 오른 성낙기는 신바람을 냈고 9회까지 19삼진을 잡아낸 후, 완봉으로 경기를 끝내 버렸다.
메이저리그 기록에 단 하나가 모자랐다.
클레멘스와 랜디 존슨이 기록한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은 20개였다.
더 멀리는 1998년 케리 우드라는 신인 투수가 20탈삼진을 기록했다.
전설급 투수들의 뒤를 잇는 기록이자 보스턴이라는 강팀을 상대로 거둔 쾌거였다.
크리스 세일도 역투했지만 8회에 시에라에게 투런 홈런을 맞고 2실점.
결국 마이애미의 2:0 승리.
성낙기의 삼진 퍼레이드는 미국의 메이저리그 시청자들은 물론, 한국의 야구팬들조차 믿을 수 없는 기록이라면 놀라워했다.
성낙기의 경기 다음 날, 삼호슈퍼스타즈의 단장실에는 마영진 단장과 허봉호 감독, 정진수 에이전트, 김아경, 이계현 코치 등이 모여 있었다. 마영진 감독이 먼저 입을 뗐다.
“성낙기, 너무 잘나가는데요? 상상해 보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특한 선수란 건 오래전에 알았지만 정말 엄청납니다. 19탈삼진이라니요.”
이계현 투수 코치가 맞장구를 쳤다.
“하아, 내가 데리고 있을 땐 140km나 던질까 말까한 놈이었는데 어제는 99마일을 던졌어. 설마 약을 하는 건 아니겠지?”
“감독님도 참, 약물의 시대는 갔어요. 요즘은 불시에 하는 검사가 많고 어지간한 약은 다 잡아낼 정도로 의학 기술이 발달했죠.”
허봉호 감독의 말에 김아경이 반박했다.
“아니, 아니면 아닌 거지, 얼굴은 왜 붉히고 그래요. 미국에 몇 번 갔다 오더니 정분났나.”
“뭐라고요? 지금 말씀하신 거 인격 모독입니다. 제가 삼호슈퍼스타즈 스카우트 팀장인데 이적한 선수하고 정분났다는 소리가 나와요?”
“거…참 딱딱하시네. 내가 잠시 말이 헛 나와 가지고 미안하게 됐수다.”
“흥, 앞으로 한 번만 더 고따구로 말씀하시면 가만있지 않겠어요.”
“뭐, 뭐? 고따구?”
“아아, 또 왜들 이러십니까? 지금 성낙기 투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중이잖아요.”
마영진 단당의 중재에 허봉호 감독과 김아경이 입을 다물었다.
요즘은 김아경도 말발에서 허봉호 감독에 밀리지 않는다.
방금 말한 ‘고따구’ 같은 비속어 스킬을 익혔기 때문이다.
이제 먼 곳으로 떠났고 삼호슈퍼스타즈 소속도 아닌 선수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옥신각신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단장실에 모인 구성원들의 성낙기에 대한 애정을 알 만했다.
허봉호 감독이나 이계현 코치에게는 제자와 같은 성낙기였고 김아경은 에이전트로 활약한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조금 과한 면은 있다.
이 모두가 성낙기가 야구의 본 고장 메이저리그에서 올리는 성적이 범인의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고 구단의 자랑임과 동시에 한국 야구의 자랑이기 때문이었다.
***
성낙기의 호투에 타격을 입은 보스턴의 타자들은 다음 날, 호세 우레나에게 7회까지 4안타 1득점으로 고전했고 마이애미의 불펜은 8, 9회를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반면, 마이애미의 타자들은 보스턴의 2선발 드류 포머란츠에게서 8안타 4득점을 뽑아내며 승기를 굳혔다.
뒤이어 나온 불펜까지 두들겨서 경기의 최종 스코어 6:1로 승리.
“완전히 말렸어. 마이애미에 2연패를 당하다니. 쉣!”
“성낙기에게 당한 정신적 충격이 타자들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낙기는 어디서 온 투수인데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들을 가지고 노는 거야.”
“코리아랍니다.”
“누가 그걸 몰라? 지구상에 없는 퍼포먼스를 보이니까 그러는 거지.”
보스턴이 2연패를 당하고 나서 코치가 달래야 할 만큼, 코라 감독은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포털 사이트도 마찬가지였다.
-내 생전에 마이애미에 2연패 당하는 꼴을 보다니. 더구나 에이스 크리스 세일을 내고도 지다니.
-못 치는데 지는 수밖에 없지. 양키스 따라가기도 벅찬 시기에 마이애미에 덜미를 잡혔어.
-그나저나 성낙기 어떻게 된 거야. 99마일을 던진 공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약을 친 게 분명해.
-흥, 한 달 전에 피 뽑은 걸로 아는데?
-한 달 전이니 그렇지, 지금 뽑아 봐야 확실한 걸 알 수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투구는 아니야. 이건 구단 차원에서 이의를 제기해야만 한다고.
보스턴 팬들의 생각처럼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성낙기의 투구 패턴을 예의 주시했다.
그리고 곧바로 결론을 내렸다.
저건 약물 가능성이 많다는 걸로.
경기력 향상 약물뿐 아니라 푸로세마이드(furosemide)같은 약물 은폐제가 나오더라도 엄격한 재제를 적용할 방침이었다.
그러고는 바로 마이애미 구단으로 들이닥쳤다.
성낙기가 보스턴과의 경기에서 던진 다음 날, 채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이었다.
“얼마 전에도 빼간 걸로 아는데, 한 선수에게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구단 직원들이 항의했지만 사무국에서 온 의료진은 요지부동, 자기 할 일만 하고는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많은 샘플 사례를 적용해 가며 검사에 임했지만 성낙기의 피는 깨끗해도 너무 깨끗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도달한 결론은 이것이었다.
-최강의 야구 유전자를 물려받은 선수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의심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푸로세마이드 계열보다 월등한 약이 없으란 법도 없기 때문.
타고난 야구 선수라는 심증은 굳혔지만 불가사의한 투구를 보이는 한 샘플 채취는 계속될 예정이었다.
어느덧 7월에 접어들었고 올스타 투표가 시작되었다.
투수 쪽에서는 예상대로 신더가드와 스트라스버그, 커쇼와 디그롬 등이 각축을 벌였으나 새롭게 등장한 이름도 있었다.
그는 바로 성낙기였다.
팬 투표에서 처음엔 하위권에 있던 성낙기라는 이름은 날이 갈수록 슬슬 치고 올라오더니 마감 이틀 전엔 3위까지 그 이름을 올렸다.
처음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들에게 투표하는 팬들이 많았지만, 날이 갈수록 선수가 보여준 성적을 토대로 투표하는 팬 층이 두드러졌다.
그들이 보기에 성낙기는 전반기 성적 13승 1패, ERA 1.34에 빛나는, 말 그대로 언터처블 투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