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132화 미션 달성하기 1
현재 내셔널리그는 워싱턴, LA다저스, 시카고 C의 삼파전이다.
그리고 아메리칸리그는 양키스와 보스턴, 휴스턴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에서 클리블랜드가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전력 자체는 동부지구 2위인 보스턴에도 떨어진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이 6개 팀 중에서 월드시리즈 우승팀이 나올 거라는 예측은 지극히 타당하다.
확률 상으로도 지구 우승팀의 월드시리즈 제패는 월등히 높다.
다만, 와일드카드로 진출하여 월드시리즈를 우승한 마이애미 같은 팀들의 변수가 많아서 야구는 더 흥미진진해진다.
지구 우승권에 있는 강자라 하여 하위권 팀을 무조건 경시할 수 없는 이유다.
보스턴은 올해 양키스를 제외한 다른 구단을 상대로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도 유독 마이애미를 상대로는 4번 붙어 1승 3패로 부진했다.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양키스에 이어 2위에 그치고 있지만, 다른 지구의 우승팀을 뛰어넘는 0.625의 승률을 기록 중이다.
양키스와 보스턴이라는 2강으로 인해 템파베이와 토론도, 볼티모어는 죽을 쑤고 있다.
보스턴은 5게임차인 양키스를 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중인데 유독 마이애미가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내셔널리그 강자면 또 모르겠는데 동부지구 2위권이면서도 승률은 5할 중반 대에 머무는 별 볼 일 없는 팀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다지 강한 팀은 아닌데 투수 하나가 언터처블이다.
6월 25일로 인터리그 경기가 잡힌 마이애미와 보스턴의 2연전 승부는 말린스파크에서 가릴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말린스파크는 경기 전부터 관중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많은 관중들이 성낙기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그만큼 거는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다.
보스턴의 헤인즈 단장과 코라 감독은 보스턴 더그아웃 구석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둘은 오랜 친구이면서 같은 구단에서 오랫동안 야구를 함께 한 동료이기도 했다.
“이봐, 코라. 이번 2연전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해. 성적도 성적이지만 마이애미 같은 팀에 밀리면 답이 없어. 알지?”
“당연히 알고 있지. 타자들의 타격 사이클이 올라와 있고 크리스 세일도 컨디션 최고야. 오늘은 무조건 이길 거니까 걱정 말게.”
“휴, 이번 2연전을 잡으면 탄탄대로야. 다음 경기는 하위권 팀들과 경기가 잡혀 있어. 양키스가 강팀들하고 붙는 틈을 타서 따라잡아야 해.”
“우리 타자들이 성낙기라는 마이애미 투수를 두들길 거야. 특별히 영상까지 보면서 시뮬레이션 타격까지 했으니 기대해도 좋아.”
보스턴의 코라 감독은 자신에 차 있었다.
요즘 타자들의 타격 사이클이 최고조에 달해 있고 상대팀의 에이스를 무너뜨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바로 오늘이 지난 경기의 빈타를 복수할 때라고 생각했다.
***
성낙기는 말린스 파크에 가득 찬 관중을 보면서 몹시 즐거웠다.
홈에서 경기를 하는데다 관중들은 경기 전부터 성낙기라는 이름을 연호(連呼)했다.
3만 7천의 좌석은 어느새 꽉 들어차 있었다.
“요즘은 말린스 파크가 연일 매진입니다. 양 팀의 에이스가 나오는 경기이고 보스턴이라는 강적과 맞붙기 때문에 더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
“성낙기 투수가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닌다고 봐야죠. 저 투수가 나올 때마다 관중석에 빈자리가 없네요. 그만큼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주거든요. 오늘은 크리스 세일이라는 좌완의 강속구 투수와 불가사의한 공을 던지는 성낙기 투수의 대결이니 더 그렇겠죠. 이런 경기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두 선수 모두 투수 폼이 특이합니다. 성낙기 투수는 와인드업 도중에 한 번 더 발을 돋우면서 치고 나가는 버릇 때문에 타자들이 타이밍 싸움을 힘들어 합니다.”
“그렇죠. 성낙기 투수의 투수 폼은 매우 독특합니다.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투수보다 반 박자 늦게 공이 손을 떠나기 때문에 타자들이 헷갈리는 거죠. 그뿐이면 괜찮지만 라이징패스트볼과 퀘이크볼이라는 희대의 무기를 갖고 있는 투수입니다. 거기에 가끔 던지는 강속구는 미치도록 빠릅니다.”
“크리스 세일의 투구 폼도 만만치 않죠?”
“맞아요. 크리스 세일은 스리쿼터 같은 팔 높이로 던지는 데다 투구의 좌우 폭이 매우 크기 때문에 좌타자들은 바깥쪽으로 흐르는 슬라이더에 속수무책이죠. 우타자도 마찬가지예요. 바깥쪽으로 휘어져 들어오는 슬라이더에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볼인 줄 알고 가만 두면 휘어지면서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와 버리죠. 타자는 배트가 닿지 않는다는 기분을 느낄 겁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외침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고 성낙기는 마운드로 올라갔다.
연습구를 던지기 위해 투수판을 쓸고 있는데 눈앞에 글귀가 떴다.
[지금까지 쌓은 스탯을 보여 드립니다]
[체력이 (95/100)입니다]
[세기의 강속구가 (88/100)입니다]
[포심의 제구력이 (93/100)입니다]
[커브의 제구력이 (90/100)입니다]
[슬라이더의 위력이 (87/100)입니다]
[체인지업의 위력이 (87/100)입니다]
[투심의 제구력이 (85/100)입니다]
[포크의 제구력이 (85/100)입니다]
[라이징패스트볼이 (8cm/10cm)입니다]
[퀘이크볼이 (4cm/5cm)입니다]
[어깨근육 강화 (8단계/10단계)]
[팔 근육 강화 (8단계/10단계)]
행크아론의 타격 (4단계/5단계)
짐 캇의 수비력 (4단계/5단계)
리키 헨더슨의 도주(4단계/5단계)
악력(7/10)단계.
전광석화(電光石火) + 7km. 9이닝 5구.
‘다 알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왜 그래.’
[요즘 긴장도 없고 풀어진 것 같아서 앞으로는 스탯 증가에 보너스 개념을 도입하겠습니다.]
‘무슨 보너스 말이야.’
[오늘 경기에서 5이닝 이내에 10삼진을 잡으면 세기의 강속구가 2 올라갑니다]
‘푸하, 웃기네. 9이닝도 아니고 5이닝 안에 삼진 10개를 잡으라고? 드디어 니가 돌았구나.’
[제 이름은 니가가 아니고 상태창입니다. 그리고 흑인 지역에서 니가라는 단어 쓰면 맞아 죽습니다.]
‘니거(nigger)가 아니고 니가인데 뭔 소리냐, 상태야.’
[상… 태……?]
‘그래, 앞으로 너 상태 해라. 한국 이름으로 상태가 많거든. 정감도 가고 좋네.’
[…알아서 하십시오. 보너스 달성 못하면 체력을 줄여…….]
‘시끄러!’
[…말을 못 하게 하네. 거저 얻어먹으면서… 요.]
상태창이 조금 변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말이 많아졌고 슬슬 개기는 형태로 변질되었다고 할까.
전엔 주인님 모시듯 하더니 미국 오고 나서 대가리가 굵어졌다.
어쨌든 성낙기는 상태창으로 인해 동기부여와 동시에 5이닝 10삼진이라는 부담을 안고 1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
무키 베츠.
175cm의 단신이면서 82kg의 단단한 체구를 가진 보스턴의 1번 타자다.
올 시즌 0.338의 타율에 14홈런 11도루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테이블세터이면서도 펀치력이 있는 타자.
보스턴 공격은 무키 베츠로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4할에 근접한 출루율을 자랑한다. 그가 타석에 들어서자 보스턴 관중들이 휘파람을 불어댔다.
어떤 공이라도 때려낼 듯한 타격 자세가 강한 포스를 풍긴다.
‘아니, 저런 타자가 나오는데 삼진을 어떻게 잡아. 딱 보면 각이 나오잖아. 저게 어디 헛스윙을 할 자세냐고.’
[누구라도 약점은 있는 법입니다. 자신을 가지세요.]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상태라고 이름붙인 애가 꼬박꼬박 말대꾸다.
리얼무토는 초구로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요구했다.
175cm의 단신이니 바깥쪽 공이 더 멀어 보일 거라는 계산 같은데 성낙기는 고개를 저었다. 무키 베츠의 타석 위치가 지나치게 안쪽으로 붙어 있다.
팡.
“스트라이크.”
무키 베츠는 몸 쪽으로 들어오는 포심패스트볼에 뒤로 물러났다.
오늘 주심은 몸 쪽 꽉 찬 공을 인정해줄 모양이다.
방금 공은 타석에 바짝 붙어 서서는 도저히 칠 수 없는 공이었다.
몸 쪽에 인색한 메이저리그라 해도 간혹 몸 쪽에 후한 주심도 있다.
초구가 스트라이크가 되자 무키 베츠는 생각이 많아졌고 성낙기는 하나의 코스를 더 가진 기분이 들었다.
방금 같은 코스의 공이 스트라이크 선언을 받기 시작하면 투수는 최대한 넓은 스트라이크 존을 가지는 것이고 타자들은 몸 쪽 공에 대비하여 조금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팬 휴즈 주심은 마이애미 출신이야. 적어도 우리 팀에 불리한 판정은 하지 않을 거야.
-내 생각도 같아. 그는 오늘 승리의 전령사가 되어야만 해. 그래야 나중에 은퇴하면 고향에서 편히 살 수 있지.
-흥, 마이애미 애들 말하는 거 봐라. 이건 숫제 주심 판정으로 경기를 이겨보겠다는 거네.
-냅 둬. 저놈들은 원래가 저런 종자들이야. 허리케인이 괜히 저것들을 노리는 게 아니지.
-1승 3패를 당한 주제에 뭐래. 오늘을 추가하면 1승 4패가 되겠군. 머저리들.
성낙기는 2구도 몸 쪽으로 바짝 붙인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1구와 같은 코스. 무키 베츠가 배트를 냈지만 파울.
손잡이 부근에 맞아서는 좋은 타구가 나올 수 없다. 그걸 의식했는지 무키 배츠는 3구를 맞아 뒤로 조금 물러섰다.
팡.
“스트라이크 아웃!”
3구로 던진 슬라이더가 바깥쪽으로 휘어지면서 타자에게 가장 먼 곳에 꽂혔다.
***
“타자들보고 바짝 붙으라고 해. 몸 쪽으로 공이 온다고 물러서면 방금처럼 바깥쪽 슬라이더로 끝이야.”
“사구 위험이 있는데요.”
“타격 코치가 그렇게 나약한 생각하면 되겠어? 이번 2연전을 내주면 팬들을 무슨 면목으로 볼 거야. 성낙기라는 저 투수는 평범하게 가서는 안 돼. 무조건 흔들어.”
“알겠습니다. 적극적으로 주문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벤치클리어링에도 미리 대비해. 마이애미보다 먼저 튀어나갈 수 있도록.”
무키 베츠가 타석에서 무기력하게 물러나는 모습을 본 코라 감독은 나름의 결단을 내렸다.
타석에 바짝 붙어 있던 무기 베츠가 몸 쪽 공을 피하는 걸 보고 힌트를 얻은 것인데,
피하지만 않는다면 성낙기를 상대로 좋은 승부가 될 거라고 봤다.
“오, 2번 타자로 나온 앤드류 베닌텐디 선수, 타석에 최대한 붙는군요. 무슨 작전일까요.”
“여러 가지 장단점이 있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의도는 투수의 신경을 건드리는 거겠죠. 저렇게 나오면 투수는 몸 쪽 공을 던지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사구 가능성이 많거든요. 그리고 바깥쪽 공에도 타자들이 강해지죠. 아무래도 타석에서 멀리 있을 때보다는 공략이 쉬우니까요.”
“그렇다면 꽤 쓸 만한 작전 같은데요?”
“코라 감독은 성낙기가 흔들리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ERA가 1.45를 찍고 있는 투수를 상대로는 변칙적인 시도가 필요하거든요. 다만, 먹히느냐 마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성낙기 투수가 부담을 느끼길 바라는 작전이군요.”
“하지만, 몸 쪽 공을 정교하게 던지는 투수에겐 쓰기 어려운 작전이죠. 저 위치에서 몸 쪽으로 잘 제구 된 공을 쳐내기는 어려우니까요.”
리얼무토의 사인도 역시 해설자의 생각과 맞아 들어갔다.
몸 쪽으로 붙이라는 사인이다.
성낙기는 리얼무토의 사인대로 연속 파울을 친 타자를 상대로 투 스트라이크를 먼저 잡아냈다.
코라 감독은 몸 쪽 공에 대한 대응법을 타격 코치에게 알렸다.
‘몸 쪽 공이 계속 오면 오픈 스탠스로 타격해. 몸 쪽 공을 계속 던지다보면 실투가 나오게 되어 있어. 걸리면 넘어가는 코스가 몸 쪽이지.’
코라 감독은 성낙기를 어떤 식으로든 괴롭히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로서는 나름 비장한 승부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