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129화 쿠어스필드 1
결과적으로 9회는 깨끗하지 못했다.
야를린 가르시아는 올라가자마자 사구를 던져 타자를 내보냈고 뒤이은 타자에게 내야안타를 허용했다.
마이애미 더그아웃에서 모든 선수들이 가슴을 졸이고 있을 때, 3루수 가렛 쿠퍼가 라이너로 날아가는 타구를 점프하며 잡아냈고 2루로 공을 뿌렸다.
3루에 가려던 2루 주자도 아웃.
호수비에 이은 병살타로 경기를 끝내 버렸다.
2:1의 신승.
“쏘리, 조마조마했지?”
더그아웃으로 온 야를린 가르시아는 성낙기에게 눈웃음치는 걸 잊지 않았다.
성낙기는 야를린의 얼굴을 향해 긴 한숨을 내뱉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성낙기는 경기의 MVP로 선정되었고 아나운서는 8회의 홈런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처음엔,
“그냥, 얻어걸렸어요.”
라고 대답했던 성낙기는 나중엔,
“사실은 슬라이더를 예상했습니다. 위협구를 던질 땐 목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아나운서가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
***
마이매이 말린스는 뉴욕 메츠 1차전 승리로 1게임 차 2위로 올라섰으나, 2차전에 패하는 바람에 다시 동률이 되었다.
두 팀이 2위를 차지하기 위해 애를 쓰는 동안 워싱턴 내셔널스는 5게임차로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팀의 성적과는 별개로 성낙기는 5월이 끝나가는 현재, 8승 1패 ERA 1.76으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는 중이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20승을 충분히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마이애미 팬들은 성낙기에게 매료되었고 어린아이들에게 성낙기의 유니폼은 히트작이었다. 한국은 더했다.
스포츠 스타 중에 축구 선수들은 EPL이나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았다.
빅 리그였으니 당연히 인지도나 스타성으로 볼 때 야구를 능가했다면 이제는 아니었다.
성낙기라는 존재 하나가 모든 스포츠 스타들을 앞질렀다.
드라마틱한 그의 메이저리그 진출과 부상 이력 등은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냈고 사람들은 극적인 성낙기의 성공에 매료됐다.
삼호슈퍼스타즈 2군에서 뛸 때 130km도 던지지 못하던 투수가 지금은 98마일의 공까지 던지는 걸 보고 스포츠 사상 최대의 불가사의로 꼽는 전문가도 많았다.
성낙기가 출전한 날이면 TV 시청률은 껑충 뛰어올랐고 하이라이트와 특집 방송도 잇따랐다.
“굿 이브닝의 서하진입니다.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성낙기 선수가 8과 1/3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도 무척 흥분되는 경기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아주 좋은 모습을 보이는 성낙기 선수의 성적도 엄청나죠. 오늘은 장종운 해설자와 아주아주 특별한 분이죠. 바로 성낙기 선수를 메이저리그로 진출시켰던 김아경 전 스카우트 팀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김아경입니다.”
“김아경 팀장님을 오늘 어렵게 모셨는데요. TV 출연을 고사해 오시다가 결심했다고 들었어요. 마음을 바꾸신 이유라도 있었는지요.”
“있습니다. 제가 진출에 힘을 보탠 마당에 성낙기 선수가 압도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데다가 시청자 분들의 출연 건의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한 번쯤은 TV에 나와 성낙기 선수의 계약과정이라든지 궁금하신 점을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장종운 해설자님, 성낙기 선수의 경기 어떻게 보셨나요?”
“한마디로 환상적이었습니다. 제구와 강속구의 구위 모두 나무랄 데 없이 잘 던졌죠. 이건 미치지 않고는…….”
김아경은 팬들의 성화에 못 이겨 TV에 출연해야 할 만큼 스타급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룹 회장의 딸로 스카우트 팀장을 맡더니 성낙기라는 선수를 메이저리그에 보냈고 선수는 발군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 역시 모델 저리 가라할 정도인 김아경의 외모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돈만 알 것 같은 재벌의 딸이 야구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매력이었다.
또한 열정과 집념으로 삼호슈퍼스타즈를 한국시리즈를 다투는 팀으로 만든 일은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회자될 정도였다.
-김아경은 정말 겸손해. 김현중 회장과는 또 달라.
-그렇지, 김현중 회장은 성질 더럽지. 자기 맘에 안 드는 임원 조인트도 까는 인간이야.
-그러니까 신기하지. 저런 회장의 딸이니까. 게다가 야구 마스터야.
-맞아, 삼호슈퍼스타즈 2군을 실질적으로 이끌면서 강팀으로 거듭났지.
-얼굴도 존나 이뻐. 성낙기랑 친하겠지?
-당연히 친하지. 그렇지만 나이 차가 많아. 둘이 사귀는 일은 없어.
-혹시 아냐. 미국 가서 성낙기 애 임신해 가지고 올지.
-수준 낮은 놈. ㅉㅉ
***
“안녕하십니까. 메이저리그 투나잇입니다. 오늘은 내셔널리그 동부지구를 다루겠습니다. 마이애미 말린스와 뉴욕메츠의 2위 싸움이 치열한데요. 토론토의 전 코치시죠. 에릭튼씨 나와 계십니다. 요즘 동부지구가 흥미롭죠?”
“아주 흥미롭습니다. 워싱턴이 앞서가고 뉴욕메츠와 마이애미가 따라붙는 형국이죠. 특히 메츠와 말린스의 2위 쟁탈전이 대단합니다. 지난 시즌에도 두 팀이 와일드카드를 놓고 경쟁을 했습니다만, 시즌 초반부터 이러진 않았죠. 그래서 더 흥미진진합니다. 게다가 두 팀 모두 올해 전력이 작년보다 업그레이드되었거든요.”
“그렇다면 두 팀 중 하나가 워싱턴의 1위를 넘볼 수는 있을까요?”
“야구에 절대라는 건 없습니다. 두 팀이 기본적으로 투수력이 안정된 팀이니까,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마이애미는 성낙기라는 투수가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죠?”
“맞습니다. 이 투수가 마이애미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 혜성처럼 나타나서 좋은 성적을 거두더니 올해는 더 빠르고 더 정교해졌어요. 이 기세로 가면 20승도 가시권입니다.”
“뉴욕엔 신더가드라는 천둥의 신이 있는데요. 두 투수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뉴욕은 신더가드라는 투수가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고 변함없는 강속구를 자랑합니다. 그리고 올해 역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죠. 반면, 성낙기 투수는 제구력이 뛰어납니다. 변화구도 많죠. 두 선수를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두 선수 모두 올해는 사이영 후보에 오를 정도의 활약이 예측되거든요.”
“그렇군요.”
***
2022년 6월 1일, 성낙기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2위를 기록 중인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선두인 LA다저스를 바짝 추격 중인 콜로라도 로키스는 쿠어스필드라는 투수들의 무덤을 홈 경기장으로 갖고 있는 팀이다.
해발 1,610m의 높은 곳에 위치한 경기장은 고지대이기 때문에 타 지역보다 타구의 비거리가 길고 홈런이 잘 나오기로 유명했다.
쿠어스필드에서 타자들의 성적은 올랐고 투수들은 방어율 관리에 어려움을 겪기 일쑤였다.
한국인 최초로 LA다저스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박찬오 선수는 통산 성적 124승에 ERA 4.36을 기록했지만 쿠어스필드에서는 5승 2패 ERA 6.26으로 고전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6.26의 방어율로도 5승 2패라는 괜찮은 결과를 얻었다는 것인데 그만큼 상대팀 투수도 헤맸다는 말이 된다.
일본인 노모 히데요의 ERA는 6.65였으며 크레이튼 커쇼 역시 5.24로 에이스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을 냈다.
제구력의 마술사로 알려져 있는 그렉 매덕스조차 5.19의 방어율을 기록한 곳이 바로 쿠어스필드였다.
성낙기와 맞붙는 콜로라도의 투수는 제프 호프만.
196cm의 키에 102kg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투수답게 96~97마일의 포심패스트볼과 파워 커브가 주 무기다.
지난 시즌 13승에 ERA 3.56을 기록하면서 가능성을 보였고 올해는 7승에 2.89의 방어율로 에이스급 성적을 올리고 있다.
내로라하는 투수들도 쉽게 기록하지 못하는 2점대 방어율.
제프 호프만은 쿠어스필드를 홈구장으로 쓰면서도 그걸 유지하고 있다.
“기대되는 경기입니다. 마이애미의 신성으로 떠오른 성낙기와 콜로라도의 에이스로 급부상한 제프 호프만의 대결입니다. 경기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제프 호프만은 쿠어스필드에 특화된 선수입니다. 이 구장에서 2점대의 방어율은 다른 구장에서 1점대의 방어율이나 같죠. 다른 구장에서 사이영상 급 활약을 하던 투수들도 이곳에 오면 쉽게 무너집니다. 그래서 전 제프 호프만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생각합니다.”
“성낙기로서는 이번 시즌 성적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에 선 셈이겠군요.”
“그렇죠. 그것도 아주 어려운 시험대입니다. 콜로라도의 타격이 요즘 물이 올라 있고 얼마 전엔 커쇼도 5이닝 6실점으로 뭇매를 맞은 곳이기도 하죠.”
“말씀드리는 순간, 콜로라도의 제프 호프만이 마운드에 오릅니다.”
***
제프 호프만은 쿠어스필드에 특화된 투수답게 삼진 비율과 땅볼 타구가 많은 유형이다.
포심패스트볼 위주로 던지다가 파워 커브로 타이밍을 빼앗는 스타일.
슬라이더와 체인지업도 수준급이다.
따악.
1루 땅볼 아웃.
따악.
유격수 땅볼 아웃.
따악.
2루수 땅볼 아웃.
그래서인지 마이애미의 타자들은 땅볼만 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콜로라도 팬들은 경기장을 꽉 메우고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느긋한 분위기였다.
그들이 생각하는 마이애미는 늘 하위권을 전전하는 팀일 뿐이다.
작년엔 동부지구 2위를 하면서 기세를 올렸지만 그뿐이었던 반면에 콜로라도는 디비전시리즈에서 강자들과 승부를 겨뤘을 정도로 객관적인 전력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
그러므로 쿠어스필드 관중들이 피크닉이나 온 듯 여유로운 것은 당연했다.
“마이애미 투수가 코리아에서 온 애지?”
“응, 제법 던지던데? 뭐랄까 종잡을 수 없는 공을 던지지.”
“맞아, 지난 시즌에 쿠어스필드에서 한 차례 던졌었지. 꽤 던졌던 걸로 기억해.”
“작년과 올해는 우리 타선이 달라. 물이 한창 올랐거든.”
“나도 잭의 말에 동의해. 쿠어스필드의 악명이 그냥 생긴 게 아니지. 맞으면 넘어가는 곳이 여기야.”
“크크, 오늘 성낙기라는 투수 개 털리고 울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콜로라도 팬들은 대충 이런 반응이었다.
지난 시즌에 자리 잡은 주전들의 기량이 한층 무르익었고 올해는 포텐을 터뜨리는 중이다.
전문가들조차 성낙기의 쿠어스필드 적응에 의문을 표했다.
제프 호프만은 이미 쿠어스필드에서 검중된 선수지만 성낙기는 아니라는 점이 그 이유였다.
성낙기가 그런 의문을 뒤로 하고 마운드에 올랐다.
콜로라도의 1번 타자는 트레버 스토리.
작년에 이어 올해도 대단한 활약으로 팀의 타선을 이끄는 공격의 첨병이다.
0.332의 타율에 17도루 10홈런을 기록 중인 선수로 이대로 성적이 유지된다면 콜로라도 구단의 1번 타자로서는 역대급 성적이 기대되는 선수.
트레버 스토리가 타석으로 걸어가자 콜로라도 팬들이 휘파람을 불어댔다.
5만 여 명의 관중들이 지르는 환호성 역시 대단했다.
타 구단 투수라면 주눅이 들 것 같은 분위기.
“오늘은 아래로 가라앉는 브레이킹 볼 위주로 가는 게 낫겠다. 일반적인 포심패스트볼 타구는 플라이 볼이 많으니까 투심으로 카운트 잡고 변화구로 승부하자, OK?”
경기 전, 리얼무토의 말이었는데 성낙기도 그 말에 동의했다.
제프 호프만처럼 땅볼 유도의 피칭을 하자는 것으로 꽤 설득력 있다.
트레버 스토리가 타석에 들어서서 몇 차례 배트를 돌렸다.
리얼무토의 초구 사인이 왔다. 성낙기는 완급 조절 없이 최대한의 스피드로 공을 던졌다.
트레버 스토리가 배트를 내밀었다.
적극적인 초구 공략.
따악.
경기장 안에 경쾌한 타구 음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