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125화 투수전 1
현재 마이애미의 주전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1번 퀸튼-우익수
2번 시클라멘-2루수
3번 가렛 쿠퍼-3루수
4번 브라이언 앤더슨-1루수
5번 디카엘로-좌익수
6번 홀랜드-유격수
7번 시에라-중견수
8번 리얼무토-포수
9번 투수
거기에 채드 왈라치, 루이스 브린슨, 스탈린 카스트로 등의 백업이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자주 투입되는 편이다.
1선발-성낙기
2선발-호세 우레나
3선발-샌디 알칸타라
4선발-케일럽 스미스
5선발-딕 에일
의 5선발과 마무리 야를린 가르시아를 축으로 팬 파일러, 데일 카론, 사무엘, 등의 불펜이 주축이었다.
타선은 작년에 비하면 많은 변화가 있었고 바로 그 변화가 팀을 이끌고 있다.
퀸튼과 시클라멘의 테이블세터가 좋아서 일단 주자가 자주 나가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하위 타선도 필요할 때 응집력을 보여준다.
투수는 딕 에일의 등장이 눈에 뛴다.
성낙기가 1선발로 발돋움한 것도.
불펜도 많이 두터워졌는데 특히 마무리 앞에서 던지는 투수진이 탄탄해졌다.
거액을 들여 영입한 데일 카론과, 팬 파일러의 성장으로 물 샐 틈 없는 진용이 갖춰졌다.
“요즘은 마이매미의 야구를 볼 맛이 나. 작년 같은 대량 실점이 사라져서 끝까지 기대를 갖게 하지.”
“그렇습니다. 투수진도 이만하면 탄탄하고 타선도 순조로운 편입니다. 불펜 진은 2점대의 방어율을 유지하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지요.”
“그런데 성낙기 말이야. 좀 이상하지 않아?”
“네? 뭐가요?”
“작년엔 타석에서 곧잘 홈런을 때려냈잖아. 타율도 상당했지. 성낙기가 결승타를 때려낸 경기도 여럿이었어. 올해는 타석에서 의욕이 없어서 하는 말이야.”
“아, 그거 말입니까. 본인이 체력 때문에 자중한다고 들었습니다.”
“체력 때문에……?”
“치고 달리기 시작하면 6회밖에 던지지 못한다네요. 그 얘기를 듣고 할 말이 없더군요. 어쨌든 개막전부터 팀에 완봉을 선물했지요.”
“음, 타격을 하면 9회까지 무리라는 얘긴가? 투수는 어깨의 체력을 말하는 걸로 알았는데 성낙기는 아닌가 보군. 본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쩝.”
구단주 데릭은 오스틴 단장과 얘기를 나누다말고 입맛을 다셨다.
그도 그럴 것이 성낙기는 투수로는 꼬투리를 잡을 수 없는 발군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투수진 전체를 이끌고 간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강팀에도 강한 투수가 성낙기였다.
워싱턴을 상대로 완봉을 거두고도 뉴욕 메츠가 필리스를 이기는 바람에 1게임 차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팀의 사기는 오를 대로 올랐다.
워싱턴을 상대로 한 완봉은 그 팀의 타선을 아는 사람이라면 놀랄 만한 결과였다.
***
따악.
따악.
성낙기는 타격 연습에 열중하는 중이다.
내셔널리그 투수라면 자신의 경기에 타격을 해야 한다. 간혹 투수 앞에 타점 찬스가 만들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연습은 필수.
다만, 지난 시즌을 겪어보지 못한 선수들에게 성낙기의 타격은 경이, 그 자체였다.
타격이 좋은 퀸튼이나 시클라멘 등은 성낙기의 타격 모습을 보고 자못 심각해지기도 했다.
“하아, 내가 지금 뭘 보는 거냐. 투수가 타격을 저렇게 잘하다니.”
“저도 놀라워요. 마치 야수 같은 타격 아닌가요?”
“야수? 내가 보기엔 웬만한 야수들은 한 수 접어야 할 거야. 흔들리지 않는 자세도 자세지만 배트 컨트롤이 거의 레전드 급이야. 파워는 어떻고. 한마디로 미쳤군.”
“흠, 그 정도인가요. 그런데 왜 타석에서는 맥없이 물러났을까요.”
“투수가 경기 중에 타격을 하고 달리다 보면 투구에 영향을 끼치거든. 투수는 잘 던지기만 하면 그걸로 임무 완수야. 굳이 타격을 잘할 필요는 없지.”
“지금 연습은 잘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결정적인 때가 있지. 여기서 때려줘야 팀이 이긴다든가, 찬스를 이어간다든가 하는 그런 때엔 투수도 적극적으로 때려야 해. 바로 그런 때를 대비하는 거야.”
퀸튼과 시클라멘은 성낙기의 타격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리 연습구라지만 맞는 족족 안타나 홈런 타구를 때려내는 성낙기를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성낙기는 경기 중에 소극적이었던 타석에서의 아쉬움을 이렇게나마 풀고 있었다.
배트에 맞는 공의 경쾌한 소리와 담장을 넘어가는 공을 보면 왜 타자들이 치는 순간 희열을 느끼는지 알겠다.
지난 시즌 경기에서 종종 홈런을 때려냈지만, 그건 앞뒤도 모르고 저지른 불장난 같은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격을 열심히 하는 바람에 체력이 달려 늘 불펜에게 공을 넘겨줬고 그런 뒤엔 역전을 당하지 않으려나 조마조마했다.
올해는 적어도 타격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8회까지는 무난하다는 계산이 선다.
8회까지만 잘 막으면 야를린 가르시아라는 2점 초반대의 마무리에게 공을 넘길 수 있다. 시즌 초반의 1점대 방어율이 지금은 조금 올랐지만, 2점대라는 ERA가 말해주듯 안정적인 마무리다. 지난 시즌에도 블론 세이브가 대여섯 차례뿐이었다.
마무리도 마무리지만, 올해는 그 앞의 불펜진도 탄탄하니 선발 투수들의 부담이 한결 덜하다.
그게 뭘 뜻하느냐면 선발이 어느 정도만 던져주면 승리투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는 의미.
6회 정도까지 리드하고 있으면 승리가 가능한 팀에서 선발을 한다는 건 행운이다.
승리 투수가 되는 날이 훨씬 많아지고 승수는 연봉과 직결된다.
투수들이 강팀을 선호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
뉴욕 메츠와의 경기 차가 여전히 1게임으로 유지되고 있는 5월 10일, 성낙기의 선발이었다.
이번은 뉴욕 메츠와 정면으로 맞붙는다.
상대 투수는 제이콥 디그롬.
신더가드 못지않은 강속구 투수이면서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의 다양한 변화구를 가지고 있는데 그건 곧 공략이 어렵다는 말과 다름없다.
현재 6승에 ERA1.88의 엄청난 구위를 자랑 중이다.
신더가드와 맷 하비 등의 다른 선발투수를 보면 이 팀이 왜 월드시리즈에 나가지 못하는가 싶을 정도.
불펜이 약점이고 타선에 비해 야수들의 수비가 강하지 않다.
어마어마한 선발을 가지고도 좋은 성적을 못 내는 이유인데 올해는 불펜 투수들이 한층 성장했고 훈련을 통해 수비도 가다듬었다.
쥬리스 파밀리아가 맡았던 마무리가 가장 헐거웠다. FA로 영입한 크루즈가 마무리를 대체했지만 3연속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고는 쥬리스에게 다시 마무리가 넘어왔다.
그만큼 뒷문이 약한 게 커다란 흠이다.
경기는 말린스 파크에서의 2연전.
디그롬은 경기 시작 전,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중계 화면이 이례적으로 그의 투구 모습을 비췄다.
하긴, 자그마치 ERA 1.88이니 그럴 만도 했다.
-와 공 빠르네. 패스트볼이 엄청나.
-당연하지. 기본적으로 99마일인데. 성낙기는 어쩌다 던지는 구속이지만 디그롬은 밥 먹듯이 던져.
-그래서 설마 성낙기가 진다는 말은 아니겠지.
-만만치 않다는 뜻이야. 타선이 디그롬을 얼마나 괴롭히느냐에 달렸어.
-헤이, 마이애미 니들 오늘 경기는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디그롬은 올해 20승 찍을 거거든.
-디그롬이 20승 찍으면 뭐하냐. 와일드카드도 못 나가는 주제에. 작년에 우리한테 발린 거 기억 안 나?
-지랄. 한국 투수 없으면 바닷가 모래 같은 것들이 까부네.
마이애미 팬들의 댓글에 뉴욕 메츠 팬이 가세하면서 댓글 창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뉴욕 메츠의 팬들에게도 성낙기는 껄끄럽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지난 시즌 성낙기가 없었더라면 뉴욕 메츠가 와일드카드를 획득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팬들은, 성낙기를 넘어서지 않고는 올해도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일단 한 번이라도 무너뜨려야 타자들이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특정 투수에게 계속 밀린다는 건 뉴욕 메츠답지 않다.
올해만큼은 쉽게 당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뉴욕 메츠 팬들의 글에 묻어났다.
“ESPN의 에일 라몬입니다. 제임스 씨를 모시고 말씀 듣겠습니다. 오늘은 꽤 흥미로운 대결입니다만, 어떻습니까. 두 팀이 1게임 차이인데요. 만약 마이애미가 이기면 공동 2위로 올라서겠죠?”
“맞아요. 두 팀에겐 오늘 승부가 중요합니다. 계속 2위를 유지하던 뉴욕 메츠는 덜미를 잡히기 직전이고 마이애미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상승세를 이어가죠. 앞으로 여러 번 맞붙게 될 두 팀이고 아마 올해도 와일드카드 경쟁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워싱턴 다음으로 이 두 팀의 전력이 가장 안정적이거든요.”
“애틀랜타나 필라델피아는 하위권으로 보시는군요.”
“아무래도 선수층이 두텁지 못합니다. 하지만, 스토브리그 동안 나름 전력 보강을 하고 훈련 성과도 좋아서 급격하게 무너질 팀들은 아닙니다. 현재 4할이 넘는 승률의 애틀랜타가 최하위일 정도로 동부지구는 절대적인 강자가 없습니다. 워싱턴이 월드시리즈 준우승 팀이고 탄탄한 라인업을 자랑하지만 나머지 팀도 호락호락하진 않거든요. 한마디로 동부지구의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올라갔죠.”
“그런가요. 매우 이상적인 경쟁 구도네요. 그런 만큼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하겠습니다. 오늘은 디그롬과 성낙기의 대결입니다.”
“대단한 투수들이죠. 강속구와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던지는 투수들을 타자들이 어떻게 공략하는지 지켜보겠습니다. 제 생각으론 투수전이 될 가능성이 많아요. 방어율이 말해주듯 두 투수 모두 현재까진 언터처블입니다.”
***
경기가 시작되었다.
뉴욕 메츠의 선공. 성낙기는 마운드에서 연습구를 던졌다.
리얼무토가 공을 받은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공의 위력이 좋다는 뜻. 뉴욕 메츠의 1번 타자는 아메드 로사리오였다.
0.298의 타율에 7도루를 기록 중이다.
게다가 도루 성공 확률 100%를 자랑한다. 그러니 내보내선 안 된다.
성낙기가 초구를 뿌렸다.
팡.
“스트라이크.”
바깥쪽으로 파고드는 포심패스트볼.
아메드는 타이밍을 재는 듯 별로 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최대한 볼 카운트를 끌고 가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팡.
“스트라이크.”
성낙기는 같은 코스에 같은 구질을 던졌다. 아메드가 성낙기를 슬쩍 쳐다봤다.
약간 놀란 눈치.
그럴 만도 했다. 94마일이 넘는 공이 연속으로 들어왔는데 지난 시즌엔 보지 못한 공이었다.
‘뭐야, 공이 이렇게 빨랐어? 구위가 좋아졌다더니 정말이었군.’
스피드도 스피드지만 구위도 상당하다.
아메드는 고개를 끄덕인 후, 타석을 벗어나 배트를 몇 차례 돌렸다.
리얼무토의 사인은 슬라이더. 성낙기는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그러고는 사인 교환을 하자마자 공을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아웃!”
아메드는 배트를 내려다가 멈추었고 공은 그대로 곧게 들어와 박혔다.
3구 연속 포심패스트볼이었다.
아메드는 어이가 없는지 타석에서 돌아서며 웃었고 뉴욕 팬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이 원하는 건 저런 루킹 삼진이 아니라 죽을 때 죽더라도 배트를 휘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렇게 프로 의식이 부족해서 되겠어. 삼진 먹고 웃다니.”
“맞아, 억울하지도 않나. 팀의 1번이 허무하게 물러나네.”
“너무 뭐라고 하지 마. 이번 공은 투수가 잘 던졌어. 예상하기 힘든 구질이었다고.”
“3구 연속 포심패스트볼이면 타이밍 잡기 좋잖아. 거기에 코스도 똑같았어.”
“모르는 소리. 아메드는 마지막 공을 변화구로 확신했을 거야. 그래서 참은 거고.”
“참은 게 삼진 아웃이라는 결과야?”
“만약 아래로 떨어지는 브레이킹 볼이라면 배트를 내도 삼진이었겠지. 예측이 빗나갔을 뿐이야. 성낙기가 영리한 공을 던졌어.”
뉴욕 메츠 팬들도 의외로 여길 만큼 성낙기의 3연속 패스트볼은 드문 볼 배합이었다.
그것도 선두타자를 상대로 한 승부였다.
성낙기는 여세를 몰아 2번과 3번 타자를 범타로 돌려세우고 1회를 마쳤다.
순조로운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