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23화 (123/188)

# 123

123화 브라이스 하퍼 1

오늘은 리얼무토가 포수다.

알렉스 비토 감독은 채드 왈라치를 성낙기의 전담 포수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리얼모토의 체력 안배 차원에서 운용하고 있었다.

다만, 채드 왈라치가 성낙기와 잘 맞아서 다른 투수들이 던질 때보다 출전 빈도가 높은 건 사실이다.

성낙기는 불펜에서 리얼무토와 몸을 풀고 있었다.

마이애미가 워싱턴을 이기면 뉴욕 메츠와 필라델피아의 경기 결과에 따라 공동 2위로 도약할 수 있다.

문제는 지난 시즌 막판 스퍼트로 물리친 뉴욕 메츠의 전력이 더 탄탄해졌다는 것이다.

마이애미의 윌슨스카우트는 워싱턴에 적을 두고 있는 마빈 스카우트와 함께 경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누굴 스카우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 있을지 모를 트레이드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상대팀 백업이나 기회를 받지 못하는 선수 위주로 체크해 두었다가 자기 팀에서 필요 없는 전력과 맞바꾸면 서로 윈윈이 될 수 있다.

특히 윌슨은 오스틴 단장의 신뢰를 얻고 있는 스카우트이기에 재량권이 넓다.

“드래그마이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윌슨이 내심 눈독을 들이고 있는 드래그 마이어는 25세의 젊은 투수였다.

25인 로스터에 있지만 선발 기회는 없었고 스윙맨으로 나와 방어율 4.25를 기록 중인 미완의 대기다.

곧 트리플A로 내린다는 말도 돌았는데 이게 다 워싱턴의 투수층이 두터워서 생긴 일이다.

마이애미에선 한때 주전 2루수였던 야디엘 리베라나 수비만큼은 발군인 내야수 이산 디아스 등이 있다.

워싱턴의 백업 내야수가 약하니 서로 간에 가려운 곳을 긁어줄 트레이드 카드다.

“참, 자네 팀 성낙기 말이야.”

“응, 성낙기가 왜?”

“한국에 있는 재벌 회장 딸과 사귄다면서?”

“그거 다 헛소문이야. 그 여자는 에이전트 자격으로 계약에 참여했을 뿐이야.”

“그래……? 듣기론 천억 달러가 넘는 재산가라고 들었는데 말이지.”

“요즘도 증권 하나? 거기서 찌라시라도 주워들은 모양인데 믿을 이야기만 믿어.”

“끙, 하여튼 대단한 투수를 낚아챘어. 브라이스 하퍼가 징크스를 빨리 극복해야 하는데 말야.”

“전에 양키스와의 승부에서 글레이버와 아론 저지를 한 회에 삼구 삼진으로 잡아낸 친구라네. 자네가 말하는 건 징크스가 아니고 실력이야.”

“아주 기고만장하는군. 조금만 기다려 봐, 브라이이스 하퍼가 어떤 선수인지 알게 될 거야. 모르긴 해도 오늘은 퀼리티스타트도 벅찰 거야. 워싱턴 타선이 최고조에 올랐거든.”

스카우트 둘이서 말을 나누는 동안 그라운드엔 여자 가수가 나와 애국가를 불렀다. 곧 경기 시작이다.

***

브라이스 하퍼는 4월 한 달 동안 미친 활약을 선보였다.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4할이 넘는 타율에 5월 5일 현재, 10홈런을 때려낸 미친놈이다. 성낙기에게 눌린 지난 시즌엔 이런 크레이지 모드는 없었다.

셜리번 코치는 불펜 투구를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브라이스 하퍼가 유독 성적이 좋은데. 성낙기가 고생 좀 하겠어.”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고 시티필드의 조명이 하나둘 켜지고 있다. 관중들도 절반에 가깝게 좌석을 채우고 있었다.

경기는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본래 워싱턴과 마이애미는 라이벌도 아니었고 숙적이라 할 만한 캐릭터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시즌의 벤치 클리어링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경기에서 워싱턴의 자존심이었던 브라이스 하퍼가 당했고 그 이면엔 성낙기의 활약이 있었다.

징크스 아닌 징크스도 만들어졌다.

유독 성낙기만 만나면 맥을 못 추는 브라이스 하퍼를 마이애미 팬들은 조롱했고 워싱턴 팬들은 분노의 욕질로 쓰린 마음을 달랬다.

오늘은 심기일전한 브라이스 하퍼가 본때를 보여줄 거라는 워싱턴 팬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월드시리즈에서 브라이스 하퍼는 좋은 활약을 펼쳤고 그 기세를 2022년까지 잇는 중이다.

이제 벤치클리어링에서 시작된 성낙기 징크스를 깨버릴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성낙기… 오늘이야말로 진짜 메이저리거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지. 그동안 징크스 아닌 징크스에 너무 시달렸어.’

워싱턴의 더그아웃에서 브라이스 하퍼는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지난 시즌의 부진함을 배로 되갚아줄 생각이었는데 한 달 넘게 이어오는 쾌조의 타격과 컨디션이라면 충분하다 여겼다.

포털 사이트에도 두 팀의 팬들이 감정 섞인 댓글을 다는 중이다.

-드디어 마이애미 놈들 엉덩이를 두드려 줄 시간이 다가왔구나.

-마이애미가 요즘 나대고 있어. 이런 애들은 잡초와 같아서 아예 뿌리를 도려내 버려야 해.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기어오르겠지.

-브라이스 킬러 성낙기가 선발인데도 그런 말이 나오나? 4타수 무안타 4삼진이 너희의 홈런타자가 기록할 성적이다.

-성낙기는 무적이지, 특히 브라이스 하퍼에게는 악몽과도 같을 걸?

-야구의 변방 한국에서 투수 하나 데려와 놓고 어쩔 줄을 모르는군. 그래봐야 니들은 월드시리즈는커녕 디비전시리즈에도 오르지 못한 만년 하위 팀일 뿐이지.

마이애미 팬들은 브라이스 하퍼를 조롱하는 댓글이 많고 워싱턴 팬들은 팀 성적으로 마이애미를 까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브라이스 하퍼는 워싱턴의 팬들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특히 성낙기에게 성적이 좋지 못했던 지난 시즌의 기억이 오늘의 경기로 지워지길 바랐다.

-걱정 마. 니들이 떠받치는 성낙기는 5회 이전에 강판이 확실하단다. 워싱턴의 최근 팀 타율이 3할을 넘어섰거든. 브라이스 하퍼가 그걸 증명해 줄 거야.

-놔둬. 무식한 마이애미 놈들이 뭘 알겠어. 해변에서 맥주나 처먹는 종자들하고는 대화가 안 되지.

-워싱턴 새끼들 또 지랄 시작이네. 기껏 월드시리즈 나가봤다고 그러는 거면 마이애미의 야구 역사관을 보고 배우길 바라.

-우승과는 거리가 먼 놈들이니까 무시해 버려. 내세울 게 월드시리즈 준우승뿐이지. 우린 두 번이나 와일드카드에서 치고 올라가 우승컵을 들어 올린 레전드 팀이고 말이야.

-저것들과는 말이 안 통해. 플로리다 주를 댕강 잘라내 버리면 섬 원주민으로 살아가게 될 것들이지.

***

트레버 고트의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연습구를 던지는데 팡, 팡 하는 포수 미트 소리가 마이애미 더그아웃까지 들려왔다.

최고 구속은 97마일이지만 꾸준히 93~94마일을 유지하는 평균 구속에 스프링캠프에서 투심 성 패스트볼을 장착한 후, 눈에 뜨게 구위가 좋아졌다.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은 28세의 나이인 데다 슬라이더의 커맨드가 날카로워졌다는 평가와 함께 올 시즌이 기대되는 선수로 꼽힌다.

비록 ERA 3.75에 그치고 있으나 최근 애틀랜타와의 경기에선 7이닝 1실점의 투구로 가파른 상승세다.

그걸 증명하듯 마이애미 1번 타자 퀸튼을 유격수 땅볼로 잡아내더니 2번 타자 시클라멘의 안타로 1루를 내준 상황에서 3번 타자 가렛 쿠퍼를 2루수 병살로 잡아내고 1회를 마쳤다.

마이애미 타자들은 휘어져 들어오고 나가는 투심패스트볼에 힘이 실린 타격을 못 하는 모습.

포심패스트볼처럼 날아오다가 휘어지면서 가라앉는 변화에 워마린 타격 코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5선발까지 살아나면 곤란한데… 잘못 말려 들어가면 경기가 꼬이겠어.’

더그아웃에서 그런 생각을 할 만큼 트레버 고트의 신무기가 위력적이다.

거기에 슬라이더도 스트라이크 존에서 변화를 보인다.

제구력이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증거.

간혹, 이런 선수들이 있다.

몇 해 동안 타자를 상대로 고전하다가 마치 각성하듯 구종을 추가한 다음 발군의 활약을 보이는 것이다.

워마린 타격 코치는 트레버 고트의 예사롭지 않은 공에 쉽지 않은 경기를 예상했다.

성낙기가 마운드에 오르는 동안, 워싱턴 팬들은 야유를 보냈고 마이애미 팬들은 환호를 보냈다.

어느새 성낙기는 워싱턴 팬들이 아주 싫어하는 투수가 되어 있다.

그건 곧, 위력적인 투수라는 말과 같다.

그걸 증명하듯 성낙기는 워싱턴의 1, 2번을 내야 땅볼로 간단히 솎아냈다.

그러고 나서 맞은 타자는 브라이스 하퍼.

2022년 들어 첫 승부였다.

“요즘 너무 잘 친다던데 비결이 뭐야. 공유 좀 하자.”

리얼무토가 브라이스 하퍼에게 말을 걸었고 브라이스 하퍼는 힘차게 스윙하며 같잖은 소리를 하는 리얼무토를 응시했다.

“비결을 알아서 뭐하게. 내가 너한테 그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하긴 머리가 비었으니 알려줘도 모르겠지만.”

“오늘 타율 낮춰줄게. 너무 높으면 사람이 근본을 모르는 법이거든. 지금 보니 슬슬 그런 조짐이 나타나는 것 같군.”

“집어치우고 사인이나 내시지. 포심패스트볼로 정면 승부 어때?”

“그거 좋지. 그럼, 그렇게 사인 낼게.”

리얼무토는 브라이스 하퍼의 말대로 하려는 것처럼 말이 끝나자마자 사인을 냈다. 성낙기는 사인을 받자마자 공을 던졌다.

최고의 타자 브라이스 하퍼를 맞아서도 아무런 변화 없이 심드렁하게 던지는 투수를 보는 워싱턴 팬들은 초조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팬들의 생각은 달랐다.

올해도 팀을 위해 무언가를 해 줄 타자임이 분명하고 현재도 팀 타선을 이끌다시피 하고 있다.

월드시리즈에서도 지금처럼 변함없는 활약을 기대하는 선수다. 그런 브라이스 하퍼가 특정 투수에게 약점을 보인다면 팀 사기에 영향이 가는 건 물론이고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떤 징크스를 갖고 있는 선수가 그 징크스를 깨지 않고 좋은 성적을 올리기도 어렵다.

***

팡.

휘잉.

“스윙 스트라이크.”

브라이스 하퍼는 바깥쪽으로 포심패스트볼로 보이는 공이 날아오자 주저 없이 배트를 냈다.

결과는 스윙.

성낙기가 던진 공은 배팅 포인트에서 공 한 개 이상으로 떠올랐다. 원래 볼 끝이 살아 오르는 투수인데 이건 그보다 훨씬 더 솟아올랐다.

분명 라이징패스트볼이었다.

“……?”

브라이스 하퍼는 리얼무토를 보며 물음표를 떠올렸다.

자신이 포심패스트볼 승부를 제안하긴 했지만 리얼무토가 동의했고 곧바로 사인을 냈다.

투수는 곧바로 공을 던졌다.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제안을 받아들이는 태도나 사인을 주고받는 타이밍을 보면 포심패스트볼 일거라고 생각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 생각이 자신에게 독으로 다가왔다.

“왜 그런 눈으로 봐? 포심패스트볼이 아니어서 그래?”

“아니, 그냥 봤다. 사람이 얼마나 야비해질 수 있나 싶어서.”

“헐, 난 포심패스트볼 사인을 냈는데 쟤가 말을 안 들어서 그래. 이번엔 분명히…….”

“입 닥쳐. 슬슬 나를 갖고 노려나 본데 이번 시즌에 그런 얕은수는 통하지 않을 거야.”

브라이스 하퍼가 리얼무토의 말을 막았고 리얼무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마스크를 벗고 두 팔을 벌렸다.

타자가 먼저 화를 냈고, 포수는 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하는 표정과 몸짓이었다.

멀리서 보는 사람들은 브라이스 하퍼가 또 난장질을 하나보다 생각할 게 뻔했다.

“헤이, 너희 둘. 경고야. 그러다가 벤치클리어링 일어나면 둘 다 퇴장 시킬 거야. 알겠어?”

따악.

성낙기는 주심이 소란을 정리하자 곧바로 몸 쪽으로 공을 던졌고 브라이스 하퍼는 배트를 휘둘렀다.

파울.

‘젠장, 이번엔 볼이었어.’

브라이스 하퍼의 속말처럼 성낙기가 던진 몸 쪽 공은 포크볼이었다. 뚝 떨어지는 공을 쳐낸 것만 보아도 그의 컨디션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성낙기는 바깥쪽으로 라이징패스트볼을 유인구로 하나 더 던졌고 브라이스 하퍼가 참아내자 커브를 던졌다.

파울.

원 볼 투 스트라이크. 리얼무토의 사인은 퀘이크볼이었다.

내야 땅볼을 노린 볼 배합이었는데 브라이스 하퍼는 그마저도 파울을 쳐내며 끈질기게 버텼다.

성낙기는 6구째 투심을 던지며 배트를 유인했다.

좌타자인 브라이스의 바깥쪽에서 몸 쪽으로 휘면서 아래로 떨어지는 공.

브라이스 하퍼의 배트가 나오다가 홈플레이트에서 멈췄고 리얼무토는 3루심을 가리켰다.

“세이프.”

3루심이 두 팔을 옆으로 펼쳤다. 성낙기는 마운드에서 자신이 사인을 냈다.

라이징패스트볼 사인이다.

브라이스 하퍼가 타격 자세를 잡았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주심의 손이 올라갔고 성낙기는 푹 눌러쓴 모자를 더 내리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고 브라이스 하퍼라는 슬러거를 잡았음에도 전혀 행동의 변화가 없다.

성낙기가 던진 공은 바깥쪽 라이징패스트볼이었는데 내심 스트라이크가 들어올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브라이스 하퍼는 배트를 휘둘렀다.

휘두르고 보니 스트라이트 존에서 조금 벗어난 라이징패스트볼이었다. 브라이스 하퍼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돌아섰다.

성낙기는 관중의 환호에도 반응 없이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곁으로 다가온 리얼무토가 말을 걸었다.

“팬들이 환호하는데 쳐다보기라도 해야지.”

“아니, 올해는 콘셉트를 바꿀 작정이에요.”

“오, 그래? 이제 겨우 별명이 만들어지는 중인데 또 바꾸려고?”

“하고 많은 별명 중에 스마일 맨이 뭡니까. 누가 들으면 소풍 나온 줄 알겠어요.”

“그래서 앞만 노려보고 더그아웃에 들어온 거야? 그럼 뭘로 바꿀 건데.”

“괴물 투수. 바로 이런 별명이 나올 수 있도록 행동을 절제해야죠.”

“끄응. 참 세상 어렵게 산다. 아저씨 맘대로 하세요.”

리얼무토가 어이없는지 한숨을 쉬었다.

2회 초 공격에 나선 마이애미 말린스는 트레버 고트를 물고 늘어져서 1점을 뽑아냈다.

브라이언 앤더슨이 안타를 치고 나가자 희생번트가 나왔고 주자를 득점권에 두고 적시타가 터졌다.

투아웃에 터진 홀랜드의 안타였는데 브라이언 앤더슨의 발이 느려서 세이프냐 아웃이냐를 놓고 비디오 판독까지 간, 마이애미의 선취 득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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