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112화 개막전 1
개막이 일주일 남았고 그간의 성과는 새로 합류한 얼굴들의 약진이었다.
기존 팀에서는 빌빌거리다가 새로운 팀에 와서는 의욕을 갖고 포텐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은데 마이애미가 딱 그랬다.
홀랜드는 JT 리들과의 경쟁에서 상당한 비교 우위를 보였고 시클라멘도 마찬가지였다.
일찌감치 1번 타자로 낙점하고 데려온 퀸튼은 초반에 죽을 쓰다가 가파르게 페이스를 찾았다. 기존 선수들은 밥맛도 잃을 상황.
하지만 제 밥그릇을 챙기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울 필요가 없다.
여긴 정글이나 마찬가지니까.
누군가가 도약하면 누군가는 도태된다.
오늘 필리스전에 선발로 나서는 아담 콘리는 딕 에일이라는 신성이 나타나 자리를 위협받는 처지다.
개막을 하기 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경기에서 눈도장을 받지 못하면 딕 에일과 자리를 바꿔야 할지 모른다.
이미 두 번의 등판에서 3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난타 당했기 때문.
팡.
“스트라이크.”
시작은 좋았다.
1회를 삼자범퇴로 막은 아담 콘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이어 올라간 2회에 사구와 볼넷으로 주자를 둘이나 내보낸 후에 3루타를 얻어맞았다.
그뿐이면 괜찮았겠지만 홈런 두 방에 추가 3실점으로 1과 3/1이닝 5실점을 기록한 후, 마운드를 내려갔다.
누군가 더그아웃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담 콘리를 툭, 쳤지만 콘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담 콘리의 공을 이어 받은 투수는 케일럽 스미스.
지난 시즌 7승 12패 5.66으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역시 5선발도 위태롭다.
이곳엔 딕 에일 말고도 여럿의 초청 선수들이 25인 로스터라는 바늘구멍의 틈을 노리고 있다.
“케일럽, 팬 파일러하고 어땠어?”
“응, 아주 좋았어. 처음 해보는 방식인데 나한테는 잘 맞더라고.”
“얼마나 했는데?”
“글세… 열흘은 넘은 것 같아. 덕분에 릴리스 포인트가 일정해진 것 같고 볼 끝도 나아졌다고 하더라.”
“누가, 리얼무토가?”
“아니, 채드 왈라치가.”
리얼무토라면 믿을 만한데 채드가 그런 말을 했다니 조금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원래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니까.
처음 성낙기의 공을 받고서도 어마어마한 볼이라며 오버를 했었지.
어쨌든 성낙기는 마운드로 나가는 케일럽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
2회 원아웃에 주자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케일럽은 포심패스트볼 위주의 투구로 두 타자를 모두 외야 플라이로 잡아냈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5회까지 3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포심과 비슷한 동작에서 나오는 슬라이더에 타자들이 제 스윙을 못한 결과였다.
“어때, 연습한 대로 됐어?”
팬 파일러가 더그아웃에서 물었고 케일럽이 만족한 웃음을 떠올렸다.
“덕분에 릴리스 포인트가 좋아졌어.”
“맞아, 타자들이 전혀 적응을 못 하던 걸?”
“지금까지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고 나니 쉬운데 말이야.”
“컨디션에 따라 릴리스 포인트가 변하는 건 어쩔 수 없어. 그러지 않도록 늘 연습을 해야만 해.”
“팬 파일러, 너에게 많이 배우는구나.”
팬 파일러는 자신도 배운 거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늘 배운다.
그게 사람이고 야구다.
케일럽이 한 고비를 넘긴 듯해서 팬 파일러는 기분이 좋아졌다. 성낙기에게 가서 어깨동무를 했다.
“미국에선 이러는 거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관둬. 아무렇게나 생각하라지.”
“그래? 그럼 그러라지 뭐.”
“케일럽이 저녁에 맥주를 들고 올지도 몰라. 혹시 모르니 준비해 둬.”
그날 저녁, 케일럽이 오지는 않았지만 딕 에일을 비롯한 트리플A에서 올라온 투수들의 방문을 받았다.
그들은 성낙기를 무슨 레전드를 보듯 했는데 메이저리그에 뛴다는 자체로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16승과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투수였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성낙기만 어리둥절했을 뿐.
***
올해는 유독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선수 변동이 심하다.
지난해 양키즈에 패해 준우승의 고배를 마셨던 워싱턴은 마무리급 투수인 라인 스테넥을 영입하여 불펜을 키웠고
바우어스라는 3할의 중장거리 타자를 영입함으로서 우승을 향해 달릴 준비가 끝났다.
뉴욕 메츠도 선발에 비해 약한 불펜 보강을 했다.
필라델피아 또한 리빌딩으로 키운 선수들에 더해 중심을 잡아줄 선발 투수를 둘이나 영입했다. 올해는 성적을 낼 시기로 잡고 있다는 뜻.
개막전 이틀 전, 아담 콘리는 마지막으로 선발로 나섰다.
감독 입장으로서는 이 선수가 반등할 가능성이 있을 것인지를 알아보는 이유가 컸다.
어쨌든 지난 몇 년간 선발로 뛰었던 투수였다.
하지만, 지난 시즌의 성적으로 기대치가 현저히 낮아진 상태.
오늘 경기에서도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하면 상당 기간 마이너리그에 머물 것이다.
“젠장!”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아담 콘리는 3회에 대거 6실점을 하며 무너졌다.
1.5군으로 이루어진 필라델피아의 타선을 이겨내지 못하고 뭇매를 맞은 아담 콘리의 기분을 짐작할 만하지만 누구 하나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다.
참 아이러니한 게 지난번에 이어 또다시 스윙맨으로 케일럽이 나섰고 또다시 3이닝을 책임지고 내려갔다.
시범 경기 초반엔 부진했지만 개막전을 앞두고 연속으로 호투하면서 자신을 어필했다.
그리고 알렉스 비토 감독은 25인 로스터를 발표했다.
거기에 아담 콘리는 빠졌고 JT 리들이 빠졌고 야디엘 리베라도 빠졌다.
***
2022년 마이애미 말린스의 개막전은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2연전으로 예고되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워싱턴은 당연히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선발이었고 마이애미 말린스는 성낙기였다.
워싱턴의 홈구장인 내셔널스파크에서 벌어지는 경기.
작년 월드시리즈 준우승을 한 뒤, 불펜을 강화시킨 계약으로 체제를 정비한 구단의 움직임에 팬들도 반응했다.
개막전 매진을 이룬 것.
매진도 그냥 매진이 아니라 표를 구하지 못한 수천 명이 되돌아갔다.
그만큼 에이스로 발돋움한 성낙기와 스트라스버그의 승부는 화제였고 새로 합류한 선수들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만원 관중이 운집한 경기장의 마운드에 스트라스버그가 올라갔다.
시범 경기 성적이 1점대라던가.
따악.
퀸튼은 스트라스버그의 초구를 건드려 유격수 땅볼로 아웃.
초구가 포심패스트볼일 걸 예상하고 나름 노려서 친 공이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2번으로 나선 시클라멘이 중견수 앞 안타로 관중석을 달궜다.
1번에서 3번으로 옮겨 클린업 트리오의 한 자리를 꿰찬 가렛 쿠퍼는 주자를 1루에 두고 중견수 플라이볼로 투아웃, 브라이언 앤더슨은 큰 스윙으로 삼진을 당했다.
공수 교대.
“역시 스트라스버그입니다. 개막전 첫 회를 깔끔하게 막아냅니다. 월드시리즈에서도 제 몫을 다했던 선수죠.”
“레벨이 어디 가지는 않는 겁니다. 다만, 마이애미의 투수 성낙기도 만만치 않아요. 지난 시즌 5선발로 시작해서 에이스로 올라선 놀라운 선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재미있는 경기가 예상됩니다. 오, 성낙기 투수 꽤 진지한 표정으로 올라오는군요.”
“그러네요. 전엔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나들이하는 듯 했다면 오늘은 꽤나 성숙한 분위기입니다.”
“한 살을 더 먹어서 그럴까요?”
“간혹 저렇게 늦깎이로 철이 드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
해설자의 말에 마땅히 할 말이 없어진 캐스터가 입을 다물었다.
성낙기는 마운드에 올라 연습 구를 던졌다.
드디어 하나의 꿈을 이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메이저리그 개막전에 팀의 에이스로 공을 던지는 것, 모든 투수가 바라는 그것을 성낙기가 해냈다.
꽉 들어찬 관중 앞에서 개막전을 치르다니.
언젠가 모텔 옥상에서 뛰어내리던 날이 떠올랐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맛이 간 선수가 저지르는 퍼포먼스 정도였겠지만, 그에게는 남은 길이 없었다.
그날의 그가 메이저리그 개막전에 서리라는 걸 누가 알았을까.
성낙기는 관중석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었다.
연습 구를 마친 성낙기는 2022년의 첫 타자, 워싱턴의 트레아 터너를 맞았다.
[개막전을 축하합니다]
[체력이 92로 오릅니다]
[세기의 강속구가 (88/100)로 오릅니다(최고 구속 95마일)]
첫 투구를 앞두고 스피드가 3km나 올랐다.
151km에서 153km로. 165km까지 던졌던 헤이드 존의 구속엔 아직 턱도 없지만 이건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도 결코 만만한 수치가 아니다.
체력은 이제 전력투구로 92구를 던질 수 있는 단계까지 올랐다.
타석에서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완투까지 노려볼 수 있는 수치다.
***
팡.
“스트라이크.”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이 존을 통과했다. 외곽으로 꽉 찬 데다 낮은 코스니 타자가 그 공을 쳐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
잘 쳐봐야 툭, 갖다 대는 타구로 우익수 쪽 안타가 고작일 것이다.
그만큼 성낙기의 초구는 예리했고 공엔 힘이 실려 있었다.
“성낙기를 내리는 방법은 최대한 볼 카운트를 끄는 거다. 체력에 약점이 있어.”
“완투를 한 적도 있는 걸로 아는데요.”
“그날 투구 수가 90구 내외였어. 80구 정도에 마운드를 내려온 적도 많지.”
워싱턴의 경기 전 전략은 대충 그런 식이었다.
선구안을 좁히고 까다로운 공은 커트를 해 가면서 많은 공을 던지게 하는 것. 트레아 터너는 2구로 들어온 슬라이더를 골라냈다.
‘어, 배트가 안 따라 나오네. 이런 각이면 휘둘러야 정상인데.’
리얼무토가 약간 의아해하고 있을 때 트레아 터너는 한숨을 돌렸다.
방금 들어온 슬라이더가 스트라이크가 되더라도 그냥 둘 생각이었다.
포심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추고 있는 이상, 치더라도 안타가 나올 확률은 적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트레아는 작전을 충실히 따르는 이타적인 타자였다.
첫 타자가 맥없이 물러나면 다른 타자들에게도 영향이 간다. 더구나 자신은 팀 내에서 최고의 컨택 능력을 자랑하는 타자 아닌가.
리얼무토는 다시 한번 초구의 공과 같은 포심패스트볼 사인을 냈다.
팡.
“스트라이크.”
트레아는 움찔하긴 했지만 배트를 내지는 않았다.
볼 카운트 원 볼 투 스트라이크로 타자에게 불리한 상황.
‘배트를 지나치게 짧게 잡고 있다. 결국 그건가?’
따악.
파울.
몸 쪽으로 찔러 넣은 포심패스트볼을 걷어내는 트레아 터너.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스윙에 읽힌다.
라이징패스트볼(7cm/10cm)
틱.
파울.
이건, 치려는 게 아니라 걷어내려는 타격이다.
그다음으로 던진 커브에 트레아의 배트가 중간까지 나오다가 다시 들어갔다. 리얼무토가 1루심을 가리켰다.
“세이프.”
투 볼 투 스트라이크. 이게 워싱턴의, 아니, 월드시리즈 준우승 팀의 저력인가.
한 시즌 동안 성낙기의 공을 상대해보고 얻은 결론이 이거였나.
리얼무토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라이징패스트볼까지 파울을 만들면 쉬운 승부는 글렀다.
또한 트레아 터너의 스윙은 의도적인 듯 타이밍이 약간씩 늦다.
포심패스트볼이 한가운데 들어가도 1루 쪽으로 파울이 나올 타격이다.
“타임!”
리얼무토는 타임을 외치고 마운드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