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11화 (111/188)

# 111

111화 시범 경기 3

“하나를 더? 뭘?”

“라이징패스트볼.”

“라이징을……?”

“안 될까?”

“그건 악력이 강해야 가능하다고 알고 있어.”

“걱정 마. 악력이라면 팀 내에서 내가 최고야. 아마, 전 구단을 통틀어도 날 이길 사람은 거의 없을 거야. 분당 회전수가 높은 이유지.”

“혹시… 악력기 있어?”

“악력 측정기가 있지. 좋아, 내가 보여줄게.”

야를린 가르시아는 라커룸으로 가더니 정말 악력 측정기를 가지고 왔다.

그러더니 곁에 있던 시에라에게 해보란다.

시에라가 대수롭지 않게 악력을 체크했다.

“85네.”

“그 정도면 대단한 거야. 일반인들은 60 넘기기 힘들거든.”

측정기를 빼앗아든 야를린 가르시아가 측정기를 쥐고 힘을 줬다. 각자 짐을 챙겨 라커룸으로 가려던 선수들은 구경거리가 생긴 듯 모여들었다.

그러고는 가르시아의 악력을 보고 놀랐다.

“으아, 자그마치 105야.”

“이런 악력이면 사과즙도 짜겠어.”

“누가 마무리 투수 아니랄까봐 이러는 거야?”

“노우, 성낙기랑 내기했어. 내가 악력이 세면 라이징패스트볼을 전수해 주기로 말이야.”

“그래? 어디 성낙기 너도 해봐.”

성낙기는 난감했다. 선수들이 경기가 끝났음에도 갈 생각을 않는다.

심지어는 셜리번 투수 코치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성낙기는 어쩔 수 없이 악력 측정기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서서히 힘을 가했다.

시에라가 조금씩 올라가는 측정기의 숫자를 알려줬다.

“50, 65, 80, 98, 100! 와아… 108, 130… 135.”

성낙기는 그쯤에서 악력기를 내려놓았다.

야르린 가르시아가 외계인을 보듯 성낙기를 바라보았다.

모두들 충격에 빠졌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성낙기가 힘을 주다가 중간에 내려놓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졸도라도 할 기세였다.

그리고 이내 선수들은 성낙기의 라이징패스트볼이 왜 솟아오르는지 알 것 같다며 비밀을 푼 표정들을 했다.

***

새로 팀에 합류한 선수들은 생각보다 가성비가 뛰어났다.

데일 카론은 기대대로 시범 경기 5경기에서 4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사무엘도 3이닝 1실점으로 그런대로 몸값을 했다.

JT 리들과 경쟁을 벌리고 있는 홀랜드도 3경기에 출장하여 14타수 6안타 1홈런의 맹타를 휘둘렀다.

“다 좋은데 퀸튼이 헤매는군.”

“기본은 있는 선수니까 곧 올라오지 않을까요?”

알렉스 감독과 워마린 코치의 말처럼 퀸튼은 4경기에 나서서 안타를 때려내지 못했다.

잘 맞은 타구도 없다.

신시내티에선 1번 타자로 각광을 받았는데 아직 적응 전인 모양이다.

아무튼 이번 시즌을 앞두고 구단은 많은 출혈을 감수했다.

선수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자리가 위태로워진 선수들도 여럿이었다.

“성낙기, 넌 좋겠어. 거액의 계약을 맺었으니 마이너에 갈 일은 없잖아.”

“응…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

이번 불펜 투수들의 보강으로 자리가 위험해진 투수들 중 하나가 지나가듯 말한다.

다분히 부러움 반, 질투심 반이 섞인 말인데 답변이 애매하다.

대답을 하고 보니 그리 좋은 대답이 아니었던 듯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대고 운이 좋았어, 라거나 나름 열심히 했거든, 이런 식의 말은 재수 없어 보일 거다.

‘날 보는 눈들이 달라졌다. 지난 시즌은 루키를 보는 눈이었고 좀 놀라기도 했다면…….’

성낙기는 거액의 계약으로 인해 기자들이 늘 따라붙었고 팀에서 인터뷰를 제한할 정도였다. 시범 경기에 올라온 앤트리엔 많은 마이너리그 선수들, 메이저리그에 있지만 입지를 굳히지 못한 선수들이 뒤섞여 있었다.

좋은 계약은 주전 라인업에 들어간다는 말과도 같다.

상당한 돈을 지불하고 그 선수로부터 아무것도 뽑아내지 못하면 구단주와 단장이 욕을 먹게 되어 있다.

주전으로 투입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비싼 돈을 들이고 벤치에 앉혀두는 바보는 mlb에 없을 테니까.

***

3월 11일 드디어 성낙기의 선발 출장일이었다.

며칠 전엔 짧게 3이닝을 던지면서 컨디션 조절을 했을 뿐이다.

오늘은 5이닝 정도가 예정되어 있고 상대는 같은 지구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였다.

애틀랜타도 에이스 카브레라가 나올 예정이어서 팬들의 관심도 상당했다.

“마이애미와 애틀랜타. 양 팀 모두 라인업의 변화가 많습니다. 우선은 루키들이 눈에 띄죠?”

“시범 경기니까요. 마이애미는 퀸튼과 홀랜드가 라인업에 포함되었네요. 2루수는 시클라멘이 들어와 있죠.”

“성낙기 투수가 1회 초에 마운드에 오릅니다. 이렇게 되면 카브레라와 정면 대결이네요. 에이스끼리 말이죠.”

“성낙기는 거액의 계약에 옵션을 잔뜩 걸어놓은 투순데 시즌 내내 화제가 될 겁니다. 옵션 당성 여부를 놓고 말이죠.”

“말씀드리는 순간, 스트라이크로 시작하는 마이애미입니다.”

성낙기는 그동안 제대로 던질 기회가 없었다.

시범 경기 특성상, 루키들의 기량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어느 팀이나 그렇지만 새로운 피의 수혈은 언제나 변화를 가져온다.

그게 나쁜 변화든, 좋은 변화든 간에.

나쁜 변화라도 변화하지 않는 거보단 낫다는 게 알렉스 비토 감독의 생각이다.

유독 새 얼굴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는 이유라면 이유다.

그리고 새 얼굴 중엔 오늘 라인업에 포함된 선수 이외에 선발 투수로 경쟁 중인 딕 에일이 있다.

“저쪽이 거의 주전급 들이다. 오늘은 제대로 던져봐. 방심하면 맞아.”

마운드에 올라와 건넨 리얼무토의 말처럼 애틀랜타의 라인업이 단단해 보인다.

애틀랜타 역시 FA로 풀린 세 명을 잡아 라인업을 보강했다.

필라델피아도 이번 시즌엔 상당한 변화를 주었다는데 2022시즌은 아무래도 피 터지는 시즌이 될 것 같다.

따악.

유격수로 나선 홀랜드가 3루와 유격수 사이를 가르는 공을 멋지게 자아냈다.

1루에 던진 송구도 빨랫줄이다. 역모션인데 저 정도면 투수를 해도 괜찮을 어깨다.

성낙기는 마운드에서 엄지를 올렸다.

저 정도니 JT 리들이 신경을 쓰는 거겠지.

따악.

이번 공도 공교롭게 같은 코스다.

홀랜드가 몸을 날리면서 바운드에 맞춰 공을 잡는 모습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메이저리그 100년사를 소개할 때 나올 법한 그림 같은 수비. 그 다음 동작 또한 예술이었다. 슬라이딩 후, 번개처럼 일어나 1루로 송구를 날렸다.

퍽.

“아웃.”

꽤 많이 모인 관중들이 시범 경기임에도 기립 박수를 보냈다.

성낙기가 맞은 타구 모두 포심패스트볼이었는데 91(146km)마일 내외였다.

전력을 다한 피칭은 아니었지만 애틀랜타의 타격이 날카롭다.

***

홀랜드의 그 수비는 팬들과 코칭스태프에게 강한 인상을 심었다.

성낙기 역시 더그아웃에 들어와 엄지를 추어올렸다.

홀랜드는 쑥스러워했지만 기분 좋은 표정을 숨기지는 못했다. 그는 타격에서도 2루타를 날려 메이저리거의 자격이 있음을 어필했다.

원아웃에 날린 2루타였는데 점수로 연결되지 못한 것은 옥의 티였다.

1번 타자로 나선 퀸튼도 연속 2안타를 때렸고 부산 당한 샤일록의 대체자로 나선 시클라멘은 한 술 더 떠 솔로 홈런을 날렸다.

성낙기는 2회부터 다양한 구질을 선보인 끝에 5회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6안타 무실점의 호투였다.

상대 팀 카브레라도 잘 던졌지만 시클라멘의 홈런으로 1실점을 했다.

5회까지 1:0으로 마이애미의 리드.

-성낙기는 올해도 걱정이 없겠군.

-지난 시즌보다 더 안정되어 보여. 전혀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던지네.

-올해는 타격만 받쳐주면 와일드카드는 충분해.

-홀랜드가 혜성처럼 나타나서 리들을 대신하고 있네.

-리들은 타격에 재능이 없어. 아무리 유격수라지만 2할 초반을 넘긴 적이 없으니까.

-1:0인데 불펜이 막을까? 작년 같으면 무조건 실점이었지.

-막으려고 데일 카론 데려온 거야.

성낙기가 물러가고 사무엘이 6회에 나왔다.

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번갈아 던지며 생소한 애틀랜타 타자들을 상대로 무실점.

7회엔 팬 파일러가 마운드에 올랐는데 알렉스 비토 감독의 시즌 구상을 짐작케 해주는 투수 로테이션이었다.

“리얼무토 어떻게 생각해요?”

“뭐가?”

“팬 파일러가 7회에 나서는 거 말이죠. 앞으로 이렇게 간다는 뜻일까요?”

“아마도… 팬 파일러의 연봉이 데일 카론을 넘어서지는 못하니까.”

“연봉?”

“월등한 실력 차이가 아니라면 연봉값을 하게 만드는 게 메이저리그야.”

“그럼, 딜런 피터스는 애매하겠네요.”

“좀 그렇다고 봐야지. 어쨌든 좌완은 드무니까 살아남겠지만.”

성낙기는 자신도 모르게 리얼무토에게 말을 올리고 있다.

작년만 해도 나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대화를 하다 보니 친구처럼 되었지만,

이젠 아니다.

전지훈련을 왔던 삼호슈퍼스타즈 팀원들은 1살 차이에도 깍듯이 말을 올렸고 성낙기도 그랬다.

외국 사람이라고 맞먹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그때부터 들었다.

물론, 영어가 한글처럼 높낮이가 확실한 언어는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리얼무토는 mlb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이고 자신은 아직 2년 차 신출내기일 뿐이다

***

팬 파일러는 1안타를 허용했지만 3삼진으로 지난해와 다른 위용을 과시했다.

이어 나온 데론 카일도 질세라 97마일에 달하는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구사하며 8회를 지웠다.

특히 체인지업이 일품인 선수다.

성낙기의 체인지업도 각이 살아 있는 좋은 공인데 카일의 그것도 타자 앞에서 쑥 꺼진다.

강속구와 체인지업의 조합은 언제나 타자들에게 곤혹스러운 것임에 틀림없다.

가르시아는 지난해 2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한 마무리답게 변함없는 커터로 경기를 끝냈다.

1:0 마이애미의 승리.

애틀랜타도 필승조 불펜 투입으로 더 이상 실점이 없었다.

“이제야말로 톱니바퀴가 딱딱 맞아 들어가고 있어요.”

“시즌 들어가 봐야 알지. 저러다 죽 쓰는 투수들이 널렸어.”

“아닙니다, 저 정도 구위라면 불펜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팬 파일러도 좋아 보이는데? 공이 묵직해지고 볼 끝도 살아 있어.”

“좋은 현상이죠.”

“하여튼 좋은 투수들을 데려온 것 같아. 윌슨 자네가 고생 많았어.”

“단장님이 믿어주시니 저 선수들도 오게 된 거죠.”

“내가 자네 아니면 누굴 믿겠나. 기대가 되는 시즌이야. 어서 개막전이 열렸으면 좋겠군.”

그날 리얼무토는 새내기 투수들을 자기 방에 초대했다.

성낙기도 어쩌다 보니 끼게 됐다. FA로 온 선수들이니 나름 경력을 갖춘 선수들이지만 마이애미 말린스는 낯설다.

늘 적으로 만나다가 한 팀이 된 것도 조금은 쑥스럽다.

데일 카론은 리얼무토와 척을 진적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리얼무토가 맥주 몇 병을 돌렸다.

“조금 더 친해지기 위해서야. 투수와 포수는 뗄 수 없는 사이거든.”

“초대 고마워. 앞으로 잘해보자구.”

“오늘 공을 받으면서 생각했어. 아, 이 선수들이라면 마이애미도 날아오를 수 있겠구나.”

“설마… 너무 띄우지는 마.”

“아냐. 늘 불펜에 약점이 있었거든. 자원이 많지 않아서 과부하가 걸린 결과지. 전에 있던 곳은 어땠어?”

“다 좋았어. 그런데 팀 성적이 따라주지 않아서 약간 지루했지.”

“마이애미도 만년 하위 팀인데?”

“노, 밖에서 보는 마이애미는 의욕이 넘치는 팀이었어. 생동감 있고. 와일드카드도 거머쥘 뻔 했잖아.”

“너희들이 그걸 해줘. 올해는 나도 가을 야구 하고 싶다.”

리얼무토와 키론이 주로 대화를 이끌었고 사무엘은 듣는 쪽이었다.

사무엘은 말이 많지 않고 과묵한 편 같다.

팬 파일러가 말을 걸자, 그제야 약간 웃는 낯으로 대답하는 사무엘.

두 투수 모두 성격이 좋고 리얼무토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채드를 불러야겠다.’

느낌상, 사무엘은 채드 왈라치와 잘 맞을 것이 틀림없다. 성격이 밝고 쾌활하니까. 성낙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채드 왈라치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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