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110화 시범 경기 2
그 유명한 놀란 아레나도였다.
3할이 넘는 타율에 20홈런을 넘긴 데다 도루 능력도 발군인 호타 준족.
리얼무토의 말대로라면 저 선수가 안타나 홈런을 친다면 고마워해야 한다.
‘아무리 봐도 정이 안 가는 스타일인데… 안타 주기 싫다.’
그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는 초구로 95마일의 공을 던졌다.
153km의 상당한 속도로 바깥쪽에 꽂히는 볼.
“스트라이크!”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딕 에일은 놀란 아레나도를 땅볼로 처리했고 나머지 타자마저 범타로 돌려세웠다.
비록 솔로 홈런으로 1점을 내줬지만, 그 이후의 처리가 매우 인상적인 투구였다.
신인이 스프링 캠프에서 홈런을 맞고 나서 상대의 3, 4번 타자를 잡아내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리얼무토의 조언이 작용했지만, 딕 에일은 스스로 이겨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동료들이 하이파이브를 해왔다.
딕 에일은 그제야 굳은 얼굴을 풀고 활짝 웃었다.
콜로라도의 마운드 역시 루키를 내세웠다.
가렛 쿠퍼 대신 1번 타자 자리를 맡은 퀸튼은 선두 타자로 나오자마자 2루타를 터뜨렸다.
2번 시클라멘, 3번 가렛 쿠퍼로 이어지는 타선에 연속 안타를 맞더니, 브라이언에게 스리런 홈런을 맞았다.
콜로라도 감독은 마운드에서 투수를 내리지 않았고 9번 타자 딕 에일을 마지막으로 1회를 끝냈다.
1이닝 7실점의 최악의 데뷔.
그에 비하면 딕 에일은 호투를 한 거였다.
***
스프링 캠프는 겨울 동안의 훈련 성과와 루키들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콜로라도의 투키는 2회에 나오진 않았지만, 또 다른 루키가 나와서 3실점을 했다.
딕 에일은 2회초를 잘 막았기 때문에 스코어는 10:1로 벌어졌다.
딕 에일은 3회에도 나와 던졌는데 볼넷과 안타를 곁들여 3실점을 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메이저가 이 정도인줄은 몰랐어. 어떻게 슬라이더를 노리고 들어오는지.”
딕 에일은 더그아웃에 들어와 같은 루키인 시클라멘에게 푸념했다.
하지만 그런 푸념을 받아줄 시클라멘이 아니다.
“말을 말아. 넌 그래도 할 만큼 했지만 난 두 번 다 삼진으로 물러났어. 그것도 같은 루키가 던진 공에.”
“미안, 내 생각만 했나 봐.”
트리플에서 올라온 루키들이 스프링 캠프에서 좋은 활약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타자도 낯설고 투수도 낯설다.
더구나 모두들 트리블A에서 볼 수 없었던 실력들을 갖고 있다.
트리플에서 날아다니다가도 스프링 캠프만 오면 죽을 쓰는 선수들도 부지기수.
그에 비하면 딕 에일은 본전은 한 셈이다.
“가만, 저 선수 나온다.”
“누구?”
“성낙기라는 투수… 1억 달러에 계약한 그 사람.”
“오오.”
4회 초에 성낙기는 마운드에 섰다.
10:4의 스코어에서 큰 의미는 없지만 2이닝 정도 실전 감각을 익히라는 감독의 배려.
1번 타자부터 시작되는 콜로라도의 강타선을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코칭스태프들은 궁금했다.
공은 더 좋아진 듯 한데 실전에서도 먹히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어떡할래.”
“포심패스트볼만 던질게요.”
리얼무토의 의사 타진에 성낙기가 나긋나긋하게 대답했다.
본래 자기하고 맞먹던 놈인데 겨울 동안 선후배 문화를 익혔나보다.
슈욱!
따악.
파울.
파울.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에 연속으로 파울이 났다.
1번 타자 트레버 스토리가 고개를 갸웃한다.
어쩐지 배트가 밀리고 있다.
타이밍에 맞춰서 배팅을 하는데 생각보다 공이 빠르고 힘 있게 들어온다.
전에 겨뤄본 적이 있어서 좋은 투수란 건 알지만, 배트가 밀리진 않았었는데.
따악.
파울.
슈욱!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결국 몸 쪽으로 최대한 붙여 삼진을 잡아냈다.
강속구 스탯이 (86/100)이어서 최고 151km까지 던지는 성낙기.
지금 던지는 공들이 모두 150km 언저리였다.
콜로라도 최고의 교타자를 돌려세웠다.
성낙기는 제구력 (92/100)의 스탯으로 4분할로 접어들었다.
아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드랙 실바의 제구력이 6분할로 알려져 있고 보면 92%에 달한 지금 4분할은 넘어섰을 것이다.
“올해도 쟤한테 당하면 답이 없는데… 공은 더 빨라진 것 같고.”
콜로라도의 버드블랙 감독이 벤치 코치인 마이크 레드몬드에게 말했다.
“지난 시즌에도 나름 준비를 했었는데 제대로 공략을 못했던 투수죠.”
“올해도 답이 없다는 건가?”
따악.
“3루수 땅볼 아웃!”
따악.
“중견수 플라이 아웃!”
“놀란 아레나도까지 배팅 포인트를 전혀 잡지 못하는군. 더구나 포심패스트볼만 던지고 있어.”
“스프링캠프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다가 정규 시즌 들어가면 헤매는 선수도 있죠. 이제 2년 차입니다. 타자들도 당하고만 있지만 않을 겁니다.”
***
성낙기는 5회에도 선두 타자 라이언 맥마혼을 5구만에 파울팁으로 돌려세웠다.
4번 타자까지 맥없이 물러나자 콜로라도 선수들의 낯빛이 변했다.
5번 타자 노엘 쿠에바스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배터리 코치 레이몬드가 맨마혼에게 다가왔다.
“치기 어려운 공이야?”
“포심패스트볼이 일반적인 라이징패스트볼처럼 전혀 가라앉지 않고 들어옵니다.”
“그 정도……?”
“그 정도면 괜찮게요. 볼 끝이 이상해요. 보통은 파울을 때려도 공은 나가는데 이건 공이 안 나갑니다. 밀고 들어오는 느낌? 딱 그랬어요. 바깥쪽 공에 배트가 부러지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그랬다.
맥마혼의 말처럼 그는 바깥쪽 공에 배트를 휘둘렀고 공은 1루 쪽 파울 지역으로 굴렀다.
손목의 통증과 더불어 배트가 갈라졌다.
물론, 제대로 맞지 않으면 손목에 저릿한 통증이 오는 건 당연하지만 배트까지 부러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맥마혼은 공이 끝까지 밀고 들어오는 느낌 때문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규 시즌에 또 만날 텐데 브라이스 하퍼처럼 천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낙기는 안타 하나도 맞지 않고 5회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내려왔다.
알렉스 비토 감독이 이례적으로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너는 됐다, 는 정도의 뜻일 거다.
10:4가 그대로 유지되는 가운데 알렉스 비토 감독은 FA루 영입한 사무엘과 데론 카일을 연달아 올렸다.
그리고 감독의 기대대로 콜로라도 타선을 깔끔하게 막고 내려왔다.
경기는 마무리 투수 야를린 가르시아의 9회 삼자범퇴로 마이애미의 승리였다.
시범 경기라지만 승리는 늘 기분 좋은 것, 게다가 10:4의 원사이드한 경기였다.
***
다음 날 역시 콜로라도와의 경기였다.
오늘은 호세 우레나와 아담 콘리가 던질 것이다.
불펜엔 팬 파일러와 해리슨이 필승조로 대기 중이었고 딜런 피터스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 중이다.
성낙기가 몸을 풀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올 때, 기자가 따라붙었다.
“저기, 미스터 성?”
“왜요?”
“ESPN의 클라나 기자인데요,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네 그러시죠.”
미모의 여기자가 금발을 찰랑거리면서 성낙기의 팔을 붙들었다.
“1억 달러의 계약을 맺었는데요. 보장 금액은 그게 다입니까?”
“그렇습니다.”
“신인급으로는 파격적인 금액이 아닐 수 없는데 그에 합당한 활약을 펼칠 자신이 있으신 건지 묻고 싶고요. 동양권 선수들이 부상으로 계약 도중에 수술대에 오른 경우가 많거든요. 본인은 괜찮을 거라고 보십니까?”
“어째… 질문이 좀 공격적이군요. 구단은 저를 필요로 해서 금액을 제시했고 성사가 된 겁니다.”
“또 한 가지. 옵션 말인데요. 메이저리그에서 그런 옵션은 본 적이 없어서 말이죠. 과연 이룰 거라고 계약을 하신건지, 아니면 구단과의 다른 밀약이라도 있는 건지요.”
“그런 거 없습니다. 클라나 기자신가요? 그렇게 물어보시면 백이면 백, 동일한 대답을 할 겁니다. 의외의 대답을 끌어내시려면 뻔한 질문은 피하셔야 합니다.”
‘…치이. 거액으로 계약하니 뵈는 게 없나 봐.’
기자가 물러갔고 더그아웃에 들어가자 케일럽 스미스가 말을 걸었다.
지난 시즌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서 올해 입지가 불안하다.
아담 콘리와 더불어 4, 5 선발 후보인데 말 그대로 후보일 뿐이다.
만약 딕 에일 같은 애들이 치고 올라오면 가장 먼저 5선발에서 밀려날 것이다.
5점대의 방어율로 버티기엔 힘겨운 곳이 바로 메이저리그니까.
“공이 더 좋아진 것 같던데, 무슨 훈련 했어?”
“채드하고 겨울 내내 공을 가다듬었지. 틈틈이 헬스로 하체를 만들었고.”
“음, 내 말은…….”
“뭔데?”
“그런 일반적인 훈련 말고 볼 끝이라든가 제구력 향상에 대해 묻고 싶은 거지.”
이런 질문이 들어올 때 가장 애매하다. 두 유령의 도움을 받는 것도 모자라 스탯 향상의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
“팬 파일러가 너 때문에 제구력을 많이 잡았다고 해서 말야. 내가 봐도 공이 묵직해지고 슬라이더가 날카로워졌거든.”
“어… 팬 파일러가 그렇게 말했구나.”
“넌 뭔가 가르치는 재능도 있는 것 같아. 팬 파일러의 투구 폼의 약점을 지적해 줬다고 들었어.”
이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다. 팬 파일러의 제구력을 다듬어준 건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어설프게 이야기를 꺼내서 케일럽 스미스가 잘된다는 보장도 없다.
진퇴양난.
“음, 보이는 대로 말을 해주긴 했지. 그런데 비시즌에 한국에서 온 코치들이 도움을 준 게 무척 컸어. 고질병이었던 릴리스 포인트가 거의 잡혔지. 제구력은 덤이고.”
“그래서 말인데 나에게도 그래줄 수 있을까?”
“난 코치들이 그러는 걸 구경만 했어. 팬 파일러에게 물어보면 자신이 배운 걸 그대로 알려줄 거야. 그러고 나서도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와 줘. 최대한 도와줄게.”
“알았어. 고맙다.”
케일럽 스미스는 어려운 시험문제를 푼 듯 얼굴이 풀리더니 팬 파일러와 면담에 들어갔다.
팬 파일러는 이계현 투수 코치에게 배운 대로 작대기 시범을 보였고
케일럽 스미스는 한참을 웃다가 따라 했다.
‘난,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케일럽 스미스를 보면서 성낙기는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철없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는가를 깨달았다.
***
콜로라도와의 2차전은 호세 우레나에 이어 나온 아담 콘리가 난조를 보였다.
3회를 1실점으로 막은 호세 우레나에 이어 4회에 등판한 아담 콘리는 대거 5점을 헌납했고, 겨우 4회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 뒤로 마이너에서 올라온 댄 스트레일리와, 닉 위트그랜이 추가로 3실점, 일찌감치 승부가 기울었다.
11:2로 일방적인 경기였다.
“트리플에 가더니 더 망가져서 돌아왔군.”
알렉스 비토 감독의 말처럼 두 선수는 울상이었다.
물론, 아담 콘리는 더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 잘하면 월드시리즈 우승쯤은 누워서 떡 먹기겠지.
잘하는 선수가 있으면 못하는 선수도 있는 법.
세상은 항상 비교 우위를 따지기 때문에 남보다 떨어지면 못하는 게 된다.
성낙기는 스프링 캠프 동안 많은 선수들을 사귀었다.
지난 시즌엔 채드 왈라치나 리얼무토, 팬 파일러 또는 셜리번 코치 등이 친숙한 사이였다면 올해는 전 방위적이었다.
성낙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눈들이 많아졌고 조언을 얻으려는 선수들도 있었다.
딕 에일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투구 동작부터 공의 그립을 쥐는 방법 등을 묻고 직접 던져보기도 했다.
가장 뜻밖의 일은 야를린 가르시아의 말이었다.
“이봐, 구종 한 가지를 추가하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도와줄 수 있어?”
팀의 부동의 마무리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