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109화 시범 경기 1
“아까 성낙기가 던진 공의 분당 회전수입니다. 자그마치 3300rpm이에요.”
“…믿어지지 않는군. 현재 가장 높은 투수가 2천 7, 8백일 텐데… 이건 상식을 벗어났어.”
“아마, 이런 분당 회전수 때문에 라이징패스트볼을 던지는 모양입니다. 가볍게 몸을 풀 것 같은데 이 정도면 경기에서는 더하다고 봐야겠죠. 갈수록 발전하는 투수입니다.”
“동감이야. 데릭도 그런 말을 했었지. 누구보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팀이 꼭 필요로 할 때 그런 역할을 해준다는 거지. 솔직히 그런 건 타고나지 않으면 안 돼.”
“올해는 잘하면 가을 야구 가겠는데요.”
“당연히 가야지. 데릭의 말처럼 성낙기가 있을 때 뭔가를 해야 해. 단기전에 무척 강한 성향이거든.”
읠슨 스카우트와 오스틴 단장은 관중석에 앉아 불펜 투구를 지켜보면서 올해의 농사를 계산하고 있었다.
오늘 성낙기의 투구를 보고 나니 구단주인 데릭이 왜 그토록 많은 돈을 써 가면서 성낙기를 잡으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데론카일 같은 좋은 투수까지 와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 분명하다.
***
날은 빠르게 흘러 일주일이 지났고 야수들까지 합류한 훈련이 시작되었다.
모두들 의욕이 넘쳤다.
40인 로스터 적용으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었던 카메론 메이빈이 돌아와 타격에 열중했고 유망주 몇도 훈련에 합류했다.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유격수를 포지션으로 하는 홀랜드였는데, 지난 시즌 0.269의 타율로 가능성을 알렸다.
만만치 않은 수비 실력으로 주전 유격수 JT리들을 긴장시켰다.
타격이 약한 JT리들이 주전으로 버텨온 건 결국 수비였는데 그 강점을 상쇄하는 상대가 나타난 것이다.
이래저래 스프링캠프는 약육강식의 세계나 다름이 없었다.
확실한 주전이 아닌 이상, 어중간한 선수는 늘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팬 파일러가 많이 좋아졌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비시즌 중에 투구 폼도 매우 간결해진 것 같은데요. 현재까진 릴리스 포인트도 일정합니다.”
“채드하고 같이 훈련했다고 했나?”
“성낙기랑 셋이서 함께 훈련을 한 모양입니다. 채드는 개인 코치까지 사서 훈련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열정들은 좋군. 더 두고 봐야겠지만 불펜 투구만 보면 슬라이더, 체인지업의 제구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어. 팬 파일러가 제구력만 잡히면 나무랄 데 없는 투수거든.”
셜리번 투수 코치와 알렉스 비토 감독은 불펜 투구를 지켜보면서 팬 파일러의 기량 향상에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해 놓친 와일드카드가 두 사람의 상상 속에 그려졌다.
***
며칠 동안의 훈련에서 눈에 띈 선수는 트리플A에서 올라온 유격수 출신 홀랜드가 돋보였고, 2루수의 경쟁에 뛰어든 시클라멘도 마찬가지였다.
공교롭게 두 포지션이 모두 타격이 좋지 않다.
디트로이트에서 트레이드로 와서 2루수를 꿰찬 샤일록은 큰 부상으로 이번 시즌도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
‘유격수와 2루수가 약한데 트리플에 유망주를 적극 써야겠어. 싹수 있는 선수는 무조건 끄집어 올려 봐.’
‘제법 눈길이 가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바로 불러올리겠습니다.’
스프링 캠프가 시작되기 전, 알렉스 비토 감독과 워마린 코치의 대화였다.
유격수와 2루수가 약하다는데 의견 일치를 봤고 주저 없이 홀랜드와 시클라멘을 불러올린 터였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대로 훈련 과정에서의 수비와 타격 솜씨는 수준급이었다.
2루수인 야디엘 리베라와 유격수인 JT리들에게는 압박으로 다가왔고 자리를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더 파이팅 넘치는 훈련을 소화해 냈다.
“확실히 이번 스프링 캠프는 다른 때와 달리 파이팅이 넘치는군. 아주 좋은 징조인데?”
배터리 코치 오마르가 수비 코치 마인 허지스에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럴 거야, 감독이 바뀐 뒤로는 누구도 안심 못 할 경쟁 구도가 생기기 시작했거든. 홀랜드와 시클라멘이 상당한 수비력을 가지고 있어서 내야수들도 긴장하는 모습이고 1번 타자로 영입된 퀸튼도 유틸리티 외야멤버라서 외야까지 들썩이고 있어.”
마인 허지스 수비 코치가 동감이라는 듯 훈련에 열중하는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자네 말이 맞아, 팀은 원래 이래야 해. 주전이 정해져 버리면 썩게 마련이겠지. 참, 내가 야수에 신경 쓸 때가 아니지. 감당하기 힘든 투수들이 몇 들어왔거든. 데일카론은 본래 좋은 투수였고 사무엘 역시 약한 불펜에 두터움을 더해줄 인재야.”
투수들과 한창 불펜에서 공을 주고받는, 채드 왈라치와 리얼무토 쪽으로 걸어가면서 배터리 코치 오마르가 마인허지스 수비 코치를 향해 싱긋 웃었다.
모두들 열정적인 선수들의 훈련 모습에 고무된 얼굴들이다.
타성에 젖은 훈련이 아니라는 점이 지난 시즌의 스프링 캠프와 달라진 모습이다.
그 이유는 의례적으로 트리플A 선수들을 불러 메이저 맛이나 보고 돌아가라는 스프링 캠프가 아님을 알렉스 비토 감독이 분명히 밝혔고, 그 자리엔 보증수표처럼 오스틴 단장이 서 있었다.
지난 시즌에서도 보듯 알렉스 비토 감독의 그런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건 선수들도 느끼고 있었다.
JT리들, 카메론 메이빈, 야디엘 리베라 등은 이미 마이너로 떨어졌던 경험이 있는 터라, 더더욱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트리플에서 올라온 유망주들도 알렉스 비토 감독의 말이 정말이라는 걸,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 선수들의 그런 기류는 곧 선수단 전체로 퍼져 나가 누구도 나태한 훈련 모습 없이 진지하기만 했다.
***
“굿 이브닝 스포츠의 소피아 엘렌입니다. 마이애미 말린스의 스프링 캠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은퇴한 선수들이죠. 야수 출신인 스캇 반 슬라이크 씨와 투수 출신이시죠. 브래드 지글러 씨를 모시고 말씀 듣겠습니다. 올해는 유독 선수 변동이 많죠?”
“많습니다. 많은 대신 기존의 주전들은 긴장해야 하고요.”
“대표적인 선수를 꼽는다면요?”
“에… 새롭게 데일카론과 사무엘이 투수 파트에 가세했죠. 두 선수 모두 불펜 투수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입지가 불안했던 닉 위트그랜과 댄 스트레일리, 그리고 타이런 게레로 등의 투수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죠.”
“이 투수들의 영입으로 불펜이 얼마나 강화될까요?”
“글쎄요, 몸값을 한다면 지난 시즌보다는 훨씬 좋아질 겁니다. 선발은 그런대로 던져줬었거든요. 투수 쪽에 또 다른 변화엔 선발도 있습니다.”
“선발 말인가요?”
“네, 재가 눈여겨보는 선수 중에 딕 에일라는 투수가 있어요. 20세의 약관인데 스프링 캠프에 들어왔죠. 최고 구속 98마일을 던지는데 슬라이더가 A급입니다. 작년에 주로 싱글A에 있다가 시즌 말에 트리플A로 왔는데 3승 무패 2.99를 기록했어요.”
“듣고 보니 이번 스프링 캠프는 뭔가 다릅니다. 올해는 뭔가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이애미 지역 방송에서도 서서히 야구단에 관한 방송을 내보내며 스프링 캠프의 분위기를 띄웠고 팬들의 관심도 지대했다.
지난 시즌 예상치 않게 와일드카드 경쟁에 뛰어들었던 저력을 높이 평가하는 현지의 분위기였다.
***
2월 27일,
본격적인 스프링 캠프는 이제 시작이었고 마이애미의 첫 상대는 콜로라도 로키스였다.
알렉스 비토 감독은 성낙기와 호세 우레나처럼 이미 검증된 투수 대신 가능성 있는 신예를 테스트하길 원했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선발은 굿 이브닝 뉴스에서 지글러가 언급했던 딕 에일리였다.
명백한 선발투수 자원이었다.
상대적의 지난 시즌 성적이 좋지 못했던 아담 콘리와 케일럽 스미스의 경쟁자라고 볼 수 있는데 딕 에일의 선발 출장을 바라보는 두 투수는 착잡함을 숨기지 못했다.
“헤이, 딕. 트리플A나 여기나 똑같은 야구를 하는 곳이야. 타자들은 생각하지 말고 네 공에만 집중해. 포수 미트만 보고 던지면 결과가 나쁘지 않을 거야.”
“포수 미트만 봐요?”
“그래. 타자와 심판 그리고 포수까지 네 눈에 보이는 풍경을 다 지워. 여러 가지를 같이 보는 공간 판단력은 자동차 주차할 때나 필요한 거야. 넌 그럴 필요가 없어. 오로지 미트만 보고 던져.”
리얼무토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말을 해줬으나, 딕 에일이 그 말을 이해하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리얼무토는 조금 더 쉽게 말해줄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가령, 목수들이 못을 박을 때는 나무와 못을 같이 겹쳐서 보지 않고 오로지 못 대가리만 보고 망치를 내리친다는 걸 전달하고 싶었는데 신인에겐 좀 어려운 말일지 모른다.
팡.
“스트라이크.”
딕 에일이 리얼무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쫄지 않고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었다.
상대 타자는 유명한 1번 타자인 트레버 스토리였는데 딕 에일은 2구도 바깥쪽 슬라이더를 구사하면서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를 만들었다.
“제법이네. 공의 각이 살아 있어. 리얼무토가 가르친 거야?”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나. 내 자리 지키기도 바쁜 사람한테. 공은 좀 빠를 거야.”
“뭐, 그래봐야 얼마나.”
팡.
휘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봐, 내가 공 빠르다고 했잖아. 배트가 늦었어.”
“생각보다 빠르긴 하네. 내가 방심했어.”
트레버 스토리는 삼진을 먹고 나서 딕 에일이 있는 마운드를 슬쩍 보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시범 경기이기 때문에 트레버 스토리 같은 친구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막말로 20타수 무안타라도 트레버 스토리가 개막전에 빠질 일은 없다.
몸값도 몸값이지만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성적이 말을 하기 때문.
아무리 죽을 써도 이런 A급 선수는 조금만 기다려 주면 제 몫을 하게 되어 있다.
‘내가 트레버 스토리를 잡았어.’
아무렇지도 않은 트레버 스토리와 달리 마운드의 딕 에일은 흥분했다.
mlb를 대표하는 1번 타자 트레버 스토리를 삼구 삼진으로 솎아내 버리다니.
리얼무토의 말대로 미트만 보고 던졌을 뿐인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적어도 디 에일에게는 기적이다.
그리고 다음 타자가 들어섰다.
“볼.”
“볼.”
“볼.”
따악.
‘쩝, 어쩐지 너무 잘 던진다 했다.’
리얼무토는 곧이어 입맛을 다셨다.
딕 에일이 흥분한 나머지 평정심을 잃었는지 볼을 남발했고 카운트를 잡으려고 한가운데 던진 공이 맞아나갔다.
딕 에일은 관중석으로 넘어가는 공을 눈으로 좇으며 낙담했다.
피 홈런 하나로 마이너리그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리얼무토는 눈앞이 캄캄해진 딕 에일을 달래기 위해 또다시 마운드를 방문해야만 했다.
***
“헤이, 딕. 눈앞이 캄캄해?”
“아니오, 괜찮습니다.”
“뭘, 눈에 다 쓰여 있구만. 누구나 맞으면서 크는 거니까 방금 홈런 친 타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 여기서 안타를 또 맞으면 그땐 절이라도 해야 하는 거야. 널 키워주는 은인들이거든.”
“그게… 그러다가… 마이너로 가게 되면요?”
“스프링 캠프 기간엔 내려갈 일 없으니까 마음껏 즐겨. 그러고도 안 되면 다시 시작하는 거야.”
“여기까지 오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걱정 마. 네가 마운드에 선 건 기대를 갖는다는 뜻이고 이번에 내려가도 여름이 가기 전에 다시 불러올릴 거야. 로테이션이 삐걱거릴 시기거든.”
“…알겠습니다.”
딕 에일은 리얼무토의 말을 듣고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여기에 자신이 온 건 감독이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25인 로스터에 살아남지 못하더라도 로테이션에 이상이 생길 경우, 콜업 1순위라는 말을 리얼무토가 하고 내려간 것이다.
‘좋아, 내가 언제부터 메이저리거였냐. 최선을 다해 던지고 안 되면 마는 거지.’
리얼무토의 몇 마디에 없던 용기도 생겼다.
그리고 타석에 선 타자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