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08화 (108/188)

# 108

108화 애리조나 전지훈련 2

“음, 그렇지. 나도 그 점은 안타깝게 생각했다. 빗맞아도 넘어가는 공도 있고… 방어율이 어느 정도지?”

이번엔 이계현 투수 코치가 물었다. 생각했었다는 건 과거형이다. 성낙기의 마국 생활과 성적에 관심이 많았다는 증거처럼 여겨져서 성낙기는 기분이 좋았다.

“2.78로 마감했습니다.”

“사실은 그게 문제야. 네가 가진 다양한 변화구라면 타자들이 게스히팅은 꿈도 못 꿀 일이거든.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 쳐내는 경우도 있는 게 문제지. 요는, 유인구가 부족해. 스트라이크 존을 만들어놓은 이유가 뭐겠냐. 타자들이 칠 수 있는 존이라는 말이야.”

“그렇잖아도 알렉스 비토 감독님께도 비슷한 말을 들었어요. 스트라이크 위주로만 승부해서 무조건 휘두르고 본다는 거죠. 그래서 다음 시즌은 조금 패턴에 대한 연구를 해보려고요. 제 얘긴 그만하죠. 전 KBO가 궁금한데요.”

“KBO… 이번에 메이저리그로 여럿 진출할 거야. 너랑 만나게 되겠지.”

“그래요?”

“우선은 에이빌드런 알지?”

“잘 알죠.”

“KBO 성적이 워낙 좋아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할 공산이 커. 연준후도 가능성 있고.”

“연준후 선배요?”

“그래, 공성진과 달리 단년 계약한 이유가 그런 거지. 언제든 기회가 되면 KBO를 뜨겠다는 거. 우리 팀 마크트웰도 입질이 오는 상황인데 구단에서 잡아 주겠지.”

성낙기는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뛰어난 선수들 몇이 이곳으로 온다는 건데 이계현 투수 코치의 말은 의외였다.

마치 코칭스태프끼리의 대화처럼 성낙기에게 말하는 말들이 스스럼없다.

마트트웰 같은 경우의 얘기는 같은 팀 선수 유출에 관한 문제라서 일반적으로 선수들에게 할 얘기가 아니지만, 성낙기는 이미 mlb에 있고 좋은 활약을 펼치다 보니 상관없다는 없다는 식이다.

“성낙기가 길을 잘 터야 KBO 위상도 올라가고 mlb 진출도 많아질 거야. 특히 부상 조심해라. 동양권에서 메이저에 간 투수들 중에서 부상에서 자유로운 선수는 거의 없었지. 지금 활약 중인 일본 선수들도 약속이나 한 듯 수술대에 올랐어. 전력투구를 하지 않으면 맞으니까 그런 것도 있지만 일단 체격 자체가 다르고 몸의 내구성도 차이가 나지. 너 이번 시즌처럼 200이닝 가까이 던지면 몇 년 못가서 탈이 날 수 있어.”

“명심하겠습니다. 감독님.”

허봉호 감독의 걱정 어린 말에 성낙기도 예의를 갖추고 대답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선수들도 먹을 만큼 먹었는지 불판에 고기 올라가는 속도가 뚝 떨어졌다.

이중호와 구문철, 안민기는 셋이 딱 붙어 대화 중이다.

성낙기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

12월 초가 되어 채드 왈라치는 375만 불에 2년 계약을 했다.

그 계약을 한 후에 왈라치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행복한 웃음을 보였다.

성낙기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늘 백업 신세를 면하지 못하면서 출장 기회도 별로 없었던 채드 왈라치.

그나마 성낙기를 만나 예년보다 많은 경기에 투입됐다.

막판에 리얼무토의 체력이 달린 것도 채드 왈라치에겐 호재였는데 실전 경험을 하면서 자신감이 붙었고 프레이밍 등의 기술도 나아졌다.

다만, 아직은 도루에 대한 대처와 볼 배합 등에서 리얼무토보다 쳐졌다.

“왈라치, 축하해. 잘될 줄 알았다.”

“응, 성낙기 네 덕분이야. 나에게 넌 2달러짜리 지폐 같은 존재야.”

“고마워할 사람은 나야. 난 네 덕분에 ERA를 낮췄거든. 2년 후엔, 더 좋은 계약을 할 거라고 믿어.”

성낙기는 틈이 날 때마다 삼호슈퍼스타즈의 플로리다 캠프를 찾아가 함께 훈련했다.

팬 파일러와 채드 왈라치는 mlb와는 또 다른 훈련 방식과, 가끔 코치들의 레슨을 받으면서 자신의 장단점을 절실히 느끼는 모습이었다.

채드 왈라치는 2루 송구 동작에 대한 배터리 코치의 의견을 듣고는 연신 감사를 표했다.

그의 약점이 느린 송구 동작과 정확하지 않은 2루 송구에 있었기 때문이다.

팬 파일러 역시 이계현 투수 코치의 코칭을 받고 변화구 제구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계현 투수 코치의 훈련은 섀도피칭으로 막대기를 이용한 릴리스 포인트 찾기였고, 상체를 앞으로 최대한 끌고 나와 손목 스냅으로 휘두른 막대기에서는 촙,촙 하는 소리가 났다.

반면, 릴리스 포인트가 너무 높거나 손목을 제때 채주지 않으면 휘리릭, 하는 소리가 났다.

팬 파일러는 메이저리그에서는 하지 않는 그 동작을 반복하면서 일정한 릴리스 포인트를 익혔다.

‘시즌 중에도 꾸준히 해주면 언제나 감각이 살아 있을 거야.’

이계현 코치는 마치 삼호슈퍼스타즈의 선수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편견 없이 팬 파일러를 지도했다.

팬 파일러는 훈련법을 반복하면서 채드 왈라치에게 던지는 공의 제구가 잡혀가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이계현 코치는 그런 팬 파일러를 보고는 하나를 가르쳐 주면 금방 흡수하는 스펀지라며 좋아했다.

그렇게 12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엠엘비닷컴(MLB.com)’이 2022년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스프링캠프 소집 일정을 발표했다.

메이저리그 스프링 캠프는 지역에 따라 두 리그로 나뉘는데 플로리다에 캠프를 차리는 팀은 ‘그레이프푸르츠 리그’, 애리조나는 ‘캑터스리그’라 불렀다.

마이애미 말린스는 당연히 ‘그레이프푸르츠 리그’에 속했다.

그리고 2월 10일, 첫 스프링 캠프 소집이 이루어졌다.

우선은 투수와 포수들로 이루어진 훈련을 하다가 2월 17일 야수들이 포함된 훈련으로 일정이 잡혔다.

성낙기는 아침부터 서둘러 차를 타고 이동했다.

가장 먼저 왔는지 아무도 없다.

어느새 스프링 캠프 일정을 안 마이애미 팬들이 사인 요청을 해왔다. 성낙기는 어깨에 멘 가방을 내리고 팬들의 종이와 옷, 그리고 모자에 사인을 했다.

한 어린아이에게는 가방에서 야구공을 꺼내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 사인을 해주고 있을 때, 리얼무토가 나타났고 오랜 프랜차이즈 스타인 그에게로 팬들이 쏠렸다.

“밀지 마세요. 다 해드립니다.”

리얼무토는 차분하게 서로 먼저 사인을 받으려는 팬들을 다독였다.

이어가 채드 왈라치도 왔고 한동안 보지 못했던 투수들이 훈련장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얼굴, 데일 카론도 보였다.

불펜투수로는 많은 5년 3500만 불의 계약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강속구 투수다.

평균 구속 97마일에 99마일까지 던지는 투수로 알려져 있다.

FA치고는 많지 않은 나이인 29세로 이제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의 완성도가 뛰어나다.

토론토에서 온 사무엘도 보였는데 거의 모든 공을 투심패스트볼로 던지며 간혹 슬라이더인지 커터인지 애매한 공으로 타자를 현혹한다.

지난 시즌 말부터 부쩍 좋아진 팬 파일러와 좋은 짝을 이룰 투수들이다.

아직까지 마무리인 야를린 가르시아가 기복 없이 잘 던져주고 있으니 이 정도의 불펜이라면, 그리고 오스틴 단장의 기대대로 활약을 해준다면,

뒷문은 워싱턴 내셔널스 만큼 강해질 것이다.

6회 3실점 이내.

선발의 퀄리티스타트 정도로도 승리를 지킬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트리플A에서 여럿의 투수와 포수들이 차출되었고 그들 또한 스프링캠프 내내 땀을 흘려야 할 동료들이다.

신분이 불안해서 스프링 캠프에서 발군의 야구 실력을 보이지 않으면 다시 마이너로 내려가겠지만, 그들은 스프링캠프 참가만으로도 기분 좋은 듯 보였다.

야수를 포함하지 않았음에도 20이 넘는 인원이다.

“그동안 잘 보냈을 걸로 믿습니다. 오늘은 스프링 캠프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각자 준비들을 잘 해왔을 걸로 믿고 가볍게 몸을 푼 다음 투구 훈련 들어갑니다. 궁금한 점은 보조 코치들에게 묻도록 하고 여기, 셜리번 투수 코치에게 물어도 잘 가르쳐 줄 겁니다. 그럼, 2022년 첫 스프링 캠프를 시작합시다.”

성낙기에게 호세 우레나가 다가왔다.

성낙기가 오기 전엔 팀의 에이스였지만 이제 2선발로 밀린 상태다.

그래서인지 우레나와는 대화가 많지 않았고 어떤 면에선 약간 서먹하기도 했다.

“어이, 성. 채드에게 들었는데 공이 더 좋아졌다며? 계속 공이 빨라지는 거야?”

“조금 빨라지긴 했어. 변화구도 제법 가다듬었고. 다 채드 덕분이지.”

“겨우내 준비를 많이 했군. 네가 있어서 든든하다. 전엔 나 혼자 이끌어가기 버거웠거든. 팀이 연패하고 있을 때 그걸 끊어줘야 하는 책임이 나에게 있었지. 만약 연패를 끊어내지 못한 날은 잠도 오지 않을 정도였어. 작년에 내가 그런 역할을 해줘서 내가 많이 가벼워져서 좋아. 올해는 부담 없이 던질 수 있을 것 같고.”

“그 정도인 줄은 몰랐어. 난, 아직 팀에 녹아들지 않아서인지 큰 부담을 느끼지도 못했고 말이야. 하여튼 좋은 말 고마워. 올해는 뭔가 팀이 좋아질 분위기야.”

“아참, 이건 좀 다른 이야긴데 너 계약 축하한다.”

“고마워.”

“그런데 왜 계약을 그렇게 했지? 5년 1억불이면 나쁜 계약은 아니지만 옵션이 아주 까다롭던데, 설마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서는 아니겠지?”

“아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약한 거야.”

“너는 아직 처음이니까 그렇다 해도 네 에이전트가 참 대단하다. 그게 알고 보면 선수를 죽이는 건데. 옵션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다 보면 팔이 고장 나고 그렇게 되면 선수 생활이 길지 못할 수도 있거든. 욕심내지 말고 보장 금액에만 만족하고 던져봐. 이건 너보다 이곳을 잘 아는 선배의 충고라고 알아둬.”

“그 충고는 새겨들을 게. 시즌을 치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

호세 우레나처럼 모두들 성낙기의 이번 계약에 관심이 많았다.

우선은 부러움이 먼저였고 아무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옵션을 걸은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성낙기는 얼버무리듯 대답하고는 리얼무토를 앉혀두고 불펜 투구를 시작했다.

팡.

초구로 94마일의 공이 꽂혔고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한 악력에 의한 특유의 볼 끝이 살아 있는 성낙기의 공은 100마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포수 미트에 힘 있게 살아 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겨울 동안 공이 더 좋아졌네. 혹시, 한국 인삼 먹는 거 아니야?”

“그래? 리얼무토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채드가 많이 도와줘서 원 없이 연습했어. 덕분에 공에 힘이 더 붙었지.”

성낙기는 지난 겨울 훈련을 통해 그동안 확실히 살리지 못했던 강한 악력에 의한 공의 회전력을 높였고 강해진 어깨와 더 빨라진 공으로 제구력과 볼 끝을 더욱 위력적으로 만들었다.

시스템이 주는 스탯은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볼 끝을 더욱 힘 있게 만드는 일은 투구 연습을 통해서 능력을 배가시켰다.

제구력 역시 안정된 하체와 상체의 밸런스로 스탯 만큼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연습했다.

채드 왈라치는 많은 공을 받으면서 툴툴거렸지만, 그 역시 성낙기가 던지는 모든 구질을 파악했고 의식적으로 프레이밍 훈련과 도루 저지 훈련, 그리고 타격 연습을 병행했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다.

팡.

“오우, 공 좋은데.”

동료 투수들의 관심은 성낙기에게서 데일카론으로 옮겨갔다.

지난해 약했던 불펜에 희망을 줄 투수였기 때문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데일카론은 그런 관심이 싫지 않는 듯 강한 공을 뿌렸다.

팡.

7구로 던진 공은 96마일이 나올 정도로 이미 스피드까지 올라 있었다.

거기에 슬라이더와 체인지업도 일품이다.

스피드만 보더라도 일찍부터 몸을 만들어왔다는 증거여서 선수들의 감탄을 자아낸 데일카론, 셜리번 투수 코치는 불펜 투구를 보며 지난해 말부터 좋아진 팬 파일러와 함께 필승조의 주축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데요?”

“몸값이 있으니 저 정도는 던져야지. 하여튼 불펜이 두터워져서 좀 살 만하구만.”

“그렇습니다. 팬 파일러와 데일카론에, 사무엘도 충분히 한 이닝은 맡길 만한 선수니까요. 좌완 딜런 피터스도 지난 시즌 후반기엔 지쳤었지만 다시 제 몫을 해줄 겁니다.”

“좋아. 신시내티에서 데려온 퀸튼이 제 몫을 해주면 1번 타자도 문제가 없고 가렛쿠퍼가 3번 정도만 맡아준다면 타선도 짜임새가 있어질 거야. 그 부분은 워마린 코치가 특성에 맞게 잘 배치해 봐.”

“알겠습니다, 감독님.”

알렉스 비토 감독과 셜리번 투수 코치, 워마린 타격 코치는 새로운 선수들의 합류에 희망을 갖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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