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106화 슈퍼 계약 2
성낙기는 채드 왈라치와 함께 훈련 중이다. 벌써 60개째의 포심패스트볼이 왈라치의 미트 안으로 들어갔다. 왈라치는 공을 받으면서 감탄사를 여러 번 내뱉었다.
1구를 던질 때마다 전력투구였기 때문인데 왈라치는 가라앉지 않으면서 죽 밀고 들어오는 볼 끝에 손이 아플 지경이었다.
경기 때는 체력을 아끼기 위해 완급 조절을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력투구를 해야만 스탯이 오를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70구째를 채웠을 때, 정말 스탯이 올랐다.
[체력이 91로 오릅니다.]
[세기의 강속구가 86으로 오릅니다]
[슬라이더의 위력이 85로 오릅니다]
[포심의 제구력이 92로 오릅니다]
[커브의 제구력이 87로 오릅니다]
스탯이 오른 건 너무나 오랜만이어서 성낙기는 공을 던지려다 말고 주저앉아 감격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한국에서는 때가 되면 척척 알아서 오르더니 mlb에 온 뒤로는 아시아에서 왔다고 차별이라도 하는 것인지 드럽게 안 오르더니만 시즌이 끝나고 한가해 지니까 올려주는 심보는 뭔가.
성낙기는 마운드에 주저 앉은 채, 자신도 모르게 욕을 뱉었다.
“아이, 시파. 줄려면 시즌 때 줘야지, 다 끝나고 연습하니까 오르냐. 차라리 이럴 거면 스탯이고 지랄이고 주지를 말든가.”
[때가 아니므로 스탯을 원 상태로…….]
“시끄러!”
채드 왈라치는 갑자기 공을 던지려다 말고 주저앉더니 이상한 소리를 하는 성낙기가 걱정되어 한달음에 마운드로 왔다.
“야아,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야. 예전부터 날 괴롭히는 놈이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생각나지 뭐야. 그래서 소리 지른 거야.”
“우… 그런 놈이 있었어? 나한테 데려 와. 죽도록 패줄게.”
“좋아. 그럼 내가 날 잡아서 그놈 만나면 너 부를게. 여러 군데 부러뜨려 줘.”
“어서 데려와. 죽여 버릴게.”
[…체인지업의 위력이 …86으로 오릅니다]
우연인지 왈라치가 심각한 얼굴로 눈을 부라리자 스탯 하나가 또 올랐다. 마치, 예정에는 없었는데 둘이서 신경질을 내니 마지못해 주는 것 같은 느낌.
“흠, 가만 생각하니 그놈은 미국에 없다. 네 우정은 마음만 받을 게. 고마워,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어.”
[체력이 21 남았습니다]
성낙기는 채드 왈라치에게 공을 받아줄 것을 부탁하고는 다시 와인드업을 했다.
역시 전력투구였는데 94(151km)의 공이 미트에 꽂히자 채드 왈라치는 공의 위력에 놀랐다.
지금까지 던졌던 공보다 빠르고 묵직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70구를 전력투구하고도 힘이 더 남아서 더 빠른 공을 던진다는 게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거니까. 이런 투수와 훈련을 한다는 자체가 대단한 경험이다.
성낙기는 체력이 방전될 때까지 포심패스트볼을 전력투구했다.
‘아까에 비해서 마지막 20구 정도는 정말 제구력이 절묘했어. 경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무언가 더 강력한 느낌이다. 거기에 몸 쪽과 바깥쪽의 스트라이크 존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제구력이라니.’
“성낙기, 제구력이 더 좋아졌어. 공의 위력도 마찬가지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야?”
“나도 몰라. 계속 던지다 보니 어디에 던져야 할지를 몸이 아는 거겠지. 그리고 내 구속은 아직 끝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걸 모르나 보네?”
“끝? 끝은 어느 정돈데? 24살에 그게 가능 해?”
“아마… 27살 정도까진 가능하지 않을까. 끝은… 나도 모르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으려면 100마일은 던져야 하지 않겠어?”
“배, 백마일? 미쳤군. 지금도 이 정도인데 만약 100마일을 던진다면 네 공은 아무도 못 칠거야. 아론이나, 스탠튼 정도면 모를까.”
“100마일을 던져도 치는 타자가 있을 거라는 말이네?”
“그 정도 던지는 투수가 꽤 있으니까. 하지만 네 공은 정말 치기 어려울 거야. 변화가 워낙 심하고 볼 끝이 어마어마하거든. 거기에 변화구를 섞는다면 모르긴 해도 전설이 되겠지.”
일정을 소화한 성낙기는 휴식을 위해 클럽하우스를 나왔다. 채드 왈라치는 찰스 존슨의 코칭을 받기 위해 남았고 팬 파일러 역시 훈련할 것이 있다며 남았다.
외톨이처럼 터덜거리며 주차장으로 오는데 성낙기의 차 앞에 놀랍게도 김아경과 정진수가 서 있었다.
마이애미가 다년 계약을 원한다며 마이애미에 들어온 건 알았고 계약 조건에 성낙기가 수긍하자 협상에 들어갔는데 감감무소식이더니 나타난 걸 보면 뭔가 해결된 모양이다.
***
“보장 금액은 5년 1억 달러예요. 대신 옵션이 많아졌죠. 18승 이상 190이닝 이상이면 한 해에 2천만 달러를 추가 수령할 수 있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23승 200이닝 이상이면 추가로 천만 불이 지급되죠. 만약 23승에 200이닝이면 5천만 불을 수령하게 됩니다. 어때요?”
“흐으, 좋은데요?”
“22승이라는 숫자는 신경 쓰지 마세요. 가능성을 넣은 숫자에 불과해요. 사실, 17승에 190이닝도 결코 만만한 수치가 아니고 과연 잘한 계약일까, 싶었어요. 투수로서 고액 연봉자인 커쇼의 경우 7년 2억 1500만 달러였는데 190이닝 18승을 채운 해는 절반도 되지 않았어요. 20승을 넘긴 해도 딱 한 번이었고요. 낙기 씨 희망대로 옵션을 최대한으로 넣었지만 1억 달러만 받아도 나쁜 계약은 아니니 옵션에 부담 갖지 마세요.”
“물론, 옵션 달성이 힘드니 선심 쓰듯 계약을 해줬겠지만 저는 그 옵션을 모두 달성하고 말 겁니다. 깔끔하게 2억 5천 달러 먹고 한국으로 튈 겁니다.”
“올해 낙기 씨 성적이 좋았지만 그거로도 부족해요. 16승 171이닝이니까요.”
마이애미로서는 성낙기라는 좋은 투수를 붙들어 두기 위해 보장 금액이 크지 않은 대신 어려운 옵션을 걸어 최대한 돈을 아꼈다.
물론, 그 옵션을 달성해 버리면 지출이 두 배로 많아지지만,
투수가 190이닝 이상에 18승 이상을 해주면 거의 다승왕급이니 특별히 손해 볼 게 없고 마지막으로 넣은 23승은 거의 달성하기 어렵다고 봤다.
5년 2억 5천만 불이라는 큰 계약으로 팀의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성낙기로 인해 한인 관광객과 경기장 수입이 크게 늘었고 2년 계약한 중계권도 3년째엔 몇 배 올려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1억 달러라는 보장 금액만으로도 성낙기에게 적은 금액이 아니다. 달성 가능성이 별로 없어서 다소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옵션도 최대한으로 넣었다.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을 한도까지 늘린 것인데, 성낙기가 희망했던 계약이었다.
어쨌든, 김아경 자신은 슈퍼 계약을 이끈 여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에이전트는 정진수이고 에이전트 커미션(agent commission) 역시 정진수에게 돌아가겠지만, 김아경은 전국 규모의 백화점 체인망을 이끄는 사장으로서 이미지가 업그레이드되는 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성낙기를 메리저리그로 보내면서 욕은 먹을 만큼 먹었다.
하지만, 성낙기가 발군의 성적을 올리는 바람에,
미래를 보고 뚝심 있게 밀어붙여 일을 성취하는 탁월한 재능의 사업가로 이미지가 바뀌었고 그 이미지는 그간의 매출 패턴을 단숨에 뒤집어 버렸다.
3, 4위권에서 놀던 백화점 매출은 1년 만에 1, 2위를 다투는 신장세를 가져왔다.
거기에 이번의 역대급 계약에 성낙기의 활약이 더해진다면 슈퍼 플러스가 될 게 분명하다.
그만큼 한국의 국민들은 오래전, 박찬오 선수의 메이저리그 등장할 때보다 더 성낙기에 열광했고 그 열광 뒤엔 직접적인 수익이 뒤따르는 효과까지 생겼다.
박찬오의 활약 시절과 비교하면 한국의 경제력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그것은, 어떤 이슈가 곧바로 경제활동으로 연결된다는 걸 의미했다.
“아무튼 큰 산은 넘었어요. 이젠 야구를 잘하는 일만 남았네요.”
“걱정 마세요. 이번 시즌은 몸을 풀었을 뿐, 진짜는 다음 시즌부터죠.”
성낙기의 자신만만한 말에 안심이 되는 듯 김아경이 씨익,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예뻐서 곁에 정진수만 없었으면 입이라도 맞출 뻔했다.
여하튼 김아경은 성낙기에 있어 은인이나 마찬가지다.
삼호슈퍼스타즈 2군에 있을 때는 용기를 북돋아줬고 나중엔 메이저리그에 보내주더니 이젠 슈퍼 계약까지 해냈다.
게다가 옵션으로 걸린 금액이 무려 1억 5천만 달러이니 강력한 동기부여가 생긴 셈이다.
***
마이애미 말린스는 성낙기와 계약을 끝내더니, FA로 풀린 투수들을 면밀히 살폈고 준척급이라 평가받는 불펜투수 데일 카론 등에 눈독을 들였다.
지난 시즌 휴스턴에서 3.34의 수준급 활약을 한 불펜투수다. 나이도 이제 30에 접어드는 만큼 젊다.
그 외에도 텍사스의 프라이어, 토론토의 사무엘 등도 쓸 만한 투수들이었다.
성낙기는 채드 왈라치와 거의 한 달 동안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그사이 계약에 관한 마이애미 말린스의 발표가 있었다.
계약 직후의 발표가 아닌, 신중을 기한 발표였는데 마이애미는 발 빠르게 약점 보완을 위한 FA들을 영입한 뒤였다.
불펜 둘에 타자 둘을 영입했는데 모두 연봉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준척급 계약이었다.
그중, 일찌감치 눈독을 들였던 데일 카론의 경우는 5년 3500만 달러의 계약으로 불펜투수치고는 상당한 액수를 투자했다.
토론토의 사무엘도 2년 계약에 800만 달러로 데려왔고 신시내티에서 1번 타자로 활약했던 퀸튼을 4년 2400만 달러에 데려왔다.
마이애미는 FA계약을 다 마친 후에, 성낙기의 계약을 발표했다. 성낙기의 계약이 공개되자마자 mlb 내의 파장은 대단했다.
우선은 메이저리그에 와서 일 년을 뛰었을 뿐인 선수에게 그토록 많은 연봉을 안겼다는 것이 놀라움의 주된 이유였고 옵션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조건과 액수였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게 평가했기에 5년에 1억 달러의 계약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전문가들의 반응이 잇따랐다.
-이거 정말이야? 5년에 1억 달러라니. 게다가 그는 KBO에서 온 루키일 뿐이라고.
-그리 놀랄 일은 아니야. Sun이 없었으면 와일드카드에도 진출 못 했을 거야.
-대박!
-자그마치 2억 5천만 달러다. 이건 꿈이야.
-마이애미가 미친 건가? 이봐 데릭, 뭐라고 말을 해봐.
-저 돈이면 올해 FA를 싹쓸이할 수 있어.
-니들 데릭이 그리 만만해 보여? 실제 연봉은 2천만 달러야. 옵션은 보여주기 위한 거라고.
-맞아, 18승 190이닝이면 사이영상도 받을 거야. 거기에 23승에 200이닝은 한 해에 한 명도 안 나오는 수치지.
-그럼 결국 1억 달러가 현실적이군. 옵션은 장식이고.
-데릭은 리틀 마켓 이미지를 벗으려고 한 걸 테고. 성낙기는 나름 자신이 있겠지. 올해보다 조금 더하면 되거든.
-물론, 그 조금 더가 어렵지.
-성낙기는 좋은 선택이야. 그는 마이애미의 역사를 써내려 갈 투수가 분명해.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충분히 받을 만한 액수라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이제 1년을 보냈을 뿐인 루키에게는 많다는 팬들도 있었다.
다만, 옵션은 어차피 달성하기 어려운 만큼 2억 5천만 달러라는 액수에 놀랄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어쨌든 그 발표로 인해 성낙기는 마이애미에서 가장 연봉을 많이 받는 투수가 되어버렸다.
4번 타자 브라이언 앤더슨조차 1200만 달러에 불과했으니까.
올해 FA인 리얼무토도 천만 달러의 연봉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단숨에 팀의 최고 연봉자가 되어버렸으니, 팀원들의 시기와 질투도 감내해야 할 몫이다.
“성낙기야, 나 놀랐어. 하지만 넌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네 공을 다음 시즌에 상대하는 타자들은 올해와 다른 구위에 미쳐 버릴지도 몰라.”
“왈라치, 고마워. 그리고 괜히 미안하다.”
“아니야. 난 큰 욕심 없어. 그저 내년엔 출전 시간을 늘려서 주전 포수가 된 뒤에 은퇴하는 게 꿈이야. 그런 뒤엔 올랜도에서 가장 큰 주유소를 할 거야. 그때가 되면 너도 꼭 기름 넣으러 와.”
“응, 알았어. 채드.”
오스틴 단장은 리얼무토와도 협상에 들어가서 4년 44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리얼무토는 5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원했지만 구단은 내년이면 31세가 되는 리얼무토에게 그 이상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어쨌든 팀의 리더로 다른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는 리얼무토를 나름 평가한 셈이었고 리얼무토 역시 계약에 불만이 없었다. 다만,
“아마, 성낙기의 계약은 1, 2년 후 재평가를 해야 할 겁니다. 지금은 아무도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음 시즌에 기록할 성적을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요.”
ESPN의 해설자 듀크 카바니의 말처럼 성낙기의 계약은 팬들에게도, 또는 선수들에게도 그리고 전문가들에게도, 평가하기 어려운 계약인 것만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