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04화 (104/188)

# 104

104화 102마일 2

보통의 강속구 투수가 2, 3종의 구종으로 승부하는 것에 비해 조단 힉스는 투심과 싱커에 슬라이더 체인지업까지 다양한 구종을 자랑한다.

시즌 성적 16승 6패, ERA 2.84로 호세 우레나의 14승 7패 ERA 3.46에 비해 앞선다.

하지만 큰 경기 경험은 호세에 비해 적다는 것이 단점이다.

마이애미 말린스의 가렛 쿠퍼가 타석에 섰다.

198cm의 큰 키에도 3루 수비에 적응했고 타격 역시 후반기에 반등을 이뤄 시즌 0.272의 타율에 16홈런 17도루를 기록했다.

큰 몸에 비해 홈런 개수가 조금 아쉽지만 도루 능력도 좋고 무엇보다 성실한 선수다.

팡.

“스트라이크.”

조단 힉스는 초구 99(159km)마일의 투심패스트볼을 뿌렸다.

가렛 쿠퍼는 스피드에 적응이 안 되는지 포수 미트를 바라보았다.

2구는 싱커였는데 가운데로 오다가 타자 몸 쪽으로 급격하게 꺾이는 볼이었다.

가렛 쿠퍼는 가운데로 오는 공으로 알고 배트를 휘둘렀지만 스윙이었다.

볼 카운트 노 볼 투 스트라이크.

팡.

휘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이번엔 공의 숨을 죽인 체인지업이 들어왔고 가렛 쿠퍼는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겼다. 오늘 조단 힉스의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첫 타자부터 변화구의 제구력이 수준급이다.

조단은 간단하게 1회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

강릉 시내의 막탄불갈비집에 모인 허봉호 감독과 마영진 단장,

그리고 김아경과 에이전트 정진수, 이계현, 박종태 코치 등이 고기를 먹으면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시즌을 3위로 마친 삼호슈퍼스타즈는 3일 후, 와일드카드의 승자와 준 플레이오프를 치르기로 예정되어 있다.

선수단 전체에 하루 휴식이 주어졌고 마침, 김아경의 연락이 와서 오랜만에 뭉치게 된 것이다.

“저쪽 경기 시간이 어떻게 되지?”

“아마, 오전 10시쯤 될 겁니다. 오전 경기라서 한잔하며 보기 좋네요.”

허봉호 감독의 물음에 마영진 단장이 대답했다.

허봉호 감독과 종종 어울리다 보니 그도 어느새 술꾼이 다 되어 있었다.

거의 술을 안마시던 그가 요즘엔 소주 서너 병은 너끈히 비운다.

“팀장님은 그 뭐냐, 회사 일로 바쁘실 텐데 어떻게 시간을 내셨네.”

“저요? 이제 팀장 아닌데… 아하하. 감독님 뵌 지가 워낙 오래 되어서요. 뭐, 불만이세요?”

“불만은 뭐… 성낙기 빼간 거 외엔 없죠.”

“하, 참 선배님도.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이럽니까.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바람에 삼호슈퍼스타즈가 얼마나 유명해졌습니까. 팬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요.”

마영진 단장이 중간에서 급히 끼어들며 김아경의 편을 들었다.

“휴, 감독님 보기보다 뒤끝 있으시네요. 아직까지 그러시면 어떡해요.”

“농담이오, 농담. 뭔 말을 못하겠네. 성낙기가 저렇게 잘하니까 감독 입장에서는 아쉬운 게 사실이지. 하지만, 이계현 코치가 유망주를 여럿 키워놔서 걱정 없수.”

TV에선 조단 힉스가 광속구를 던지고 있었고 가렛 쿠퍼는 삼구 삼진을 당했다.

모두는 100(161km)마일이 찍히는 화면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아경이 소주잔을 들어 건배를 권했다.

“어이, 마 단장. 술만 먹지 말고 고기도 좀 구워 봐. 다 타잖아.”

“아니, 근데 이 양반이… 내가 어디 고기나 구울 군번인 줄 아시나.”

“뭐? 이 양반……? 너 지금 막가자는 거지? 선배 보고 뭐? 이 양반?”

“선배가 먼저 시비를 걸었잖아요. 그리고 누가 보면 어마어마한 선밴 줄 알겠네. 겨우 두 다리면서.”

“오, 단장이라고 선배가 우습게 보인다 이거지? 그렇잖아도 언제 손을 좀 봐 줄라고 했는데 오늘이 그날이구만. 너 잠깐 따라 나와 봐.”

허종호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시늉을 하자 마연진 단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고기 구우면 되잖습니까? 별걸 가지고 타박을 하시네.”

“진작 그럴 일이지. 자, 술도 한 잔 따라 봐.”

허봉호 감독과 마영진 단장의 다툼을 다른 사람들은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만나기만 하면 저런 식이다.

싸울 것도 아니면서 서로 으르렁대는데 방금처럼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러니 보는 사람도 어이가 없다.

풀이 죽은 듯 집게를 들어 고기를 굽고 술까지 따른 후에 마영진 단장이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참, 얼마 전에 성낙기에게서 전화 왔던데요.”

“그래? 그 자식은 왜 나한테는 전화를 잘 안 하지?”

“그렇잖아도 허감독님께 전화 했냐니까 통화만 하면 2점대 방어율이 뭐냐면서 나무란다고 하던데요.”

“그야… 이왕에 갔으면 더 잘해야 하니까 그렇지.”

“감독님과 통화하고 나면 심한 압박감에 마이애미 해변의 변사체가 되고 싶다면서 말이죠.”

“…….”

‘이 자식이 메이저리그까지 가서 또 나를 모함하네,’

김아경은 그때까지 별말 없이 있다가 성낙기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반짝거렸다.

***

조단 힉스가 호투를 이어가는 동안, 호세 우레나는 3회 말에 위기를 맞았다.

선두 타자로 나선 투수 조단 힉스에게 볼넷을 내준 것부터 조짐이 이상했다.

1, 2회를 안타 하나씩 허용하면서 그런대로 버텨왔는데 조단 힉스는 투수임에도 8구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 끝에 볼넷을 얻었고 호세 우레나는 흔들렸다.

세인트루이스의 1번 타자 콜튼 웡에게 가운데로 몰리는 슬라이더를 던져 안타를 허용했고 2번 타자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3번 타자 타일러 오닐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져 원아웃 만루가 되어버렸다.

루크 보이트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마이애미의 팬들은 조용한 반면,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웅성거렸다.

0.265로 타율은 좋은 편이 아니지만, 38홈런을 기록한 팀의 간판타자가 바로 그였다.

109타점으로 시즌을 마감할 만큼 찬스에도 강한 선수여서 세인트루이스 팬들이 거는 기대가 더 컸다.

“후, 투수를 바꾸기도 애매하고. 누구누구 대기 중이지?”

“샌디 알칸타라와 아담 콘리가 불펜에 있습니다.”

알렉스 비토 감독은 입맛이 썼다.

6회쯤이면 불펜 투입을 하겠는데 겨우 3회 말이다.

호세 우레나가 흔들리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선발투수를 낸 들, 막아낸다는 보장이 없다.

어쨌든 지난 시즌 팀 내 최다승 투수다.

호세 우레나는 리얼무토의 사인을 받고 와인드업을 했다. 초구는 몸 쪽 하이 패스트볼이었는데 홈런 타자들이 쉽게 따라 나오는 코스다.

팡.

“볼.”

몸 쪽 깊은 볼에 루크 보이트가 뒤로 물러섰다.

팡.

“볼.”

바깥쪽 투심패스트볼마저 볼이 선언되었다. 방금 공은 카운트를 잡기 위한 공이었는데 제구력에 문제가 생겼다.

리얼무토가 마스크를 벗고 공을 던져주면서 호세 우레나와 눈을 마주쳤다.

리얼무토 나름으로 투지를 일깨우기 위함이었는데 다음 공으로 던진 포심패스트볼마저 바깥쪽 높게 들어왔다.

“괜찮아, 한두 점 줘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어. 집중하자.”

“몸 쪽 체인지업 어떻겠어.”

“좋아, 그렇게 해.”

리얼무토가 마운드에 올라갔다 내려왔고 심호흡을 한 호세 우레나는 4구째를 뿌렸다.

루크 보이트의 공격적 타격 성향을 이끌어내기 위한 공이었는데

몸 쪽 체인지업이 스트라이크 존으로 가다가 잘 떨어지면 스윙 내지는 내야 땅볼을 유도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호세 우레나의 생각대로 루크 보이트의 배트가 나왔다.

따악.

맞는 순간, 루크 보이트는 배트를 놓고 달리는 대신 날아가는 타구를 쳐다보았다. 1루 쪽에 앉아 있던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했고 호세 우레나는 고개를 숙였다.

좌익수 디카엘로가 따라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 대형 홈런이었다.

타구는 외야의 2층 관중석으로 떨어졌다.

“루크 보이트의 만루 홈런이 터져 나옵니다. 좌익수 키를 넘어 관중석 2층 상단에 떨어진 공! 세인트루이스 3회에 4점을 뽑아냅니다. 아, 루크 보이트 선수가 홈런 타자의 위용을 보여줍니다.”

“체인지업을 기다린 듯한 스윙이네요. 떨어지는 걸 기다렸다가 그대로 걷어 올렸습니다. 역시 루크 보이트, 자신이 홈런 타자라는 걸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호세 우레나 투수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군요.”

마이애미 말린스는 세인트루이스에 일격을 당했다.

중계 사이트에서는 만루의 위기에서 투수교체를 하지 않은 알렉스 비토 감독에게 팬들의 댓글이 쏟아졌다.

-하, 감독이 정상이냐? 흔들리는 투수를 교체하지 않으면 어쩌자는 거야.

-호세 우레나로는 세인트루이스를 막을 수 없어. 차라리 샌디 알칸타라가 낫지.

-맞아, 우레나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4이닝 6실점으로 무너졌었지. 후반기 들어서 체력의 한계가 온 투수를 기용했어.

-아, 이럴 때 성낙기가 던졌어야 하는데.

-와일드카드 결정전도 걔 때문에 온 거야.

-4:0이면 졌다. 마이애미 물타선으로는 100마일을 쳐내지 못할 거야

-설마 셜리번에게 투수 교체시기를 맡긴 거야?

-교체시기를 놓쳤어. 이걸로 게임 끝이다. 루크 보이트에게 밋밋한 체인지업 따위 안 먹히지.

호세 우레나는 두 타자를 잡아내고 이닝을 마쳤다.

마이애미의 더그아웃은 침울했고 누구 하나 호세 우레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조단 힉스는 4점 차의 리드를 안고 나서 더욱 힘을 냈다.

5회 초엔 102(164km)마일의 포심패스트볼을 뿌리며 해설자를 놀라게 만들었다. 마이애미는 4회부터 호세 우레나 대신 샌디 알칸타라가 마운드에 섰다.

그리고 6회까지 2이닝을 3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

마이애미 말린스에 기회가 온 것은 7회였다.

여전히 마운드는 조단 힉스였고 선두타자는 브라이언 앤더슨.

조단 힉스의 구위나 세인트루이스의 불펜을 생각하면 4번부터 시작하는 7회가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이다.

조단 힉스는 다 잡은 승리를 놓칠 수 없다는 듯 신중하게 승부했다.

그러다가 몸 쪽으로 던진다는 것이 손이 빠지는 바람에 브라이언 앤더슨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5번 타자 디카엘로는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고 시에라가 타석에 들어왔다.

조단 힉스가 허용한 3안타 가운데 유일하게 2안타를 때려낸 시에라였다.

‘강속구를 잘 친다더니 정말이었어.’

경기 전, 상성이 안 좋은 타자에 관해 투수코치로부터 언질을 받았고 그게 시에라였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100(161km)마일의 공을 어렵지 않게 때려낸다.

조단 힉스는 아직 인정하기 싫었다.

앞선 두 번의 승부에서는 제구가 가운데로 몰린 감이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따악.

102(164km)마일.

전광판에 102마일이 찍혔고 관중들이 공 스피드에 놀라기도 전에 시에라가 친 타구는 우익수 앞으로 굴러갔다.

원 아웃 1, 2루의 찬스가 만들어졌고 7번 타자 리얼무토가 타석에 섰다.

따악.

하지만 2구만에 1루 땅볼로 물러나고 말았다. 투아웃에 주자 2루와 3루에서 다음으로 나설 타자는 야디엘 리베라였다.

“타임!”

그때 마이애미 벤치의 선수 교체 사인이 나왔고 타격 코치가 주심에게 대타 기용을 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경기장에 있던 관중들과 캐스터 및 해설자 등은 눈을 크게 떴다.

바로 마이애미의 투수 성낙기가 배트를 휘두르며 나타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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