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03화 (103/188)

# 103

103화 102마일 1

팡.

따악.

공은 3루수에게 계획대로 갔지만, 공의 체공 시간이 있었기에 타자만 잡는데 만족해야 했다.

1루 주자는 득점권인 2루로 들어갔다.

성낙기는 다음 타자 윌머 프로레스에게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던지다가 우익수 앞 안타를 허용했다.

2루 주자가 홈에 들어왔고 여전히 원아웃에 주자 1루의 위기가 이어졌다.

경기 스코어 4:3.

“shit!”

[체력이 3 남았습니다.]

뉴욕 메츠의 6번 타자 브랜든 님모의 타석에서 성낙기는 더그아웃에 신호를 보냈다. 어차피 이 체력으로는 한 타자도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셜리번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올라왔다.

“왜, 무슨 일 있어?”

“더 이상은 힘듭니다.”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공을 받아든 셜리번 코치가 더그아웃에 교체 신호를 보냈고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던 팬 파일러가 마운드에 올라갔다.

***

“좋아, 투수가 바뀌었다. 충분히 공략 가능한 투수야.”

브렌든 님모는 투수가 성낙기에서 팬 파일러로 바뀌자, 보일 듯 말듯 한 미소를 머금었다.

성낙기는 도무지 까다로워서 타이밍을 잡기 어려웠는데 브랜든 님모가 아는 팬 파일러는 포심패스트볼만 빠른 투수일 뿐이다.

제구에 문제가 있고 슬라이더의 각도 엉성한 빈틈 많은 투수였다.

아무리 빨라도 가운데 들어오는 공을 못 치는 mlb 타자들은 없다.

팡.

“스트라이크.”

님모의 생각과 달리 바깥쪽에 꽉 찬 포심패스트볼이 꽂혔다.

님모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나서 맞이한 2구는 엉성하다고 생각했던 슬라이더였다.

팡.

휘잉.

“스윙 스트라이크.”

불과 얼마 전부터 팬 파일러가 달라졌다는 걸 님모는, 아니, 뉴욕 메츠 선수들은 모르고 있었다. 마이애미와 경기를 한 지가 한 달이 넘었으니 알 턱이 없다고 해야 하나.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를 먹고 나자 타자가 당황했다.

‘젠장, 뭐야.’

팡.

“볼.”

슈욱.

따악.

볼 카운트 원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님모는 배트를 돌렸다.

가운데로 오다가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였는데 님모의 눈엔 스트라이크로 보였고 루킹 삼진을 당할 수는 없었다.

타구는 1루수 브라이언 앤더슨에게 잡혔다.

“2루!”

리얼무토가 소리치며 2루를 가리켰고 브라이언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공을 던졌다.

2루는 아웃 타이밍이었고 2루수 샤일록은 공을 잡은 뒤, 점프했다.

1루 주자가 샤일록의 무릎 근처까지 다리를 올린 채 슬라이딩을 들어왔다.

샤일록은 위험하다는 걸 느끼면서도 1루 송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병살로 끝내지 못하면 뉴욕 메츠로 넘어가려는 분위기를 끊어내지 못한다는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했다.

뚜욱!

샤일록이 던진 공은 1루를 향해 날아갔지만, 윌머 프로레스의 슬라이딩을 피하지는 못했다. 리얼무토는 홈플레이트에 서서 2루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야구를 하면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기에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보았다.

윌머 프로레스의 발에 채여 무릎이 꺾인 채 고통스러워하는 샤일록의 모습을.

“아아악!”

샤일록의 다리는 무릎의 반대 방향으로 접혀 본래 다리의 모양을 상실했다.

낯선 풍경이었고 경기장 안의 모두가 경악했다.

가끔 UFC 같은 격투기에서 로우킥을 차다가 상대의 무릎 뼈에 걸려 정강이가 부러지는 건 봤어도 무릎 자체가 꺾이는 건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아웃.”

그 와중에 1루심은 아웃을 선언하면서 병살타가 완성되었다.

마이애미 말린스의 코칭 스태프가 모두 그라운드로 나왔고 구급차가 경기장에 도착했다.

다리를 부러뜨린 윌머 프로레스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당황하다가 누구에겐가 이끌려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저런 나쁜 놈, 당장 퇴장 시켜!”

“끔찍해. 더는 못 보겠어. 남자들은 이런 게 뭐가 재밌다고 경기장에 오는 거야?”

“스포츠는 인류의 역사나 같으니까.”

“슬라이딩이 저렇게 높은 건 무조건 고의야.”

“동료의식 없는 선수는 퇴출 시켜야 돼.”

“퇴장!”

구급차가 경기장을 빠져 나가고 나자 주심은 윌머 프로레스에게 퇴장을 명했다.

축제가 되어야 할 중요한 경기에서 일어난 사고로 분위기가 식었다.

공수 교대가 되어 마이애미의 공격으로 8회 말이 시작되었다.

뉴욕 메츠는 디그롬을 내리고 경험 많은 불펜 앤서니 스와잭을 투입했다.

그리고 마이애미 말린스의 타자들은 3구 이내에 모두 타격하여 삼자범퇴로 이닝이 끝났다.

“타자들에게 알려. 3구 이내에 무조건 공격하라고 말이야.”

“네에? 3구 이내에 타격하라고요?”

“그래, 굳이 점수 내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잊지 마.”

“알겠습니다. 이유를 알아도 될까요?”

“분위기 식었을 때 경기 끝내야 해. 늦어도 30분 안에, 20분이면 더 좋고.”

알렉스 비토 감독의 말대로 타자들은 머뭇거림 없이 타격했고 오늘 경기에서 가장 빠른 이닝타임을 기록했다.

8회 말, 마이애미의 성의 없는 공격으로 경기는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고 9회 초에 마이애미의 마무리 야를린 가르시아가 마운드에 섰다.

“마지막 공격이다. 이대로 이번 시즌을 마감하려는 건 아니겠지? 집중해.”

미키 켈러웨이 감독이 선수들에게 집중력을 강조한 이유도 가라앉은 더그아웃 분위기 때문이었다.

7, 8, 9번으로 이어지는 하위 타순이지만 마이애미의 리얼무토가 그렇듯 뉴욕 메츠에게도 케빈 플라웨키라는 팀의 리더가 있었다.

“헤이, 케빈.”

“헤이, 리얼무토.”

“아까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너의 타격을 하길 바라. 적어도 난, 실력이 아닌 다른 영향으로 경기에 이겼다는 이야기는 듣기 싫거든.”

“그래. 네 뜻은 접수할게.”

그런 대화가 오갔는데 케빈으로서는 썩 유쾌한 대화는 아니었다.

더그아웃에서부터 집중력을 이어가려는 타자에게 8회의 사고를 들먹이는 것은 타격에 방해가 된다.

그렇지만, 케빈은 뭐라고 반박하기가 애매했다.

리얼무토가 자신을 생각해 주듯 말했기 때문인데, 사실은 그렇게 때문에 더 신경이 쓰였다.

케빈 플라웨키는 뭔가 마음이 흐트러지는 걸 느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케빈 플라웨키. 지금 정신을 어디 두고 있는 거야.’

따악.

케빈이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속말을 되뇌고 있을 때, 가르시아의 1구가 들어왔고 케빈 플라웨키는 쫒기듯 배트를 휘둘렀다.

그러고는 배트에 공이 맞았을 때 바로 후회했다.

타구는 평범한 2루수 땅볼이었고 샤일록의 부상으로 교체된 야디엘 리베라가 경쾌한 풋워크를 보이며 1루로 송구했다.

‘아, 내가 너무 성급했다.’

케빈 플라웨키는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면서 리얼무토를 힐끗 보았다. 리얼무토는 마스크를 머리 위에 올린 채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같은 포수라서 잘 안다.

부담이 되는 타자를 처리하고 나서의 저런 표정 말이다.

‘혹시, 리얼무토가 의도적으로 부상 얘기를 흘렸……? 맞네… 제기랄.’

케빈 플라웨키는 리얼무토의 신경전을 뒤늦게 알고는 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케빈 플라웨키가 덧없이 물러나자 힘이 떨어진 8번과 9번 타자 역시 범타로 물러났다.

경기 스코어 4:3.

와일드카드 도전권이 걸린 경기에서 승리자는 마이애미 말린스였다.

강속구 투수 3인방을 내세워 월드시리즈까지 노리던 뉴욕 메츠였으나, 불펜과 타격에서 약점을 보이며 동부지구 2위로 밀리더니 마지막 경기에서 마이애미에 덜미를 잡혀 3위로 내려앉은 채 시즌을 끝냈다.

***

마이애미 말린스의 기적적인 반등이었다.

그날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승리를 자축했다.

성낙기는 팬 파일러에게 샴페인을 뿌리며 8회를 잘 막아준 고마움을 표했고 팬 파일러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행복하게 웃었다.

짧은 파티를 끝내고 선수들은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내일 모레, 세인트루이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 경기에서 7과 3/1이닝을 던진 성낙기는 그 경기에 나설 수 없다.

“누구를 선발로 하는 게 좋을까? 세인트루이스라는 팀 컬러에 이질적인 투수가 필요해.”

“세인트루이스… 끈끈한 팀이죠. 구위로 승부하는 투수보단 기교파 투수가 잘 먹힌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런 생각은 했는데… 역시 호세 우레나 밖에 없겠지. 경험도 많고 원래 에이스인 투수이니까.”

“아무래도 알칸타라는 구위는 좋지만 제구에 약점이 있죠.”

“맞아, 선택의 여지가 없군.”

다음 날, 마이애미 말린스는 몸을 푸는 정도의 훈련을 가졌는데 선수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다 밝았다.

예상외의 선전에 선수들 스스로도 뿌듯해했다.

다른 팀도 아니고 노아 신더가드가 던진 뉴욕 메츠와의 어제 경기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훈련이 끝날 무렵엔 소식이 도착했다.

바로 어제 비신사적인 태클을 당한 샤일록의 부상 정도였는데 수술 후, 재활치료까지 1년 이상이 소요될 거라는 의사의 소견이 나왔다.

그 소식을 듣고 선수들의 밝았던 표정이 침울해졌다.

샤일록이 당한 부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면서 자신들에게 닥칠 수도 있는 사고이기 때문이다.

흔히 동료 의식을 들먹이지만 승부가 갈리는 경기에서 윌머 프로레스 같은 선수는 나오게 마련이다.

어제의 샤일록은 병살 처리를 해야만 하는 중요한 흐름이었고 읠머는 어떻게든 병살을 막아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박빙의 경기가 두 선수의 의욕을 부추겼고 그 결과는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부상으로 이어졌다. 성낙기는 내일 경기 대타로 나갈 것에 대비해 타격 훈련을 했다.

***

드디어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날이 밝았다.

4만 7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부시스타디움은 이미 만원이었다.

각 지구 1위를 제외하고는 승률이 가장 높은 팀이 세인트루이스였기에 뉴욕 메츠를 꺾고 간신히 와일드카드 경쟁에 뛰어든 마이애미를 그다지 어려운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온 투수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뉴욕 메츠까지 잡았지만, 오늘 선발로 나서는 호세 우레나는 해볼 만한 투수였다.

그에 반해 세인트루이스는 조단 힉스라는 젊은 투수를 앞세워 와일드카드를 거머쥐려 하고 있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ESPN의 에이프럴입니다. 오늘은 해설자 제임스 씨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의 전설이죠. 랜 존슨을 모시고 경기에 대한 해설을 듣겠습니다. 오늘 경기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꾸준히 시즌 내내 상위권을 유지하며 여기까지 온 세인트루이스와 달리, 마이애미는 후반기에 치고 올라왔다는 점이 다르죠. 그 중심에는 성낙기라는 KBO 출신 투수가 있었고요. 이 선수가 중요한 경기마다 나와서 상대팀의 에이스를 쓰러뜨렸어요. 타격에서도 타자 이상의 역할을 해 준 선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던질 수 없죠. 이틀 전,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7과 3/1이닝을 던졌으니까요. 마이애미의 호세 우레나가 얼마나 막아주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 같군요.”

“랜 존슨, 어떻습니까?”

“역시 투수력이 관건입니다. 오늘, 마이애미엔 성낙기가 없고 세인트루이스엔 조단 힉스가 있습니다. 이미 21세인 2018년에 105마일을 던졌고 2021년인 올해 드디어 106마일의 공을 던져 아돌리스 채프먼과 타이기록을 이뤘습니다. 본래 불펜으로 출발했다가 선발로 전향한 투수인데 평균 구속이 98(158km)마일입니다. 마이애미 타자들이 얼마나 조단을 괴롭히느냐에 경기 결과가 달려 있을 겁니다.”

랜 존슨의 말처럼 조단 힉스는 타고난 강속구 투수였다.

188cm, 85kg의 다소 마른 체격에도 불구하고 100(161km)마일이 넘는 공을 밥 먹듯이 던지면서 세인트루이스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경기 시작과 함께 조단 힉스가 마운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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