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02화 (102/188)

# 102

102화 단판 승부 2

4회 초에 2실점을 한 성낙기와 4회 말에 3실점을 한 노아 신더가드 모두 타자들에게 시달리고 있다.

두 투수가 맞붙어서 이런 점수가 나오는 것도 처음이었고 더구나 4회를 마쳤을 뿐이다.

“헤이, 셜리번. 오늘 자네는 투수전이 될 거라고 했었지? 어때, 지금도 같은 생각인 거야?”

“뭐… 경기가 끝난 건 아니니까. 이 점수로 9회까지 던지면 투수전이 맞는 거지.”

“천만에. 오늘처럼 중요한 경기는 S급 투수도 안심할 수 없어. 타자들의 집중력이 최고조로 올라 있어서 삐끗하면 바로 털리기 십상이야. 다저스의 커쇼가 디비전시리즈에 약한 이유도 바로 그거지. 투수의 구위는 정규리그와 비슷한데 타자들의 타격게이지는 비약적으로 오르는 게 이유야.”

“그래? 그럼, 디비전시리즈에서 잘 던지는 투수는 뭔데.”

“그건 아마도 볼 배합의 변화가 아닐까? 패턴이 통하면 성공하는 거고 아니면 털리는 거겠지.”

“워마린 자넨 다 좋은데 야구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군. 특히 투수에 대해서는 더하지. 투구 하나에, 얼마나 많은 메커니즘이 필요한지 안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거야.”

셜리번 코치와 워마린 코치는 의외의 실점 상황을 두고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당장 중요한 건 이 경기이지,

투수와 타자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알렉스 비토 감독은 달랐다.

“선나키, 리얼무토. 5회부터는 볼 배합에 변화를 주는 게 어떻겠어. 뉴욕 메츠의 득점은 행운이 따랐지만 아무튼 공이 맞아 나간 건 사실이야. 집중력이 오르다보니 투구 패턴을 감으로 때려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잖아도 성낙기하고 대화중입니다. 시즌 때의 패턴이 회가 거듭될수록 먹히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좋아, 선나키. 무조건 틀어막아. 막으면 한인 식당에서 내가 마컬리 산다.”

“오오, 그러시다면야 당연히 막아야겠죠. 팔이 부러지도록 던지겠습니다.”

정보력 좋다. 성낙기가 막걸리를 좋아한다는 걸 어디서 들었는지 동기부여 제대로다.

무조건 틀어막으라는 말은 한국에서 허봉호 감독에게 많이 듣던 멘트 아닌가.

성낙기는 내심 놀라면서도 한국에서 이계현 투수 코치와 먹었던 닭볶음탕을 떠올렸다.

‘막걸리 한 사발에 닭볶음탕이면 완봉… 은 물 건너갔고 완투도 할 수 있다.’

누가 성낙기의 생각을 직접 듣는다면 약간 이상한 놈이라 하겠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저런 작은 약속 하나가 의욕을 솟아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적어도 성낙기 같은 희귀한 인간에게는 그렇다. 괜히 막걸리 집안이 아니다.

***

신더가드는 7회 말에 다시 실점 위기를 맞았다.

원아웃에 5번 타자, 디카엘로가 친 공이 1루 베이스를 맞고 파울라인으로 굴러갔고 그 틈에 타자는 2루까지 진출했다.

미키 캘러웨이 감독이 마운드로 직접 나와 신더가드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공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던 디그롬이 마운드로 올라갔다.

연습 구를 던지는 동안, 마그뉴리스 시에라는 포심패스트볼 타이밍에 맞춰 스윙을 몇 번 하고는 타석에 들어섰다.

디그롬은 포심과 투심패스트볼의 커맨드가 좋은 투수로 제구력이 좋고 날카로운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던진다.

커브도 가끔 섞어 던질 정도로 구종이 다양해서 타자들이 애를 먹는 스타일이다.

“미키 켈러웨이 감독이 디그롬으로 투수를 교체했습니다. 마이애미의 다음 타자는 강속구에 강한 시에라인데요. 그야말로 총력전입니다. 불펜엔 좌완 선발투수 스티븐 마츠와 마무리 투수인 파밀리아까지 몸을 풀고 있습니다.”

“디그롬으로 바꿨는데 과연 어떨지 궁금해지는군요. 타자와의 상성(相性)을 생각한다면 좌완 투수인 스티븐 마츠도 생각할 법한데요. 강력한 구위를 자랑하는 디그롬을 선택한 미키 캘러웨이 감독의 용병술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하기 어렵네요.”

“마이애미와 뉴욕 메츠의 와일드카드 도전권이 걸린 경기에 관중들도 긴장하며 경기를 관전합니다.”

“이런 경기가 피 말리는 거죠. 정말 치열한 두 팀입니다. 1점 차의 살얼음 승부에서 실수가 나오거나 안이한 플레이는 그대로 지옥행 열차를 타는 거예요. 경기 후반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팀이 승에 가깝게 다가갈 겁니다.”

캐스터와 해설자도 흥분되는 듯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디그롬은 시에라의 성향을 의식한 듯 초구로 슬라이더를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가운데로 높게 오다가 바깥쪽으로 예리하게 꺾여 나가는 슬라이더다.

시에라는 변화구를 예견했지만 배트를 움직이지 않았다. 유인구라고 생각했던 공이었는데 디그롬은 과감하게 스트라이크를 잡아 나갔다.

‘바로 승부로 들어와?’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면 치려고 생각했던 시에라이기에, 놓쳐 버린 초구는 원 스트라이크 이상으로 타자에게 불리하다.

스트라이크가 들어오더라도 초구를 지켜보려는 타자였다면 데미지가 없지만, 이 경우는 아니다. 생각이 한 번 어긋나면 수렁에 빠질 수 있는 것이 투수와 타자다.

투수는 타자의 생각과 다른 공을 던져야 하고 타자는 투수의 다음 공을 읽어야 한다.

디그롬은 평소에 즐겨 쓰던 투심패스트볼의 바깥쪽 공략 패턴을 버리고 몸 쪽으로 하이패스트볼을 던졌다.

따악.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시에라는 고개를 숙였다. 공은 내야 높이 솟았고 유격수가 처리했다.

‘젠장, 갑자기 머리회전이 멈춰버렸어.’

시에라가 속으로 툴툴거리며 덧없이 물러나고 J.T 리들의 차례였다.

알렉스 비토 감독은 찬스를 이대로 끝낼 수 없다고 여겼는지 최근 3경기 0.189에 허덕이는 리들을 빼고 야디엘 리베라를 대타로 올렸다.

야디엘은 디트로이트에서 트레이드로 팀에 합류한 샤일록에게 밀려 졸지에 내야 이곳저곳을 땜빵 하는 유틸리티 백업으로 전락했다.

내야수들의 체력 안배를 위해 간간이 교체로 나서는 정도까지 입지가 좁아진 이유는 타격 때문이었다.

샤일록은 마이애미에 오자마자 선발로 나선 경기에서 좋은 타격을 선보였고 2루는 자연히 샤일록에게 돌아갔다.

야디엘은 약점 보완을 위해 타격 연습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요즘 점차 감을 잡아가는 상황이었다.

‘반드시 친다.’

디그롬을 바라보는 야디엘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흡사 영혼을 강탈하는 술사처럼 강하고 깊은 눈빛이다. 그 모습을 본 디그롬은 사인을 보면서 잠시 생각했다.

‘저게 맛이 갔나. 째리고 지랄이냐.’

야디엘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스윙했다.

아무 공이나 치겠다는 듯 초구부터 3구까지 연속 파울 타구를 날렸다. 워마린 타격 코치가 더그아웃에서 사인을 냈다.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하라는 뜻을 사인으로 전달했다.

야디엘은 고개를 돌리며 자신이 너무 의욕적으로 스윙했다고 생각했다.

2구로 들어온 낮은 슬라이더 같은 배드(bad) 볼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타자는 무조건 진다.

팡.

“볼.”

몸 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속지 않은 야디엘이 한숨을 돌렸다. 배트를 움찔했을 정도로 체인지업은 예리했고 속을 뻔했다.

디그롬은 시에라를 잡은 하이패스트볼을 던졌으나 야디엘의 머리는 차갑게 식은 뒤였다.

투 볼 투 스트라이크.

디그롬은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노리고 6구로 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따악.

타구가 깨끗하게 내야를 넘어 우익수에게 굴러갔다.

투아웃이어서 스타트를 빨리 끊은 디카엘로는 여유 있게 홈을 밟았다.

야디엘은 1루로 나가 베이스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나서 발목에 찬 보호대를 풀었다.

그러고는 허리를 숙인 채 방금 자신이 날린 타구를 평가했다.

‘와일드카드를 잡아채는 집념의 안타였어.’

***

경기 스코어 4:2.

7회의 적시타로 1점을 추가한 마이애미의 승리가 눈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성낙기는 8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7회까지 91구를 던졌고 체력 소모가 1인 빠른 변화구와 포심패스트볼의 전력투구 51구.

체력 소모가 1.5인 라이징패스트볼과 퀘이크볼 9구.

체력 소모가 0.5인 체인지업과 커브는 31구로 다른 날과 달리 체인지업과 커브를 많이 사용했다.

5회부터 느린 변화구를 자주 사용한 결과였는데 7회 초에 마운드를 내려갈 때,

[체력이 9 남았습니다]라는, 글귀가 떴다.

KBO에선 포심패스트볼과 빠른 변화구를 전력투구하지 않았기에 완투를 심심찮게 했었다.

가령, 포심패스트볼을 최고 구속에 몇 킬로미터 못 미치게 던지면 체력 소모가 1이 안되었으므로 체력 안배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달랐다.

전력투구를 해도 막을까 말까다.

오늘 경기에선 5회부터 7회까지를 공 31개로 끝냈기에 아직 체력이 9가 남아 있었다.

알렉스 비토 감독의 조언처럼 패턴을 바꾼 성낙기와 리얼무토는 느린 변화구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타이밍이 맞지 않는 타구들이 나왔다.

‘체력이 9라면 역시 변화구 승부로 가야겠다.’

문제는 8회가 뉴욕 메츠의 클린업 트리오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도미닉 스미스가 검붉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타석에 섰다.

1회에 리얼무토로부터 세계관 어쩌고 하는 말을 들은 뒤로 세 타석 연속 삼진을 성낙기에게 당했다.

도미닉은 타석에서 배트를 한 차례 휘두르면서 리얼무토를 힐끗 바라봤다.

“왜 보는데?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없어. 안타로 할 말을 대신할 거다.”

‘뭐야, 어느새 정신을 차렸네.’

도미닉은 앞선 타석과는 다르게 냉정을 유지하고자 애썼다. 그리고 도미닉의 그런 노력은,

따악.

성낙기가 초구로 슬라이더를 던졌을 때, 1, 2간을 가르는 안타로 연결됐다.

리얼무토의 세계관에 휩싸여 갈팡질팡했던 컨택 능력이 돌아온 것인데, 하필 그때가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때라는 게 문제였다.

노아웃 1루의 찬스.

뉴욕 메츠는 희망을 품었고 마이애미는 불안에 휩싸였다.

마운드 위의 투수가 성낙기인 이상, 믿어볼 수밖에 없다. 많이 던졌다고 볼 끝이 떨어지는 유형의 투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 너머 산이다.

다음 타자는 워싱턴의 간판타자인 팀 티보였다.

변화구에 약점이 있다고 알려진 타자이지만 무식하게 휘두르고 보는 타자는 아니었다.

의외로 신중하고 생각보다 사소한 성격, 그게 팀 티보였다.

어떤 해설가는 팀 티보의 약점은 타석에서 너무 많이 생각하는 거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휴, 힘들어. 대충 끝내면 되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너 타격 방해하면 사무국에 제소할 거다.”

“음… 알았다. 타격 잘해봐.”

리얼무토가 순순히 물러나자 팀 티보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볼 배합을 다르게 할 생각인가?

팀 티보는 성낙기가 던지는 공, 중에서 슬라이더 같은 변화구를 노리고 있었다.

어차피 포심패스트볼로 자신과 상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리얼무토의 말을 듣고는 조금 애매해졌다.

팡.

“스트라이크.”

포심패스트볼이 팀 티보의 몸 쪽에 꽂혔고, 팀 티보는 그제야 생각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바로 이거였군. 역으로 간다는 거지.’

리얼무토는 원 스트라이크를 잡은 후에, 2구째는 몸 쪽 퀘이크볼을 던져 내야 땅볼을 유도할 계획이었다. 병살 코스다.

성낙기는 리얼무토의 사인대로 퀘이크볼을 던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