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101화 (101/188)

# 101

101화 단판 승부 1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사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팬 파일러에게 다저스와의 경기는 기사회생의 동아줄이었고

자신의 공이 이토록 위력적이었나, 스스로도 놀란 전환점이었다.

경기는 팬 파일러의 호투와 야를린 가르시아의 마무리로 6:3 승.

이로서 마이애미는 이른 시점에 위닝 시리즈를 확보했다.

3차전에서 마이애미 말린스는 LA다저스를 상대로 샌디 알칸타라가 호투하면서 위닝 시리즈를 넘어 스윕을 달성했다.

그러는 동안,

뉴욕 메츠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를 상대로 루징 시리즈를 당하면서 1.5경기 차로 좁혀졌다.

마이애미는 잘하면 와일드카드를 가져올 수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현재 뉴욕메츠의 승률이 내셔널리그 3개 지구 2위 중에서, 두 번째이기 때문이다.

즉, 뉴욕 메츠를 뛰어 넘으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갈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더구나, 와일드카드로 나가 월드시리즈를 두 번이나 우승한 팀의 전통은 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

10월 2일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날, 말린스 파크는 유래 없는 매진을 기록했다.

경기장 밖에는 입장하지 못한 수천 명의 팬들이 대형 TV 앞에 모여 마이매이 말린스의 승리를 바라고 있었다.

뉴욕 메츠와의 2연전 중 2차전이었고 1차전은 호세 우레나와 샌디 알칸타라를 연속으로 투입하며 7:6으로 마이매미가 승리를 거뒀다.

어제의 승리로 뉴욕 메츠와의 경기 차는 0.5게임으로 좁혀졌고 토요일인 오늘 경기의 승자가 와일드카드를 놓고 콜로라도 로키스와 맞붙게 되어 있다.

뉴욕 메츠와 마이애미 말린스 모두 놓칠 수 없는 한판이었다.

“안녕하십니다. ESPN의 오스왈도입니다. 오늘 제임스 해설자를 모시고 경기를 중계합니다. 정규리그 마지막 날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던 많은 팀들의 순위가 결정되었고 각 지구 1위 팀들의 디비전 시리즈를 위한 여정이 남은 상태입니다. 다만,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도전권은 아직 치열한 경쟁 중입니다. 뉴욕 메츠와 마이애미 말린스, 두 팀의 게임차가 0.5에 불과해서 오늘 경기로 도전권의 향방이 결정됩니다. 아주 중요한 순간이죠?”

“맞아요. 마지막 날까지 뉴욕 메츠를 몰아붙인, 와일드카드를 향한 마이애미의 저력이 놀랍습니다. 뉴욕 메츠로서는 지긋지긋할 겁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수월하게 와일드카드 도전권을 획득할 걸로 예상되었거든요. 아마도… 이건 제 생각인데 팀의 전통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두 번이나 와일드카드로 진출해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전통 말이지요. 마이애미가 끝까지 와일드카드에 대한 집념을 불태우는 이유로 보이네요.”

“오늘 선발은 양 팀의 에이스, 노아 신더가드와 성낙기의 선발입니다. 양 팀 감독은 선발이 부진할 경우, 쓸 수 있는 투수 자원을 총동원하겠다고 인터뷰를 한 상황입니다. 이 경기를 지는 팀에겐 내일이 없는 거니까요.”

“오늘로 두 투수가 세 번째 대결이네요. 시즌 중에 이렇게 만나기도 힘든데 앞선 두 경기는 모두 마이애미가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알렉스 비토 감독이 성낙기 투수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거죠. 반면, 미키 캘러웨이 감독은 디그롬과 맷 하비 등을 적절하게 투입하겠다고 밝혔죠. 미키 캘러웨이 감독은 좋은 투수 자원으로 마이애미의 추격을 허용한 것에 대해 팬들의 질타를 받는 상황입니다. 어떻게든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죠.”

성낙기는 1회 초에 마운드에 섰다.

경기의 중요도를 감안해서인지 알렉스 비토 감독은 성낙기와 제법 호흡을 맞춰 왔던 채드 왈라치 대신 리얼무토를 포수로 투입했다.

지난 시즌 햄스트링 부상으로 동계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던 리얼무토는 후반기에 체력이 떨어졌고 고질적인 무릎 통증으로 한동안 부상자 명단에 들어 있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알겠지? 모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 오늘 너의 승리는 곧 마이애미 말린스의 역사관에 기록될 거야. 어때, 그럴듯하지 않아?”

“좋아, 훗날 마이애미 다큐 팀이 한국에 오면 그날의 포수는 리얼무토였다고 기록되게 해줄게. 마운드에서 철학 강의로 염장질을 하는 바람에 열 받아서 더 잘 던졌다고 말야.”

“간혹, 너 같은 애들이 있지.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내가 내는 사인 하나도 무의미한 건 없다는 걸. 거기엔 나의 세계관이 농축되어 있지.”

“휴, 알겠어. 그럼 지금 당장 홈플레이트로 가서 농축된 세계관을 보여주세요.”

성낙기는 1, 2번 타자를 내야땅볼로 잡아냈고 3번 타자 도미닉 스미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평소 잘 웃고 사람 좋아 보이는 도미닉이지만 오늘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성낙기는 초구로 바깥쪽 체인지업을 던졌고 도미닉 스미스는 크게 스윙했다.

리얼무토는 2구 역시 몸 쪽으로 체인지업 사인을 냈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도미닉이 또다시 스윙했고 리얼무토는 성낙기에게 공을 되돌려 줬다.

도미닉은 자신이 속았다는 듯 한 손으로 헬멧을 두어 번 두드린 뒤, 다시 타석에 섰다.

성낙기는 허리를 굽혀 3구째의 사인을 받았다.

이번 공은 몸 쪽 하이패스트볼 사인이 왔다.

성낙기는 사인을 받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shit! 뭐라는 거야! 방금 나더러 멍청이라고 한 거 맞지? eat toffee(엿 먹어)!”

“타임!”

갑자기 타석에서 도미닉 스미스가 흥분했고 그 흥분의 대상은 리얼무토였다.

리얼무토가 뭐라고 대꾸했고 그럼에도 도미닉 스미스가 분을 삭이지 못하자,

주심이 타임을 선언하고 둘을 말렸다.

한참 옥신각신하던 도미닉과 리얼무토가 진정했고 성낙기는 아까의 사인대로 하이패스트볼을 던졌다.

팡.

휘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도미닉은 분에 겨워 헬멧을 내동댕이쳤고 성낙기는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면서 리얼무토에게 물었다.

“도대체 뭐라고 했는데 저러는 거야?”

“별말 안 했어. 세계관 없는 스윙은 무의미하니까 그냥 삼진 먹고 들어가라고 그랬지. 그랬더니 미친 소처럼 날뛰네.”

“그래? 겨우 그 말을 했는데 저런다고?”

“세계관 없다니까 못 배운 사람 취급했다고 그러는 거지, 뭐. 내 알기로 쟤가 난민 자손인데 학교를 제대로 다녔겠어? 콤플렉스 오지게 들어 있는 놈이야.”

리얼무토의 말을 듣고 보니 살짝 이해가 갔다.

야구는 잘하지만 끝내 극복하기 힘든 상처를 누구나 갖고 있구나. 성낙기는 자신이 만약 신이라면 세계관이 들어 있는 배트를 도미닉에게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

마이애미 말린스는 3회까지 삼진 셋을 포함, 범타로 물러나며 노아 신더가드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앞선 두 번의 승리도 신더가드를 잘 공략해서가 아니었다.

성낙기가 워낙 잘 던졌고 잘 쳤기 때문이다.

신더가드는 체면을 구긴 셈이지만,

오늘은 다부지게 마음을 먹은 듯 가운데로 몰리는 공이 거의 없고 던질 때마다 쉬이익, 하는 바람 소리를 선수들은 느꼈다.

3회 말에 타석에 선 성낙기도 파울 팁으로 아웃 당했을 만큼 신더가드의 구위는 빼어났다.

성낙기는 4회 초에 도미닉 스미스를 스윙 아웃으로 잡아냈고

리얼무토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그게 없는 건가……?”

리얼무토의 말을 듣고 도미닉의 스윙을 보니 영혼이 없는 배트질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뉴욕 메츠의 3번 타자를 연속 삼진 처리하고 보니 없는 자신감도 생긴다.

오늘은 완봉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4회 투아웃까지 단 1안타를 허용했고 그마저도 코스가 좋아서 맞은 내야안타일 뿐이다.

따악.

하지만 좋은 일이 계속되면 마가 낀다고 했던가.

4번 타자 팀 티보에게 던진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이 높이 치솟더니 관중석으로 넘어가 버렸다. 5번 타자로 나온 윌머 프로레스는 몸 쪽으로 던진 슬라이더를 잡아 당겨 유격수 키를 넘기더니,

6번 타자로 나온 브랜든 님모는 성낙기가 마음먹고 던진 퀘이크볼을 후려쳐 우중간을 갈랐다.

님모는 2루타를 치고 나서 2루에 도착한 후, 자신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바깥쪽 슬라이더라고 생각하고 스윙 궤적을 가져갔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잘 맞았고 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슬라이더가 아니었다.

“내가 방금 퀘이크 볼을 친 건가? 어디서 온 변화구인지 모르겠다는 그 볼을……?”

님모가 2루에서 가슴이 벅찰 동안 프로레스는 홈으로 들어와 버렸고 3회까지 1안타로 호투하던 성낙기는 졸지에 2실점을 했다.

성낙기조차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분명 제대로 노리고 들어온 스윙이 아닌데 높이 뜨더니 관중석으로 넘어가 버렸고 후려치고 보니 2루타라는 결과만이 성낙기의 앞에 놓여 있었다.

성낙기는 포수 플라웨키를 3루 땅볼로 잡아내고 급한 불을 껐다.

“잘 맞은 공은 하나도 없었어. 너무 억울해 하지 마.”

더그아웃으로 내려올 때 리얼무토가 성낙기를 위로했고,

“억울하긴, 이래서 야구공이 둥글다고 하는 거지. 둥글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 거고.”

“무슨… 말이야?”

“철학자가 그것도 몰라? 삶은 늘 돌고 돈다는 뜻이야.”

“아… 그런 뜻이었구나. 그렇다면 넌 이미 우주의 신비를…….”

“그만! 됐어. 5회부턴 볼 배합을 좀 바꿔보자고.”

***

성낙기의 말대로 야구공은 둥글었다.

언터쳐블(untouchable)이던 신더가드에게도 거짓말처럼 마가 끼기 시작한 것이다.

마이애미의 1번 타자 가렛 쿠퍼가 친 공이 내야를 구르다가 갑자기 튀어 올랐고, 불규칙 바운드를 예상하지 못한 유격수 아메드 로사리오의 글러브를 맞고 뒤로 흐른 것이다.

가렛 쿠퍼는 좌익수가 타구를 처리하려고 전진하는 틈을 타 2루까지 내달렸다.

“세이프!”

2루에 안착한 뒤, 더그아웃을 향해 손을 들었고 마이애미의 팬들은 목청껏 소리쳤다.

다음 타자를 투수 땅볼로 잡은 신더가드가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3번 타자 루이스 브린슨의 우익수 쪽 애매한 타구가 나왔다.

마이클 콘포토가 슬라이딩을 하면서 타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타구는 글러브에 맞지도 않고 뒤로 흘렀다.

“마이클이 슬라이딩 후에 일어나지 못합니다. 중견수가 공을 따라갑니다. 타자는 3루까지 뜁니다. 3루타!”

“마이클 콘포토 선수, 슬라이딩 착지 하면서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망설이다가 슬라이딩을 했거든요. 자세가 불안정했습니다.”

마이클 콘포토는 겨우 일어나서 더그아웃으로 갔고 대수비 후안 라가레스가 우익수로 투입되었다.

1실점 후에도 이어지는 원 아웃 3루의 위기에 포수 케빈 플라웨키가 마운드로 올라갔다. 신더가드는 잘 안 풀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포수가 내려오고 타석에 마이애미의 4번 타자 브라이언 앤더슨이 들어섰다. 0.283의 타율에 29홈런을 기록 중인 마이애미의 간판타자다.

‘지긋지긋한 ‘twenty(20)시대’를 끝내고 ‘thirty(30)시대’를 열겁니다.’

일주일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브라이언이 내뱉은 말이었다.

그때가 29홈런이었는데 아직도 그 하나를 추가하지 못해서 ‘thirty(30)시대’를 열지 못하고 있는 브라이언 앤더슨이다.

그리고 오늘은 시즌의 마지막 날이었다.

거포 대우를 받으려면 그의 말대로 30시대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늘 20 언저리에 발목 잡히고 있는 홈런 개수에 대한 스스로의 강박이었고 그것 때문에 30에 대한 열망은 더더욱 간절했다. 그리고,

따악.

“아, 브라이언 앤더슨이 친 타구가 쭉쭉 뻗어갑니다. 중견수 브랜든 님모가 따라갑니다만, 타구는 그대로 담장을 넘어갑니다. 브라이언의 홈-런! 마지막 날 경기에서 30 홈런을 기록하는 브라이언이 얼굴 가득 퍼지는 웃음을 숨기지 못합니다.”

브라이언 앤더슨은 그의 열망이 시키는 대로 30홈런의 시대를 열었다.

그것도 파이어 볼러로 유명한 노아 신더가드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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