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100화 와일드카드를 위한 3
따악.
배트에 맞은 공이 유격수 키를 넘어갔고 좌익수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다저스는 원아웃 1루의 찬스로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렸다. 다음 타자는 2루수로 활약하는 맥스 먼시였는데 0.245의 타율을 기록 중인 수비형 타자였다.
빠른 공이 맞아나가는 것을 본 성낙기는 초구로 슬라이더를 선택했고 바깥쪽에 꽂혔다.
팡.
“스트라이크.”
2구는 같은 코스에 던지는 체인지업이었다.
포심패스트볼처럼 보이기 때문에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쉽게 쳐낼 수 없는 구질이었지만,
따악.
먼시가 친 공은 땅볼이 되면서 수비가 가능할 것으로 보였으나,
1, 2루 사이를 절묘하게 가르는 안타였다.
1루수와 2루수가 서로 교차하면서 뻗은 글러브 사이를 지나 우익수에게 굴러갔다.
“셜리번, 올라가 봐. 폭격 맞기 전에 여차하면 더그아웃으로 피신시키도록 해.”
“끄응, 알겠습니다.”
셜리번 투수 코치가 알렉스 비토 감독의 오더를 받고 마운드로 갔고 채드 왈라치도 왔다.
그리고 내야수들도 마운드 쪽으로 다가왔다.
히트가 더 나오면 역전으로 이어질 위기였고 다 잡아놓은 경기를 놓치게 된다.
이 경기는 와일드카드를 꿈꾸는 마이애미 말린스로서는 절대 질 수 없는 경기였다.
“오늘 많이 던졌지?”
“많이 던지긴요. 100구도 안 되는데.”
“너무 많은 짐을 지려고 하지 마. 뒤에 마무리가 버티고 있어.”
“제가 끝내겠습니다.”
“내 말은 끝내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아직 경기는 많이 남아 있고 넌 다음 경기를 위해…….”
“제가 끝내겠습니다.”
“…어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대신에 무조건 틀어막아. 못 막으면 삼겹살 없어.”
“제가 삼겹살…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아시고. 흐흐.”
셜리번 투수 코치는 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에이스급 투수가 우기는 데에는 답이 없었다. 게다가 지가 투런 홈런을 쳐서 끌어온 경기 아닌가.
***
[체력이 6 남았습니다]
3루를 맡고 있는 팀 로카스트로가 타석에 들어섰다. 0.265의 타율에 13홈런 8도루를 기록 중인 선수였는데 배트를 짧게 잡은 모습을 보니 마음가짐을 알겠다.
알렉스 비토 감독은 전진수비와 3루를 비워두고 내야수의 간격을 좁히는 시프트를 지시했다.
3루수가 유격수를 건너 뛰어 2루 베이스 쪽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시프트를 서고 보니 3루 쪽을 제외하고는 물 샐 틈 없는 수비망이 펼쳐졌다.
팀 로카스트로는 극단적인 시프트에 잠시 당황했지만, 다저스 벤치의 사인을 받고 안정을 되찾았다.
성낙기는 시프트의 전략대로 바깥쪽으로 파고드는 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로카스트로가 갑자기 자세를 낮췄다.
툭.
떼구르르르.
“아, 기습번트를 대는 로카스트로입니다. 성낙기 투수 3루 선상으로 달려갑니다.”
[짐 캇의 수비력이 시작됩니다(4단계/5단계)]
수비 시프트에 로카스트로는 기습적인 번트로 대응했고 캐스터는 톤이 올라간 목소리도 경기 상황을 중계했다.
알렉스 비토 감독은 로카스트로가 번트를 대자 끼었던 팔짱을 풀고 그라운드를 주시했다.
‘걸렸어……!’
알렉스 비토 감독이 속으로 되뇌는 동안, 성낙기는 번트 타구를 잡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3루 선상으로 흐르는 공을 맨손으로 낚아챈 성낙기는 잠시의 망설임 없이 2루로 공을 던졌다.
1루 주자가 2루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포스아웃만으로 가능하다는 걸 인지한 성낙기의 플레이였는데, 그에게는 이미 이 정도의 타구와 시간이면 2루에서 충분히 승부가 된다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바로 짐 캇의 수비 경험이 성낙기를 통해 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격수 JT 리들이 성낙기의 송구를 받았을 때,
1루 주자의 태클이 들어왔으나 포스아웃 되었고 JT 리들은 뛰어오르며 1루로 송구했다.
로카스트로는 사력을 다해 1루로 달렸지만 간발의 차이로 아웃, 1-6-3의 병살이 이루어졌다.
그대로 경기가 끝났고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모두 뛰어나와 기뻐했다.
시즌 첫 성낙기의 완투승이었고 투런 홈런을 쳤음에도 적절한 체력 안배로 9회까지 던진 성낙기도 채드 왈라치와 기쁨을 나눴다.
***
경기의 MVP는 성낙기였고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오늘 완투승을 거뒀는데 소감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모든 게 잘 맞아 들어갔습니다. 볼 배합도 적절했고 수비가 잘해줘서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9회 원아웃에 1,2루 상황에 수비 시프트를 걸었는데요. 혹시 번트를 댈 것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예상했습니다. 수비 시프트를 할 때 이미 번트를 예상하고 들어간 겁니다. 알렉스 비토 감독과 그렇게 사인을 주고받았습니다.”
캐스터는 알렉스 비토 감독과도 대화를 나눴다. 특히 번트 위험에도 불구하고 수비 시프트를 한 부분에 대한 말이 이어졌다.
“공이 3루까지 굴러가면 유격수가 충분히 커버한다고 봤습니다. 사실, 투수에게 번트 수비를 맡긴 겁니다. 3루 선상에 번트를 대면 투수가 수비하기 어려운 게 일반적이지만 성낙기라면 더블플레이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호오, 왜죠? 투수가 그런 타구를 잡아서 더블플레이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게 놀랍군요.”
“경기 중엔 자주 보여주지 않았지만 연습 때는 누구보다 수비가 뛰어난 투수가 성낙기입니다. 순발력과 민첩함과 송구 능력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죠. 그리고 저는 그의 수비 능력에 승부를 걸었고요.”
“3루 선상으로 흐르는 공을 맨손으로 잡아 2루 포스아웃 타이밍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대단합니다. 오늘은 마이애미 투수 성낙기의 또 다른 면을 본 것 같군요. 상대가 허점을 파고들 걸 예상하고 대비한 알렉스 비토 감독의 승부수도 상당했습니다.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성낙기는 자신이 가진 수비 능력을 알아보고 상대 타자에게 덫을 놓은 알렉스 비토 감독에게 놀랐다.
시프트를 하면서 3루 번트 수비에 대비하라는 사인을 받았지만,
이 정도로 세밀하게 자신의 장점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연습 때, 전력을 다해 수비할 일은 없었으므로
성낙기의 수비 능력을 알렉스 비토처럼 높게 평가한 코칭스태프는 없었다.
수비에 있어서 전문가라는 마인 허지스 수비 코치 역시 성낙기의 능력을 준수한 정도로만 평가했다.
‘시즌 중에 감독을 체인지한 이유가 있었군.’
어쨌든 극적으로 기분 좋게 승리를 낚아챘다.
성낙기는 경기장 밖에서 가족을 만나 근처의 호텔로 갔다. 그리고 아버지 성용구에게는 특별히 고급 와인을 따라 드렸다.
장하연도 술을 배웠는지 곧잘 마셨고 성용구씨는 성낙기와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면서 왕년에 돌멩이를 던지던 얘기며 달리기 시합에 나갔던 얘기며 장가는 언제 갈 거냐고 물어 성낙기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아버지가 장하연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엄마가 아버지 성용구를 따로 재우러 옆방에 들어갔고 성낙기는 오랜만에 온 장하연과 동생 서희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
그리고 다음 날, LA다저스는 한풀 꺾인 듯한 모습으로 경기장에 나왔다.
2차전엔 호세 우레나가 선발이다. 다저스의 선발은 워커 뷸러였다.
100(161km)마일까지 나오는 포심패스트볼이 주무기이며 커브와 슬라이더 등의 변화구를 가지고 있다.
간혹 슬라이더의 변화를 줄이고 속도를 높인 컷 패스트볼을 던지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에 맞서는 호세 우레나는 성낙기가 오기 전엔 부동의 에이스였다.
올해 역시 11승에 ERA 3.34의 성적으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는 승운이 따르지 않아 11승에 머물고 있지만 매년 15승 언저리를 해주던 마이애미의 에이스가 바로 그였다.
경기가 시작되었고 호세 우레나는 1회 말부터 볼넷을 내주더니 2루타와 송구 실수로 1점을 내주고 말았다.
2회엔 다저스의 선발 워커 뷸러도 볼넷을 두 개나 내주더니 안타 하나와 희생플라이 등으로 2실점, 나란히 경기 초반이 좋지 않았다.
결국, 호세 우레나는 5회까지 4실점으로 부진했고 워커 뷸러도 5회까지 3실점으로 던진 뒤, 6회엔 나오지 않았다.
“7회까지 4:3으로 앞선 LA다저스의 8회 초 수비입니다. 브록 스튜어트 투수가 마무리 켄리 잰슨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잇기 위해 마운드에 오릅니다. 강속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투 피치라는 약점이 있는 투수입니다.”
“마이애미의 시에라 선수가 타석에 나오는군요. 이 선수가 특히 후반에 강하죠. 브록 스튜어트 투수, 조심해야 할 겁니다.”
해설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에라는 초구를 안타로 연결하며 1루로 나갔다.
그러자, 브록 스튜어트가 흔들렸고 볼넷에 이은 디카엘로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었다.
다저스가 새로운 투수를 투입했으나 선발 포수로 나온 리얼무토의 2루타로 2점을 추가, 6:3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이봐, 셜리번 8회에 누가 나가는 게 좋겠어. 생각 같아선 야를린 가르시아에게 2이닝을 맡기고 싶군.”
“팬 파일러와 해리슨이 대기 중입니다.”
“흠, 시즌 내내 8회에 나갈 투수가 없으니… 쩝. 팬 파일러가 기복만 없다면 좋은 투수인데… 긁히는 날을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본인이 아까 그러는데 오늘 긁힌 답니다.”
“뭐……? 팬 파일러가 그랬다고? 흐흐, 어이가 없… 그런 판단을 지가 하나. 아주 프로 중의 프로 나셨네.”
“공이 나쁘지는 않은데 제구가 어떨지는 올라가 봐야 압니다.”
“그럼, 내보내 봐. 얼마나 잘 긁히는지 구경이나 해봐야겠어.”
팬 파일러는 출장 지시가 떨어지자 208cm의 큰 키로 성큼성큼 마운드에 올랐다.
6, 7회를 전담했던 딜런 피터스와 함께 불펜의 필승조였는데 제구가 들쭉날쭉해서 알렉스 비토 감독의 눈 밖에 났고 필승조에서 밀려났다.
요즘 해리슨이 올라갈 때마다 불을 질러서 8회를 막을 투수가 없어져 버렸다.
그동안 제구력을 잡기 위해 성낙기에게 조언을 구했고 일주일 동안의 레슨 결과, 눈에 띄게 공을 놓는 위치가 일정해졌다.
‘팬 파일러에게 기회가 왔구나. 좋아, 팬 파일러. 너의 능력을 보여 줘.’
성낙기는 마운드의 팬 파일러를 응원했다.
일주일 동안 비밀리에 제구력에 관한 훈련을 가르쳐 줬는데, 팬 파일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제구력의 향상이 있었다.
물론, 그 훈련엔 드랙 실바가 성낙기를 통해 도우미로 나섰다.
드랙 실바는 오랜만에 자신을 찾는 성낙기가 귀찮다면서도 가르쳐 줄건 다 가르쳐 주고 사라졌다.
***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팬 파일러가 3삼진으로 8회를 지우는 걸 보게 되다니. 셜리번 자넨 알고 있었나?”
“불펜 투구를 할 때 많이 좋아졌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죠. 저도 놀라는 중입니다.”
“본래 98(158km)마일 던지는 투수가 슬라이더 제구까지 잡히니까 1이닝은 그냥 씹어 먹는군.”
“후우, 와인드업이 일정해졌고 공을 놓는 위치나 투구 폼도 직구와 변화구가 구분이 안 됩니다. 타자가 당황할 만하겠어요.”
“좋아, 팬 파일러가 8회만 맡아 준다면 우리 불펜도 경쟁력이 있어. 그동안 이가 안 맞아서 애를 먹었는데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야.”
알렉스 비토 감독과 셜리번 투수코치의 말대로 팬 파일러는 8회 말에 올라가자마자 삼진 퍼레이드를 펼쳤다.
208cm의 큰 키에서 내리 꽂는 포심패스트볼도 위력적인데,
슬라이더까지 각까지 살아 있었다.
거기에 몸 쪽, 바깥쪽 제구까지 되니 타자들이 느끼는 위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팬 파일러는 8회를 던지고 나서 가장 먼저 성낙기에게 다가가 고마움을 알렸다.
“나키야, 고마워. 네가 날 살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