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097화 뉴욕 메츠 3연전 4
7회 초에 신더가드는 변함없이 마운드에 올랐고 타석엔 채드 왈라치가 들어섰다.
모처럼 잡은 주전인데 오늘 안타가 없어서 초조했다.
기회가 왔을 때 감독의 눈에 들어야 출장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
채드 왈라치는 굳은 얼굴로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신더가드를 바라보았다.
‘풋, 쟤 왜 저러니.’
팡.
“스트라이크.”
신더가드는 채드 왈라치의 표정을 보고 씩, 웃더니 강속구를 뿌렸다.
그도 왈라치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아는 터다.
사람 좋고 잘 웃고 덩치에 아울리지 않게 마음도 여린 선수로 알았는데 7회 들어 복수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눈에 힘을 주고 자기를 노려본다.
어느 정도 먹히는 인상으로 그러면 같이 기분 나빠하면서 위협구라도 던질 텐데, 왈라치가 인상을 쓰면서 자기를 노려보니 꼭 동네의 바보 형 같다.
따악.
파울.
2구는 뒤쪽으로 흐르는 파울. 채드 왈라치는 장갑을 고쳐 끼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신더가드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를 유인구로 던졌다.
휘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왈라치는 타석에 들어설 때의 의욕은 어디 갔는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움츠린 채 더그아웃으로 걸어갔다.
시즌 초의 2번 타자에서 8번 타자로 내려온 다음 타자, JT 리들 역시 0.225의 성적이 말해주듯 삼진을 당했다.
투아웃에 주자 없는 가운데 성낙기가 타석에 들어섰다.
경기 스코어 1:2의 박빙의 상황이지만 마운드가 신더가드라면,
이대로 9회까지 끌려갈 가능성도 높다.
팀의 승리도 승리지만 기껏 7, 8회까지 전력을 다해 던지고도 1점 차이로 진다면 그보다 허무한 일도 없을 것이다.
‘너 홈런 하나 칠 때 되었는데?’
‘아참, 투수가 무슨 홈런을 쳐요. 공만 잘 던지면 되는 거지.’
‘아니야, 내가 촉이 와서 그러는데 네가 꼭 홈런을 칠 것 같아.’
성낙기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 워마린 코치와의 대화였다.
조금 친해졌는데 사람이 좀 단순하다.
메이저리그에 맞지 않게 데이터 보다는 감에 의존한 작전도 자주 내는 편이다.
때로는 경기의 결과를 예측하기도 하는데 자기 말로는 90%를 넘는다고 했지만,
성낙기가 볼 땐 사이비 무당 수준이다.
타석에 들어서자 신더가드가 사인을 받고 몸 쪽을 응시한다.
‘투 아웃에 주자도 없으니 사구를 던지려고 저러나.’
팡.
“웃!”
“볼.”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몸 쪽이다.
그것도 타석을 벗어나 몸을 피하지 않았으면 맞을 뻔한 공이었다.
성낙기가 마운드를 쳐다보자 신더가드가 시선을 피한 채 스파이크로 마운드를 고른다.
벤치클리어링을 할 뜻은 없다는 건데, 그렇다면 변화구를 던지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
팡.
“스트라이크.”
역시나, 바깥쪽 슬라이더가 들어왔다. 3구 역시 바깥쪽으로 들어가는 커브였는데 성낙기가 건드려 1루 관중석으로 들어갔다. 볼 카운트 원 볼 투 스트라이크.
팡.
“볼.”
이번엔 하이패스트볼이 왔고 성낙기의 배트는 거의 중간쯤까지 갔다가 멈춰 섰다.
포수 케빈 플라웨키가 1루심을 가리켰다.
1루심이 세이프를 선언했고 신더가드가 던진 5구는 바깥쪽으로 꺾여 들어오는 싱킹패스트볼이었다.
딱.
파울.
신더가드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투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상대 투수가 타석에서 끈질기게 커트하는 것이다.
신더가드는 포수의 사인을 받고 고개를 흔들었다.
계속 커트 당한 이면엔 사인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마운드의 신더가드가 6구째의 사인을 직접 냈고 성낙기는 날아오는 공이 무엇이든 때려내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공이 홈플레이트로 날아왔다.
따악.
성낙기의 배트가 돌았고, 공과 배트가 만나는 순간 손에 느껴지는 감각이 경쾌하다.
타구를 본 관중들의 환호성이 귀에 들어왔다.
“아, 공이 쭉쭉 뻗습니다. 좌익수 팀 티보 따라갑니다만, 공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날아갑니다. 넘어갈 것 같습니다. 홈-런!”
“99(159km)마일의 포심패스트볼을 그대로 당겨서 넘겨 버리네요. 오우, 대단합니다. 가운데로 몰린 공이 아니었는데 팔꿈치를 최대한 몸에 붙이면서 왼발을 오픈했습니다. 보통 저런 공엔 파울이 나기 쉬운데 폴대 안쪽으로 넘기는 타격 기술이 놀랍군요. 투수이면서도 A급 타격가의 재능을 보여주고 있어요.”
“마이매이 관중들 열광합니다. 경기의 분위기가 달아오르네요. 2:2로 동점을 만드는 마이매이 말린스입니다. 이렇게 되면 경기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뉴욕 메츠의 팬들은 신더가드의 1실점 완투승을 바랐을 것입니다만, 경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예스!”
“정말 멋진 홈런이야. 비거리가 135m는 족히 나오겠어.”
“성낙기 굿!”
“좋았어. 이제 우리에게 맡겨.”
마이애미의 더그아웃도 달아올랐다. 다른 투수도 아니고 신더가드를 상대로 이토록 끈질긴 승부를 하는 성낙기를 보고 모두 자신감을 얻었다.
신더가드는 모아 놓은 돈을 잃은 사람처럼 망연자실한 표정이다가 다음 타자를 내야 땅볼로 잡아내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시작된 7회 말,
성낙기가 마운드에 올랐고 안타 하나를 허용한 뒤 나머지 타자들을 병살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
경기는 연장으로 넘어갔다.
9회에 두 팀 모두 필승조를 내보냈고 실점이 없었다.
이어진 10회에도 점수가 나지 않았고 11회 초, 마이애미의 루이스 브린슨이 타석에 섰다. 뉴욕 메츠의 불펜 투수 게셀만이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따악.
루이스 브린슨이 친 타구가 투수의 다리를 맞고 굴절,
노아웃 1루의 찬스가 만들어졌다.
이어 나온 브라이언 앤더슨이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를 뚫는 2루타 성 타구를 날렸고 팀 티보는 급한 나머지 손에서 공을 한 차례 떨어뜨렸다.
그러는 동안, 루이스 브린슨이 홈을 밟았고 앤더슨이 2루에 들어갔다.
“11회 초에 역전에 성공하는 마이애미입니다. 선더가드와 성낙기의 호투로 2:2 연장에 돌입했는데요. 마이애미가 먼저 득점을 하는군요.”
“마이애미가 요즘 달라졌어요. 아주 끈질긴 팀 컬러로 바뀌는 중입니다. 뉴욕 메츠를 상대로 연장 선취 득점은 대단히 의미가 있죠. 딜런 피터스가 9회를 잘 막았고 팬 파일러 역시 10회를 책임졌습니다. 11회 말엔 마무리 투수 야를린 가르시아가 나올 겁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시에라의 연속 안타입니다. 앤더슨은 3루에서 멈춥니다. 주자 1, 3루로 찬스를 계속 이어가는 마이애미입니다.”
마이애미 타선은 11회 초에 폭발했다.
뉴욕 메츠의 불펜 게셀만을 상대로 6번 디카엘로마저 2루타를 터뜨린 끝에 주자가 모두 홈에 들어왔고 스코어는 5:2가 되었다.
디카엘로의 2루타 때, 1루 주자 시에라는 히트 앤드 런(Hit and run)을 시도했고 여유 있게 홈을 밟았다.
병살을 방지하려는 알렉스 감독의 작전이었고 선수들은 작전을 잘 수행했다.
11회 말엔 마무리 투수 야를린 가르시아가 삼자 범퇴로 경기를 끝내 버렸다.
마이애미 승.
***
동부지구 2위의 강자 뉴욕 메츠와 팀의 에이스 신더가드를 상대로 5:2의 승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고,
비록 승은 챙기지 못했으나 신더가드와 성낙기의 맞대결에서 팀이 이긴 성낙기의 판정승이었다.
마이매이 말린스와 뉴욕 메츠의 2차전 선발은 아담 콘리와 제이크 디그롬이었는데
명성에서도, 실력에서도 밀린 아담 콘리는
뉴욕 메츠의 타선을 이겨내지 못하고 뭇매를 맞았다.
3:12의 뉴욕 메츠 승.
2차전을 덧없이 내준 마이애미는 3차전에서는 뉴욕 메츠의 강속구 투수, 맷 하비를 괴롭힌 끝에 4와 3/1이닝 만에 강판시켰다.
4회까지 4득점을 올린 마이애미는 5회 1사까지 92구를 던지게 만들었고 맷 하비는 주자 1, 2루의 상황에서 불펜에 마운드를 넘겼다.
반면, 마이매미 말린스의 샌디 알칸타라는 7이닝 2실점으로 뉴욕 메츠의 타선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3차전은 마이애미 말린스가 6:4로 승리, 뉴욕 메츠를 상대로 위닝 시리즈를 가져갔다.
***
3연전이 끝난 다음 날은 경기가 없는 휴식일이었고, 다음 상대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가 잡혀 있었다.
성낙기는 쉬는 날임에도 말린스 파크에 도착했다.
mlb에 와서 어려운 경기가 많았고 경기장마다 이동 시간이 길어서 연습을 할 시간이 늘 부족했다.
KBO에서 뛸 때와는 확실히 다른 환경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아마도, 상태창이라는 시스템이 없었더라면 체력적으로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왈라치, 나와 줘서 고마워.”
“난 괜찮아. 늘 백업으로 뛰었기 때문에 좀이 쑤실 지경이야. 뉴욕과의 1차전에선 정말 끝내줬어, 성낙기야.”
“네가 잘해줘서 그렇지. 오늘도 수고해줘야겠어.”
“걱정 마. 성낙기의 전담포수라면 불 속이라도 뛰어들 용의가 있어.”
성낙기의 현재 최고 구속은 151km, 즉 94마일에 달한다. 그리고 공의 제구력과 위력 또한 드랙 실바나 헤이드 존의 전성기 80%가 넘어서고 있었다.
가장 높은 스탯을 찍은 포심패스트볼의 제구력은 91%나 된다.
하지만, 약간의 문제도 있는데 스탯을 믿고 아무렇게나 던져도 제구력이 다 잘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마운드에서 그냥 대충 바깥쪽으로 던진다고 다 스트라이크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스탯은 널 도와주는 거지, 전부는 아니야. 집중하지 않고 던지는데 공이 저절로 제구가 된다면 우리가 여기에 올 이유가 없는 거다.’
언젠가 드랙 실바가 했던 말처럼 스탯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mlb에 와서 확실히 느꼈다.
스탯이 전부라면 바깥쪽을 던지기로 마음먹는 순간,
몸 쪽으로 던져도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시스템은 성낙기가 던지려고 하는 곳에 던질 수 있도록 몸의 균형과 로케이션, 변화구의 그립과 하체부터 상체로 올라와서 어깨와 팔로,
다시 손목에서 손가락으로 내려와 공이 뿌려지는 메커니즘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지,
기계적으로 원하는 코스에 들어가는 건 아니었다.
오늘 성낙기가 왈라치를 부른 이유도 자신이 가진 스탯을 확실히 알아둘 필요를 느껴서였다. 뉴욕 메츠와의 1차전에서 6안타를 맞았고 투런 홈런을 허용한 것은
기본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스탯이 모든 투구에 관여하고 있지만 집중력이나 마운드에서의 멘탈 등은 오로지 성낙기만의 것이었다.
“자, 왈라치. 오늘 내가 가진 모든 구종을 던져볼 거야. 전력투구가 될 테니까 그렇게 알아 둬.”
“전력투구? 누구 죽이려고 그래. 벌써부터 겁나는 걸?”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 오늘 내 공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래? 도대체 어떤 공을 던지려고 그러는지 기대된다. 걱정 마. 난 물에 들어가면 입부터 가라앉아.”
성낙기는 와인드업을 하고 왈라치에게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94(151km)마일의 공이 왈라치의 미트에 들어갔고 왈라치는 화들짝 놀랐다.
볼 끝이 살아서 자신을 밀어내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건 시작이었고 성낙기는 20여 구를 전력투구한 뒤, 라이징패스트볼과 퀘이크볼을 던지기 시작했다.
왈라치는 연신 땀을 훔치며 공을 받았다.
한 구, 한 구마다 전해지는 위력은 왈라치를 힘들게 했고 커브부터 시작하여 포크볼까지 이어지는 변화구에 기진맥진해졌다.
“성낙기, 힘들지 않아? 벌써 95구야. 이렇게 무리하면 다음 등판에 던지지 못할걸?”
[체력이 6 남았습니다]
성낙기는 포심패스트볼을 6구 던지고 연습을 마무리했다.
채드 왈라치는 성낙기의 공을 받으면서 느꼈다.
오늘 성낙기가 던진 공에 볼은 거의 없었고 스트라이크 존으로만 공이 들어왔다.
아무리 연습이라지만 많은 공을 던지면서 한가운데로 들어온 공도 없다.
그는, mlb에 엄청난 투수가 등장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