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투수 성낙기-96화 (96/188)

# 96

096화 뉴욕 메츠 3연전 3

“시에라가 너무 서두르는 것 같지?”

“원래 그렇잖아. 타석에 서면 욕심이 한가득이지. 지금 같은 찬스가 오면 흥분해서 종종 경기를 말아먹지.”

셜리번 투수 코치의 말에 워마린 타격 코치가 답했다.

워마린 타격 코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에라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서두르는 경향은 있어도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버티는 능력이 있는 타자다.

급한 성격만 좀 고치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는 재능인데 아직 포텐을 터뜨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팡.

“볼.”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를 참아내는 시에라.

투 스트라이크 이후엔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신더가드는 2루 주자를 힐끗 쳐다본 후에 4구를 던졌다.

팡.

“볼.”

이번엔 높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오다가 떨어지는 커브였는데 시에라의 배트가 나가다가 멈췄다.

비슷하면 치는 유형이지만 유인구에는 잘 말려들지 않는 시에라였고 신더가드는 마운드에서 모자를 벗었다가 고쳐 쓰며 숨을 골랐다.

방금 던진 커브는 10번 중, 7,8번은 배트가 나오는 공이다.

용케 참아내는 타자를 보면서 만만치 않다고 느꼈다.

변화구에 속지 않으면 정면 승부밖에 없다고 생각한 케빈 플라웨키는 싱킹패스트볼 사인을 냈다.

타자의 몸 쪽으로 휘면서 떨어지는 이 볼은 엄청난 스피드를 동반하기 때문에 제대로 쳐내는 타자가 거의 없었다.

신더가드는 고개를 끄덕인 후, 와인드업으로 공을 던졌다.

슈욱!

따악.

몸 쪽으로 들어오는 공을 시에라가 노려 쳤고 타구는 2루수와 1루수 사이를 뚫으면서 우익수까지 굴러갔다.

가렛 쿠퍼는 빠른 스타트를 끊고 홈으로 향했다.

뉴욕 메츠의 우익수 콘포토의 어깨는 메이저리그에서 알아주는 강견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사력을 다해 달렸다.

“가렛 쿠퍼, 홈으로 들어옵니다. 뉴욕 메츠의 콘포토 공을 잡자마자 홈으로 송구합니다. 가렛 쿠퍼의 슬라이딩! 세이프를 선언하는 주심입니다. 6회에 1점을 뽑아내는 마이애미 말린스.”

“강한 싱커였는데 코스가 워낙 좋아서 2루수가 잡을 수 없는 타구였어요. 우익수 콘포토가 강하게 송구했습니다만, 타구가 느려서 마이애미에 좋은 결과가 나왔네요. 이렇게 되면 앤더슨을 거른 것이 의미가 없어지는군요.”

그랬다.

더그아웃의 지시로 앤더슨을 걸렀지만 시에라에게 안타를 맞으면서 고의 사구 작전은 무위로 돌아갔다.

오히려 투아웃 2루의 위기만 계속 이어졌다.

신더가드가 똥 씹은 얼굴이 된 것은 당연했고 다음 타자 디카엘로에게 분노의 100(161km)마일 포심패스트볼을 던지며 5구만에 2루수 뜬공으로 이닝을 끝냈다.

***

신더가드가 마이매미의 1번 타자부터 6회를 시작하면서 실점을 했듯 성낙기의 6회 말 또한 뉴욕 메츠의 클린업 트리오를 상대해야 했다.

5회까지 맞은 5안타가 모두 단타였고 적절히 분산되었던 탓에 무실점으로 잘 막아냈으나, 3번 타자 도미닉 스미스로부터 시작하는 뉴욕 메츠의 6회 타선은 위험하다.

도미닉 스미스, 팀 티보, 윌머 프로레스로 이어지는 타선은 mlb의 어떤 투수라도 꺼려지는 타선일 수밖에 없다.

“성낙기 투수, 도미닉 스미스를 상대하게 되는데요, 이 선수 무척 까다롭습니다. 시즌 타율이 0.308로 팀 내 최다 안타를 치고 있고 18개의 홈런으로 팀 내 홈런도 3위입니다.”

“뉴욕 메츠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죠? 선구안이 좋아서 볼넷도 많은 선수인데요. 출루율이 무려 3할 7푼에 이를 정도로 공격의 첨병 역할을 하는 선수예요. 1번 타자가 맞지 않느냐는 논란도 있었을 만큼 타격 능력도 우수하고 발도 빠릅니다. 마이애미 배터리가 주의해야 할 겁니다.”

“이 선수는 올해 FA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확실한 동기부여로 좋은 활약을 펼치는 중입니다.”

성낙기는 이전 시즌 도미닉 스미스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한 적이 있었다.

그 홈런으로 경기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불펜 투수들이 난조를 보인 끝에 역전패했다.

하지만.

[체인지업의 위력이 85로 오릅니다]

[세기의 강속구가 86으로 오릅니다]

그때와 지금은 성낙기의 역량 자체가 다르다.

공의 스피드는 더 빨라졌고 변화구의 제구력은 물론이고 볼 배합의 패턴 역시 다양해졌다.

포심패스트볼에 변화구가 슬라이더, 커브 정도라면 충분히 게스히팅도 가능하겠지만,

성낙기의 경우 다른 투수들이 던지는 5종의 변화구 외에도 퀘이크볼과 라이징패스트볼까지 있어서 노리고 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몇 달 전과는 또 달라. 어떻게 계속 공이 좋아지는 거지?’

도미닉도 그걸 알았다.

그때의 성낙기가 아니라는 걸.

성낙기가 오늘 허용한 5안타는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안타를 맞고 주자가 나가면 전력투구를 하는 듯 공이 빨라졌고 타자들은 찬스에서 맥없이 물러났다.

팡.

“스트라이크.”

94(151km)마일의 공이 포수 미트에 꽂혔고 도미닉 스미스는 4회보다 더 빨라진 구속에 혀를 내둘렀다. 2구는 같은 코스의 포크볼이었는데 도미닉은 나가려는 배트를 거둬들였다.

드랙 실바 전성기의 79%에 머무는 공이었지만 상당히 예리하게 꺾인다.

채드 왈라치는 3구로 슬라이더를 요구했다.

몸 쪽으로 오다가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에 꽂히는 공을 원했다.

따악.

도미닉 스미스가 친 공은 내야를 맞고 바운드를 크게 일으켜 1루수 위로 뻗었고 브라이언 앤더슨이 점프하며 글러브를 내밀었으나

공은 키를 넘기고 우익수 앞으로 굴러갔다.

잘 맞은 타구는 아니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바운드가 컸고 앤더슨의 점프도 타이밍이 너무 빨랐다.

공이 최고점에 있을 때 앤더슨의 몸은 중력에 의해 끌려 내려왔다.

***

“선나키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 않아? 방금 던진 슬라이더도 평소보다 밋밋해 보였어.”

알렉스 비토 감독이 셜리번 코치에게 말했고,

사인을 받은 채드 왈라치가 마운드로 올라왔다.

“야, 너 보고 전력투구하라는데?”

“전력투구? 나 지금 몸 갈아가면서 던지는데 뭔 소리야.”

“몰라, 더그아웃에서 그런 지시가 내려왔어. 완투할 생각 말고 강하게 던지래.”

‘염병. 눈치 하나는 죽여주는군.’

채드 왈라치가 돌아갔다.

성낙기는 팀 티보를 맞아 퀘이크볼을 연속으로 던져 파울 볼로 투 스트라이크를 만든 다음, 몸 쪽에서 솟아오르는 라이징패스트볼로 삼진을 잡아냈다.

시즌 21홈런을 기록 중인 5번 타자 윌머 프로레스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체력이 23 남았습니다]

이러면 8회까지 던질 수 있을지 간당간당하다.

그냥 포심패스트볼을 전력으로 던지면 23개를 던진다는 건데 혹시나 전광석화(電光石火)라도 쓰게 되면 투구 수는 더 줄어든다.

느린 변화구로 체력을 아낀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뉴욕 메츠의 다음 타자는 브랜든 님모.

좌타자인데 순해 보이는 인상에 무색무취해서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런 선수였다.

무얼 해도 눈에 잘 띄지 않고 개성도 없는 선수다.

성적도 고만고만해서 주전으로 뛰면서도 상대 투수의 집중 견제는 받아본 적이 없는 유형이었다.

그러나 시즌 17홈런을 때려내고 있을 정도로 소리 없이 강한 타자가 바로 그였다.

성낙기는 채드 왈라치의 몸 쪽 투심패스트볼 사인에 심드렁하게 공을 던졌다.

좌타자를 맞출 듯이 날아가다가 역방향으로 꺾이며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가는 공이었는데 초구에 브랜든 님모의 배트가 나왔다.

따악.

-으아아. 머야.

-와아아아아--

-맞았- 다.

-거기서 몸 쪽으로 왜 던져. 주자가 1루에 있는데 미쳤다.

-야아 그걸 때리냐. 넘어가 버렸어. 성낙기 6회 2실점이닷.

-아니 좋은 라이징패스트볼 놔두고 왜 엉뚱한 걸 던져서 홈런을 쳐 맞고 그래.

-괜찮아, 아직 6회니까 마이애미도 기회가 있어.

-mlb는 다르네. 저런 걸 가볍게 쳐서 넘겨 버리냐.

-성낙기의 문제는 체력이야. 경기 후반에 약한 면이 있어. KBO에서도 그랬지.

한국에서 인터넷 중계를 시청하던 팬들이 게시판에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며 성낙기의 투구에 관심을 보였다.

성낙기는 몸 쪽으로 바짝 붙는 투심패스트볼을 투런 홈런으로 연결한 님모를 보며 모자를 벗고 열을 식혔다.

3, 4번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고 나서 별생각 없이 던진 공인데 생각지도 않았던 홈런을 맞았다.

채드 왈라치 역시 홈 플레이트에서 마스크를 벗고 일어서서 홈으로 들어오는 님모를 주시했다.

왈라치답지 않게 열받은 모습이었는데 홈런이 되는 순간,

님모가 대여섯 발자국을 걸어갔기 때문이었다.

“너, 그런 식으로 할 거야?”

“뭐가?”

“홈런 치고 나서 행동이 잘 되었다고 생각해?”

“아, 그거 때문에? 사실은 홈런이 될 줄 몰라서 그랬다.”

“…shit.”

홈플레이트를 밟은 님모에게 왈라치가 말을 걸었고 님모는 그 상황을 얘기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왈라치는 고개를 숙이며 욕을 내뱉었고 님모는 못 들은 척 더그아웃으로 돌아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

워싱턴 내셔널스(Washington Nationals)의 스카우트 울프마이어와 LA에인절스(Los Angeles Angels of Anaheim)의 톰은 기자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KBO에서부터 보아왔던 성낙기가 처음 mlb에 왔을 때만해도 반신반의했다.

배짱도 좋고 제구력도 준수하지만 느린 공 스피드로 과연 mlb에서 통할 것인가.

그들이 KBO에서 선수들을 관찰한 이유는 연준후나, 천강조, 그리고 각 구단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 파악을 위해서였다.

거기서 성낙기를 보았고 특이한 투수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곳까지 진출해서 KBO와 다름없는 활약을 이어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윌슨이 선수 보는 눈이 있는 것 같아. 난 성낙기가 메이저리그에서 통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오벨 마이어가 자책하듯 말했고,

“마찬가지야. 난 심지어 마이애미 구단을 비웃기까지 했었지. 동양의 작을 투수를 데려오는 데 700만 불이라니. 그럴 바엔 쿠바로 날아가서 동네 야구 하는 아무나 데려와도 비슷할 거라고 말이야.”

LA에이절스의 톰이 오벨 마이어의 말에 동조하듯 말했고, 그때 마이애미 말린스의 윌슨 스카우트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무슨 얘기를 그리 심각하게 하고 있나. 괜찮은 선수라도 찍은 거야?”

“노우, 마침 잘 왔네. 그렇잖아도 자네 얘길 하고 있었지. 한국에서 온 성낙기의 어딜 보고 스카우트했나.”

오벨 마이어가 궁금했던 점을 물었고,

“글쎄, WBC에서 실력이 검증되지 않았나? 메이저리그 주전급들을 상대로 잘 던졌잖아.”

“허, 이거 왜 이래. WBC에 나온 타자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건 누구나 아는 일이잖아. 그 대회에서 잘 던졌다고 700만 불을 주고 데려오는 스카우트는 없지. 결과적으로는 아주 잘한 선택이 되었지만 말이야.”

“계약 외에도 마이애미 말린스의 경기 중계료가 또 하나의 옵션이었지. 생각해 봐. 투수 하나를 받고 중계료까지 챙기면 700만 불은 헐값이나 마찬가지야. 게다가 성낙기가 어느 정도의 활약을 해준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겠지.”

“그렇게 된 거군. 선수와 중계료가 패키지라… 전 구단이 방송사까지 거느리고 있나? 어쨌든 엄청난 물건을 건진 셈이군, 저토록 잘 던질 줄은 상상도 못 했네.”

“내가 알기론 일정 금액을 구단이 부담하는 조건이야. 그만큼 성낙기의 성공을 확신한 거겠지. 그쪽 스카우트가 회장 딸이라고 들었는데 전권을 쥐고 밀어붙이더군. 자네들도 숨겨진 보석을 찾아보게나. KBO에 가면 저런 선수가 없으라는 법도 없겠지. 안 그래?”

“…….”

윌슨의 말을 듣고 속이 상한 오벨 마이어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마운드의 저 투수 때문에 워싱턴의 브라이스 하퍼가 한동안 슬럼프에 시달렸고 최고의 투수 스트라스버그도 의기소침한 적이 있었다.

‘휴우, KBO리그를 가장 많이 관찰했으면서 저런 투수를 놓치다니.’

오벨 마이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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