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095화 뉴욕 메츠 3연전 2
“으휴, 내가 메이저리그 밥 30년인데 뇌진탕을 스스로 만드는 놈은 처음 봤네.”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시에라를 보며 알렉스 비토 감독이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상대 투수가 신더가드인데 뭐가 그렇게 억울하다고 저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
더구나 시즌 타율 0.268에 불과한 중견수가 말이다.
그러나, 시에라는 심각했다.
이제부터 잘해서 시즌 타율을 2할 8푼 이상으로 올려야만 다음 시즌에도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성낙기가 마운드에 올라가자 왈라치는 뉴욕 메츠의 4번 타자 팀 티보를 상대로 몸 쪽 포심패스트볼 사인을 냈다.
‘워, 왈라치가 이렇게 강심장이었나?’
쪼는 법이 없는 성낙기도 이때만큼은 긴장했다.
뉴욕 메츠의 4번 타자가 어디 고스톱 쳐서 딴 레벨도 아닐 텐데 초구부터 몸 쪽 포심패스트볼이라니.
더구나 당겨 치는 데 능한 타자에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해가는 피칭을 할 성낙기도 아니다.
따악.
파울.
초구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한 개 정도 더 깊숙이 들어간 몸 쪽이었는데, 팀 티보는 하나 왔다 싶었는지 가차 없이 배트를 돌렸고 공은 3루 측 관중석으로 들어갔다.
팀 티보는 아까운지 입을 크게 벌리며 이마를 찌푸렸다.
왈라치의 2구 사인도 포심패스트볼이었다.
저렇게 사인을 내다가 홈런이라도 허용하면 볼 배합에 관한 말이 나올 게 분명한데도 왈라치는 거침이 없다.
성낙기는 제 2구를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웬일로 팀 티보가 가만있다.
초구의 날카로운 파울 타구를 보고 2구도 같은 공을 던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이다.
***
“오마르, 볼 배합 자네하고 얘기된 거야?”
“제가 중요한 순간 이외엔 터치 않는 거 아시잖습니까.”
“아나, 보자보자 하니까 지 머리를 치고 비틀거리는 놈이 있지를 않나, 팀 티보에게 몸 쪽 패스트볼을 연속으로 던지질 않나, 오늘 애들이 왜 이러지? 에이 모르겠다, 지들이 알아서 하겠… 아니지. 가만 보면 상식이 없어, 자식들이.”
알렉스 비토 감독은 채드 왈라치에게 조심하라는 사인을 냈다.
왈라치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3구는 라이징패스트볼 사인이었다.
“아이, 라이징패스트볼에 맛 들렸나. 체력 소모가 얼마나 심한데 자꾸 그걸 던지래.”
성낙기가 허리를 굽혀 사인을 받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왈라치는 1회와 똑같이 손을 아래로 찍듯이 내리면서 라이징패스트볼 사인을 다시 보냈다.
그거 아니면 안 된다는 듯이 강조하는 손짓에 성낙기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나를 상대하면서 웃나? 허… 어이가 없군. 투 스트라이크 잡아 놨다 이거야?’
팀 티보는 성낙기가 웃는 모습을 보고 배트를 콱 움켜쥐었다.
어디 걸리기만 해봐라, 하는 듯이 입술도 꼭 깨물었다.
슈욱.
라이징패스트볼(7cm/10cm)
따악.
파울.
팀 티보는 라이징패스트볼이 올 줄 알았다는 듯,
배팅 포인트를 높게 가져갔고 타구는 높이 솟아올라 홈플레이트 뒤 그물망을 맞고 떨어졌다.
공은 제대로 맞지 않았지만
뒤쪽으로 파울 볼이 간 걸 보면 타이밍은 맞는다는 얘기가 된다.
파울 볼을 잡으려고 벌떡 일어섰다가 다시 돌아와 앉은 왈라치도 그걸 알고 있었다.
‘포심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추고 있었구나. 그럼, 이번엔 이거다.’
‘체인지업?’
언제는 어퍼스윙이 좋아서 떨어지는 공은 안 된다면서 체인지업을 요구하는 왈라치를 보고 송낙기는 또 쓴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팀 티보는 배트가 부러져라 손아귀에 힘을 줬다.
그리고 두 눈이 조금씩 타올랐다.
팡.
휘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4구 연속 몸 쪽 승부를 들어온 공에 팀 티보가 배트를 휘둘렀고 타자 앞에서 체인지업이 쑥 꺼졌다.
브레이킹 볼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핌 티보의 머리엔 3구 연속으로 들어온 빠른 공에 대한 잔상이 새겨졌고,
배트를 휘두를 때는 라이징패스트볼과
포심패스트볼,
그리고 브레이킹 볼 중에 선택을 해야만 했다.
라이징패스트볼만 아니었더라도 포심패스트볼을 기다리며 체인지업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궤적이 너무나 상이한 라이징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의 조합은 팀 티보 같은 홈런 타자에게는 어려운 숙제를 푸는 것과 같았다.
“shit!”
팀 티보가 돌아섰고,
“오, 팀 티보를 4구만에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성낙기 투수입니다. 연속으로 공 네 개를 몸 쪽으로 던졌는데 이런 볼 배합은 보기 드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저도 놀랍네요. 팀 티보는 27홈런을 기록 중인 슬러거인데 그런 타자에게 몸 쪽 연속 승부는 아주 의외라고 봐야죠. 그런데 팀 티보는 때려내지 못하고 삼진을 당했고요. 이건 뭐랄까, 뉴욕 메츠의 최고의 타자에게 도발한 것과 다름없는 겁니다.”
“저런 승부를 한 것에 대해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 보시는 거군요.”
“분명히 있습니다. 뉴욕 메츠를 대표하는 타자의 신경을 건드려서 마이애미 배터리의 의도대로 경기를 끌고 가려는 거죠. 의외로 팀 티보 같은 대형 타자들이 저런 신경전에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네, 2회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은 성낙기 투수가 프로레스를 맞아 로진백을 집어 듭니다.”
***
경기는 6회로 치닫고 있었다.
신더가드는 컨디션이 최상인 듯 환상투를 펼쳤고 5회까지 8삼진 2안타 1볼넷으로 무실점을 기록 중이었다.
마이애미 타선은 신더가드 특유의 빠른 공과 루키 때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변화구 제구력에 속수무책이었다.
성낙기 역시 4회에 타자로 나와 무려 94(151km)마일의 슬라이더에 삼진 아웃을 당했다.
팡.
“스트라이크.”
6회 초 선두 타자로 나선 가렛 쿠퍼는 97(156km)마일의 바깥쪽 싱킹패스트볼에 스트라이크를 허용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저히 칠 수 없는 공이라는 생각을 담은 행동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신더가드가 살짝 입 꼬리를 올렸다.
마이애미 더그아웃에서 투구를 지켜보던 시에라는 브라이언 앤더슨 옆에서 풍선껌을 씹어대고 있었다.
“6회에 싱커 스피드가 저 정도라니… 고무 팔이 따로 없어.”
“시즌이 한 달 남았는데 더 힘이 나는 모양이야. 이럴 땐 시에라 네가 한 방 쳐줘.”
“큭, 4번 타자가 하는 말 좀 봐라. 24홈런을 친 타자가 17홈런을 친 타자에게 할 말이냐?”
“휴… 어지간히 빨라야 치든 말든 하지. 슬라이더조차 다른 투수들 포심패스트볼과 맞먹는 스피드야.”
“가렛! 부탁해!”
시에라가 앤더슨의 말을 듣고 나서 가렛 쿠퍼를 응원했다.
원볼 투 스트라이크로 볼 카운트가 몰린 상황.
신더가드는 막다른 곳에 몰린 가렛 쿠퍼에게 커브를 던졌다.
자신의 빠른 공에 익숙해진 타자들이 거의 반응하지 못하는 결정구였다.
톡.
데구르르르.
가렛 쿠퍼가 기습적으로 투수와 1루수 사이로 푸시번트를 댔고 공은 투수가 처리하기도, 1루수가 처리하기도 애매한 스피드로 굴러갔다.
투 스트라이크에서 댄 번트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상태였고 허를 찔린 신더가드와 1루수 윌머 프로레스는 누가 처리해야 할지를 망설였다.
뒤늦게 신더가드가 공을 잡아 1루로 던졌지만, 가렛 쿠퍼는 1루를 통과한 뒤였다.
“가렛 쿠퍼의 기습적인 번트가 나왔습니다. 신더가드 투수 1루수에게 송구합니다만, 세이프를 선언하는 1루심입니다. 6회 선두 타자가 살아 나가는 마이애미 말린스. 좋은 기회를 잡습니다.”
“이건 모험입니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번트를 댔다는 것도 그렇지만, 가렛 쿠퍼가 탁월한 발을 가진 선수는 아니거든요. 도루가 11개에 그치고 있는 선수인데 팀 내에서 출루율이 가장 높기 때문에 1번 타자를 맡고 있죠. 그리고 그 출루율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가렛 쿠퍼입니다.”
“좀처럼 번트를 대지 않는 메이저리그인데요. 그만큼 신더가드의 구위가 대단한 데다 마이매미의 절박함이 표현된 번트라고 봐야겠습니다. 노 아웃 1루의 찬스를 맞는 마이애미 말린스입니다.”
***
신더가드는 1루에서 타자를 잡아내는데 실패한 뒤,
숨을 몰아쉬면서 마운드로 돌아왔다.
이대로 가면 완봉이 눈앞인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서 기분이 잡친 그는 알아듣기 힘든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다음 타자를 맞아 마운드의 흙을 스파이크로 파며 흐트러진 기분을 다잡았다.
타석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트레이드 되어 주가를 올리고 있는 샤일록이 들어섰다.
앞선 두 번의 타석에서 내야 땅볼을 기록했다.
신더가드는 1루 견제구를 던진 뒤, 셋 포지션으로 공을 던졌다.
팡.
볼.
샤일록이 몸을 피할 만큼 깊은 몸 쪽이었고 포수 케빈 플라웨키는 가렛 쿠퍼의 리드가 못마땅했는지 1루로 공을 던졌다.
가렛 쿠퍼가 황급히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베이스를 터치했다.
‘다음 공도 패스트볼일 확률이 높다.’
샤일록은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예상했고 가렛 쿠퍼 같은 주자가 있는 한,
빠른 공을 던져 도루에도 대비해야 하는 게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신더가드가 택한 공은 슬라이더였고 가운데로 오다가 바깥쪽으로 비스듬히 떨어졌다.
따악.
샤일록이 약간 엉덩이가 빠진 자세로 배트를 돌렸고 타구는 1, 2루 사이로 굴러갔다.
빠른 타구라면 충분히 안타가 될 만한 코스였는데 아쉽게도 타구에 힘이 실리지 않았고 2루수가 잡아 한 바퀴 몸을 회전하면서 1루에 뿌렸다.
가렛 쿠퍼는 손쉽게 2루에 안착했다.
타구가 느렸기에 병살을 면했고 보내기 번트를 한 것과 비슷한 결과가 만들어졌다.
‘후… 뭔가…….’
신더가드는 기분이 묘했다.
타자를 잡았는데 어쩐지 잘 잡았다기보다는 마이애미의 의도대로 경기가 풀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음에 나올 타자들은 마이애미가 자랑하는 3, 4번 타자다.
하위권 팀이라 할지라도 메이저리그의 클린업 트리오는 정교함과 힘의 두 가지를 모두 가졌다고 봐야한다.
타석에 루이스 브린슨이 들어섰고 신더가드의 초구를 때려 유격수 땅볼로 아웃됐다.
그동안 2루 주자는 움직이지도 못했다.
“흔들릴 기미를 보이는 투수한테 초구 공략이 뭐야.”
“경기 말아 먹으려고 작정을 한 거지. 길게 끌고 가야 뭔가 틈이 생기는데 어쩔 수 없어. 앤더슨이 터뜨려 주는 수밖에.”
“신더가드가 굳이 앤더슨하고 승부할 필요가 있나? 1루에 보내 놓고 시에라를 구워삶으면 되지.”
“글쎄, 앤더슨 거르면 신더가드 자존심에 생채기가 날 거야.”
***
마이애미의 팬들은 투아웃 2루로 바뀐 상황을 아쉬워하면서도 브라이언 앤더슨의 한 방에 기대를 걸었다.
시즌 0.278의 타율에 24홈런을 기록 중인 앤더슨은 신더가드와 상대 전적 12타수 3안타 0.250의 타율에 2루타가 하나 있다.
시즌 타율과 비교해서 특별히 약하다고 할 수 없다.
앤더슨이 타석에 들어섰고 신더가드는 케빈 플라웨키의 사인을 받았다.
‘뭐……? 고의사구?’
더그아웃에서 고의사구 사인이 나왔고 신더가드는 얼굴을 구겼지만,
미키 캘러웨이 감독이 직접 낸 사인을 거부하기에는 앤더슨이라는 타자의 존재감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뭔가 꺼림칙한 건 사실이다.
6번에서 5번으로 올라온 타자 시에라가 하위타순이라고 해도 강속구에 강점이 있는 타자이기 때문이다.
상대 전적만 보더라도 11타수 3안타로 오히려 앤더슨보다 낫다.
“타자, 1루로!”
주심이 앤더슨에게 1루로 나갈 것을 명령했고 앤더슨은 자동 고의사구로 1루를 밟았다.
그리고 타석엔 껌을 씹으면서 시에라가 들어왔다.
체구는 작은 편에 속하는 시에라지만 좌타자이면서 이른 카운트에 승부하기를 즐기는 전투적인 타자였다.
선구안을 좁게 가져가면서 출루율을 높이면 테이블세터로 손색이 없는데 타고난 성향은 자신이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가 강했다.
“신더가드 투수 앤더슨을 거르고 시에라와 승부합니다. 앤더슨의 장타가 마음에 걸렸을까요. 승부를 피하는 신더가드입니다.”
“아마, 벤치 사인이 나왔을 겁니다. 제가 아는 신더가드는 고의 볼넷을 선호하는 투수가 아니에요. 글쎄요, 시에라를 잡아낸다면 다행이지만 적시타를 허용한다면 벤치의 판단 미스가 되는데요. 좌타자에 특별한 약점을 보이지 않는 신더가드의 시즌 성적도 고려한 선택 같네요. 제가 감독이라도 앤더슨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시에라인데 결과는 예상을 배반하는 경우도 많죠. 그래서 베이스볼이 흥미로운 거고요.”
신더가드는 시에라를 맞아 바깥쪽 커브로 카운트를 잡아나갔다.
그런 뒤, 몸 쪽 하이패스트볼로 배트를 유도했다.
시에라가 아낌없이 배트를 휘둘렀고 볼 카운트는 순식간에 노 볼 투 스트라이크로 변했다.
워마린 타격 코치가 시에라에게 신중 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시에라가 사인을 보고 자신의 헬멧을 툭툭, 쳤다.